제조동 건물에는 회사의 갑작스러운 도산으로 인해 매각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채 생산 설비, 자재들이 버려진 채 썩어가고 있었다.
꽤 큰 기업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넓은 공장. 그 안에서 오랫동안 차갑게 식어있던 기계들은 지금 오랜만에 뜨겁게 달구어 지고 있었다.
탄환과 폭발, 그리고 흥분한 병사들의 열기로.
그리고 우리는 이제 저곳으로 들어가야 한다.
콰아아앙!!!
사무동을 정리하고 제조동 건물로 들어간 우리 15반을 제일 처음 맞이한 것은 수류탄인지 뭔지 모를 폭발 소리였다.
사무동과 제조동을 연결하는 긴 통로를 지나 제조동으로 진입하니 사방팔방에 쌓여있는 벤치 더미와 쓰러진 자판기로 미루어보아 아마도 휴게 공간이 아니었을까 싶은 구역이었다. 우리는 그 사이에 은폐한 채, 김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난장판이네. 연, 이거이거........”
수연선배 조차 긴장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
나는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이지만 지금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아까의 추태가 대부분인지라, 신기하게도 아까 사무동진입 때와 비교해서 긴장과 공포는 오히려 비교적 덜 느끼고 있었다.
“........일단, 이 놈들 살아있는지 먼저 확인해 봐야 겠구만.”
말을 마치고 김연은 귀에 부착된 통신기를 통해 어딘가에 연락한다.
“나다. 이지운? 살아있냐? 상황은?”
김연, 그리고 우리들과 통신이 연결된 상대는 9반의 이지운 반장이었다.
“더럽게 빨리오네!! 급하다고 했잖아!!!”
“정말 급하면 질문에나 대답하시지?”
“........현재 9반은....... 부상이 한명, 경상이지만 다리를 당했다.”
“적은?”
“현재 확인 된 것은.......동반 텔레포트가 가능한 공간조작계 각성자 5명, 그리고 그것과 함께 나타난 50여명의 각성자........로 추정되는 병력이다.”
“!!!”
공간 조작계가 5명, 그 말을 다시 들으니 이제야 지금 상황의 암울함이 생생하게 피부에 와 닿는다.
“재건 동맹이 텔레포터........ 말도 안 돼........”
이제와 새삼스럽게 내 솔직한 감상을 중얼거려 본다.
김연 역시 나와 그다지 다른 감상은 아닌 것 같다.
“그럼 대충 한 명이 10명 정도 데리고 나타난 거군........ 미치겠네. 난징당에서 자금지원이라도 받았나? 놈들이 그럴 돈이 어디서 났지?”
김연의 말 대로였다.
각성자의 능력은 여러 계열로 분류가 이루어져 있다. 크게는 내현계와 외현계 초월계로 나뉘지만 그 하위 분류로 간다면 생물 분류 뺨치는 복잡한 갈래로 다시 여러 번 갈라진다.
그리그 그 중, 외현계의 범주에 공간을 자의로 조작할 수 있는 공간 조작 계열 능력이 있다.
전 세계 150~200만으로 추정되는 각성자들 중, 그 수가 대략 천 몇 백 명 정도의, 극소수에 속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 자기 자신의 텔레포트가 가능한 레벨의 각성자라면.......정말로 적다. 게다가 그게 가능한 자들은 ‘단 한명’을 제외한다면 전원 S랭크에 속해있는 베테랑의 강력한 각성자다.
다시 말해, 하나하나가 김연과 (랭크 기준으로는) 비슷한 레벨의 존재들이 나타난 것이다.
“현재 퇴로는 모두 막혔다. 다른 반들은 자기 목숨 챙기기에도 바빠 보이네.”
애써 여유를 지키는 이지운 반장의 통신, 그러나 그들이 처한 상황은 전혀 그럴 여유가 없어보였다.
잠깐 상황설명을 해보자면, 15반이 사무동에서의 전투를 마무리 지었을 무렵, 임무에 참가한 6개 반 중 9반을 비롯한 나머지 5개 반들도 임무 성공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나타난 지원군 덕분에 상황은 다시 혼전. 인질 구출에 나선 9반은 현재 제조동 가운데에 있던 중앙 통제실 겸 방송실에 고립되고 나머지 반들도 넓은 제조동 곳곳에서 교전을 벌이고 있었다.
5명의 공간조작능력자, 그중에서도 동반 텔레포트가 가능한 레벨의 각성자가 지원군을 데리고 나타난 것이다.
“.......쯧. 알았다. 거기서 조금만 버티고 있어라.”
텔레포트가 가능한 공간조작능력자는 김연에게도 껄끄러운 상대인 것일까?
김연은 통신을 끊고는 이쪽을 돌아본다.
항상 저런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 조금쯤 인기가 많아질 지도 모르겠다.
“이제 설명은 더 필요 없겠지. 내 뒤로 수연, 지민, 어린이, 마지막은 강윤이 혼자 맡는다. 따라와.”
사격음과 피탄음, 비명과 고함이 뒤엉키는 가운데 김연이 나지막히 지시를 내렸다.
“알겠습니다!!”
“그래. 가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연이 뛰어들고, 15반이 그 뒤를 따른다.
그리고 김연이 길을 연다.
땅을 박차고, 기계들을 박차며 뛰어오르는 짐승, 그것 외에는 표현 할 길이 없었다.
공중에서 곳곳을 향해 날리는 탄환, 그리고 착륙과 동시에 주위에 있던 적 두 명의 목이 김연의 나이프에 날아간다.
그가 한번 움직일 때마다 누군가가 피를 뿜으며 쓰러진다.
기계 뒤에 숨어 있던 적 하나는 김연을 겨누지도 못한 채, 그가 발사한 탄에 머리가 뚫려 넘어갔다.
자재 더미 뒤에 숨어있던 자는,
콰앙!!!
“끄윽......!!!”
김연이 걷어찬 드럼통에 자재더미가 무너져 깔려버렸다.
그리고 김연은 멈추지 않고 마치 거미가 기어가는 것처럼, 어느새 나이프 한 자루와 권총 하나를 들고 낮은 자세로 숨어있는 적들에게 육박한다.
피가 튀고, 머리가, 팔이, 다리가 잘리고 뽑혀 날아다닌다. 그리고 그 끔찍한 광경 한 가운데, 김연은 마치 홀로 다른 차원에 있는 것처럼 자유롭게, 그리고 가볍게 활보하며 적을 도륙했다.
적의 총구를 피해 나이프를 휘두르고 적이 방아쇠를 당기는 것 보다 빠르게 움직인 김연의 총구가 불을 뿜는다.
탕탕탕!!!
총소리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적이 고꾸라진다.
“제기랄!!!”
그때 적 하나가 욕설을 퍼부으며 손을 뻗었다. 그러자,
우웅.......
바닥에 어지럽게 널부러져있던 자재, 공구 등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뒈져!!!!”
재건동맹의 각성자, 각성능력은 아마 염력일 터인 그자가 자신의 염동력으로 주변의 기재를 김연에게 내던졌다.
부웅!!
“반장님!!!”
뒤 돌아 있는 김연에게, 염력으로 내던진 묵직한 물건들이 빠르게 날아가는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다급히 외쳤다.
“.......”
그러나, 염동능력자는 이쪽에도 있었다.
맨 뒤에서 김연을 엄호하던 강윤 선배가 그 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큿! 뭐, 뭐야!!!”
“.......”
각성자가 김연을 노리고 날린 자재들은 공중에 멈추었다. 강윤선배가 자신의 염동력으로 적의 염동력을 방해하고 있는 탓이다.
탕!
그리고 김연은 강윤 선배와 염동력 싸움을 하던 적 각성자에게 한발을 갈긴다.
“흡!!!”
각성자가 죽으니 염동력도 사라지고, 강윤선배는 공중에 떠있던 기계와 자재더미를 저 멀리, 엄폐한 채 사격하던 적을 향해 던졌다.
콰앙!
“잘했다!”
김연이 다시 움직인다. 그에 맞춰 길이 열린다.
빠른 움직임에 불길이 일렁이고 그 검은 궤도를 따라 피와 비명이 흩뿌려진다.
그러면서도 김연은 결코 우리에게서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 우리들의 앞을 축으로 삼고는 한번 달려들어 몇 명을 쓰러트리고, 다시 대열의 앞으로 귀환, 그리고 다시 반복.
중력도, 인간의 육체의 한계조차 무시하는 듯한 자유롭고 아크로바틱한 움직임......이라고 해도 난 제대로 포착하기도 힘들었다.
그 모습이, 나로서도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너무나 아름다웠다.
내가 사람한명 잡고 미치긴 했나보다. 저걸 보며 이런 생각을 한다니.
그렇게 신속하게 15반의 진로가 열린다.
“홍!! 뒤처지지마!!!”
“아, 네, 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발이 느려진 모양인지, 수연선배의 질책이 날아온다. 그리고 황급히 총을 들어 선배들이 하는 것처럼 김연을 엄호한다.
혹시라도 김연을 맞출 걱정은....... 안 해도 되려나?
“.......젠장.”
긴박한 와중에도 입술을 깨물며 김연의 말을 곱씹었다. ‘후회든 뭐든 집에서 하고 할 일을 해라.’ 그 말대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아까의 광경이 떠오른다.
탕.
손가락에서 전해지는 미세한 압력이 내 머릿속을 울리며 그 순간을 머릿속에서 재생시킨다.
내가 당긴 방아쇠, 발사된 탄환, 터져나간 머리, 흩날리는 선혈.......
그리고 지금 나를 괴롭히는 또 다른 하나는 나의 무능이다.
김연처럼 자유자재로 적을 유린하는 것도, 하다못해 강윤과 지민처럼 적극적으로 김연을 보호하지도 못한 채 그저 뒤를 따른다.
아까 같이 발목을 잡지 않기 위해,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기 위해 명령받은 대로 방아쇠를 당길 뿐인 신입, 그것이 바로 나다.
부끄럽다. 천재라고 불리던 시절이 부끄럽다. 오빠에게 부끄럽지 않은 자신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내가 너무나 부끄럽다.
그렇게 이를 악문 채 김연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덧 우리의 목표가 보였다.
“좋아! 앞으로 10M!!”
어느새 우린 인질들과 9반의 구출 팀이 농성하고 있는 중앙의 방송실 겸 통제실에 근접해 있었다.
“흠? 나도 아직 쓸만하네. 녹슬지 않았어.”
방독면을 뒤집어쓰고 있지만 그 히죽이는 얼굴이 보이는 것 같다. 두달동안 지겹게 본 표정이니 어쩔수 없지 뭐.
“말투가 이상해. 아재같아. 아니, 아재 맞지?”
수연선배가 딴지를 걸고 김연은 받아친다.
“일단 나는 25살이고, 아재 아니고, 나이에 맞게 정해진 말투가 있다는 것도 편견이고.”
“.......”
평소라면 여기에 끼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이 모습을 보고 내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평소와 다르다.
어째서, 아니, 어떻게 이 사람들은 이런 곳에서도 평소와 같을 수 있는 것인가.
“반장님. 저길 보십쇼.”
그렇게 말하며 앞을 가르키는 김강윤 선배. 그리고 김연과 우리의 시선이 그 손가락을 따라간다.
우우웅.......
샌드위치 판넬로 둘러싸인 형태의 중앙 통제실이 보이고, 그 안에선 9반이 아직 테러리스트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교전 중에 있었다.
그 방의 유리창으로부터 30CM정도 떨어진 거리부터, 푸른 빛을 내는 막이 여러 개 겹쳐있는 것이 보였다.
“.......저게.......”
아카데미 시절 배운 지식대로라면, 저것이 저 방의 약한 부분을 보완해 주고 있는 방어술식일 것이다.
타앙!!!
스으으.......
그리고 벽의 다른 부분은 탄에 피격될 때마다 하얀 빛이 잠시 일렁이다 사라진다. 역시 방어를 위한 대책으로 보였다.
그것을 잠시 지켜본 김연은, 숨을 고르고 대원들에게 말했다.
“오, 생각보다 잘 막고 있네.”
그 말에 수연선배는 고글을 고쳐 쓰며 대답했다.
“그래도 위험해 보이는 데. 저런 건 전문적인 마법사가 오지 않는 이상 10분 이상은 못 버틸걸?”
“전문 마법사는 오지 않지만 우리는 왔으니 괜찮아. 일단 포위망의 일점을 돌파는 했고, 이제 주변을 제압해서 저 안의 인원들을 빠져나오게 하면 1단계는 끝난 거지. 자 그럼 우리는 저 곳으로 가서.......”
그러나 김연의 지시는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콰아앙!!!
“??????”
김연이 말을 마치기도 전, 중앙통제실의 너머에서 폭염이 솟구쳤다.
“이런 제기랄!!”
“뭐야!!!”
“으윽!!!”
불길이 치솟고 강풍이 우리를 찢어놓으려는 듯 몰아친다.
“연!! 이번 건 좀 다른데?!!!”
공장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폭발은 지금까지 간간히 본 수류탄이나 기타 화기에 의한 것과는 조금 달랐다.
보통의 폭탄은 영화와 달리, 저렇게까지 불길이 화려하지 않으니까.
“젠장!!!”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낸다. 지옥이라고 생각한 이 공장. 그러나 지옥의 밑에는 또 다른 지옥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직, 콰드득.......
이거 위험한데.
폭발은 폭발로 끝나지 않지. 언제나 그렇듯.
“가만히 있지마!!! 깔려 죽기 싫으면!! 따라와!!”
김연이 다급하게 외쳤다.
“크윽!! 반장님 앞에!!!”
“이런 시X!!!!”
남은 폭탄이었을까 아니면 연료 따위에 불이 붙은 것이었을까. 우리와 중앙 통제실의 사이, 쉽게 말하자면 김연의 코앞에서 불길이 덮쳐왔다.
“반장님!!! 수연선배!!!”
그리고 그 불길은 김연, 수연선배와 나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마치 불길이 그 둘을 삼킨 것처럼.
그러나 그들을 걱정하고, 다음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멈춰있지마!! 우선 피한다!!”
강윤 선배 말대로 반장과 수연선배를 걱정할 여유는 없었다. 남은 자들 역시 불타는 기계들과 자재들에 둘러싸여있었고, 그 중 몇몇은 붕괴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강윤선배의 왼쪽에 있던 기계에도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젠장......!!!”
콰쾅!!!
“강윤선배님!!!”
그렇게 우리들에게 모두에게 있어서, 최악의 하루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겐,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