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가던 김연이 갑자기 멈추고 손을 들어올렸다.
“정지.”
“.......”
아까 차 안에서 김연으로부터 전송받은 하수도의 지도대로, 갈림길이 나왔다.
“자, 아까 지도를 보며 설명했던 대로, 여기서 갈라진다. 오른쪽은 나, 어린이. 그리고 왼쪽은 나머지 전부.”
“네!!”
그렇게 힘차게 대답하고 나니, 문득 누군가 등을 건드리는 느낌을 받고 뒤를 돌아보았다.
“저...... 세연아......”
“지민 선배?”
“반장님......잘 부탁해....... 난 발이 느리고....... 실내에선 연계가 잘 안되니까....... 어쩔 수 없지만......”
솔직히 걱정은 제가 받아야 할 것 같은데요 지민선배.
어쨌든 상대가 지민선배이고, 그녀가 김연에게 가진 감정은 솔직히 조금 이해가 가긴 하니까 그녀를 조금 안심시켜주자. 분명 내가 연상이기도 하니까.
“걱정 마세요. 반장님은 괜찮으실 거에요. 그래도 만일의 사태가 나오지 않도록 제가 조심할게요.”
진짜로 ‘제가’ 조심할게요. 전 선배들이랑 다르게 B랭크 나부랭이니까요.
어쨌든 그런 생각은 숨기면서 나는 이 작은 선배를 따뜻한 미소로 안심시켰다.
“음....... 글쎄? 홍이랑 있는 것이 정말 괜찮을까?”
“......”
음? 내가 그렇게 미덥지 못한건가?
“쓸데 없는 소리 마라. 최수연. 음....... 지민, 아마 세연이라면 괜찮을 거다.”
강윤선배가 힘 빠진 목소리로 수연선배에게 말했다.
“아, 아니....... 난, 그런 게 아니라.......”
무언가 그들이 하는 말을 눈치 챈 듯이 당황하며 손을 젓는 지민 선배가 귀엽긴 했지만 뭔가 찜찜하다,
“......뭐죠?”
동료들이 대상을 애매하게 말하는 것 같은데.
반장님이랑 있는 나를 걱정하지 말라는 걸까? 아니면 나와 있는 반장님을 걱정하지 말라는 것일까? 애매모호한 위로네.
그리고 혼자 궁시렁 거리던 김연이 드디어 정신을 잡은 듯 이쪽을 보며 말했다.
“잡담은 그만하고, 아무튼 갈라진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 특히 너네. 안티 텔레포트는 너네 연봉 반년치 짜리니까 조심해서 다루고.”
빛이 들어오지 않는 하수도 안,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철퍽, 하고 불쾌한 감촉이 느껴지고 있었다. 장소가 장소이니 만큼 분명 깔끔한 액체는 아니겠지. 튼튼한 전투화를 신고 있음에도 불쾌하기 그지없다.
우리가 야간투시경을 통해 확보한 시야는 하필 온통 녹색으로 물들어 있어 꺼림칙함이 배가되는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쓰고 있는 방독면의 뛰어난 성능 덕에 호흡만큼은 쾌적하단 걸까?
“......”
“......”
정말 진귀하게도 김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나아가고 있었다. 들리는 것은 그저 철퍽철퍽 하는 발소리와, 어디선가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뿐.
그저 걷고 있을 뿐이라 해도 그다지 유쾌하지 않을 환경과 분위기건만, 우린 하수도 산책을 하러 들어온 것도 아니다.
“......”
앞에 펼쳐진 녹색 시야 저 너머의, 무언가가 숨어 있는 것만 같은 어둠이 기분 나쁘다. 어린 시절 그렇게 두려워하던 어둠이었다. 마치 그 안에서 무언가 튀어나올 것 같은 기분에 이불을 뒤집어 쓰곤 했지.
그리고 지금, 마치 그날의 두려움이 형상을 갖추고 꿈틀대며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후우.......”
답답하다. 끈적한 공기가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저 시커먼 곳으로 한발한발 내딛는 건 전혀 즐거운 경험이 아니었구나.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더구나 그 앞에는 언노운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어둠과 공포, 그리고 언노운. 어쩜 이렇게도 절묘한 조합일까.
전담청 대원이라면 언제나 그렇지만, 최악의 상황은 언제나 갑작스레 다가온다.
아니, 이번엔 내가 다가가고 있었다. 어둠과 언노운, 공포와 증오에 다가가는 내 발걸음 소리에 점점 긴장과 두려움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
김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보다 조금 앞에서 나아가고 있었다. 평소의 수다스러움은 보이지 않고,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나아가는 김연.
역시 그도 긴장한 것일까? 아무리 그라도 그 언노운이 상대라면 조금은 긴장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닐 테지. 무엇보다 언노운의 위험성은 언젠가 그 자신이 그렇게도 강조했던 것이니까.
왜일까? 묘하게 안심이 된다.
얼어붙은 반장을 보며 안심이 된다니, 나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지만 아마도 같은 위험을 마주한 자에 대한 동질감 정도로 생각해 두자. 혹은, 가볍기 그지없어도 왠지 거리감이 있는 저 인간도 두려움을 느낀 다는 것에 안심한 걸지도 모르지.
그때, 갑자기 김연이 멈추었다.
“잠깐.”
“??”
지금 김연과 나의 앞에, 왼쪽으로 ㄱ자로 꺾여진 길이 나타났다. 김연은 조심스레 왼쪽 벽으로 붙어서 꺾여진 지점, 그 너머를 살펴보았다.
“뭔가 이상한 것이 있나요?”
“전혀. 오히려 여기까지 들어왔는데 아무것도 없는 것이 더 이상해.”
“그저 깊숙이 숨은 것일 지도 모르죠.”
“그렇긴 한데....... 깊숙해봐야 하수도 곳곳에서 전담청 대원들이 접근하고 있는데 한 팀에선 흔적이라도 발견했어야 하지. 아니면.......”
“아니면, 뭐죠?”
“이미 이곳을 떴을 수도 있지. 서울 전역에 안티텔레포트를 박아 넣진 못했으니까 가능성은 꽤 높아.”
“그렇다면 흔적이라도 발견하면 다행이겠네요.”
“그리고, 최악의 경우도 생각해 놔야지.”
“최악의 경우라면?”
“공장이나, 강계시 때 같은 기습말야.”
“......”
불타는 공장이 떠오르고 이제는 죽어버린 철연의 얼굴이 갑자기 스쳐지나갔다.
“뭐, 다른 반장들도 바보는 아니니 대비는 하겠지만. 그리고 강윤이쪽 녀석들도 절대 약한 녀석들도 아니고 팀플레이가 좋은 녀석들이니 쉽게 당하진 않겠지.”
그렇게 말하면서 김연은 통신을 전환했다.
“15반 김연이다. 대충 B지점까지는 들어온 것 같은데 흔적조차 없군. 다른 쪽은?”
“여기는 3반. 역시 아무도 없다.”
“여기도.”
“마찬가지.”
반장들의 대답이 이어진다. 아무래도 다른 곳도 상황은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아무래도 도망친 걸까? 이번엔 확실히 기습당할 가능성을 상정하고 들어왔으니, 놈들도 세 번 당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고 후퇴를 택한 걸 수도 있지.”
“......”
훌륭한 사망플래그를 내뱉는 12반 반장 이정윤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그래 꼭 그런 말하는 놈들이 먼저 죽더라고. 아, 만약에 기습당해도 되도록이면 너 혼자 죽고 피해는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부탁해. 전담청은 더 이상의 인력손실을 겪어선 안되니까. 너 혼자라면 큰 피해는 아니겠지?”
김연은 통신기에 대고 밉살맞은 소리를 중얼거리고 통신을 끊었다.
“아무래도 다른 쪽도 마찬가지인 듯하군. 이대로 순조롭게 수색이 끝나면 좋을텐데 말야.”
“이번에 잡는 것이 가장 좋은 것 아닌가요?”
“적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 채 전투에 들어가는 것보다 완전히 적의 상황을 파악하고 일방적으로 덮치는 것이 가장 좋은 거지. 그건 동서고금 통하는 필승법이다.”
“생각보다 신중한 분이셨네요.”
“넌 날 뭘로 생각하고 있냐? 애초에 그런 전투광 캐릭터는 현실에선 가장 먼저 죽는단 말이다.”
“뭐....... 그렇긴 하겠죠.”
“아무튼, 일단 계속 간다.”
“........네.”
“뭐 이번엔 저번 같은 대규모 불꽃놀이는 못할거야. 이런 데에서 터트렸다간 자기들도 죽을 테니. 아, 그전에 저쪽에도 통신을.......”
그때였다.
지이잉.......
무언가가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
김연이 멈추자, 그 뒤를 따르던 나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저 앞에서 무언가가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그때 김연이 무언가를 눈치 챈 듯, 나지막하게 내뱉었다.
“아, 이런 씨.......”
파지지지직!!!!!!
“크윽!!!”
별안간, 강렬한 노이즈와 충격이 덮쳤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다른 종류의 폭발도, 몸의 이상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직후, 무언가 이상을 감지했다.
“이건.......”
왼 팔에 달린 PDA가 잠시 불규칙하게 깜박 거리더니, 파직, 하는 소리와 함께 암전되었다. 귓가에 울리던 통신기의 지직거리는 소리는 곧 완전히 멈추었다. 그리고 잠시 후, 시야가 완전히 암전되었다.
“뭐죠??”
무언가의 능력, 혹은 마법인가? 아니, 그런 감각은 절대로 아니었다.
아, 야시경이 망가졌구나.
상황을 판단한 나는 황급히 투시경을 벗고 허리춤에서 두 개의 조명탄을 꺼내어 켰다.
파즈즈즈.......
백색 불꽃이 일어난다. 나는 그 중 하나를 전방에 하나는 후방에 던져 주위의 시야를 확보하였다.
그런데 옆의 반장, 김연이 왠지 조용하다.
“반장님?”
“.......”
“저....... 반장님?”
김연은, 천천히 나를 돌아보더니, 방독면을 통해 울리는 목소리로 단 한마디만을 남겼다.
“야. 나 좀 챙겨라.”
그 말이 끝나고, 김연의 몸이 기운다.
“??”
철퍽.
“바, 반장님!!!!”
김연은, 나무토막이 넘어가듯 그대로 오수가 깔린 바닥으로 쓰러져버렸다.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생각하기도 전에 나는 어느새 그에게로 달려가 앞으로 엎어진 그를 뒤집고 그를 살펴보고 있었다.
“도대체.......! 정신차리세요!!! 괜찮으세......”
황급히 방독면을 벗기고 그의 상태를 확인해보니, 다행히 숨은 쉬고 있었다.
그러나 단지 그뿐, 김연은 눈을 감고 미동도 하지 않는다.
방금 전의 그 노이즈와 충격이 무언가 관련이 있는 것은 확실했다.
그러나, 그걸 뒤집어 쓴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어째서 쓰러져버린 것은 김연 뿐인 거지? 정신계열 능력? 전하조작계? 아냐, 그런 건 나보다 김연이 더 잘 버틸 텐데?
“잠깐만 기다리....... 젠장! 통신기!!”
문득 동료들을 부르려다가 통신기가 망가졌음을 알아차렸다.
한편, 김연은 여전히 아무런 반응 없이, 잠자듯 기절한 상태. 살펴보니 김연의 전자장비들도 모조리 기능을 정지한 상태였다.
“EMP인가???”
EMP, 전자기펄스라고도 부르는 그것이라면 전자장비가 모조리 망가진 이유가 설명 된다. 최근엔 보병 장비로 쓰이는 소형 EMP탄도 개발 되었다고 하니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김연이 쓰러진 것인지,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다.
원인이야 어찌 되었건, 김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건 간에 일단 김연을 데리고 빠져나가 하수도 밖으로 후퇴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 완전히 늘어져버린 김연을 일으키기 위해 손을 뻗는 찰나,
철퍽
무언가,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