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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니셔
작가 : null
작품등록일 : 2017.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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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과 일탈 5
작성일 : 17-12-29     조회 : 290     추천 : 1     분량 : 5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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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혁은 자신의 집무실 책상에 앉아 홀로그램 영상을 보며 대화를 하고 있었다.

  “진심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이번에 체포한 자에 대해선, 당분간 그쪽에게 맡기겠습니다.”

  검찰청장. 군부의 인사들 만큼은 아니더라도 불편한 동거를 계속해오던 상대가 눈에 띄게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 입니까? 기본적인 수사는 그쪽에서.......”

  “현재 서울지검의 모든 인력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저번에 잡은 자들도 있고, 그 외에도 해외 커넥션의 조사와 국내 협력자 등도 조사중이거든요. 한마디로, 여유가 없다는 겁니다.”

  “.......”

  물론 검찰이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것 보다야 훨씬 나은 상황이지만, 뭔가 미심쩍다. 그가 말하는 이유도, 숨겨진 이유도.

  “무엇보다 그 작자들, 3차 대전 이전부터 활동한 ‘각성자 집단’ 아닙니까? 이런건 그쪽이 더 전문이니 기소 전까진 그쪽에 완전히 위임하겠습니다. 어떠신가요?”

  “......좋습니다.”

  “그럼, 무운을 빌겠습니다.”

  영상이 끊어진다. 건혁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생각에 잠긴다.

  평소대로라면 수사권을 내세우며 마찰을 빚었을 터, 물론 이렇게 위임받으면 건혁 입장에선 더욱 느긋하고 꼼꼼하게 사건을 파헤칠 수 있으니 나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귀찮다고 넘겨버릴 사건도 아니고 말이지.......”

  하지만 갑자기 사근사근하게 나오는 저 태도가 건혁은 왠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혹시 저번에 청와대에서 욱했던 것을 들은건가?”

  그렇게 중얼거릴 때, 누군가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하아, 하아....... 청장님.......”

  전담청 차장, 허준성이 당황하는 얼굴로 뛰어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그게.......”

  건혁은 당황한 부하의 표정과 말투에서 불안감을 느낀다. 아무래도 오늘 밤도 편하게 잠들진 못할 것 같았다.

 

  나는 밤 늦은 시간까지 전담청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현재시각 11시, 아까 카페를 나와 수연언니와 헤어진 이후 집에 들렸다가, 누군가의 연락을 받고 다시 전담청 인근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미안, 늦었다.”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내 동기, 진민이 피곤한 얼굴로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피곤하겠지. 12반은 정보과, 수사과인 9반과 함께 지금 전담청에서 가장 혹독하게 갈려나가는 팀일 테니까.

  “많이 바쁜가보네?”

  “그렇지. 뭐 이것도 잠깐 쉰다고 하고 나온 거라 다시 들어가 봐야해.”

  “아...... 미안.”

  “나중에 밥 한번 사라....... 아무리 그래도 다른 사람들 있을 때 하긴 어려운 일이라 고생 좀 했거든.”

  그렇게 말하고 진민은 탁자에 무언가를 내려놓았다.

  “이거 빼오느라 개고생 했어. 거기에다 서류로 된 건 조사할 때 슬쩍 빼돌려서 데이터화 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더라.”

  “......고마워.”

  내 생각보다 그는 내 부탁을 너무나 성실히 들어주었다.

  진민이 내려놓은 것은 USB였다.

  내가 어젯밤 연락한 사람은 수연선배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고마워.......”

  수연선배를 믿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일단 나와 같은 반, 같은 평대원이니 알고 있는 정보에도 한계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기에 나는 정보과 소속인 내 동기, 진민에게도 부탁한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게 필요한거야? 15반은 강습이 전문이잖아. 그리고 듣기로는 너네 반 다 휴가 받았다고 들었는데?”

  “........쉬면 안될 것 같아서.”

  “역시 모범생이라 성실하네. 그런데, 너네 반 선배들은? 선배들 통해서 위에다 자료를 요청하면.......”

  “선배들은 다 쉬고 계시고, 반장님도 입원해 있고, 굳이 자료를 받겠다고 선배들을 부르고 싶지 않았거든, 게다가.......”

  “게다가?”

  “뭔가 이상한 점도 있어서 말이야. 알고 싶은 것이 많아서 부탁해봤어.”

  “굉장히 의욕적이구나.”

  “응. 그놈들은, 철연이를......”

  다시 분위기가 무거워진다. 세상을 떠난 동기를 떠올리는 우리. 아까 수연언니와 만날 때도 그랬었지만, 언노운의 이야기를 하다보면 자꾸만 사라져버린 사람들이 떠올라 가슴이 답답해진다.

  기분 나빠.

  “아.......미안......괜한 소리했어.”

  “.......아무튼, 일단 언노운 관련해선 닥치는 대로 긁어오긴 했어.”

  이 녀석, 이러니 저러니 해도 제법 수완이 좋은 녀석이다. 자료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하루 만에 이렇게 까지 해줄 줄은 전혀 몰랐다.

  “고마워. 근데 안 들키겠어?”

  “하하...... 이 정도로 들킬 만큼 허술하진 않지. 철저하게 은밀히 모은 거니까 걱정하지마.”

  “.......그래.”

  “근데 자료의 질은 너무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아. 난 말단이고, 하나하나 검토할 시간이 없어서 말 그대로 아무거나 모아온거거든. 나도 내용을 전부 파악하진 못했어. 그저 네가 부탁한 대로 언노운, 3차 대전, 이 두 가지 키워드가 들어간 내용이면 무작정 쑤셔 넣다 보니.”

  “괜찮아 충분해.”

  “그런데 너 뭔가 위험한 거 하려고 하는 거 아니지?”

  내가 그렇게 위태롭게 보이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잖아. 네가 아무리 잘나도 말단인데 이렇게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정보를 구하는 건.......”

  “이미 전담청이 위험에 처해있는데 굳이 더 위험한 일은 하지 않을테니 걱정마.”

  이번에도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흠....... 아무튼 이게 들통나면 난 최소 징계야. 친구 부탁이고 철연이를 죽인 놈들을 찾아낸다길래 도와주긴 했지만, 난 아직 모르겠다. 왜 너네 반의 수사에 참가하지 않는 건데? 그쪽이 더 편하고 안전하고 확실할걸?”

  “그게.......”

  뭔가 변명거리를 찾아야 하는데.

  “사실 반장님의 상태가 많이 안 좋거든.”

  “김연반장님이?”

  물론 거짓말은 아니다. 생명에 지장은 없지만 아직 깨어나지 못했으니까.

  “그래? 난 괜찮다고 들었었는데....... 역시 사기관리 차원에서 말한 거였나......”

  아무래도 알아서 납득해준 듯한 진민.

  “응....... 그래서 반 분위기도 엉망이고, 선배들도 힘들어하고 계시거든. 그래서 나라도 뭔가 해봐야 할 것 같아서.”

  “그렇구나.......”

  “그렇지.”

  “그래도 말야. 너무 위험한 일에 발을 담그진 마라. 이 언노운이란 것들, 나도 자료를 대충 읽은 것 뿐이지만 장난아니게 위험해. 철연이.......때도 그랬지만, 살짝만 훝어봐도 소름이 돋더라.”

  “그래, 나도 그렇게 들었어.”

  “게다가 이런 식으로 뒤에서 움직인 것이 드러나면, 언노운을 잡는다고 해도 나중에 문제가 될지도 몰라. 어쩌면 해임 당할지도 모르지.”

  “조심할게.”

  어쩐지 잔소리가 늘은 듯한 진민에게 장담하지 못할 약속을 했다.

  “그래, 그럼 난 먼저 일어날게. 얼렁 들어가 봐야 해서. 그럼 수고. 휴가 잘보내라.”

  “그래 수고해.”

  진민이 나가고 잠시 앉아서 이것저것 생각한다. 그리고 슬슬 집에 돌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다.

  삐삐삐삐

  갑자기 울리는 핸드폰. 나는 의아하게 생각하며 액정화면을 본다.

  “수연언니?”

  전화는 수연선배에게서 걸려온 것이었다. 무슨 일이지? 아까 하지 못한 말이라도 있는 건가?

  “여보세요?”

  “홍? 지금 어디야?”

  “아, 저 잠깐 전담청 주변으로 산책 나왔어요. 무슨 일이세요?”

  “큰일이야!!”

  “네?”

  “연...... 반장이 사라졌어!”

  이 망할 반장은 휴가 때도 사람을 귀찮게 만드는 인간이었다.

 

  자정에 가까운 시각, 전담청 각성자 전문 병원 3층의 집중치료실. 김연은 생명유지장치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삐, 삐, 삐,

  그의 심장박동음을 나타내주는 소리만이 정적을 깨고 들려오고 있었다.

  김연은 꿈을 꾸고 있었다.

 

  푸른 들판, 숲과 개울. 저 멀리엔 곡식이 자라는 땅이 보인다. 황금빛 저녁놀이 아름답게 비추는 풍경.

  고향.

  이제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땅이었다.

  김연은 그곳에 서서 주위를 둘러본다. 꿈이란 것은 그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제 이곳은 그에게 있어서 존재하지 않는 땅이니까.

  그러나 그는 한번도 잊어본 적 없는 이 땅을 혹시나 잊어버릴까, 자신의 뇌에서 만들어낸 영상을 애달픈 심정으로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

  저 멀리 누군가가 손을 흔든다.

  “아.......”

  마찬가지로 잊어서는 안되는 이름이 떠오른다. 김연은 천천히 자신을 부르는 이에게 다가갔다. 아직, 무엇을 말하는 지 들리지 않는다.

  “.......”

  제법 가까워졌다.

  그를 부르고 있는 것은 한 소녀였다.

  흰 피부와 싱그러운 검은 머릿결. 아름다운 이목구비, 작은 종이 예쁘게 울리는 듯한 목소리. 그 목소리는 언제나 그를 취하게 했다.

  그러나,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들리지 않는다.

  “아이린.......”

  슬픔과 그리움과, 결코 지울 수 없는 감정을 담아 불러보는 이름.

  “......”

  그녀가 미소 지었다. 언제나 그의 심장을 뛰게 한 미소. 자신이 살아갈 이유를 주었던 아름다운 미소였다.

  김연은 그것을 보고 다시 생각한다.

 

  아아. 이것은 정말로 꿈인 거구나.

  그녀는 절대로 나에게 미소 지을 리 없으니까.

  그날 이 후로, 한 번도 그녀는 나에게 미소지은 적 없으니까.

 

  “......”

  김연이 입을 열고 무언가를 뻐끔거린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데 말이 나오지 않는다.

  “......”

  무언가를 말한 것 같은데 들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김연은 그저 다가간다. 한걸음 한걸음 다가갈 때마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그녀의 모습이 점점 변하고 있다.

  가녀린 팔이 흉측하게 눌러 붙기 시작한다.

  하얗고 아름답게 뻗은 다리에선 피가 흘러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그녀의 하얀 원피스는 붉게 물들었다.

  언제나 사랑을 담아 그를 바라보던 사랑스러운 눈망울은 짓뭉개져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머리칼은 재가 되어 흩어져가고 있었다.

  그러나 김연은 그녀에게 다가가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한 끔찍한 모습이라도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고,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바라보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이엔.......”

  그리고, 그녀는 입을 열어 그를 부른다.

  그리고 소녀가 재가 되어 사라진다.

  김연은 놀라지 않는다. 이미 수백, 수천 번 꾸던 꿈이니까. 그렇기에 그는 그저 주위를 둘러볼 뿐이다.

  숲과 들은 화염에 휩싸여 있다. 곡식이 자라던 밭은 여기저기 파헤쳐져 있다. 맑고 싱그러운 소리를 내며 흐르던 시냇물엔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하......하하하.......”

  무의식에서조차 이딴 것을 그리고 있던 자신이 너무나 가엾어서 김연은 그저 웃는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광소한다. 가엽고 혐오스러워서 웃지 않을 수가 없다. 언제쯤 이 악몽에서 벗어날지, 그런 것 조차 바라고 있지 않은 자신이 너무나 우습다.

  그리고 그렇게 꿈은 언제나와 같이 끝났다.

 

  그리고 어둠이 내린 치료실 안, 김연이 눈을 떴다.

  두 개의 붉은 눈동자가 빛난다.

  붉은 눈이 달빛을 받아 어둠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붉게 빛나는 두 개의 눈이 잠시 주위를 찬찬히 훑어보더니,

 

  콰직.

 

  김연이 오른 손을 위로 내질러 자신을 가두던 캡슐에 구멍을 뚫었다.

  “.......”

  삐이이이이.......

  잠시 후, 김연이 누워있던 치료장치는 박살이 나 있었다. 그리고 경고음이 울리는 가운데 김연은 어두운 방에 서서 가만히 창 밖의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아무도 듣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고한다.

 

  “........그래. 결국 이렇게 되어야지.......”

  김연이 웃는다.

  “.......그래. 가야지. 그럴 거야........ 아이린.......”

  그 말을 마치고, 김연은 창가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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