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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니셔
작가 : null
작품등록일 : 2017.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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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왕과 죽음을 내리는 자들 1
작성일 : 17-12-30     조회 : 342     추천 : 1     분량 : 5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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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담청이 언노운의 일원, 마리아를 체포한지 4일이 지났다.

  그리고 김연이 사라져버린지, 3일이 지났다.

 

  해가 완전히 진 서울특별시, 강서구의 한 아파트.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피곤한 듯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의 오른 손에는 서류가방, 왼손에는 케이크가 들려있었다.

  이 남자의 이름은 원정훈. 젊은 나이임에도 한국 각성자 관리부, 각성자 입출국 관리국 국장자리에 오른 인물로서, 주위의 평판은 말 그대로 미래의 한국을 이끌 엘리트, 유능한 관료 그 자체인 남자였다.

  그러나, 밝은 미래를 보장받고 있는 엘리트에게도 그 나름의 고충이 있다는 듯 그의 표정은 무겁기만 하다.

  “후우........젠장....... 이게 무슨 일이야.......”

  그럴법도 한 것이, 그가 있는 각성자 관리부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에 관해서, 말 그대로 폭격을 맞고 있었다.

  “젠장....... 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고....... 시x.......”

  그렇게 중얼거리는 원정훈 국장. 그때, 엘리베이터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하아....... 그래, 집에선.......”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는 손에 들린 케이크를 들여다본다. 최근 바쁜 탓에 얼굴을 보기 힘든 그의 8살 난 딸을 위한 선물이다. 아빠가 보고 싶다며 토라져있는 딸이 케이크를 받아 기뻐할 생각을 하니, 그의 얼굴 표정도 조금은 풀어졌다.

  “.......”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그는 자신의 집 현관으로 다가가 비밀번호를 누른다.

  삑삑거리는 버튼소리, 그 소리를 듣고 반갑게 뛰쳐나올 딸의 모습을 상상하는 원정훈의 얼굴에 미소가 더해진다.

  철컥.

  문이 열리고, 원정훈 국장은 집에 들어가며 피곤한 기색을 숨기기 위해 다정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딸을 불렀다.

  “아빠왔어요~.”

  “.......”

  “??”

  이상하게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평소라면 딸이 아빠를 외치며 뛰쳐나오고 남을 시간일 터이다. 너무 늦어서 잠들었나 생각해 보았지만 지금은 아직 7시다. 원정훈 국장은 오늘 딸을 위해 억지로 시간을 내어 일찍 퇴근했던 것이다.

  “진영아? 아빠 왔어. 여보?”

  혹시 잠들었나 싶어 자신의 아내도 불러보지만,

  “.......”

  역시 대답은 없다.

  “.......외출했나? 그런 말은 못들......”

  그리고, 원정훈은 집안의 공기가 이상하게 싸늘함을 느꼈다.

  더해서, 불길한 예감도.

  “진영아!! 여보!!”

  황급히 구두를 벗어던지고 집안으로 뛰쳐들어가는 원정훈. 그가 집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보인 것은 거실의 소파에 앉아 졸고 있는 그의 아내, 그런 그녀에게 기대어 자고 있는 그의 딸이었다.

  그 모습을 본 원정훈은 놀란 가슴이 진정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거실로 들어가 그의 가족에게 다가가며 안심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뭐야.......자고 있었구나.......”

 

  “그렇지. 깊게 잠들어 있어.”

  “!!!!”

 

  그때, 그의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원정훈은 마치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기분을 들었다. 마치 오래된 기계가 삐걱대는 것 같은 목소리, 혹은 고장나고 늘어진 테이프에서 들리는 듯한 목소리는 그의 전신을 옥죄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원정훈은 그 와중에도 가장으로서의 의무감인 건지, 본능인 것인지,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다, 당신!! 누구.......!!”

  “쉬잇. 깨겠어. 아니, 사실 ‘폭탄’이 터져도 깨지 않을 만큼 깊게 재워놨지만 말야. 아? 폭탄이 터지면 그냥 영원히 못 깨는 거였던가? 큭큭큭........”

  “!!”

  그곳에 있던 것은, 평화로운 집안과 어울리지 않기로 꼽자면 0순위에 들 법한 이물질이었다.

  185이상으로 보이는 상당한 장신. 그 몸을 감싼, 검은 표범을 연상시키는 날렵한 방탄슈트 너머로도 탄탄한 근육과 체격이 보이는 듯 하다.

  남성, 으로 추정되는 자이지만 정확하게 단언할 수가 없었다.

  그 얼굴에는, 칠흑같이 검고 기괴한 디자인의 마스크가 머리 전체를 감싸고 있었고,

  “상황은 알 테지. 소리내지마. 헛된 시도도 하지 말고.”

  그 목소리는, 섬뜩한 기계음이 뒤섞인 것처럼 변조되어 있었으니까.

  마치 그림자, 혹은 심연 그 자체와 같은 불길함을 뿌리는 자, 모든 것이 검고 검은 자였다.

  그러나, 그의 검은 마스크, 그 눈만큼은 붉게 빛나며 원정훈을 쏘아 보고 있었다.

  “뭐, 뭐야....... 너.......”

  떨리는 목소리로 눈앞의 괴한에게 말을 걸던 원정훈은, 문득 방금 전 괴한이 힘주어 말했던 단어들을 떠올렸다.

  ‘폭탄’과, ‘재워놨다’

  “!!”

  그는 황급히 소파에서 자고 있는 자신의 아내와 딸을 돌아보았다.

  “아....... 안돼.......”

  절망에 잠긴 목소리로 신음하는 원정훈의 눈에 비춘 것은, 잠든 딸의 무릎 위에 놓인 채, 딸의 고사리같은 손이 쥐고 있는 물건이었다.

  검은 테이프로 칭칭 감겨있는 의문의 상자, 그 테이프 위로 빨간 선과 파란 선이 비죽 튀어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참고로 시한은 아니야. 큭큭.......”

  그렇게 말하며, 괴한은 손에 들고 있는 정체불명의 리모컨을 흔들어 보였다.

  원정훈은 이런 쪽의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확실히 눈치 채고 말았다.

  딸의 손에 들린 것은 폭탄, 그리고 괴한의 손에 들린 것은 기폭창치라는 것을.

  “.......도대체....... 당신 누구야........”

  그 비탄에 잠긴 말에, 괴한은 오른손에 기폭 장치를 든 채로 그를 비웃으며 말했다.

  “누굴까? 왜 네놈 집에 이런 기분 나쁜 것이 찾아왔을까?”

  “뭐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되묻는 원정훈에게, 괴한은 여전히 비아냥거린다.

  “스스로의 최근 행적을 잘 떠올려봐. 그러니까....... 대충 두 달 전쯤부터 말야.”

  “!!”

  그 말을 듣자 원정훈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다. 그리고 그는 떨리는 전신이 쓰러지지 않도록 억지로 버티며 애처롭게 괴한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서, 설마....... 입막음이냐? 그거라면.......”

  “오오....... 입막음이라. 무언가 입막음 당할 거리가 있다는 것은 시인 하시는군?”

  “........제, 제발....... 가족은 살려........”

  “미안하지만, 입막음이 아냐, 오히려 반대지.”

  “뭐........”

  원정훈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말을 제대로 꺼내기도 전에, 검은 괴한이 별안간 그에게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콰악!!!

  “크허........”

  순식간에 원정훈에게 접근한 괴한은 왼손으로 그의 목을 쥐고, 그대로 들어올렸다.

  “커, 커어.......”

  목이 붙잡혀 허공에 매달린채로 발버둥치는 원정훈. 자신을 들어올린 괴한의 팔을 붙잡고 몸부림치며, 괴한을 발로 걷어차 보기도 하지만 마치 바위를 때리는 듯 상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원정훈의 목으로 무시무시한 힘이 전해져왔다. 건장한 성인 남성인 원정훈을 들어올린 상태에서도 일절 흔들림이 없었다.

  “소용없는 짓 하지마.”

  “무, 무슨 소리야........ 내게 뭘....... 원하는 거야........”

  숨이 막혀 켁켁대면서도 힘겹게 외치는 원정훈. 그런 그에게, 괴한은 변조된 목소리임에도 느껴지는 싸늘함을 담아 말했다.

  “두 달전 네가 한 짓을 말해.”

  “무, 무슨.......소리냐고!! 어째서....... 이런.......”

  힘겹게 버둥대며 모기만한 목소리로 절규하는 원정훈. 그런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기계음이었다.

  “어째서냐고? 너같은 놈들은 뒤로 무슨 짓을 저지르다 걸려서 수사라도 받게 되면 항상 레파토리가 똑같거든. ‘몰랐다.’ 혹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니면 ‘언론의 왜곡.’이라던가. 그런 식으로 질질 끌다간 네놈이 불게 만드는데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일이잖아?”

  “크......커어........무슨.......”

  “그러니까. 이게 빨라. 본인 목숨이나 가족 목숨가지고 ‘협상’을 하는 게 말야. 적어도 내 경험상으론 그렇더라고?”

  “왜.......”

  “아, 미안. 수단 선택의 이유를 묻는게 아니었지?”

  정말로 미안하다는 듯, 목소리를 과장되게 떨며 말한 괴한은, 들고 있던 원정훈 국장을 그대로 바닥에 떨어트렸다.

  털썩.

  “크, 허억.......!! 하아....... 쿨럭!!”

  풀려나고 나서 겨우 들이쉴 수 있게 된 산소조차 괴로운 것처럼 원정훈은 거칠게 숨을 몰아 쉰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괴한의 마스크에서 다시 껄끄럽고 신경질적인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두 달전. 각성자 입국 심사부서에서 인사이동이 있었지. 철도 아닐 진대 꽤나 부자연스럽게 말야.”

  “........”

  그 말에 원정훈은 대답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의 얼굴에 떠오른 두려움은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그런 기색을 눈치 챈 것인지 아닌지, 괴한은 그저 양 팔을 과장스럽게 펼친 채 호들갑을 떠는 말투로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명령한 것은? 각성자 관리부 입출국관리국 원정훈 국장님이 아니신가?”

  “나........ 그, 그건....... 그냥.......”

  원정훈의 떨리는 목소리는, 그저 방금 전 목이 졸린 탓만은 아니었다. 그는 떠올려버린 것이다.

  “게다가 말야? 내가 알기로는 대한민국에서 각성자 입출국 기록은 반드시 당신을 거치지? 아마 현장에서 당신까지 기록이 올 때 거치는 사람은 단 한명이고 말야.”

  “........”

  “몇명과 적당히 말만 맞추면....... 조금 손볼 수도 있을 거야?”

  “너, 너는........ 누구.......”

  원정훈이 말을 채 잇기도 전에 엎드려 바닥을 기던 그의 배에 발길질이 날아 들어왔다.

  퍼억.

  “크어........ 우웨엑........”

  “이런 이런, 카페트에 토하면 안 되지. 이거 빨기 거지같이 힘들텐데 말야, 크흐흐흐.......”

  “무슨.......넌 누구길래........”

  콰악.

  “끄아아악!!!!”

  별안간, 괴한이 원정훈의 왼손을 짖밟았다. 군화발에 밟힌 그의 왼손이 터지고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쉬이....... 늦은 시간이야. 이웃에 민폐라고.......”

  “끄으으으.......”

  “이제 알겠지? 넌 질문할 권리가 없어. 내 말에 대답만 성의있게 하면 되는 거야. 알겠냐?”

  “크으으.......”

  고통에 신음하는 원정훈, 그런 그를 보며, 괴한은,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천천히 원정훈의 가족에게로 다가갔다.

  “!!”

  그리고 털썩, 하고 원정훈의 아내 옆에 앉은 괴한. 그의 손엔 보기만 해도 섬뜩한 두 뼘 길이의 나이프가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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