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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니셔
작가 : null
작품등록일 : 2017.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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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왕과 죽음을 내리는 자들 2
작성일 : 17-12-30     조회 : 341     추천 : 1     분량 : 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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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가족들은 뭘 해도 한동안은 안 깰테지만....... 자고 일어났더니 귀가 잘려있다던가, 눈 하나가 사라져있다면 네 아내는 무슨 생각을 할까?”

  “아, 알았어!! 제발........”

  “이제야 마음 터놓고 대화할 수 있겠구나. 원정훈 국장.”

  변조된 목소리와 가려진 얼굴에서도 느껴지는 비웃음. 심지어 장난기까지 느껴지는 광기에 원정훈은 그저 몸을 떨었다.

  “자....... 여기서 발뺌할 지도 모르니 미리 말해둘게.”

  “.......뭐를?”

  “질문 하지 말라고 했지.”

  비웃는 듯한 가벼운 말투에서, 말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만 같은 싸늘하고 증오가 섞인 말투로 변한 것은, 실로 순식간이었다.

  “아, 알았어! 알았다고!!! 제발!!”

  어느새 다시 자신의 아내의 목에 가까워진 나이프를 보며 원정훈이 절규한다.

  “미안.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

  그리고 다시 가벼운 말투로 돌아가는 것 역시 순식간이었다.

  “내가 이 꼴을 하고 방문한 것은 네가 처음이 아냐.”

  “뭐? 아, 알았어!! 미안해!! 듣기만 할게!! 제발...... 제발!!”

  “아무튼........ 내가 지금 까지 찾아간 녀석은 널 포함해서 5명이지. 그리고 네 앞에 넷은 아주 협조적이더군. 너보다 더 말야.”

  “........”

  “증인보호차원에서 실명은 말 못하지만, 저번에 브로커조직이 몰살당할 때 살아남은 조직원....... 그리고 네 부하직원....... 등등이 있지.......”

  “.......”

  “그리고 그들의 ‘증언’과 파기되지 않은 몇몇 자료, 내가 알고 있던 정보를 조합하니 결론이 나왔어.”

  “........”

  그렇게 내뱉고 소파에서 벌떡 일어난 괴한은 천천히 원정훈에게 다가왔다,

  “지금 날뛰는 놈들은 밀입국만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란 걸 말야. 그리고 난 ‘언노운’의 방식에 대해선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고, 그들이 어떻게 들어왔을 지에 대해서도 금방 짐작이 가더군?”

  “........”

  원정훈의 떨림은 더욱 격해지고 있었다. 그걸 잠시 바라보던 괴한은 다시 말을 이었다.

  “자, 이제 본론이다.”

  “........”

  “네놈이 저지른 짓을 모조리 말해. 그리고 네놈이 조작하기 전의 자료도 모조리 내놔.”

  그렇게 말하고는, 괴한은 자신의 바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

  “자, 이건 녹음기야. 여기에 대고 말해. 물론 협박해서 얻어낸 증언은 법적효력이 없으니, 티내지 말고 천천히, 그냥 내게 고백한다고 생각하고 말하라고. 큭큭........”

  “........”

  “흐음. 설마, 이제와서 감옥에 가는게 두려운 거야? 걱정하지마. 이건 한국정부로 가지 않을 테니까. 좀 더 나중에 내가 잘 쓸 테니 지금 당장은 걱정할 필요없어.”

  “........”

  “감옥에 가고 백수신세가 되고, 손가락질 받는 게 두려워? 가족과 함께 폭사하는 것 보다?”

  “아, 아냐!! 말, 말할게.......흐흑....... 어쩔 수 없었어....... 딸의 수술비가.......”

  “으음....... 고위 공무원 월급이 그렇게 박봉이었나?

  “........”

  “설마 그렇다고 해도 동정은 가지 않는걸. 네놈 가족은 소중하고, 네놈의 짓거리 때문에 죽어버린 사람들에 대해선 아무 생각 안드나?”

  “나, 나는......”

  무언가 변명을 하려하는 원정훈의 말은 괴한의 비아냥에 잘려나갔다.

  “아, 이해해. 사실 남의 자식도 내 자식처럼, 이라는 말처럼 공허한 건 없으니까. 다들 자기 자식이 더 중요하지 않겠어? 하지만........”

  “.......”

  “네놈은 많은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 문제지.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일하며 받은 돈으로 먹고 살며 자식을 키워왔다는 것도.”

  “........”

  원정훈의 공포의 질린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자, 잘못.......”

  “사과는 됐어. 말해. 아, 그리고 거짓말은 소용없어. 이미 네 앞의 놈들은 일관된 내용을 증언했고, 난 네 말에 속아 넘어갈 만큼 어리숙하지 않거든.”

  “........”

  “무엇보다, 난 논리적으로 파헤치거나 법적 정의를 지키는 행위와는 억만광년 정도 떨어진 사람이거든?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손이 나갈 테니 잘 생각해봐.”

  “.......3, 3월 20일 경에....... 누군가가 접촉해왔어. 20억을 줄 테니....... 한 달 뒤 각성자 20명 가량의 입국에 대해서 조작해 달라고.......그, 그리고....... 같이 왔던 최준원의원이....... 같이 와서 나한테...... 이 사람을 도와달라고.......”

  “그래서, 어떻게 했지?”

  “나, 나는........ 입국 심사를 담당하는 직원들을 나, 나와 친한 두 명으로 교체했어.......”

  “친한 게 아니라 네 줄을 잘 잡은 사람이겠지.”

  그렇게 비아냥거리는 괴한.

  “그, 그리고.......그들에게 심사를 받고 통과한 사람들의 명단 중........ 그들이 지정한 이름을....... 조, 조작했어....... 미, 미안해!! 이렇게 될 줄 몰랐어!! 테러리스트인 줄 몰랐다고!!”

  퍼억!

  “끄어어어.......”

  다시 한 번 배로 날아든 발길질에 원정훈은 그대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어느새 소파에서 일어난 괴한은 원정훈을 걷어찬 발을 내리며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양성 목적 자체가 살인 병기인 각성자를 ‘관리’하는 작자가, 각성자가 몰래 들어오는 것을 도와줘놓고 하는 소리가 고작 그거냐?”

  “끄으으....... 미안, 미안해.......”

  “뭐, 어쨌든........ 잘 알았어. 그리고, 그 자료는? 네놈이 조작한 명부와 조작전의 명부말야.”

  “지, 지금 줄게!!”

  “너무 순순하니 이상하네. 도X에몽도 아니고 그렇게 쉽게쉽게 나올 물건이던가?”

  “정말이야!! 업무에 필요한 노트북과 자료는 항상 들고 다닌다고!! 집에서도 일할 생각이었으니까!!”

  다급한 외침, 그리고 괴한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비아냥 거렸다.

  “집에서도 일? 좋은 가장은 아니군. 애가 지병이 있는데도 아빠란 것이 집에서 일을 할 생각을 하다니.......”

  “크흑.......”

  “어쨌든 전부 내놔. 이 USB에 담아도 좋고, 서류라도 좋아.”

  “아, 알겠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괴한에게서 USB를 받아든 원정훈. 그리고 그는 바닥에 내팽개쳐진 서류가방에서 자신의 노트북을 꺼내 전원을 켜고, USB를 연결했다.

  “자, 잠시만.......”

  “밤은 길어. 난 인내심은 넘치는 사람이고.”

  “........”

  잠시동안, 원정훈은 바닥에 놓은 노트북 앞에서 엎드린 채로 노트북을 조작했다. 떨리는 손으로, 그러면서도 다급하게 자료를 USB에 옮기는 그 모습을 괴한은 그저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속이는 건 소용없어. 내가 얻은 정보는 네놈에게서 받을 것 말고도 더 있으니까. 그리고 나중에 이 일을 발설하거나 했다간 우린 다시 보게 될거야.”

  “........”

  “그리고, 그땐 네 딸과 아내도 나와 인사를 나누게 되겠지.”

  “다, 다됐어!!”

  황급히 USB를 뽑고, 가방에서 서류뭉치를 꺼내 괴한에게 건내는 원정훈,

  “........잘했어. 그럼, 난 이미 사라지도록 하지.”

  그것들을 받아든 괴한은, 소파 옆에 놓여져 있던 백팩에 서류와 USB를 담았다. 그리고, 자고 있는 소녀의 무릎에 놓여있던 폭탄 역시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는, 잠시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히, 히익.......”

  그 모습을 본 원정훈이 숨을 삼키며 사색이 되었다.

  그러나 괴한은, 비록 변조된 목소리긴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비아냥이나 분노는 온데간데 없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아하하하....... 귀여워서 한번 쓰다듬었을 뿐이야. 굳이 쓸데없이 해를 끼칠 생각은 없어. 이런 어린애라면 더더욱.”

  “.......”

  덜덜 떠는 원정훈에게 괴한은 다시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자, 난 이제 사라지도록 하지. 그리고 충고 하나 하자면, 나 이외에도 찾아올 놈들이 있을 지도 몰라. 네가 들여온 놈들 말야.”

  “!!”

  “그 놈들은 정말로 입막음을 위해 올 가능성이 크지. 물론 그건 순전히 네 책임이지만.”

  괴한은, 잠시 그를 비웃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아마 자수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리고 전담청.......아니, 이건 아니지. 아무튼 자수하고 감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아마 언론에 대대적으로 공표라도 된다면 놈들도 대놓고 감방에 숨어있는 널 건드리기 껄끄러워질 테니까.”

  “.......”

  원정훈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뭐, 너는 몰라도 네 가족의 안전은 보장못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괴한은 베란다로 향한다. 그리고 베란다와 창문을 열고 난간을 뛰어넘으려다,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만약 네 딸이 네가 한 짓을 알게 된다면....... 네 딸은 무슨 생각을 할까?”

  “........”

  “자신을 위해 부정을 저지른 존경스러운 아버지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죄인의 딸이라는 낙인을 남긴 증오스러운 아버지로 생각할까? 큭큭큭....... 뭐, 알아서 잘 하도록 해. 그럼 난 이만.”

  그 말을 남기고, 괴한은 차가운 밤의 하늘로 뛰어들었다.

  “.......흐, 흐흑........”

  괴한이 사라지고, 아무것도 모른 채 편안하게 잠들어있는 딸과 아내 앞에서, 원정훈은 그저 흐느낄 뿐이었다.

 

 --

 

  밤 하늘 아래의 서울, 수많은 아파트, 그 중하나의 옥상에 검은 마스크, 검은 방탄 슈트를 입고 백팩을 메고 있는 괴한이 서 있었다.

  “........”

  그리고 그 괴한은 천천히 마스크에 손을 가져갔다.

  철컥.

  그 손이 닿자, 마스크의 뒤가 열리고, 그 얼굴에서 벗겨진다.

  그리고 그 안에서 드러난 것은, 두 눈을 붉은 빛으로 빛내고 있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남자.

  김연이었다.

  밤공기의 서늘함에 몸을 떠는 김연의 귀에는, 언제나처럼 달콤한 목소리가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가엾은 나의 사랑.

  왜 떨고 있어?

  왜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었지?

  동정인가? 아니면 죄책감?

  우습기도 하지. 그리고 주제 넘어.

  너의 죄책감과 속죄에, 남들에게 향할 것이 아직 남아있었어?

  이미 천년만년 죄책감에 잠겨있어도 모자라지 않니?

  이제 와서 사람 흉내를 내고 싶은 거야? 나의 사랑.

  나의 괴물.

 

  “.......그런게 아냐.......”

 

  그럼, 어째서?

  다른 놈들은 전부 죽였잖아? 그 남자의 부하, 그 깡패들도 전부.

 

  “.......그냥 변덕이야. 그뿐이야.......”

 

  정말로? 너처럼 착한 아이가 그저 변덕으로 그들을 살려줬다고?

 

  “정말이야....... 믿어줘. 아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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