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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니셔
작가 : null
작품등록일 : 2017.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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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왕과 죽음을 내리는 자들 8
작성일 : 17-12-30     조회 : 301     추천 : 1     분량 : 5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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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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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어떻게든 되었다.

  아까 전 지뢰를 밟은 이후로 경계심을 최대로 올리고 거북이처럼 기다시피하며 온갖 함정을 피해 와야 했다.

  빌어먹을 인간. 짜증나는 인간. 정신나간 인간.

  그럼에도 나는 왜 이 인간을 일부러 찾아야 하는 걸까, 아니, 그럼에도 왜 나는 이 인간을 찾아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걸까?

  그런 생각에 이를 갈기도 하고, 심란해하기도 하며 겨우겨우 올라왔다.

  이건혁으로부터 전송받은 위치가 가르키는 지점으로.

  “........여긴........”

  숲을 헤치고 나오니 눈에 들어온 것은, 주변이 온통 나무로 둘러싸인 공터 한가운데에 작고 허름한 집 한 채.

  그리고 공터의 한 켠에 쌓여있는 콘크리트 파이프 무더기, 그 위에,

  그가 있었다.

  뭔지 모를 검고 길쭉한 케이스를 옆에 둔 채, 김연은 그 콘크리트 파이프 위에 다리를 꼬고 앉아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검고 날렵한 방탄 슈트를 입고 발에는 전투화, 그리고 손에는 언제나처럼 검은 장갑을 끼고 있었다.

  “안녕.”

  밤바람에 실려 들려오는 그의 차분하고 느긋한 목소리에 귀가 가렵다.

  “.......여기서 뭘 하고 계신 거죠?”

  일단은 정중하게, 화를 꾹꾹 눌러 참으며 말했다.

  “아무리 전담청이 자유분방해도 이건 탈영 아닌가요? 이미 반장님은 6일 동안, 누구에게도 통보, 혹은 연락조차 하지 않고 무단으로......”

  그가 한 어처구니없는 짓거리를 지적하는 나. 물론, 김연은 언제나 그랬듯이 내 말은 귓등으로 흘려버렸다.

  “못 본 사이 꽤 어른스러워졌구나 꼬마야.”

  “???”

  아, 그런 목소리로 그런 말을 속삭이듯이 하지 마. 그리고 난 꼬마 아냐.

  “꼬마가 아니고, 제가 말하는 걸 좀.......”

  기분 나쁘게 두근거리는 심장을 억누르며 간신히 꺼낸 말을, 김연은 가차없이 끊어버렸다.

  “어쩔 수 없었거든.”

  “.......탈영까지 할 만한 이유인가요? 지금 상황은 아시죠?”

  힐난에 가까운 내 말을 그저 어리광정도로 생각하듯, 김연은 꼬고 있는 다리를 까닥거리며 양 팔을 콘크리트 파이프에 짚고는 하늘을 쳐다볼 뿐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평소의 김연처럼 가볍고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알지. 굳이 내게 지금 상황을 알려주려 온 거면........ 굳이 그럴 필요 없어. 산 속에서도 뉴스 정돈 보고 있으니까. 아니면, 다른 용건이라도 있나?”

  그 시덥잖은 것을 상대하고 있다고 말하기라도 하는 듯한 김연의 태도에 부아가 치민다.

  “용건이 있으니 여기까지 왔겠죠?”

  “처음 들어왔을 땐 그나마 하고 싶은 말을 삼키는 것 같더니 이젠 아예 숨길 생각조차안하네. 상사를 닮아가는 모습은 상사로서 뿌듯한걸.”

  “.......”

  뭐라는 거야.

  “그래 뭐, 용건이 있단 건 알고 있었어. 없다면 그렇게 목숨의 위기를 겪어가며 힘들게 꾸역꾸역 기어올라오지 않았겠지.”

  “기어오른다뇨. 다른 표현도 있지 않나요? 그리고 아는 데 구경만 하고 계신 건가요? 진짜로 죽을 뻔했는데요?” 알고 있었는데 구경만 했다고? 이 개자식이 진짜.

  “아하하....... 미안. 내가 널 너무 얕봤나봐. 처음에 함정 몇 개 발견하면 무서워서 도망칠 줄 알았거든.”

  “........”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김연은 같은 말도 기분나쁘게 하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

  “부하를 너무 애송이 취급하는 것 아니신가요?”

  “애송이 아니야?”

  당신이 강하다는 건 알지만, 당신에 비하면 내가 애송이인 것은 맞긴 하지만!

  그래, 진정하자. 난 여기에 만담이나 하자고 온 것이 아니니까. 저 페이스에 말려들어갔다간 한도 끝도 없다. 김연의 도발은 무시하고 나도 내 할말만 하자.

  “........반장님께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최대한 감정을 억누른 한마디. 그리고 그것을 들은 김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되물었다.

  “내가 생각한 대사랑 조금 다른데?”

  “네?”

  “이건혁이 보내서 온 거잖아? 나 데려오라고.”

  더럽게 예리하다. 내 속내쯤은 꿰뚫어보고 있다는 저 태도는 정말 언제 들어도 울컥하게 만든다.

  그보다, 알고 있으면 그냥 돌아오라고.

  “어떻게 아셨죠?”

  “내 위치를 처음부터 알고 온 거잖아.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거침없이 오진 않았겠지. 게다가,”

  김연은 지금은 빨간 눈동자를 하고 있는 왼쪽 안구를 왼손 검지로 두들긴다. 톡톡, 하는 소리가 사람의 눈에서 난다는 것은 왠지 모르게 소름끼쳤다.

  이런 내 기분을 알기나 하는 건지, 김연은 여전히 가볍게 내게 말을 건넸다.

  “분명히 이건혁이 여기에 뭔가 해놨겠지. 이걸 달아준 건 그놈이고, 그놈은 날 별로 믿지 않거든.”

  “??”

  믿지 않는다고? 친구라며?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저 비싼 걸 달아줬는데도?

  이 둘의 관계가 새삼스레 궁금해지는 말이었지만 내가 끼어들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결국 김연의 말에 말려들어간 것도 깨닫지 못한 채 생각에 잠겨 있으려니 김연이 나를 불렀다.

  “야.”

  “홍세연입니다.”

  슬슬 외우지? 저번엔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나?

  “나도 너에 대한 걸 하나 물어봐도 될까?”

  “??”

  그 뜬금없는 말에, 잠시 동요했지만 여전히 김연은 내 기색따위는 1도 신경 쓰지 않았다.

  “넌 훌륭한 각성자가 되고 싶어? 아니면 훌륭한 전담청 대원이 되고 싶어?”

  “뭐라고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야.”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시죠?”

  “네가 훌륭한 전담청 대원은 아닌 것 같아서지.”

  이젠 대놓고 날 깔보는 것 같아서 기분 나쁘네.

  “.......둘의 차이를 잘 모르겠습니다.”

  “머리 나쁘네.”

  “.......”

  진짜로 짜증난다.

  “예를 들자면, 훌륭한 각성자는 네 눈앞에도 있지. 바로 나.”

  “네?”

  “각성자로서, 난 최강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강하지. 아니, 갑자기 니콜 카나의 목이라도 따오라는 임무가 아니라면 뭐든 성공할 자신도 있어. 상대가 초월자라도.”

  아무리 강해도 S랭크이면서. 물론 그것도 충분히, 아니 엄청나게 강한 거긴 하지만.

  “하지만 전담청 반장으로선 실격이지. 내 행동기준은 전담청이 아니거든.”

  “알고는 계셨군요.”

  “근데 너도 마찬가지 아니냐?”

  “??”

  “이건혁이 너에게 시킨 건 ‘설득해서 데려오라’겠지. ‘무언가를 물어보라’라는 것은 절대로 아닐거야. 그렇지? 그놈이 나에게 물어볼만한 것은 다른사람 통해서 건너서 들을 만한 것은 절대로 아니니까.”

  어떻게 그런 것 까지 다 아는 걸까. 눈치는 더럽게 빠른 인간이었다.

  “그런데 넌, 물어보고 싶다고 했어. 그건 너의 개인적인 의문이란 거지. 틀려?”

  “맞습니다.”

  “순순히 인정하는 군?”

  “숨길생각도 없고요.”

  “하하하...... 그래 그러시겠군. 역시 너도 훌륭한 대원이 되긴 그른걸까?”

  “.......”

  내뱉고 싶은 말은 산더미같지만, 참자. 일단 이 인간을 데려가는 일, 그리고 이 인간으로부터 듣고 싶은 말을 듣는 일을 우선으로 해야한다.

  그때, 김연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네 질문을 받기 전에 하나 충고를 하도록 하지.”

  “충고요? 지금 갑자기?”

  “응. 네 꼴을 보니 지금 해야 할 것 같아서.”

  “.......”

  “휼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좋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하려고하다간 아픈 꼴을 보게 될 수도 있어.”

  “........”

  그 시건방진 말투는 둘째 치더라도, 그는 내가 여기 왜 왔는지 눈치 챈 걸까?

  “그렇게 뚱한 표정하지 말고, 잘 새겨들어.”

  그렇게 말하며 그는 오른 손을 들고 장갑을 벗었다.

  “.......”

  저번에도 보았던 그의 맨손은 일그러져 있었다.

  달빛에 비친 그 손은 전부 화상으로 심각하게 뒤틀려 있었다. 그리고 그 끝의 약지와 새끼손가락은 전에 보았던 대로, 금속의 의지로 대체되어 있었다.

  “.......이 손에서 오른 쪽 날개 뼈까지는 대충 이런 상태지.”

  “.......”

  “그리고 이 상처와 지금의 내 왼눈은, 지금 내가 한 충고를 아무도 내게 해주지 않았던 결과지. 그러니 고맙게 생각하고 새겨들으라고.”

  3차 대전 때 입은 상처.......일까?

  잠시 동요했다. 왜 일까?

  “그래서 묻고 싶다는 건?”

  “!!”

  그리고 김연의 나지막한 한마디에 다시 정신이 들었다.

  그래, 김연의 상처는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조금 놀라긴 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내가 듣고 싶은 것을 듣는 것.

  김연과 언노운의 연관성,

  혹은, 김연과 언노운은 관련이 없고 모든 것은 나의 착각이라는 것을, 그가 말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2026년 2월 14일.”

  “......”

  무거운 입을 열어 말한 날짜. 그리고 김연은 미소 짓는 그 얼굴 그대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어디서 뭘 하고 계셨죠?”

  “글세? 발렌타인 데이니까 어디서 여자라도 만나고 있었을걸?”

  왠지 유달리 짜증나는 대답이다. 김연은 찌푸린 내 얼굴이 재밌다는 듯이 히죽거리며 말했다.

  “그래서, 그게 왜 궁금한데? 이 정도는 되 물어도 되겠지? 난 심문 당하고 있는 게 아니니까.”

  무슨 대답을 해야 하나, 하고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김연 말대로 내가 그를 심문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위협할 능력도 없으니 차라리 솔직하게 가는 게 낫겠지?

  “.......반장님에 대해서, 미심쩍은 것들이 몇 개 있었습니다.”

  “뭐지?”

  여전히 가벼운 목소리지만 어쩐지 조금 힘이 들어간 김연의 물음이었다.

  “우선, 한국전쟁 직후의 행방이요. 반장님의 그 당시 행적은....... 제가 알기론 공식적으로는 없죠. PMO 기록에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수연이에게 들었군? 그리고 다음에 할 말은 지민이에게 들은 것일까나?”

  눈치가 역시 더럽게 빠르다. 이 인간의 머릿속은 어떻게 되어있는 걸까.

  “.......네 맞습니다. 지민선배는 반장님이 그 당시 ‘용병일’ 때문에 왔다고 했죠. 정말로 그렇다면 둘 중 하나입니다.”

  “둘 중 하나?”

  지금 상황이 뭐가 그리 재밌는 것인지 김연은 방긋방긋 미소를 띄고 있다. 아주 잠시, 그 미소를 넋을 잃고 바라볼 뻔 한 것을 뿌리치며, 심호흡을 했다.

  “반장님이 지민 선배에게 거짓말을 했거나, PMO 몰래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는 거죠.”

  그 말을 듣고도 김연은 그저 웃는다. 웃으면서 나를 놀릴 뿐이었다.

  “훌륭해. 하지만 고작 그걸로 나를 추궁하려 하는 건 아니겠지?”

  추궁이라. 그래. 어느새 그렇게 되어버린 건가.

  어차피 추궁이 되어버렸다면 이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갈 뿐이다.

  “물론 아닙니다. 반장님의 눈 역시 미심쩍은 부분이죠.”

  “남의 장애를 가지고 놀리다니 못써요 홍세연 대원. 큭큭.......”

  언젠가 저렇게 놀린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주지. 가능하면 지금.

  “반장님이 의안을 드러내고 멀쩡한 눈을 드러낸 것은, 그저 기행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의안의 눈동자 색을 원래 색이 아닌 다른 색으로 바꾸고 부자연스럽게 큰 안대로 남은 오른 눈을 가린 행위는.......”

  “행위는?”

  “반장님이 자신의 인상착의를 바꾸고 싶었다, 라고 설명하면 앞뒤가 맞지 않나요?”

  “그냥 한번쯤은 연녹색 눈동자를 가지고 싶었을 뿐인데?”

  “........”

  무시하자.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 그날 공장. 저는 봤습니다. 반장님 등에서 나온 검은.......안개. 그건 마법이 아니에요, 저도 그정도는 구분할 줄 알고 그런 마법은 듣도보도 못했습니다.”

  “흐음.”

  다시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김연의 눈을 바라보며 말한다.

  “당신은, 당신 힘의 무언가를 숨기고 있어요.”

  “그래? 흑염룡이라도 날뛰었나?”

  무시하자. 오히려 저렇게 시덥잖은 농담으로 맞받아 친다는 것은 내 말이 정곡을 찌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반장님의 집에서 나누었던 대화가 있죠.”

  “그게 뭐?”

  “언노운에 관한 대화요.”

  “.......”

  김연의 표정에서 아주 살짝, 웃음기가 약해졌다.

  “언제 나타나는지, 왜 나타나는지도 아무도 모르는 자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는 자들이라고 하셨죠,”

  “그랬지.”

  “그럼, 어떻게, 아니, 어째서 반장님은 그들이 ‘UN군의 연해주 상륙 시점.’에서 사라졌다고 말씀하신거죠?”

  “.......”

  김연의 얼굴이 조금씩 굳기 시작한다.

  그런 그의 반응에, 드디어 핵심을 건드린 것일 지도 모른 다는 생각과 동시에 알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26년 2월 14일. 칭따오. 대한 민국 공수 여단 8중대. 정말 기억하지 못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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