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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니셔
작가 : null
작품등록일 : 2017.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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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제비 3
작성일 : 18-01-02     조회 : 307     추천 : 1     분량 : 6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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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이엔이 미하일, 아이신, 아이린과 가족이 된지 5년이 지난 해의 어느 날

 

  딩동.

 

  “끝났다! 가자!”

  이엔이 사는 마을을 포함해, 인근 여러 동네의 학생들이 몰려드는 초급중학교의 수업 종료벨이 울린다.

  교복차림의 이엔이 미소지으며 하교를 위해 짐을 챙긴다. 그때, 교실의 문이 벌컥 열리고 아이신이 뛰어들어와 소리 높여 이엔을 부른다.

  “이엔!!! 가자!!!”

  해맑은 미소를 띄우는 아이신에게, 이엔은 고개를 돌리고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너 종치기 전에 뛰어왔지?”

  “아니거든 내가 x라 빠른 거거든!”

  “이엔~ 어디 놀러가?”

  그때, 이엔 앞자리의 여학생이 이엔에게 말을 건넸다. 그러자 다른 자리의 여학생들도 하나 둘, 이엔의 주위에 모여들기 시작한다.

  “어디어디?”

  “하하....... 아냐. 놀러가는 건 아니고 집에 가려고.”

  “우리랑도 놀자! 좀! 형이랑 누나랑만 놀아?”

  “형이랑 누나 아니거든? 동갑이거든??”

  괜히 열받는 단어에 이엔이 퉁명스럽게 누군가가 던진 말에 대답했다. 그리고 아이신은 건들대며 이엔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슬프다 동생아. 아이린도 슬퍼할거야. 가족이라고 믿었는데.”

  “넌 좀 닥치시고.”

  “이엔, 이엔! 저번에 갔던 거기 어때? 약속 있어?”

  땋은 머리의 여자아이가 이엔을 향해 허리를 숙이며 물었다.

  “하하 미안. 오늘 집에 좀 일이 있어서. 나중에도 괜찮을까?”

  “응? 헤헤....... 무, 물론이지!!”

  이엔이 미소짓자 얼굴이 붉어지며 대답하는 여학생, 그리고 다른 친구 하나가 이엔에게 물었다.

  “왠 일이야 오늘은?”

  이엔은 그 질문에 씨익 웃으며 대답한다.

  “내일이 선생님 생일이거든.”

 

 --------------------------------------------------------------------------

 

  이엔이 다니는 초급 중학교의 교문 앞. 이엔과 아이신은 가방을 들고 아이린을 기다리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가증스러운 놈.”

  뜬금없이 던진 아이신의 비난에 이엔이 얼굴을 찌푸린다.

  “뭐가 또?”

  “날 대하는 태도랑 다른 놈들 대하는 태도가 확연히 다른데? 그것도 여학생들 위주로 지나치게 달라.”

  아이신의 불평을 듣고는 이엔이 가당찮다는 듯 아이신을 비웃으며 대답했다.

  “난 신사거든. 너랑 다르게 선생님 말씀대로 언제나 친절하고 상냥한.......”

  “우웩.”

  “넌 모르겠지. 난 나좋다고 매달리는 소녀들에게 매정하게 대하지 못하거든. 하긴 넌 그런 경험 없겠지만.”

  “아이린한테 이른다?”

  신나게 아이신을 놀리던 이엔이 그 한마디에 사색이되어 우물거린다.

  “.......일러서 뭘 어쩌려고.. 음....... 닥쳐.”

  건수를 잡은 아이신이 히죽거리며 이엔을 놀리기 시작했다.

  “아이린도 고생이 훤하구만. 얼굴이랑 다르게 속이 시꺼먼 놈이 가면을 쓰고 아이린 앞에선 순진한척, 그저 모범생인척 하고 들러붙어있으니. 게다가 여자라면 헤벌레해서......”

  “닥쳐.”

  중지를 내미는 이엔, 그러나,

  “이엔! 내가 그거 하지 말랬지!”

  “히익!”

  뒤에서 작은 종이 울리는 듯한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이엔에겐 세상 무엇보다 무서운 질책이었다.

  이엔이 뒤를 돌아보니 아이린이 허리에 손을 올리고 이쪽을 째릿, 하고 보고 있었다.

  어느덧 그녀도 14살이다. 이젠 이엔과 처음 만났을 때의 천진난만한 요정 같은 귀여움은 많이 사라져 있었다.

  대신 눈부시게 아름다워지고 있었다. 아직 소녀티를 벗으려면 한참 멀었겠지만 그 아름다운, 여신 같은 얼굴을 볼 때마다 이엔은 점점 작아지곤 했다.

  최근 이엔은 아이린과 가까이 붙으면 붙을수록 예전처럼 얼굴을 가까이 마주하기가 힘들어 고생하고 있었다.

  보석을 담은 듯한 눈망울, 갸름한 얼굴, 조박만한 얼굴에 완벽하게 자리잡은 이목구비, 하얗게 빛나는 피부, 매끄러운 검은 롱헤어. 이엔은 날이 갈수록 그녀를 바라보는 것조차 힘들어지고 있었다.

  마치 지금처럼.

  “아, 하하하....... 아니 이건.......”

  성큼성큼 다가오는 아이린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이엔이 슬슬 뒤로 물러난다.

  “누나 말 안 들을래?”

  “......누나 아니잖아. 동갑이라고.”

  입을 비죽 내밀며 대답하는 이엔. 아이린은 한숨을 한번 쉬더니 투덜댔다.

  “어휴....... 예전엔 마냥 귀여웠는데 왜 점점.......”

  “징그럽지? 사내놈들이 그렇지.”

  난데없이 끼어든 아이신, 이엔은 급격히 태도를 바꾸어 아이신을 노려보았다.

  “너만큼은 아닐걸? 아이신놈아?”

  그러나, 아이린은 둘이 싸우는 것을 절대로 두고 보지 않는다.

  “둘이 또 싸우는 거야?”

  “아냐.”

  “응, 절대로 아냐.”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미소로 어깨동무를 하는 둘.

 

  잠시 후, 이엔과 아이신, 아이린은 시골길을 걸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뭐 우리 이엔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징그러워 질리는 없지만.”

  아이린이 미소를 지으며 이엔을 돌아보았다.

  “음, 근데 이제 귀여울 나이는 지났지. 내가 너보다 키가 커진지가 언젠데. 이제 예전처럼 갑자기 끌어안긴 힘들지?”

  “커도 애거든?”

  눈을 반쯤 감고 이엔을 째려보는 아이린. 그 모습조차 사랑스러워, 혹시라도 자신도 모르게 끌어안을까봐 이엔은 고개를 돌린다.

  그렇게 잠시 이엔을 말없이 질책하던 아이린은 금새 표정을 풀고 활짝 미소지으며 말했다.

  “아무튼!! 선물 사러가자!! 가자! 시내로!”

  그러나, 아이신이 거기에 딴죽을 넣었다.

  “후후....... 사는 건 식상하잖아?”

  “아이신? 또 뭔 생각하냐?”

  이엔이 불안한 듯 얼굴을 찌푸리며 묻자 아이신이 씨익 웃는다.

  “후후....... 오늘 분명 선생님 늦으시는 거 맞지?”

  “그렇긴 한데....... 또 뭐하려구? 혼날 만한 짓 하는 거 아니겠지?”

  걱정스러운 표정의 아이린이었지만 아이신은 능글맞게 웃으며 딴청을 부렸다.

  “뭐, 좀 혼나긴 하겠지만. 이젠 나도 다 컸으니.......”

  “다 크긴 개뿔. 나보다 키도 작은게.”

  아이신의 최근의 콤플렉스를 건드린 이엔. 아니나 다를까, 아이신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키 이야기 하면 죽인댔지?”

  “응 이거나 먹....... 우왓!!!”

  아이린이 휘두른 가방이 이엔의 허리에 직격하고, 아이린은 이제 다시 화를 냈다.

  “진짜!! 누나 말 안 들을래? 그 손가락 하지마!”

  “누나 쫄래쫄래 쫒아다니던 시절은 지났거든? 뭐 누나도 아니지만.......”

  “......”

  “아이린?”

  갑자기 아이린이 입을 꾹 닫고 이엔을 바라본다.

  “야 이 멍청아......”

  아이신이 한탄에 이엔은 자신의 말실수를 깨닫지만, 아이린은 이미 침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누나.......가 아냐?”

  “응? 아, 아, 아니....... 난.......”

  “가족....... 아니었어?”

  아이린의 사랑스러운 얼굴이 살짝 어두워지고 이엔은 그런 아이린의 모습에 어쩔 줄 몰라 식은 땀까지 흘리며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니....... 가, 가족은........ 맞는데....... 아니 난 그런 의미가.......”

  “미안....... 난 그런 줄 모르고.......”

  연녹빛 영롱한 눈에 눈물이 살짝 맻힌다.

  “아, 아냐!!! 아이린....... 넌, 내.......나한테 넌.......”

  이엔이 무슨 말이라도 하려 했지만 당황한 것인지, 말을 고르지 못하는 것인지 말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때,

  “풋.”

  “엥?”

  “아하하하하하하!!! 아~ 아직 귀여워!!!”

  그렇게 말하고 이엔에게 달려드는 아이린. 그리고 어렸을 때보다 살짝 위치가 높아진 이엔의 머리로 뛰어들어 껴안았다.

  “아, 아이린?”

  이것은 이엔에게 너무나 위험했다. 너무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에,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주위를 맴돌던 달콤한 향에 정신을 붙잡는 것이 너무나 힘든 이엔이었다.

  “너무 쉽네! 아직 애 맞네 뭘!!”

  꺄꺄 거리며 이엔에게 매달리는 아이린.

  “우웩.”

  한편 아이신은 짜증을 내며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못 어울려 주겠네. 그럼 난 이만.”

  “엥? 아이신, 시내로 안나가?”

  아직 이엔에게 매달린 채로 묻는 아이린. 아이신은 그런 그녀와 멍청하게 서있는 이엔을 지나치며 가볍게 내뱉었다.

  “어차피 가봐야 뻔한거 살거 아니냐, 케이크나 좀 사고 줘도 안쓸 거나 좀 사겠지. 난 블루오션을 노린다.”

  “용케 그런 단어 알고 있네.”

  이엔이 던진 비아냥에 아이신이 뒤를 돌아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뒤질....... 아, 알았어. 욕 안할게 아이린. 아무튼! 난! 내 선물을 찾으러 가보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고 아이신은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흠.......아이신이 왜 저러지? 불안하네? 또 사고 치는거 아닐까?”

  아직 이엔에게 매달린 채로 고개를 사랑스럽게 갸웃거리는 아이린.

  “뭐 저놈 생각하는거야....... 기껏해야 낚시나 해오려는 거겠지. 요즘 맛들였잖아.”

  “그런가?”

  “음...... 근데 아이린? 좀 내려와줄래? 무겁거든?”

  “와!!! 이제 아무 말이나 막하네!!! 각성자면서!!!! 뭐가 무거워!!!”

  “아직 능력발현도 안했거든. 아니 아무튼....... 그 무겁다는 건....... 그, 뭐냐......”

  “흥.”

  아이린은 매달린 자세 그대로 뛰어올라 이번엔 이엔의 등에 업힌다.

  “아이린?”

  “업어줘.”

  “응?”

  “시내까지. 그리구 올 때도.”

  “아니 갑자기 왜?”

  “아까 다리 뼜어. 그리고 피곤해.”

  “너 조금 전까진 잘 걸었잖아.”

  “.......”

  이엔의 지적을 무시하며 이엔의 머리칼에 얼굴을 뭍는 아이린. 이엔은 그녀의 숨결에 목덜미가 간지러운 것을 애써 눌러 참으며 무심한 듯 내뱉었다.

  “누구보고 애란건지.”

  이엔은 그렇게 말하고 허리에 걸친 아이린의 다리를 받쳐들었다. 그리고 시내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에헤헤헤헤헤.......”

  머리 뒤에서 아이린이 고개를 좌우로 비비며 배시시 웃는 것이 느끼고는 터질 듯한 심장을 애써 억누르는 이엔. 그리고 그는 동요를 숨기고자 또 무심히 말을 건넨다.

  “간지러운데.”

  “옛날엔 안아주면 좋아했으면서.”

  “좋아한 적 없거든? 그냥 가만히 있던 거거든? 그럼 내가 꼭 변태같잖아.”

  “그래서, 싫었어?”

  비겁하다. 이렇게 말꼬리를 살짝 올리면서, 시무룩하게 물어보면 어쩌란 말인가, 하고 이엔은 생각했다.

  “.......”

  “헤헤! 좋아했구나?”

  이엔은 ‘지금도 싫어하진 않아. 오히려 좋아한다고 해야겠지.’ 라는 말도 속으로만 삼킨다.

  “아하하하!!! 이엔 너무 좋아!!”

  그렇게 말하며 아이린은 이엔의 목을 꽉 끌어안는다.

  답답하지만, 행복한 기분이 이엔을 감싸온다.

 

 -------------------------------------------------------------------------

 

  갈림길에서 아이린과 이엔으로부터 떨어져나온 아이신. 콧노래를 부르며 걸어가다가 문득 멈춘다. 그리고 뒤를 한번 돌아봤다.

  “......”

  하긴, 아직까지 보이는 곳에서 미적거릴 리가 없지.

  그렇게 생각하며 씩 미소짓는 아이신.

  “좋은 시간 보내라 멍청이들아.”

 

 -------------------------------------------------------------------------

 

  마을에 몇 안되는 주점 겸 식당 역할을 하는 작은 가게하나. 그곳의 2층에 마을의 어르신들과 청년들, 그리고 미하일 로마노프가 식탁에 둘러앉아있었다.

  “...... 정말 여기까지 올까요?”

  한 청년이 못내 불안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며 말했다.

  “아마 그럴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요? 생각보다 빠르게 번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이들은 마을회의 중이었다. 평소엔 그저 마을소식이나 나누는 자리였지만 오늘은 조금 분위기가 무겁다.

  “독립추진회인지 뭔지, 아니 오랫동안 잘 살다가 왜.......”

  “잘 못살게 되었으니까요.”

  노인 한명의 한탄에 미하일이 착잡한 듯 대답했다.

  “제기랄. 독립인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지들 동네에서나 지랄할 것이지 왜 여기저기서 난리야?”

  “.......”

  미하일이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무튼 지금은 하루라도 빨리 피난을 해야 하겠죠.”

  “하지만 당에서는 동요하지 말라고....... 그리고 조금만 있으면 한창 바쁠땐데.......”

  한 노파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미하일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일단 목숨이 위험할 수 있으니, 몸은 피하고 봐야죠.”

  “그래. 그렇겠지....... 목숨이 가장 소중한 법이지.”

  가장 나이많아 보이는 노인이 말했다.

  “그렇다면, 오늘 집에 돌아가서 바로 피난 준비를 하도록 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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