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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니셔
작가 : null
작품등록일 : 2017.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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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제비 4
작성일 : 18-01-02     조회 : 320     추천 : 1     분량 : 6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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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하게 말해서 미안하지만 내일 잠깐 어디 좀 며칠 다녀올까?”

  가족의 저녁식사시간. 미하일이 갑자기 이야기를 꺼냈다.

  “어딜요? 근데 학교는요?”

  아이린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이 시골마을에서 잠시나마 벗어난 다는 것이 즐겁다는 듯.

  “음...... 그건 지금부터 생각해봐야지.”

  “.......네?”

  이엔이 눈을 찌푸리고 아이신은 입에 무언가를 우물거리며 대꾸했다.

  “선생님 너무 막 사는거 아닙니까? 으윽!”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쥐어 박히는 아이신의 모습을 보는 건 이엔에게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지만 오늘은 어딘가 이상했다.

  “......”

  “이엔? 무슨 생각하니? 표정이 안 좋은데?”

  “이엔? 왜그래? 밥이 맛 없어?”

  “하하하 똥 마렵.......아얏! 아이린! 젓가락으로 찌르지마!”

  이엔은 조심스럽게, 의심스러운 것을 말해보기로 했다. 아니, 정황상 확실한 사실이겠지만.

  “독립추진회인가요?”

  “그건 어디서 들었니?”

  미하일이 조금 놀란 듯 묻자 이엔은 거침없이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것도 들었죠. 그리고 요즘 이 근처에서 가장 흉악한 녀석들이잖아요? 얼마전엔 선양시에서도 테러가 있었고요. 게다가 당에서 이상할 정도로 인민들의 동요를 막으려고하는데 모를 수가 없죠. 이런 타이밍에 갑작스럽게 어딜 가자고, 그것도 며칠씩 가자고 하시면....... 가까이 온거죠?”

  “......”

  이엔의 말이 길어질수록 미하일의 표정이 점점 무거워진다. 그러나 이엔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괜찮은가요? 정부가 지역치안안정책이라고 지금 대대적인 이주를 막고 있잖아요? 뭐 이 지역 인구가 대대적으로 움직인다면 정부 입장에선 골머리 좀.......”

  “이엔!”

  갑자기 자신의 말을 끊는 미하일에 이엔이 놀란 듯 대답했다.

  “네?”

  “아이린이 겁먹었잖니.”

  “아.......”

  그 말대로였다. 아이린의 크고 사랑스러운 눈이 겁먹은 듯 흔들리고 있었다.

  미하일은 한숨을 한번 쉬고 이엔을 타이르듯이 말을 건넸다.

  “이엔. 선생님이 항상 주의를 주는 건 그저 어른의 꼰대짓이 아니란다. 물론 너는 정말로 똑똑하고 거기에 자부심을 가진 건 좋지만 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 어떻겠니.”

  “네.......”

  “하하하. 아까는 나한테 자기는 배려심이 넘치고 어쩌고 하더니만. 브아아보.......으엑!”

  그 와중에 끼어들어 쥐어 박히는 아이신.

  “음....... 아이린? 미안해....... 겁주려던 건 아니었어. 정말 미안.......”

  애써 떨리는 목소리를 억누르며 아이린에게 사과를 건네는 이엔. 그리고 아이린은 언제 그랬냐는 듯, 미소띈 얼굴로 이엔을 안심시켰다,

  “으, 응....... 아니야. 에헤헤.......”

  그러나, 이엔은 그녀의 목소리가 아직 떨리고 있다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후우....... 이렇게 됬으니 어쩔 수 없네.”

  미하일이 한숨을 쉬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이엔이 말한 대로야. 놈들이 지금 이 근처까지 왔다고 하더군. 물론 엄청나게 가깝거나 하진 않아. 하지만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조금이라도 빨리 피하려는 거란다.”

  “마을.......사람들은요?”

  이 상황에 마을사람들을 걱정하는 아이린.

  “이미 마을 어르신들과 이야기 나눴어. 물론 당에서 마을단위 이주를 거부하고 있긴하지만 개별적으로 흩어지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거든. 각자 적당한 시기에 잠시 떠나기로 했어. 이미 오늘밤에 떠나는 집도 있지.”

  “그런데 떠나면 어디서 지내요? 갈 곳은요? 짐은요?”

  아이신도 슬슬 불안해 진 듯 미하일에게 물었다.

  “짐은 간단하게 쌀거야. 집은....... 원래 단둥으로 가려고 했지만 지금은 조선 반도 쪽도 좀 많이 어지럽다고 해서 다롄시로 갈 생각이야. 마침 그쪽에 지인도 있고.”

  “비용은요?”

  이엔이 걱정스럽게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묻자, 미하일은 미소지으며 이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예전에 모아놓은 돈이랑 물려받은 게 좀 있어서 말야.”

  “우우. 그럼 용돈이나 좀 올려....... 켁!”

  헛소리를 하는 아이신을 한번 더 쥐어박고, 미하일은 온화한 목소리로 아이들을 안심시켰다.

  “아무튼, 너무 걱정하지 마렴 아이린. 지금 당장 위험한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피할 거란다. 거기서 어느 정도 지내다가 이쪽이 잠잠해지면 돌아올거야. 만약에 잘못되면 거기서 계속 지내면 되고.”

  “.......네.......”

  아직 울먹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린. 선생님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 않아하는 그 모습을 이엔은 대견하고 사랑스럽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

 

  “너흰 나중에 뭐가 되고 싶어?”

  저녁을 먹고 아이들은 이엔의 방에 모여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응?”

  “갑자기 뭐야?”

  아이린은 침대에 앉아서 다리를 까닥거리며 말했다.

  “난 말야. 사실 아직 딱히 뭐가 되고 싶은진 모르겠거든? 그냥 적당히 대학도 가고싶었구...... 음, 졸업하면 선양에 살고 싶었어. 아, 물론 계속 이 마을에도 올거지만.”

  이엔은 언젠가 선생님과 함께 선양시에 같을 때 아이처럼 즐거워하던 아이린이 떠올랐다

  “이엔, 너는?”

  “나는....... 의사.”

  “선생님 같은?”

  “응.”

  “아하하핫 안어울리네. 공부 잘해봐야 성깔 더러워서 손님 한명도 안올걸?”

  아이신은 내 책상 의자에 앉아서 등받이를 자기 등으로 쭈욱 밀면서 눕다시피 앉아있다. 이엔은 그런 아이신을 째려보며 험악하게 으르렁거렸다.

  “그러다 망가진다고 망할 자식아.”

  “아이신은?”

  질문이 자신에게 돌아오자 아이신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군인.”

  “닥치는 대로 때려부수고 싶어서? 안됬지만 군인이라고 무조건 총질하면서 지내는 건.......”

  “아니거든 등신아.”

  “아이신!”

  아이린이 화를 내자 아이신은 지긋지긋하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아 알았다고. 난 그냥, 어차피 선천적 각성자라 다른 일 생각도 안나고....... 군인이 돼서 강해지면....... 사람들을 지킬 수 있잖아.”

  “그렇구나.......”

  아이신과 아이린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원래 몽골과의 국경지대에 살던 이 쌍둥이의 부모님은 그들이 아주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 미하일의 말로는 아마도 국경분쟁 당시의 교전인 것 같다고 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걸까? 아이린의 무거운 표정이 이엔의 마음을 아프게 찌른다.

 

  “우리....... 나중에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난 선양시에 사는 건 포기한다고 해도....... 여길 완전히 떠나고 싶진 않은데.......”

  “괜찮아! 될 수 있어. 돌아올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선생님도 계시잖아? 뭐 다 잘될거야?”

  “이엔.......”

  “왠일이냐? 맨날 잘난 얼굴로 이건 되고 저건 안된다고 나불대던 놈이....... 너 언젠가 내가 그 가운뎃손가락 분질러버린다.”

  힘차게 치켜든 이엔의 중지를 본 아이신이 이를 갈며 말한다.

  “아니 그전에 거기서 나오라고, 삐걱거리잖아. 게다가 내방인데 왜 내가 바닥에 앉아있는데? 아이린이라면 어디에 앉아도 괜찮지만 넌 아니거든?”

  “아하하하하........”

  아이린이 웃는다. 평소와 같은 사랑스러운 웃음에 이엔의 마음도 함께 풀어지는 것 같았다.

  “바닥에 앉게 해서 미안. 근데 이리와서 앉으면 되잖아?”

  그렇게 말하고 아이린은 작고 고운 손으로 자신의 옆을 팡팡 두들겼다.

  “엥? 아니 나는.......”

  “얼른!”

  애써 아이린과 거리를 두기 위해 바닥에 앉았던 이엔은 조금 망설였다. 그러나, 결국 아이린의 귀여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이엔은 엉거주춤 그녀의 곁으로 가서 앉았다.

  툭.

  아이린이 이엔에게 머리를 기대온다.

  “하하....... 고마워 이엔. 역시 넌 정말 착해. 머리 쓰다듬어 줄까?”

  “이제 얘 아니거든?”

  이엔은 부루퉁하게 대답한다.

 

  새벽, 이엔은 오랜만에 참으로 더러운 꿈자리를 보고 있었다.

 

  차가운 바닥, 쇠사슬, 두꺼운 수갑, 주사, 메스, 목줄을 매고 내 입을 막은 채로 나를 끌고 가는 흰옷의 악마들.

 

  “하아.......하아....... 으아아악!!!!!”

  내일 아침 멀리 떠나야한다는 두려움과 긴장 탓일까? 괴롭다. 숨이 막힌다.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탁!

  “으......응?”

  무언가 이엔의 손에 닿았다. 꿈 때문에 버둥거리다가 무언가에 닿은 듯하다.

  “으으.......”

  그리고 예쁜 목소리로 누군가 울먹인다.

  “!!!!!”

  아이린. 그녀가 뺨을 움켜쥐고 바닥에 쓰러져있다.

  “아이린!!!!”

  어째서 아이린이 여기 있는지, 뭘 하고 있었는지 알수 없는 이엔이었지만 지금 그에겐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엔은 황급히 침대에서 튀어나와 아이린에게 다가갔다.

  “아이린!! 괜찮아? 미안해.......”

  바닥에 주저앉은 아이린의 뺨을 보니 빨갛게 부풀어 오른 것이 보였다. 선천성 각성자인 이엔이니만큼, 잠결에 휘두른 손이라도 어른 이상의 힘이 들어가 있을 터였다.

  “미안해....... 미안.......”

  “아....... 난 괜찮아 이엔. 응?”

  “크흑, 미안.......”

  눈물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천사같은 얼굴에 손을 댔다는 죄책감이 이엔의 심장을 쥐어짠다.

  “미안해....... 흑......흐흑.......”

  “이엔?”

  “흐흑.......”

  “이엔!”

  “히끅! 으, 응?”

  “괜찮다니까. 울지마. 응?”

  “아, 아이린.......”

  “자 울지말자. 응?”

  “으응....... 훌쩍.”

  “미안해. 잠이 안와서 얼굴이 보고....... 아니 혹시 자고 있나 싶어서. 물론 새벽이니 자고 있었겠지만. 헤헤.......”

  아직도 눈물이 글썽이지만, 웃는 아이린. 이엔에게 그 모습은 너무 아름다웠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악몽을 꾸고 있는 것 같았어. 막 땀도 나고, 울고, 괴로워하는 것 같아서 깨우려다가....... 미안 이엔.”

  “아냐. 정말 미안해 아이린.......”

  아이린은 정말로 상냥한 목소리로 울고 있는 이엔을 달랜다.

  “그런데 무슨 꿈 꿨어? 괜찮아?”

  “아.......”

  이엔은 기억을 되짚어보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곧 이엔은 깨면 사라져버릴 가벼운 꿈 때문에 아이린을 때렸다는 사실에 더한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잘....... 기억은 안나. 그냥, 좀 무서운 꿈이었던 것 같아.”

  “그랬구나. 괜찮아?”

  “으응....... 이제 괜찮아.”

  “그래? 그럼 자자!”

  “으응.......”

  이엔은 아이린에게 떠밀려 다시 침대로 들어간다.

  그런데 아이린이 가지 않았다.

  “아이린?”

  “에잇.”

  아이린이 갑자기 이불속으로 들어온다.

  “아이린? 왜그래?”

  “헤헤. 아니 그게, 나도 잠이 안와서. 싫어?”

  “아니, 그건 아냐.”

  “헤헤헤....... 역시 이엔은 제일 착해.”

  그렇게 말하고 두 사람은 나란히 누웠다.

  이불 속에서 그녀를 마주보니, 잠이 달아나고 심장이 뻐근해지는 것 같은 이엔.

  그래도 아이린의 향기와 온기에 마음이 차츰 진정되어 가는 걸 느낀다.

  아이린이 이엔의 팔을 잡는다. 그 부드럽고, 너무 따뜻한 느낌에 이엔의 얼굴이 터질 듯 달아올랐다, 그러나, 이엔에겐 다행히도, 어둠 속인 덕분에 빨개진 얼굴을 아이린에게 숨길 수 있었다.

  “이엔. 잠이 안와?”

  “응.......”

  “나도. 역시 떠나게 되니까 불안한 걸까?”

  “그럴지도.”

  “......”

  이런, 너무 짧게 대답한 건가? 이엔은 그런 생각이 들어 속으로 전전긍긍하기 시작했다.

  그때, 아이린이 속삭이듯 말을 건넸다.

  “자장가 불러줄까?”

  “자장가?”

  “응, 엄마......가 옛날에 많이 불러줬거든. 가사는 잘 기억 안나지만.”

  역시 이엔은 이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음.......그래줄래?”

  “헤헤. 응! 흠흠!”

  귀엽게 목을 가다듬고, 아이린은 노래하기 시작했다.

 

 --------------------------------------------------------------------------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이엔의 눈앞엔 아이린의 잠든 얼굴이 있었다.

  “........”

  어렸을 땐 자주 봤던 아이린의 잠든 얼굴, 그러나 몇 번을 봐도 이엔에겐 새로웠다.

  그러나 그때 바닥을 쿵쿵 울리며 누군가 올라온다. 이엔은 당황해서 잠들어 있는 아이린을 흔들어 깨웠다.

  “아이린? 일어나!”

  쾅!

  “선생님?”

  미하일이 땀을 흘리며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다행이다...... 아이린은 여기 있었구나.”

  “선생님?”

  “큰일이야. 혹시 아이신이 어디있는 줄 아니?”

  “네?”

  “아이신이 없어졌어.”

 

 ----------------------------------------------------------------------------

 

  “헤헤...... 선생님도 참, 본인 생일인데 바쁘게 먼길 떠나면 좀 슬프잖아요.”

  아이신은 혼자서 중얼거리면서 근처의 냇가로 향하고 있었다.

  “흐흠....... 근데 먹을 시간이 있나? 에이 뭐 어때. 일단 선물이 있다는 게 중요한거지. 정 뭐하면 주변에 선생님 이름으로 나눠주면 되고!”

  냇가에 도착한 아이신은 물가의 돌무더기를 주적거렸다.

  “아하! 찾았다.”

  어제 설치한 통발에는 물고기가 가득가득 들어있었다.

  “흐흠! 뭐 이런건 이엔 같은 샌님에겐 무리겠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통발을 주워든 아이신. 그때였다.

  철컥.

  아이신의 뒤통수에서, 차가운 쇠의 감촉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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