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러어어어어어어!!!!!”
어둡고 답답하고 음침한 공간, 분노한 내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탑신병자 새X 또 지랄이네, 팀원 좀 그만 갈궈라!!”
옆에서 덩달아 짜증을 내는 놈은, 당연히 김준환.
아는 사람은 눈치 챘겠지? 그래, PC방이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이 대책 없는 두 명의 머저리는 간단한 식사 후 PC방에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나는 스트레스를 풀러 온 곳에서 오히려 스트레스를 쌓고, 현장에서 발산하고 있었다.
“아니! 봐봐!!! 적 정글러는 5번을 넘게 도와주러 왔는데 우리 팀은 뭐하는 건데?!”
“그걸 왜 나한테 따져?”
“제기랄! 퍼블도 따고 적 다리우X도 세 번을 넘게 땄는데 왜!!!”
“미친 놈아 그러니까 안 오는 거지! 지금 너 빼고 다른 라인 다 망했잖아! 네가 다른 팀원 좀 도와라!!!”
“왜 망했는데 미친 놈아!”
“아 좀 닥쳐! 오늘 유달리 미쳤네! 왜 그래?”
“넌 유달리 망했잖아!! 미드라인 안보냐? 사라졌잖아!! 미아코오오올!!!!”
“이 또라이 새X가!! 잠깐 우물 간 것뿐이잖아!! 없어진지 3초 지났다!!”
리X오브X전드. 내 스트레스 발산의 30%를 담당하는 고마운 게임이다. 물론, 오늘 같은 상황으로 인해서 스트레스의 10%정도는 다시 쌓아주니까 결과적으론 20%해소이지만.
그렇게, 잠시 후, 30분간 이어진 게임 한판이 끝났다.
“후우.......봤냐? 내 덕에 이겼다. 봤냐?”
“응 니 얼굴.”
그렇게 대답하는 김준환에게 중지를 내미는 나는 만족감에 씩씩대고 있었다.
나에게 있어선 PC방은 정말 고마운 장소다. 언제나 남들 속을 헤아려가면서, 대인관계에서 두 배로 스트레스를 받는 내가 마음껏 스트레스를 발산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김준환은 예외이지만. 아니, 사실 완전히 예외라고 하긴 그렇지, 이 놈은, 내 머릿속에서 그 막 대하는 허용량이 남들 보다 조금 높을 뿐이다.
그나저나, 이대로 이 게임을 계속하기엔 조금 눈치가 보인다. 슬슬 PC방 알바의 눈초리가 매서워 질 때가 되었으니까.
특히 오늘은 더더욱 거대한 스트레스를 받고 왔던지라 조금 패악질이 심했던 것도 같고 말이지.
하지만 김준환을 포함한 우리 팀이 너무나 쓰레기였기에 자책감은 없지만 말야.
“야. 다른 게임하자.”
“그래, 오늘 날이 아닌 듯.”
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김준환. 양심이 있으면 그러셔야지. 방금 전에 그렇게 말아먹었으면 오늘 날이 아닌 것은 스스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한다.
“이거 하면 네놈이 X나 시끄러워서 안 되겠다.”
“........”
준환의 일침을 무시하며, 나는 우리가 자주 하는 또 다른 게임을 켰다.
그리고 잠시 후.
“메X시이이이이!!!!! 힐러어어어어어!!!!!! 어디 있냐!!!!!!”
참고로 말하지만, 이건 내가 아니라 김준환이다.
“한X각? X조각이라고? 개소리 집어 쳐!!!!!! 그럼 나는 겐X다!!!!! 이 XXXXXXX!!!!!”
이게 나고.
그리고 또 잠시 후.
쏟아지는 여름날의 태양 아래에서, 우리 둘은 PC방을 나섰다.
오늘도 역시나 보람찬 하루였다. 얼굴도 모르는 상대와 부모님 안부교환 및, 조상들의 묫자리에 관한 풍수지리 정보 까지 교환했으니까.
“X발........”
“쓰레기들이.......”
오늘의 스트레스 교환비는 유달리 좋지 않다. 스트레스를 풀러 왔다가, 오히려 쌓고 나오는 길이다.
사실, 오늘은 PC방에 들어가기 전부터 머리에 스팀이 돌아있던 상태긴 했다.
“이제 뭐하냐?”
김준환에게 묻는다. 사실, 제대로 된 대답이 돌아 올거라 기대한 것이 아닌, 습관적인 물음이다.
“윤아 만나러 감.”
“........”
그래, 놀랍게도, 그 ‘윤아’라는 이름은 이 개자식의 여자친구다.
놀랍지? 놀라진 않으려나?
군대를 전역하고 까맣게 근육돼지가 되어 돌아온 김준환. 근육이 넘치다 못해 뇌까지 근육으로 꽉꽉 들어차있는 녀석이 되었다. 거기에 원래 또라이 같던 성격이 더 또라이가 되어 돌아왔건만, 놀랍게도 여자친구가 곧바로 생겨버렸다.
음, 왠지, 언제까지나 솔로일 것 같았던 가까운 친구가 여자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말을 들은 나를 불쌍하게 볼지도 모르니 한마디 해 두겠다.
전혀 불쌍하지 않다. 오히려, 그 여자친구에게 감사하고 있다. 이 미친놈의 목줄을 잡아주는 분이시고 정말로 24시간 동안 이놈이 옆에 붙어있는 사태를 피하게 해주신 은인이시다.
솔직히, 조금쯤 이놈의 성 정체성에 대해서 미약한 의심을 가지기도 했으니까.
게다가, 친구의 행복이 내 불행의 원인이 된다면, 그건 친구가 아니다. 친구이기 이전에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개자.......아니, 이건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지.
어쨌건, 친구가 행복을 느끼러 간다는데 축복의 한마디를 하고 여기서 해산하도록 하자.
“응. 꺼져.”
“그래 이따 봐.”
“왜 자연스럽게 이따 봐?”
“안 볼거야?”
“꺼져. 진짜로 소름 돋으니까.”
뭐, 어찌되었건 볼 거다. 어차피 바로 윗집이고, 내가 문이라도 걸어 잠궈 봐야 어차피 비밀번호도 알고 있는 놈이고, 만약 모든 잠금 장치를 잠궈 버린다면 위에서 쿵쿵댈게 뻔하니 보긴 볼테지.
제기랄.
어찌되었건, 일상적인 대화 후 놈과 갈라져서 집으로 향한다. 일단 집에서 과제나 해야겠지. 계절학기니 만큼 시간이 조금 촉박하니까 말이야.
그리고 조원들 중 절반은 전혀 믿을만한 족속이 아니고, 4분의 1은 이젠 보기만 해도 이마에 핏줄이 솟을 것 같은 여자다.
그런 불쾌한 생각을 하며 집을 향해 걷는다. 그리고, 우리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왼쪽으로 틀어야하는 T자형 교차로.
마주쳤다.
오른쪽 방향에서, 내가 꺾어야하는 왼쪽 방향으로 가려는 그녀와 마주쳤다.
그녀라는 것은 당연히 그녀지.
정수기녀.
조지은.
시X.
인사라도 해야하나? 아니지. 그 정도로 친하지 않다. 오히려 싫어한다.
하지만, 무시하거나 한다면, 아마 더욱 관계가 냉랭해질테고, 그렇다면 뒤가 무섭다.
조가 삐걱거려 결과가 악화되는 것도 무섭다.
그리고 누군가, 내게 적대감, 혹은 불쾌함을 느끼는 건 싫다. 그렇게 된다면 아마 나는 남은 기간 내내 더욱 스트레스를 받아 위를 부여잡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쉽다.
나는 그녀를 못본 척하고 왼쪽으로 틀었다. 못 본 척이라고 해도 무시는 아니다.
마치, 딴 생각을 하느라, 혹은 다른 간판을 보느라 오른 쪽에 시선을 두지 못한 것처럼, 그리고 굳이 둘 이유가 없어서 그러지 않은 것처럼.
좋아 자연스러운 연기였다. 만약 그녀가 나를 봤다고 해도 이 모습을 본다면 내가 자신을 보고도 못본 체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어쩌다가 마주쳤지만 그저 자신을 보지 못했구나, 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 스킬은, 꽤 잘 먹힌다. 옛날에 꼴보기 싫었던 선배들이나, 전 여자친구에게도 종종 써먹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나는 적어도 겉으로는 선배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고 전 여자친구 문제로 구설수 같은 것에 휘말린 적도 없었다.
남들과 충돌하지 않고, 불쾌감을 느끼게 하지 않으려고 이렇게 노력하다니, 혹시 나는 인간관계에 능숙하거나 굉장히 친절한 사람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그게 아니란 건 내가 잘 알지.
어찌 되었건, 그렇게 능숙한 몸짓으로 상황을 넘겨버리려했다.
그러나, 문제가 한가지 있었다. 나 같은 문제 회피의 프로패셔널에게도 벌어질 수 있는 사소하지만, 동시에 꽤나 난감한 문제.
가깝다.
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녀를 보고 꽤나 격하게 동요했고, 덕분에 아주 미묘하게 왼쪽 선회가 늦어버렸다.
덕분에, 거리가 꽤 떨어져있어서 일행으로 보일 리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평, 혹은 평행으로 나란히 서서 이동하는 포지션이 되어버렸다.
나보다 짧은 다리임에도 미묘하게 발걸음이 빠른 그녀 덕분에 오히려 내가 살짝 뒤로 쳐지긴 했지만, 어찌보면 그녀가 아주 조금 앞에 서고 내가 따라가는 형세로 보일 수는 있지만, 어쨌든 그렇게 되었다.
제기랄.
어찌 되었건, 이렇게 되었다고 해서 굳이 내가 그녀에게 말을 걸 이유도 없기에 그저 걷는다. 이렇게 계속 걷고 그녀를 먼저 보내버린 다음에 우리집 쪽으로 꺾으면 이 불편한 상황과도 안녕이다.
그런 생각으로, 이 심각하게 불편한 상황을 견디며 걷는다. 꽤 상당한 거리를 함께.......라고 하긴 좀 그렇고 그냥 같은 길을 걸었다.
그렇게, 코너를 돌아야하는 부분을 지난다. 좋아, 이제 안녕이다 이 망할 여자야.
그렇게 생각했지.
나와 같은 곳에서 꺾기 전까진 말야.
게다가, 내가 코너의 바깥, 그리고 그녀가 코너의 안쪽을 걷고 있던 기존 포지션으로 인해서, 그리고 내가 아주 미묘한 차이로 먼저 꺾었다는 그 상황으로 인해서 우리 둘의 거리는 조금 가까워진 상태다.
길도 좁아졌고 말이지.
뭔데?
아,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이 동네야 어차피 좁으니까 이 정도는 겹칠 수도 있겠지.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코너를 꺾을 때마다 같은 방향으로 방향을 트는 정수기녀.
“??”
왠지 조금 나보다 한 박자 느리게 코너를 도는 것 같은데? 착각인가?
하지만 그럼에도, 이 여자는 코너를 돌고 나서, 이윽고 발걸음을 서두른다. 여기에 이 여자가 코너 안쪽을 돌고 있다는 점이 합쳐져 정수기녀와 나의 거리는 이 여자가 미묘하게 앞에 서고 내가 따라붙는 형국이 되었다.
“.......”
이건 좀 위험한데. 내가 일부러 따라잡는 걸로 보이는 거 아냐?
아니, 오히려 이 여자가 왜 자꾸 내가 가는 방향으로 따라붙고 있는 것 아닌가?
보통의 머리 텅텅 빈 놈들이라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설렐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니다. 애초에 개인적 대화 한마디 나누지 않았는데 누군가 나에게 반한다는 것은 현실에선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첫눈에 반했다고 스스로 말하는 상대라면 오히려 가장 먼저 의심하고, 멀리해야 할 상대다.
그리고 나는 적어도 지금 까지는 저 여자에게 전혀 적의를 드러내지 않았다. 저 여자는 별로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지만, 다른 조원들을 대하는 것을 볼 때 원래 성격이 저모양인 것 같으니 내게 뭔가 해를 끼치려고 쫒아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즉, 저 정수기녀에게 있어서 나는 적의도, 호의도 받을 이유가 없다.
게다가, 정수기녀가 나에게 무언가 볼일은 없을 터이다. 조별 과제에 관한 이야기라면, 아까 전 강의실에서 했을 것이고, 굳이 더 이야기가 필요하다면 아까 번호와 X톡 교환을 했으니 그걸로 하면 될 터이다.
아니, 그보다 내게 할 말이 있다면 지금 당장해도 될 것이다. 이 여자가 지금 나를 못봤을리는 절대, 절대로 없으니까.
그런데, 왜 나는 이 여자와 같이 걷고 있는가.
모르겠다.
그렇게 모르는 사이에 우리 집 앞길로 들어섰다.
좋아. 이 X같이 불편한 상황도 끝이다. 앞으로 대충 30M 정도 나아간다면 이 토할 것 같은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했지.
그렇게, 희망을 가지고 씩씩하게 걸었었지.
제기랄.
탁.
탁.
이것은 무슨 소리일까?
내가 사는 희망빌라의 현관 앞 계단에 발을 올려놓는 소리다.
그럼 왜 두 번 난 걸까?
힌트를 주지. 이 골목은 사람이 없다.
우리 둘 뿐.
너무 쉬운 이야기다. 나와 정수기녀, 둘이 동시에 같은 계단에 발을 디딘 것이다.
아니, 동시는 아니지. 저 여자가 아주 약간 늦었으니까.
“.......”
이 식겁하고도 남을 상황에 나도 모르게 오른 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눈이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