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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망상 로맨스
작가 : null
작품등록일 : 2017.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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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망상과 아웃사이더 4
작성일 : 17-11-05     조회 : 341     추천 : 2     분량 : 5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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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전 여자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겨울에 피는 꽃들이 있다는 이야기.

  전 여자친구는 이것을 꽤나 로맨틱하다고 생각했는지, 그 꽃 이름들을 상당히 들뜬 목소리로 말했었지.

  하지만 당시의 나는 ‘요즘엔 온실이란 것이 있어서 모든 꽃이.......’ 같은 소리를 했다가 신나게 욕을 얻어먹었더랬지.

  일단 나는 꽃에 흥미도 없고, 그 덕에 관련 지식도 전혀 없다. 진짜인지 그냥 흔한 헛소문인지도 모른다. 인터넷으로도 사진 한 번 찾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만약, 겨울에 피는 꽃이 정말로 있다면,

  아마 이런 종류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흐음. 이 정수기녀에게 붙일 만한 비유치고는 너무 후했나?

  “......기요?”

  “........”

  “저기요?!”

  마치 호숫가에 울리는 피아노 소리 같은 아름다운 목소리가 나를 다그친다.

  “어? 음? 오? 아? 예?”

  아무래도 잠시 넋 놓고 있었던 모양이다.

  생각할수록 병X같기도 하지. 계단에 발 한 짝만 올려놓은 채 넋을 놓고 머릿속으로는 나중에 떠올리면 밤새 이불을 걷어찰 법한 문구를 떠올리고 있다니.

  그것도 이 여자를 상대로.

  “볼일 있으신가요?”

  “네?”

  “뭘 하고 있으신거죠?”

  일단 난 당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보시다시피, 집에 들어가려다가, 아까부터 나를 따라붙은 댁이 우리 집 까지 따라 오기에 놀라서 돌아보았다가, 지금 막 눈이 마주쳤는데.

  물론, 나는 이성을 추종하는 사람이니 만큼, 자칫 잘못하면 로맨틱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과 속내를 알 수 없는 위험한 상대를 자극할 수 도 있는 발언은 빼고 대답해야지.

  “뭐가요?”

  질문에 질문으로 받는 대답이라. 어떤 때는 유용하게 쓰이는 대화스킬이지. 하지만 이건 진짜로 화난 사람에겐 써선 안되는 거였는데 난 그걸 잊었다.

  “다시 말씀드리죠.”

  여자는, 아니 조지은인지 정수기인지는 싸늘한 목소리로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나는 그제서야 이 여자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살짝 치켜뜬 것이 무섭긴 하지만 예쁜 곡선을 그리고 있는 눈매, 그리고 길고 매끄럽게 뻗은 속눈썹이 있는 눈이다.

  아, 그래. 예쁘긴 더럽게 예쁘다.

  “왜 저를 따라오고 계신 거죠?”

 

  하하, 이루어졌다.

  걱정했던 시나리오 중의 하나가 이루어졌다.

  물론, 나는 이성을 숭상한다. 그렇기에 적당히 이성적으로 대처하자.

  “아니 저는 그러려던 것이 아니고....... 제가 뭘.......”

 

  응? 잠깐만?

  나야? 아니, 이광진씨? 왜 말이 쪼그라드니?

  아니 그것보다 그냥 확실히 나는 당신을 쫒아가지 않았다, 라고 말하면 되는 거 아냐?

  난 도대체 뭐가 꿀려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런 애매한 대답을 한 거지?

  게다가 마지막의 ‘제가 뭘.......’은 또 뭐냐. 이건 마치 엄한 짓하다 걸린 놈이 시치미떼는 것 같잖아.

  “지금 시치미 떼시나요?”

  아니나다를까. 이 여자는 나를 치한이나 뭐 비슷한 걸로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어찌되었건 이 오해는 빨리 풀어야한다. 재수없으면 휴학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게다가 난 이미 군대도 다녀왔단 말이다. 도피처가 없어요.

  “아뇨, 전 그런게 아니라........”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말을 끝까지 들을 생각은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지금 앙갚음하시는 건가요?”

  “앙갚음이요?”

  뭐가? 내가 당신에게 앙심을 품을 만한 일은........생각해보니 꽤 있네. 오늘 처음 봤는데도 이 정도라니, 정말 경이로울 정도다.

  정말 나와 정반대의 인간이다. 소수의 예외(김준환)을 제외하면, 나는 기본적으로 조금 과할 정도로 친절하고 사근사근한 태도를 유지한다. 아까의 그 멍청한 어린 것들을 대할 때도 나는 짜증한마디 없이 친절한 선배 흉내를 내었을 뿐, 그들에게 기가 찬다거나 하는 반응을 대놓고 보이진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다르다. 마치 상대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던지, 자신은 조금도 상관하지 않는 다는 듯, 아까부터 말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 (물론 지금의 상황은 오해할만한 상황이긴 하지만.“

  그러나 나는 이 여자와는 달리,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자이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예의를 갖추고 있을 뿐이다.

  그나저나....... 앙갚음?

  그래, 알고 있었구나.

  알고는 있었구나?

  당신이 한 일이, 충분히 사람을 짜증나게 할 법한 일이란 건 알고 있었구나?

  알고도 했다면 정말로, 정말로 나와 반대를 넘어 지구 한 바퀴를 돌아 다시 마주볼 정도의 인간이다.

  아, 알겠다. 내가 이 여자를 전혀 알지 못했던 이유.

  아웃사이더.

  이 여자는, 과, 혹은 대학 내 어떤 무리에도 끼지 못하는 아웃사이더 일 것이다.

  속단이라고 할지도 모르지. 내 짜증이 섞인 판단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성질머리, 남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을 전혀 꺼리지 않는 그 고약한 성질머리와, 나름 과 내에서 많이 설치고 다녔던 나와 김준환이 그 얼굴과 이름을 전혀 모른다는 이 두 가지 사실이 그 근거이다.

  그러나, 말했지? 내가 무슨 인간이라고?

  “저기....... 뭔가 오해가 있으셨던 것 같은데요. 저는........”

  “오해? 아까부터 따라 붙어놓고 오해라고요?”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자.

  나는 아까부터 이 정수기 Xㄴ....... 아니 이건 아니고, 아무튼 이 여자와 함께 걷긴 했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사람의 뒤를 밟을 땐 조금 더 거리를 두고 은밀하게 움직일 거다.

  조금 전의 나처럼, 이 여자의 대각선 방향으로 2m 정도 거리에서 걷진 않을 거란 말야.

  그리고, 분명 방금 전에도 내가 먼저, 아주 조금이지만 먼저 계단에 발을 디뎠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당신이 생각하는 미행이나 음해 공작 비슷한 이미지와는 다른 상황이란 걸 알텐데?

  이런 생각을 속으로 삼키며 상대를 자극하지 않을 만한 항변을 떠올리는 동안, 정수기녀는 나에게 다시 쏘아붙인다.

  “아까 정수기에서 짜증나게 하길래 마실 물 받고 빠진 것 가지고 사람을 집까지 쫓아와요?”

  아하? 역시나 다 알고 한 짓이었구나? 이 빌어먹을 여자야. 그리고 정수기에서 내가 뭘 했기에 짜증.......

  잠깐만? 그보다, 뭐?

  이 정수기녀가 방금 뭐라고 한거지?

  집?

  “지금 그쪽이 하는 짓이 뭔지 정말로.......”

  “잠깐, 잠깐만요.”

  사람의 말을 끊는 것은 굉장히 기분 나쁜 일이다. 내가 아까 이 여자에게 말을 잘리고 나서, 아니 그 이전부터 똑똑히 깨닫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변명을 해야 한다.

  내가 손을 저으며 한 말에, 잠시 멈칫한 정수기녀가 다음 말을 입으로 내뱉기 직전, 빠른 속도로 내가 할 말을 떠올리고, 입에 담는다.

  “여기에 저희 집도 있습니다.”

  내가 생각한 말이지만 정말 우아하고 정석적인 대답이라고 생각한다. 상대가 이 빌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방금 상대의 말로 인지 했다는 것을 ‘도’라는 한 글자를 통해서 어필하고, 나도 여기 살아요! 라고 강력하게 항변하는 것보다 돌려 말함으로써 상대가 받을 충격을 최소화 하려하는, 정말 매력적인 언변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별로 소용없었던 모양이네.

  당황한 눈동자가 떨리고 있어. 그리고 무언가 쏘아내려고 벌어진 것 같은 예쁜 입이 쏠 탄환을 찾지 못한 것처럼 벌린 채로 멈춰져 있지.

  “........네?”

  목소리조차 떨리고 있구만 그래. 이틈에, 나는 내 할말, 모든 오해를 완전히 종식시킬 항변을 마무리 지어야겠다.

  “아, 뭔가 오해가 있으셨던 것 같은데, 여기 사시나봐요? 저도 여기 살거든요. 아까 마주친 건 PC방 갔다가 우연히 마주친 거고요. 그건 제 친구와 PC방 사용기록이 증명해 줄 겁니다.”

  “아니.......나, 아니 저는........”

  “아마 도착 지점이 같다보니 길이 겹친 지점부터 계속 같이 걷게 된 것 같습니다. 본의 아니게 겁을 준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아니.......그게........”

  하하하하하하하. 꼴 좋다. 망할 정수기녀야. 어때? 물론 오해는 나도 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나는 내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지. 그러니까 이렇게 여유를 갖추고 너보다 우위에서 말을 걸 수 있는 ‘명분’을 얻은 거지. 이래서 사람은 자기 감정 컨트롤을 잘해야 하는 거야.

  실제로, 이 정수기녀는 지금 갓 태어난 고라니 마냥 덜덜 떨고 있다.

  그러니까 성질 좀 죽이시지 그러셨어? 그나저나, 어때? 말도 안 되는 오해를 한 주제에 이성적이고 품위 있는 말로 그 오해가 박살나고 오히려 사과까지 받는 기분은?

  조금쯤은 그 사나운 얼굴을 풀 마음이 드셨나?

  뭐, 안 풀어도 상관은 없.......진 않네. 어찌되었건, 그런 얼굴로 사람을 대하면 내가 아닌 누구라도 불편해 질 거다 망할 정수기야.

  그럼, 당신이 더더욱 짜증나면서도 내게 미안한 감정을 품게 하며, 항변, 혹은 억지조차 부리지 못하게 해주마.

  “음....... 놀라게 해드려서 죄송하지만....... 이제 들어가 봐도 될까요? 제가 노트북을 집에다 놓고 와서 제 분량만큼 도서관에서 자료조사를 하고 정리하려면 들어갔다 와야하거든요. 죄송합니다. 제가 다른 날엔 다른 일이 있어서 빨리 미리 해둬야 해서요.”

  “........네.”

  좋아. 저 바닥을 보는 눈동자와 떨리는 목소리는 이미 정수기녀가 내게 적개심, 혹은 혐오감을 품을 만한 ‘구실’을 없앴다는 증거이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렇게 마지막까지 예의를 갖춰 말하고는 나는 나의 집. B01호로 향한다.

  이게 바로 내가 꾹꾹 참고 참은 이유지. 최대한 내 감정을 억누르면서, 상대가 죄책감을 갖게 만든 후, 내가 미움 받지 않도록 하는 것.

  물론, 나도 사람이기에 한번 시원하게 내지르고 싶었다. 게다가 먼저 오해를 대놓고 어필한 것은 저쪽이었기에 그렇게 해도 완전히 찍어 누를 자신은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곤란하다.

  같은 발표조인 것도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당분간 얼굴을 봐야할 상대가 내게 악감정을 품은채로 발표준비를 해야하는 것은 괴롭다.

  그 악의가 담긴 얼굴에서 나를 향해 품고 있을 감정, 혹은 생각을 상상하는 것이 괴롭다.

  그 악의를 품고 나를 상대로 무언가를 하는 것, 혹은 할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이 지독하게 괴롭다.

  그 악의를 대면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그렇게, 나는 나의 방에 들어간다.

  좋다. 좋아. 아까 전, PC방에서 한 게임들 보다 지금의 짧은 대화가 나의 스트레스 해소에 더욱더 큰 도움이 되었다.

 

  도서관에서 자료정리를 한다는 말은, 단순히 정수기녀를 몰아붙이기 위한 허세 같은 것이 아니었다.

  진짜로 꽤나 시간이 촉박한 발표준비이긴 하니까.

  그렇게, 도서관에 다녀오니 어느새 해가 질 시간이었다.

  도서관에 다녀오기 전에 씻긴 했지만 그 잠깐, 짧은 거리에도 불구하고 땀이 다시 내 옷을 적신 상태.

  전기세가 아깝기에 에어컨을 꺼놓은 탓에, 대신 창문을 열고 나서 후다닥 샤워를 한다.

  샤워를 끝마치고 나와서 옷을 입고 현대인의 습관 중 하나인 핸드폰 들여다보기를 한다.

  “어?”

  X톡이 와있다.

  그 정수기녀다.

  물론, 그 앞에선 ‘조지은’으로 저장하긴 했지만, 수업이 끝나고 깨알같이 저장 이름을 ‘정수기’로 바꾼 것은 깨알 같은 내 치졸함이다. 인정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늘 죄송했습니다.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사과드리지 못했습니다. 오늘 제가 성질을 부린 것, 아무것도 모르고 화를 낸 것, 광진씨를 이상한 사람으로 몬 것 전부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반드시 제대로 사과드리겠습니다.’

  “후후후.......큭큭........”

  아 좋다. 이런 게 정말 좋다. 상대가 나에게 가진 악감정을 조금이나마 해소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그런 감정을 가질 가능성도 상당히 낮춰놓은, 나의 노력의 결과를 보는 것은 정말로 즐겁다.

  “킥킥킥킥.......끼하하하하하핫!!!!!”

  웃음소리가 저급하다는 건 익히 들어서 스스로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남 앞에서 이렇게 크게 웃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 사는 집이니 상관없겠지.

  “캬하하하하하핫!!!!!”

  X똑!

  “어?”

  또 메시지가 왔다. 이번엔.......병X이라고 저장한 이름. 바로 내 바로 위층에 사는 김준환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시끄럽게 처웃지마 병X새X야 술이나 먹자 올라와’

  아, 창문 열어놨었지 참.

까만쿠키v 17-12-01 05:36
 
뭔가 인연이 생길것같은 느낌이ㅋㅋ
  ┖
null 17-12-04 13:44
 
초반부가 늘어지는 고질병때문에 걱정했는데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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