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오, 오늘은 이 자식 왜 지X이야?!”
내 옆에서 이렇게 짜증을 내는 놈은 정해져 있지. 김준환이다.
우리 둘은 현재 항상 가던 그 PC방에서, 언제나 하던 모 FPS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
“아 또 뭔데?”
오늘따라 김준환 자식이 짜증이 많네. 하긴 우리 팀에서 한X, 트레이X, 겐X, 위도X가 전부 나왔으니 이해한다. 거품을 물고도 남........
“오늘따라 왜 이렇게 조용하냐?”
“.........”
일단 채팅방을 말하는 거라면, 전혀 조용하지 않은데? 그리고 PC방은, 언제나처럼 시끄럽고 요란하다.
“야 병X아?”
“어? 엉?”
아, 나한테 한 말이구나.
“뭐하냐고.”
“게임하지.”
“오늘따라 조용하다?”
그렇다고 네놈이 시끄러울 필요는 없는데 말야.
“오늘 게임이 잘 풀리니까?”
이 말을 한 직후, 화면을 보니, 내가 그냥 되는 대로 내뱉었음을 깨달았다.
“우리 팀에서 겐트위한이 모조리 나왔는데 잘 풀린다고?”
“........”
“뭔데? 그래서.”
“뭐가 뭔데? 생략 자제 좀.”
“아까 카페 말야.”
“싸움.”
“왜?”
“그 여자 성격이 진짜 XXXXXXXXX.......”
대충 이런 하소연, 혹은 뒷담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대화 이후 흔히 따라오는 개운함 같은 것은 왠지 없다.
불쾌함인가?
아닌데, 분명 그건 아니다.
내 투덜거림을 가만히 듣고 있던 준환이 씁쓸하다는 듯이 말했다.
“으음...... 난 괜히 또 기대했지.”
“뭔 또 개소리야?”
“아니, 네가 조별과제를 통해서 이제 다시 봄날을 맞이하나 했지.”
“응. 진짜 개소리였네.”
“예쁘긴 하잖아?”
“내가 지금까지 분명 한국어로 말한 것 같은데, 하나도 못 알아들었구나?”
“그래도 이런 기회를 놓치면 안 되는 거 아니냐?”
“뭐라고?”
“2년은......지났고, 2년 반쯤 되었냐? 이제 슬슬 다시........”
김준환 개자식이, 또 뭔 소리 하나 했다.
“필요 없거든. 난 지금이 X나 자유로워서 행복하거든.”
“응 그래 평생 혼자 살아.”
“.........”
침묵한 채로, 다음 게임을 돌린다.
그러나 즐겁지 않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풀리는 교환비의 문제가 아니다.
게임이 내게 어떠한 자극조차 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눈은 모니터를 보고 손은 움직일 뿐이다. 그저 평소에 하던 게임이니 모든 행동이 기계적으로 이루어질 뿐.
지루하다.
짜증난다.
‘......멋대로 사람을 속단하고, 헤아리는.......’
‘위선자’
제기랄. 네가 뭘 안다고. 내가 좋아서 이러는 줄 알아? 네 얼굴을 보며 첫눈에 반해서 집앞 현관에서 굽실댄 줄 알아?
참을 수가 없다고.
누군가가 나를 보며 수군거리는 것.
누군가가 나에게 원한을 가지는 것.
싫다. 정말로 싫단 말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내게 실망하는 것이 너무나 싫다.
누군가가 나를 보며 눈물 짓는 것이 끔찍하게 싫다.
그런 개 같은 기분은 한번으로 족하다.
그런데, 내가 뭘 했다고, 너는 내 앞에서 눈물을 지은 거지? 왜 그런 얼굴로 그런 말을 하며 도망친 거지?
왜 내가 너 때문에 이런 개 같은 기분을 느껴야 하는 거냐고.
왜 내가 너를 떠올려야하는 거냐고.
왜 나는, 그때 순간의 욱함을 참지 못했던 걸까.
시X.
생각은 생각을 낳고, 불안을 만들며, 망상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되면 나도 멈추기가 힘들다. 어느새 그렇게 나는 다시 내가 스스로 만든 머릿속의 손가락질과 시선을 떠올리고 있었다.
나를 증오하는 목소리, 나를 원망하는 목소리를 나도 모르게 상상하고 있었다.
그것들이 나를 끌어당기는 광경을 떠올린다.
지금 당장 내 옆의 김준환이 나를 매도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누구를 붙잡고 물어도 나를 비난하고, 나를 멋대로 판단해 버릴 것 같은 망상이 떠오른다.
환청은 아니다. 환각도 아니다. 그 전부가 내 상상이란 것은 명확히 하려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분은 나아지지 않는다.
입술을 깨문다. 깨물고 깨물어도 이 지저분하고 끈적거리는 기분은 나아지지가 않는다. “야.”
“.......”
“뭐해 병X아!!!”
이런, 캐릭터가 벽에 머리를 박고 달리고 있었네.
“........”
“.......”
뭐, 결국 오늘도 시원찮은 전적을 쌓고 나왔다.
“........”
“........”
내 표정은 말할 것도 없고, 오늘 내 덕에 여러 번 진 이 자식의 얼굴도 좋지 않다.
“........술 고?”
“고.”
누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궤에에에엑........”
왜 굳이 말하지 않았냐면, 쪽 팔리니까.
술도 못 마시는 놈이, 패기롭게 술 마시자고 했다가 이 꼴이 났으니, 쪽팔릴 수 밖에 없지.
“아오........ 이 등신이.”
“으으.......우웨에에엑.......”
내 옆에서 등을 두드리는 준환의 손의 잠시 멎었다.
“아 잠깐만, 으응! 윤앙! 나 이제 술 다 마셨어. 하하하.......”
“저 개새........ 우웨에에에엑.........”
내가 토하는 소리를 자기 여자친구에게 들려주지 않으려, 전화를 막고 어디론가 사라진 김준환.
그리고 나는, 아예 내장까지 쏟아내는 기분으로 몸안의 독소제거 작용을 계속한다.
즉, 토한다는 거지.
“우욱.......”
나는 술을 그렇게 잘 마시는 편이 아니다. 물론, 이 기준은 상대적인 것으로, 소주 한병 반 정도면 아예 못 마신다고는 할 수 없으나, 주변에 맞춰가다 보면 어느새 내 한계를 돌파하고 있었다,
참 이상한 일이다. 분명, 나보다 못 마시는 놈들이 모여 있는 술자리에 가서도 왠지 가장 먼저 취하는 것은 나니까.
사실 이상하진 않지. 누군가와 한잔을 맞추고, 또 누군가와 한잔을 맞춘다. 이것이 내가 먼저 취하는 원인일 것이다.
물론, 오늘은 상대가 김준환이니까 먼저 취한 것이다. 나는 저 괴물이 술먹고 토하는 것을 본적이 없다. 가끔씩 술먹고 과도한 흥분상태를 보이는 일은 있어도 말이지.
심지어 본인도 어느 정도가 한계인지 모른다고 한다. 뭐, 전혀 부럽진 않지만.
“야 이꽝! 괜찮냐?”
어느새, 여자친구와의 통화를 끊은 김준환이 달려오고 있었다.
“윤아한테 온거 아니었냐? 왜 이렇게 빨리 끊었냐?”
“마저 놀다 오랜다.”
그렇게 발랄하게 말하는 이 멍청이는, 진짜로 멍청이다. 그 착하고 이해심 많은 친구가 이제와서 자기 남자친구와 노는 나에게 질투심 같은 걸 느낄 리는 없지만, 그 둘은 명색이 과CC다.
그리고 이놈은 오늘 나와 하루 종일 같이 있었지. 물론 아까 정수기녀와 대판 싸울 때 빼고.
“삐졌음?”
“아니. 그냥 놀다 오래.”
진짜 뇌에 근육만 찬 머저리였네 친구야.
“응 그냥 꺼져.”
“뭔 지X이야 또?”
“피곤해. 잘 거야.”
“그래.”
의외로 흔쾌하게 대답하는 군.
그런데, 이놈 왜 날 따라와?
“너 뭐하냐?”
“내 집 가는데. 아래층 놈아.”
“아 꺼지셔. 빌어먹을 커플들아.”
“극혐. 니가 삐지셨구만? 자기 토하는데 윤앙이랑 통화했다고.”
“응 맞아. 수고. 실망했어. 당분간 우리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로 해.”
“토 나와 미친놈아. 그딴 대사 치지마.”
“꺼져.”
“역시 외로웠구나 불쌍한 이꽝....... 너 아까 그건 그 여자랑 어떻게 잘 해보........”
“X까.”
그렇게 말하고 등을 돌려 이 놈에게서 멀어진다.
이놈은 이정도가 딱 좋다. 오히려 이제 와서 대놓고 다정다감한 이웃 노릇을 했다간 오히려 이 자식이 질색할 거다. 그리고 그 이후엔, 내 가식을 더 이상 놀림거리로 보지 않고 경계할 지도 모르지.
어느덧 시간은 새벽 1시를 넘겼다.
그리고 한 골목길, 헐렁한 라운드 티와 슬림핏 청바지 덕분에 안 그래도 커다란 몸이 더 커보이는 남자가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었다.
다름 아닌 나다. 참고로 이 차림은 내가 가장 많이 하고 다니는 교복같은 차림이니까 앞으로 이광진 하면 대충 이딴 꼴을 떠올리면 될 거다.
그건그렇고, 비록 아까 성대하게 위액과 쓸개즙의 교체작업을 하긴 했지만 사실 그렇게 까지 심각한 정도는 아니다.
그건 그냥 이것 저것 섞은 걸 순식간에 들이켰기에 생긴 부작용일 뿐, 정신은 멀쩡하다. 물론 이건 취객의 단골 레파토리지만 이 골목에서 내 변명을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굳이 변명으로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만약 취했다면 지금처럼 이성적인 생각을 하고 있지도 못할 것이다.
“.......시X.”
이성적인 생각을 하는데 왜 욕이 나오냐면, 이성적으로 보면 볼수록 나 자신이 머저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또한, 그 여자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젠장.......”
안다. 언제나 그랬지.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 언제나 속내를 숨기며 앞에서 웃는 기분 나쁜 인간이 나다.
언제나 상대의 심리를 파악한 듯이 우쭐대지만 언제나 상대가 나로 인해 기분 상하는 것이 두려워 전전긍긍하는 것이 나다.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었을까?
조지은.
그렇게, 당당하게, 자신의 감정을 내뱉는 방식을 택했다면, 지금쯤 나는 조금 더 행복하게 살고 있었을까.
마음속에 생겨난 칼날에 마음을 다치는 것보다 자신의 칼날을 밖으로 꺼내놓고 다닌다면, 조금쯤은 내 삶도 편안할지 모르지.
하지만 그건 내가 골라선 안 될 선택지다.
대충 그런 생각을 하며 언덕을 오른다. 슬슬 내가 사는 희망빌라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나는 빌라 중앙현관 앞으로가서 비밀번호를 누르기 위해 손을 뻗었다.
여기서 잠시, 원망을 해도 될까?
신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그 존재가 쓰는 이야기 같은 것이라면,
감히 말하도록 하지. 작가 접어라. 개연성도 없고 작위성만 넘치는 쓰레기 같은 이야기다.
지금 벌어진 일은 그런 이야기다,
그 이전에는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다.
아까 생활 패턴 운운하셨는데, 그래, 그 놈의 평소 생활 패턴대로라면, 여기서 이럴 리가 없는 것이다. 새벽 1시지 않나.
번호를 누르러 뻗은 내손 너머로, 자동 유리문이 열린다.
추리닝 바지에 헐렁한 티셔츠 차림의 여성이 양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다. 보아하니, 쓰레기봉투인가?
나에 비하면, 왜소하다고 할 수 있는 165를 조금 넘을 것 같은 키.
내 졸린 눈과 마주친 차갑고도 아름다운 눈망울이 경악, 혹은 당혹으로 떨리기 시작한다.
정수기녀.
아니, 조지은이다.
이사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