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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를 증오한 살인마
작가 : 훈재
작품등록일 : 2017.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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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의의 여신상은 눈을 감고있다.
작성일 : 17-11-03     조회 : 540     추천 : 0     분량 : 6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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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닫힌 방문 너머로 들려오는 어머니의 신음소리를 그저 듣고 있을 뿐이었다. 성적인 행위로 인해 나는 신음소리는 결코 아니었다. 아버지의 구타는 일주일마다 정기적으로 찾아왔다. 아버지의 주먹 찜질이 끝나고 나면 어머니의 몸 곳곳에는 피멍이 가득했다. 구타가 끝난 뒤 가끔씩 아버지는 어머니를 강간했다. 뜨거운 11분이 지나고 난 뒤 항상 아버지는 침을 뱉으며 말했다. 그는 그 침이 어머니의 얼굴에 닿는지 땅바닥에 닿는지도 몰랐다.

  "더러운 창년, 오늘도 죄를 지었군."

  철컥, 방문이 열리고 그와 눈이 마주쳤다.

  "너는 창녀의 자식이야. 그러니까 니 성이 뭔지도 모른다는 거지. 재밌지 않니? 네가 김씨인지도, 최씨인지도, 이씨일지도, 박씨일지도 몰라. 어쩌면 손씨일수도 있지."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러자 아버지는 화가 난 것 같았다. 그의 시야가 오른쪽으로 격하게 돌아갔다. 뺨에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아버지는 잠시 숨을 몰아쉬었다.

  "아버지를 믿지 않는구나. 그럼 에덴에 들어가지 못한단다. 뭐, 내 자식도 아니니 상관은 없다만.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지."

  그리고 아버지는 거실에 가 무릎을 꿇고 성호를 그었다. 그는 "아버지, 저의 죄를 고백합니다." 하고 양손을 모으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저자는 자신이 그의 아버지가 아니라고 하였다. 그럼 대체 누가 그의 아버지란 말인가? 아버지도 처음부터 저렇게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사귀기 시작한 어머니와 아버지는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관계를 비교적 편안하게 이어나갔다. 아니, 오히려 오랜 연애 기간에 굴복하지 않고 설레임을 식히지 않은 뜨겁고 달달한 연애를 이어갔다.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 끝나고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찾아가 20살에 맞춰 결혼 반지를 건넨다.

 "평생 행복하게 해 줄게."

  젊은 나이에 터질 것 같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어머니는 그 반지를 받아들였다. 꿈같은 결혼 생활이 이어질 것 같았다. 가진 것 하나 없었지만 내겐 네가 있었고, 네겐 내가 있는 시절이었다. 둘은 코피 터지는 학업 생활에 쫓기고, 아르바이트에 쫓겨 가면서도 주말마다 꼬박꼬박 만났다. 같은 대학교였으니 평일에 아주 못 만나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어느 날, 아버지는 입대하게 되었고 휴가마다 당연하다는 듯이 그 누구도 만나지 않고 가장 먼저 어머니를 찾아갔고,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매일매일 휴가날을 손꼽아 기다렸고 그 또한 어떤 식으로든 휴가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둘은 만나면 항상 달콤한 시간을 즐겼고 사랑을 나눴다. 그 시간은 그 어떤 시간으로도 대체하지 못할 시간이라는 것을 그 둘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영원한 시간은 없는 법. 어느 날 헛구역질이 올라온 어머니는 약국을 찾아갔다. 선명한 두 줄에 그녀는 기쁨과 동시에 스쳐 지나가는 더러운 현실을 붙잡았다. 둘 다 그럭저럭한 부모 밑에서 그럭저럭한 대학을 들어갔고, 그럭저럭한 금액의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그녀는 역시 아이를 없애는 쪽으로 생각을 굳히고 있었다. 그래도 애기는 해봐야겠다 라는 생각으로 그의 휴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좀체 나오질 않았고, 아이의 형체가 그럭저럭 갖춰졌을 때 둘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배가 조금 불어나와 있었다. 그는 뱃살 좀 빼라며 놀렸고 그녀의 진지한 표정에 웃음을 멈췄다. 그는 그녀가 뱃살을 가지고 놀린 것에 화가 난 줄 알고 화를 풀려고 노력했으나 좀체 말을 꺼내지 않고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자 헤어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내 그녀가 품 안에서 뭔가를 꺼낼 땐 반지를 다시 돌려주는 줄 알았었다. 하지만 그녀가 꺼내놓은 것은 두 줄이 그어져 있는 이상한 작대기 하나. 줄 옆에는 그림과 함께 임신과 미임신이 적혀져있었다. 그가 어리둥절해하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나 임신했어."

  그가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아래로 눈을 돌렸다.

  "나는 정말 낳고 싶은데 우리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머리는 지우라고 말을 하고 있어. 그래서 너 모르는 사이에 슬쩍 지우려고 했는데 그래도 너한테 애기는 해야 될 거 같아서. 역시 지워야겠지?"

  그녀가 다시 눈을 마주하자 그가 울고 있었다. 그녀는 적잖게 당황하였다. 그가 우는 것은 여태껏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쭉. 헌데 그런 그가 지금 울고 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녀는 뇌에서 알고 있는 단어를 뒤적거렸다. 그 단어와 단어를 다시 이어붙여 문장으로 만들었지만 이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횡설수설 하고

 있던 중,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미안, 갑자기 울어 가지고. 너무 기뻐서."

  그가 그녀의 배 위에 손을 올렸다.

  "그러니까 이게 우리 아기라는 거지?"

  "어, 어."

  그녀가 말을 더듬었다.

  "언제쯤 나오는 거야?"

  "글쎄, 아직은 잘 모르겠어. 산부인과는 한번도 찾아가 본적이 없어서. 어차피 지울 껀데 돈 낭비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내가 철부지 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말도 안 되는 소리인것도 알지만. 그런 애기들 있잖아. 머리가 시키는 대로 하면 손해를 보지 않지만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하면 후회하지 않는다."

  그가 팔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우리, 이 아이 키울래? 난 너만 괜찮다면 키우고 싶어. 정말 반드시 키우고 싶어."

  "저기, 그래도..."

  그녀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심했다. 그는 가정적인 남자에 충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이웃을 사랑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이런 남자와 평생을 함께 하며 가정을 이룬다는 건 인생에 다시 없을 기회였다. 그녀는 운명의 붉은 실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아직까지 배 위에 올려져있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래, 키우자. 나도 노력할게."

  "정말? 고마워, 진짜 고마워. 사랑해. 정말. 정말로 사랑해. 우리 절대 헤어지지 말자."

  그렇다. 그는 정말로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절대 헤어지기 싫은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전역하고 난 뒤 착실하게 살아갔다. 괜찮은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때, 그의 나이 26살이었다. 아직 갚아야 할 학자금 대출도 남아있었고, 아이와 함께 살기 위해 그녀와 집을 나와 조그마한 원룸을 구하기 위해 빌렸던 보증금도 갚아야 했다. 빚이 투성이었다. 하지만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녀가 기다리고 있었고 2살짜리 아들을 바라보며 몸과 마음을 달랬다. 둘만 보면 힘이 들지 않았다. 그 언제든지 달려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내리 말하지만 영원한 시간은 없었다.

  계속되는 취업 실패에 그는 슬슬 미래를 비관하고 그녀와 아이에게 내는 짜증의 횟수가 많아진다. 어느날 그는 밤중에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났을 때, 화장실에서 새어 나오는 눈물 소리를 들었다. 가엾게도 몰래 울 장소도 그녀에겐 없었다. 그러기엔 그들의 보금자리는 너무 작았다. 그는 그럴 때마다 자신을 몇 대 쥐어박고 칼로 쑤셔버리고 싶었다. 그녀의 우는 소리를 듣게 하는 귀를 잘라버리고 싶었고 그녀를 울게 한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다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그녀가 상처받지 않게.

  그가 경제적 능력을 갖추는 게 그녀에겐 최고의 안심이라는 것을 그 또한 아주 잘 알았다. 하지만 사회는 그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고, 그의 사정 또한 들어주지 않았다. 그는 점점 폐인이 되어갔고 끝내 그녀에게 손을 대고 말았다. 처음 그녀를 때렸을 때 그는 그날 저녁 잠을 이루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하며 머리를 쥐어뜯고 그녀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고맙게도 가여운 그녀는 그를 그런 순간순간마다 보듬어주었다. 누구나 이런 때가 있다며, 사회가 당신을 못 알아보는 거라며, 나는 언제나 당신 편이라면서 응원해주었다. 하지만 그가 힘을 내봤자 그의 한계는 우스울 정도로 낮은 곳이었다. 점점 그는 무너져내렸고, 마침내 그가 완벽하게 무너져 내렸을 때는 6살이 된 아들의 뺨을 때린 서른 살의 생일이었다.

  그 6살 짜리 아들은 이제 8살이 되어서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고, 아버지는 이제 32살이 되었다. 젊은 나이에 사회적 무능력자가 된 것이다. 아버지는 일주일마다 꼬박꼬박 찾아와 어머니에게 주먹과 함께 피멍을 남겨 주었고 돈을 받아갔다. 하루는 그가 어머니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엄마, 엄마는 왜 아빠를 신고 안하는 거야? 전에 선생님이 경찰 아저씨와 사회 복지 시스템에 대해서 애기 해 주셨는데 이런 상황은 그때 애기랑 똑같아. 엄마는 보호받을 수 있고 아빠를 처벌받게 할 수 있어. 또 내가 제일 이해가 안 되는 건 왜 그렇게 꼬박꼬박 맞고도 매일매일 아빠한테 돈을 내 주고. 또 바보처럼 웃어주면서 아프지 말라고 나갈 때마다 손 흔들어주고. 그래서 괜히 또 맞고. 왜 그래? 도대체? 엄마는 바보야?"

  어머니는 터진 입술로 힘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오른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팔소매가 살짝 걷어졌고 팔 한군데에도 빠짐없이 피멍이 드러났다. 그는 눈을 감았다. 끔찍해서 볼 수가 없었다.

  "우리 아들 똑똑하네. 그런 게 무슨 말인지도 알아먹고. 엄마가 잘 못해줘서 미안해. 엄마가 아빠한테 그렇게 맞으면서도 매일 돈 주고 아프지 말라고 하는 이유는 아빠를 믿기 때문이야. 그날, 엄마 손에 반지를 끼워 줄 때, 엄마 배 위에 손을 올려놓았을 때, 그 감각, 온도, 손의 주름하나하나 엄마는 기억하고 있어. 엄마는 결코 잊지 않아. 그날의 아빠를. 그 눈빛을 어떻게 잊어. 절대 못 잊지. 그리고 믿어. 아빠가 다시 열심히 노력해서 남들 다 부러워하는 직장에 취직해서 우리가족 다 먹여 살릴 거 라는 걸. 엄마는 믿고 있어."

  개소리. 그는 말을 삼켰다. 정말, 정말로 개소리였다. 저 따위 인간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그는 가슴 깊이 부정하는 것과 동시에 어둡고 끈적한 증오를 드러냈다. 저 따위 인간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그는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믿기 싫었다. 인정할 수 없었다. 가끔씩 아버지가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라고 할 때마다 그는 마음속으로 무릎을 꿇고 싹싹 빌었다. 제발 그랬으면 하고.

  어머니는 인간을 믿은 위대한 한명의 인간이었다. 그렇게 두들겨 맞으면서 살아가다가 어느 날 그날따라 크게 화가 난 아버지는 더 세게 주먹을 휘둘렀고 그에 맞은 어머니는 힘없이 떨어져나갔다. 자그마한 TV모서리에 머리를 찍었을 때 아버지는 정신을 차렸다. 그렇다. 자신이 살인자가 된 것이다! 상황을 인지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가만히만 있으면 그 누구도 이년을 찾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만 된다면 자신이 살아가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만큼 그의 어머니는 사회에 영향력이 전혀 없었고 딱히 만나는 사람도 없었다. 아기를 낳았을 때 둘은 가족과의 연을 완벽히 끊었다. 정확히는 그쪽에서 먼저 쫓아낸 거지만. 그리고 친구들도 점차 한 두명 떠나갔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것도 아주 커다란. 문 너머의 저 갈색 눈. 그의 갈색 눈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어떡하지? 저 녀석도 죽여버려야 하나? 그랬다간 만약 발각됐을때의 형벌이 더 무거울 텐데. 뭐, 물론 그럴 확률은 극히 낮다. 고민하고 있을 때 방문이 먼저 열렸다. 숨을 몰아쉬며 고여있는 피에 머리가 잠겨가고 있는 어머니에게 그가 다가갔다. 그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흔들어댔다.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우리 아들, 약속 하나만 해줄 수 있어?"

  "응, 응."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친듯이 끄덕였다.

  "이 약속, 꼭 지키겠다고 말해줄 수 있어? 엄마가 죽고 난 뒤에도.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킬 거지?"

  "응, 응."

  "그래? 약속 한거다? 엄마 죽고나면 아빠가 하란 대로 해."

  "뭐?"

  "무슨 일이든지 간에 아빠가 하란 대로 하라고."

  "무슨...!"

  "아들..."

  그때, 그녀의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어... 어마가... 시간이 이제 없어. 빨리 약속해 줘. 제발..."

  켁켁거리는 그녀의 기침소리가 그의 귓구멍을 찢었다.

  "알겠어..."

  그때, 이미 흘러내리고 있던 눈물은 더, 더 미친듯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하나 더. 앞으론 무슨 일이 있어도 울지 마. 더 강해져야 해. 더, 더 강해져야 해."

  "미안... 미안해. 오늘만, 오늘만. 오늘까지만."

  그가 목을 놓아 울었다. 말이 또렷한 형태로 나오질 않았다. 중간중간 끊기는 단어와 단어 사이의 공백은 메꿀 수 없이 커져갔다. 그녀가 힘없이 웃었다.

  "아들, 씩씩하네. 잘 살아야 해."

  마지막으로 장렬하게 토해낸 그녀의 피는 천장에까지 흔적을 남겼다. 그는 그날 슬픔에 잠겼고 오늘을 결코 잊을 수 없었으나 어머니와의 약속 또한 어길 수 없었다.

  세상은 그녀를 지웠고, 그녀 또한 세상에서 지워지길 바랬다. 그를 위해서. 자신의 아들을 위해서. 그렇게 유스티티아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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