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발걸음을 재촉하며 옷깃을 여몄다. 입춘이 지난지는 한달이 지났다지만 날씨는 여전히 꽁꽁 얼어붙은 것 같았다. 몸이 절로 떨렸다. 하지만 어떻게 따낸 취재인데 날씨가 춥다고 돌아갈 수는 없었다. 아니, 이걸 취재라고 해야 할지 그는 어리둥절했지만 어깨를 한 번 으쓱하면서 빠른 걸음을 옮겼다. 오늘따라 유독 춥다고 한다. 그는 날씨가 분위기와 잘 맞는다고 생각하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다른 사람이 곁에서 보기엔 꽤나 꼴사나운 모습이었다. 혼자서 걷다가 어깨를 으쓱하거나 갑자기 웃는 모습이 남이 보기에 좋은 풍경은 아닐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그러고 싶다면 혼자서 걷다가도 옆에 사람이 있는 것 마냥 박수를 치면서 맞아, 맞아 하고 외칠 사람이었다. 그 누가 뭐라고 하든 그는 자신만의 길을 걸어갔다. 그리고 여태껏 걸어온 자신만의 길이 옳다고 그는 마음속 깊이 믿고 있었고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또 대부분 사회적 가치가 높게 평가받을 일을 해왔다. 그는 웬만해선 올바르지 않은 일은 하지 않았고 옳다, 그르다의 판단은 확실하고 정확했다. 만일 친구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가치를 부정하는 일을 한다면 그는 그 친구와 가차없이 인연을 끊었다. 그 친구가 후로 얼마나 용서를 빌든 찾아와 눈물을 흘리면서 머리를 땅바닥에 박아도 그는 결코 용서해 주지 않았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얼마나 기다리든지 꼭 복수를 하는 사람이었다.
한 번은 친구를 자처하며 중학교 학창시절에 그를 끊임없이 괴롭히던 녀석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가 얼마나 미친 놈인지 몰랐고 매번 시비를 틀 때마다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는 한 대를 맞으면 반드시 서너 대는 갚아주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꼭. 한 번은 제대로 싸움이 붙었던 적이 있었다. 녀석들은 3명이었고 그는 혼자였다. 반의 그 누구도 덩치 큰 그 녀석들을 보며 그의 편에 서 줄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그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제발 저 돼지 새끼들을 죽여 달라며 가슴 속 깊이 싹싹 빌고 있었다. 그러나 애초에 그는 싸움을 특출나게 잘하는 것도 아니었고 덩치가 유독 큰 것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보통 싸움 실력에 보통 체격이었다. 175에 68정도의. 반면 녀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싸움 실력을 다져오며 덩치를 불려온 싸움꾼들이었다. 결과는 허무할 정도로 그는 떡이 되도록 두들겨 맞았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입술이 터지고 곳곳에 멍이 들어 부어올랐지만 그는 결코 패배를 시인하지 않았다. 그들이 그를 눕히고 양팔을 잡은 뒤 대장격인 녀석이 그의 명치 위에 앉았을 때였다.
"야. 진짜 죽고 싶냐? 뒤지기 싫으면 싹싹 빌어. 다른 애들은 다 여기 보지도 않잖아. 무섭거든. 너처럼 되는 게. 그냥 깝치지만 않고 조용히 자기 할 일 하고 살면 나도 안 건드려. 근데 넌 왜 이렇게 설쳐 대냐고. 진짜 뒤지고 싶은 거야. 뭐야?"
말을 마치자 그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대장 녀석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단단히 화가 난 게 틀림없었다.
"웃어? 장난같냐?"
"죽인다고?"
"어."
"죽여?"
"그래."
"죽여."
"뭐?
"죽이라고, 이 새끼야."
"이 새끼가. 장난같냐? 진짜 죽일 거야. 진짜로."
"그래~. 죽여봐."
그때 내내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그가 고개를 살짝 숙여 대장 녀석과 눈을 마주쳤다. 녀석은 그와 눈이 마주치자 근원적인 공포에 몸을 떨었다. 그토록 소름돋는 눈빛은 처음이었다. 야수의 눈이었다. 그것도 사냥감을 만났을 때와 가장 비슷한 눈빛. 이런 살기를 가진 중학생이 있다니. 자신이 알고 있는 형들도 이런 눈빛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저 멋에 취해서 입엔 담배를 물고 죽인다, 죽인다 이야기만 하는 놈들이었다. 게다가 실제로 사람을 죽이고 나선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쓰레기 같은 녀석들. 오히려 자랑을 하고 다녔다. 패거리의 대장 녀석은 자신은 사람으로서의 최소한의 긍지와 도리는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여기 깔려 있는 이 녀석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게 되리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근데 너, 사람 죽여본 적은 있고?"
이 녀석은 분명 있을 것이다. 하고 대장 녀석은 생각했다.
"지금 여기서 나를 죽이지 않으면 너희들은 죽어. 아니면 그에 필적한 고통을 맛보게 되든가. 기회는 지금뿐이야. 죽이거나, 죽거나."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들 패거리는 도저히 사람을 죽일 수가 없었다. 죽일 만한 용기도. 살기도 없었다. 반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실히 할 정도. 딱 그 정도만 확보되고 나면 그들도 웬만해선 반 아이들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은 위험하다. 몹시 위험하다. 그들의 입지가 미친개 한 마리 때문에 흔들리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장은 주먹을 높이 쳐 들어 그의 명치에 깊숙이 꽃아 넣었다. 그가 커헉거리며 숨쉬기가 곤란한 듯 켁켁 거렸다. 다시 얼굴에 한 방, 다시 명치에 한 방, 다시 얼굴에 한 방, 다시 명치에 한 방, 얼굴, 명치. 얼굴, 명치. 얼굴, 명치. 주먹질을 연사하다가 잠시 멈춰 피떡이 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더 이상은 위험하단 걸 알았다. 일어나서 가래를 삭혀냈고 그의 얼굴에 뱉었다. 그리고 돌아섰다.
그 순간이었다. 그가 벌떡 일어서더니 옆에 있는 의자를 뽑아들어 높이 쳐들었다. 그리고 대장 녀석의 머리통을 내려찍었다.
실로 경이로운 신속한 연계였다. 처음부터 지금의 한방만 노리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장 녀석은 뒤통수에 손을 한 번 갖다 대더니 피로 흠뻑 젖은 자신의 손을 보고 덜덜 떨었다.
“너, 너... 진짜.”
혀도 떨리는 걸까. 손과 함께 팔, 다리, 몸통 모든 곳이 떨렸다.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상대를 두려워 한다는 걸 들어내선 안 된다. 설령 패배 직전의 순간이라도 말이다. 대장은 숨을 한 번 크게 몰아쉬었다. 차분하게, 하지만 정확하게 이야기할 생각이었다.
“죽고 싶-”
하지만 대장은 말을 다 잇지 못했다. 맞고 나서 잠시 서 있던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지금 누군가를 불러야 한다는 것은 반의 학생들 누구나 인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 아이가 달려 나갔고 잠시 뒤 선생님과 함께 돌아왔을 땐 패거리 중 나머지 두 명도 피를 흘리는 채로 쓰러져있었고 그 또한 쓰러져있었다. 학교는 한바탕 난리가 났었고 그 뒤로 그를 건드리는 녀석들은 없었다. 되려 더 많은 수의 친구를 얻게 되었다.
***
그는 죽어가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펑펑 울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꼭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로. 내일부터 다시는 울지 않기로. 절대로, 절대로 울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래, 내일부터. 그는 오늘 자신의 눈 속에 남아있는 눈물을 모조리 뽑아낼 작정이었다. 옆을 보니 아버지가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었다. 그는 격한 분노가 뇌의 가운데를 관통하는 것을 느꼈다. 이 인간 때문이었다. 뭐가 어떻게 되었든지 간에 이 인간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곧 그의 세상 전부였다. 아버지는 불과 2분전 그의 세상 전부를 무너뜨린 거나 다름이 없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맹세했다.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지만 결코 끝까지 지키는 것은 아니라는 걸. 언젠가는 어머니의 복수를 하기로.
그렇게 미친듯이 울면서 어머니의 배 위에 얼굴을 파묻었을 때 무언가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 때문에 죽었다. 정신정 충격 그딴 게 아니라 그저 순수하게 물리적인 충격을 가해서 어머니를 나자빠지게 해 모서리에 머리를 박게하였다. 어머니는 그것 때문에 죽은 것이다. 그렇다면 어머니가 이렇게 된 이유는? 그것은 바로 아버지가 취직을 하지 않고, 사회적인 노력도 하지 않고 가여운 모자에게 화풀이를 한 탓이다. 자, 그럼 여기서 더 깊숙이 파고들어가보자. 그의 아버지는 어째서 가여운 모자에게 화풀이를 하게 된 것일까? 그의 아버지도 열심히 살던 때가 있었다. 정확히 언제부터 그는 노력을 하지 않고 사회를 비관하게 되었을까? 그에는 확실한 이유가 있었다. 언뜻 보면 누구나 납득할 만한 내용이었다.
직장을 구하고 있던 그는 열심히 뛰어 다니며 몇 차례씩 면접을 보고 늦은 시간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주워 모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대기업에서 3차 면접까지 마치고 난 뒤에 그는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게 되었다. 실은 3차까지 간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그의 학력이나 스펙을 보고 서류 면접에서 잘라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코 그가 학력이 딸린다거나 스펙이 꿇린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도 그럭저럭하게 살아왔기에 남들에게 보여줄 것은 많았다. 그것들의 대부분을 남들이 이미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결국 사회의 문턱은 처음부터 그에게 너무 높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점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고 실제로도 열심히 뛰어다녔다. 박수를 쳐 줄 만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 행동이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고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름만 대면 한국인이라면 알아먹을 기업이었다. 외국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는 기업이었다. 그런 기업에 자신이 채용될 수 있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렇게 합격자 발표 날이 다가왔고, 그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켰다. 인사팀쪽에서 문자가 한 통 와 있었다. 그는 금단증상이 일어난 흡연자처럼 손을 떨었다.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 했다. 툭, 문자가 열렸다. 그는 눈을 감았다가 서서히 눈을 떴다. 그렇게 밝아진 시야에서 들어온 것은 긴 문장에서 단 한 가지 단어였다.
합격.
그는 눈물을 흘렸다. 20명 중 20번째로 겨우겨우 매달리게 된 것이다. 즉 자신은 얼마든지 21번째가 되어 컷트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그는 살아온 날들에 감사했고 곧바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턱걸이지만 너무너무 행복하다고. 드디어 성공했다고 말이다. 둘은 오랫동안 통화를 계속하였고 그는 오랫동안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다음날이 되었을 때. 그는 문자가 잘못 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안하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인간은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다가오면 세 가지의 단계를 거쳐간다. 첫 번째는 부정이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며 그것을 믿지 않는 것이다. 두 번째는 분노다. 부정이 지나고 나면 격한 분노를 휘두른다. 세 번째는 허무함이다. 견딜 수 없는 일을 그럴 수도 있지하는 일로 받아들이려면 큰 허무감이 필요하다. 허무함으로서 감정을 흘려 보내는 것이다. 인사팀에서 온 새로운 문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죄송합니다. 착오가 있었던 점에 대해 깊은 사죄를 드립니다. 면접번호 121번 박가람님은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 21번을 20번으로 잘못보아 착오를 드린 점 다시 한 번 깊은 사죄를 드립니다.
믿을 수 없었다.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그는 분명 어제 합격자 명단에 들었었다. 이런 대기업에서 그따위 실수를 범할리가 없었다. 이건 분명히 무언가가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그를 제치고 합격자 명단안에 들어간 자신과 동갑인 30살의 청년은 그의 아버지가 기업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결국 사회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그는 그날 무너지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가서 아들의 뺨을 때렸다. 그날은 그의 생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