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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를 증오한 살인마
작가 : 훈재
작품등록일 : 2017.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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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모든 것의 시작이자 모든 것의 끝(2)
작성일 : 17-12-01     조회 : 321     추천 : 0     분량 : 4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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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뭉개져버린 거인의 얼굴은 흉측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고서도 꿈틀대면서 못 가... 못 가... 하는 모습이 봐줄 만 했다. 얼굴이 터져버렸으니 말만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중얼대고 있는 거인을 한 번 밟아주었다. 한 번더, 펑. 거인은 사르르 녹아 내리듯이 사라졌다. 그는 이제 마음 놓고 길을 떠날 수 있었다. 물을 지나고 가시덤불을 지나 마침내 자기가 찾던 곳에 이르렀다. 목적지에 다다르자 점차 자신의 몸이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원래 자신의 몸 크기까지 돌아오자 키는 그만 줄어들게 되었다. 다행이었다. 혹시라도 부작용이 나타났다면 뒤를 돌아서 달려가 거인이 사라진 자리를 마구 밟아주고 더럽혀 줄 생각이었다.

  그런 공상들 속에서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옆에는 어머니가 서 있었고, 자신이 여태 껏 찾아온 칼을 제 애인인 양 품에 안고 있는 난쟁이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옆을 돌아봤을 때 감격에 겨웠고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으나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가 꿈을 깨고 나서도 길이 후회할 선택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눈을 돌렸을 땐 난쟁이의 눈초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난쟁이의 키는 그의 허리춤에까지밖에 올라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난쟁이와 눈이 마주친 0.5초 상이에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자신의 감정을 추출해냈다.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그가 느꼈던 감정은 두려움이자 공포였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대여섯 번 흔들고 나자 난쟁이가 눈에 똑바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난쟁이가 난쟁이로 보였다. 더 이상 자신이 작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난쟁이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그러자 난쟁이가 크게 웃으면서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하였다. 그는 우선 난쟁이의 말을 듣기로 했다.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그는 칼을 가져가야했고, 더 이상 난쟁이가 두렵지 않았다. 그렇기에 난쟁이에게 다가갔으나 압도적인 감정에 짓눌려 잊어버렸던 존재 또한 그를 따라왔다.

  어머니가 아주 조용히 그를 따라 걸어왔다. 상관 없을 거라 생각하며 그는 함께 걸어갔다. 그가 조용히 왼손으로 어머니의 오른손을 잡았다. 어머니는 흠칫하며 놀라는 것 같았지만 이내 어머니도 손을 꽉 잡아주었다. 기뻤다. 그게 다였다. 어머니를 다신 못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자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문득 스쳐가다 든 생각이었다. 하루에도 수천 개 씩 지나가는 그런 생각 중에 하나를 잡은 것 뿐인데. '어머니를 다신 못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를 다신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눈꼽만큼도 없었다. 그렇게 손을 잡고 난쟁이 앞에 다다르고 바라본 난쟁이의 얼굴은 어마무시했다. 지독하게 화가 나 있는 표정이었다. 그의 안에 숨 죽여 있던 두려움이 다시 팔딱팔딱 숨을 쉬기 시작했다. 심장이 뛰었다.

  쿵쾅, 쿵쾅, 쿵쾅.

  '어머니를 다시 못 볼지도 몰라.' 위화감의 정체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두려워서 난쟁이의 눈을 의식적으로 피했다. 그때였다. 두려워하는 그의 손을 어머니가 더 꽉 잡아주며 웃어주었다. 그와 어머니의 눈이 마주쳤을 때였다. 그 사이를 무엇인가가 갈랐다. 그는 무엇인가 허전한 것을 느꼈다. 땅에 박혀있던 것을 뺄 때 튀어 나오는 그 느낌. 그가 어머니의 손만을 들고 있던 것이다. 둘 사이에 끼어든 무언가는 칼이었다. 난쟁이의 칼이 어머니의 손을 잘라냈다. 인간은 말도 안 되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마주하면 크게 세 가지 단계를 거친다. 부정, 분노, 긍정. 뒷맛이 텁텁한 긍정이다.

  어찌됐든 그는 첫 번째 단계부터 성실히 밟아나가야 했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도 몰랐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악수하는 것인 양 어머니의 손을 위아래로 흔들어대며 중얼거렸다. 아냐, 아냐, 이건 아냐.

  쿵.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가 고개까지 흔들기 시작했을 때 어머니의 심장에 깊숙이 칼이 박혔다.

  쿵.

  그의 안에 꿈틀대던 것들이 일제히 날뛰기 시작했다. 서로 잡아먹는 놈들도 있었고 몸을 합쳐 거대해지는 녀석들도 있었다. 녀석들 중 가장 강한 녀석이 모두를 집어삼킬 때 즈음, 어머니의 심장에 칼이 빼졌다.

  쿵.

  붉고 끈적한 피가 터져 나왔다. 그는 얼굴에 튀긴 피 몇 방울을 피부 조직의 하나하나를 이용해 모든 것을 느껴보았다. 피를 이루는 성분도, 피의 색깔도, 피의 감촉도. 모든 것을. 그리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쓰러져있었고, 심장 부분이 깔끔하게 도려내져 있었다.

  쿵.

  그가 난쟁이를 똑바로 마주하였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눈에도 감정을 담아냈다. 분노. 아주 강한 감정이었다. 그 눈을 보고 난쟁이가 입을 열었다.

  "....."

  그때 잠에서 깨어났다. 온 몸이 땀으로 젖어있었으나 그딴 건 그가 신경쓸 바가 아니었다. 같은 꿈이었다. 어제도, 2일 전, 3일 전, 4일, 5일 전에도 같은 꿈을 꾸었었다. 하지만 늘 어머니를 지킬 수 없었다. 항상 그래왔듯 그는 거인을 죽였고 난쟁이는 어머니를 죽였다.

  촤악.

  그는 피가 터지던 그 장면을, 자신의 얼굴에 튀긴 그 피의 감촉을 절대 잊을 수 없었다. 꿈이었다. 분명 꿈이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걷어차서 TV모서리에 찍혀 죽었다. 방바닥에 고인 핏자국은 말라붙은 지 오래다. 그러나 그는 이 꿈을 꿀 때 마다 도저히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심장의 쿵쾅거림이 오래도록 남았다. 마치 진짜인 것처럼.

  쿵, 쿵, 쿵.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해도 그의 심장이 그때 가장 크게 울렸다는 것 만큼은 진실일 것이다. 쿵, 쿵, 쿵. 그는 심장을 부여잡는 핏줄을 느끼면서 다시 잠에 들었다.

 

 ***

 

  다음 날이 밝아오자 박현은 은마 아파트 살인 사건을 공식적으로 접수했다. 그는 경험 많고 유능한 강력계 형사이자 반장이었다. 경찰청의 대부분은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를 믿고 따랐다. 한 번 맡은 사건을 끝까지 몰고 간다는 저력이 있어 좋은 뜻으로 '미친 개 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그래서 어제 신성훈을 만났을 때 묘한 동질감을 느낀 것이리. 그는 담배를 피우는 마흔 넷의 사내였고 신장이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듬직했다. 떡 벌어진 어깨와 커다란 키는 그의 나이를 전혀 실감하지 못하게 했다. 지금 함께 앉아 있는 이들과 박현은 꽤나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온 베테랑들이다. 그는 이들 모두가 마음에 들었고, 이들 모두도 박현을 마음에 들어했다.

  "우선 평범한 사건은 아닌 것 같아. 상당히 골치 아플 거야."

  박현이 입을 열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 셋에 여자 하나였다. 박현을 포함해 팀은 총 다섯이다.

  "그래도 맡게 된 사건은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게 우리 팀 아니겠어? 자, 골치 아픈 이유 첫 번째. 이 사건의 목격자가 누구인 줄 알아? CD야."

  경찰청의 대부분은 CD를 알고 있었다. 범죄탐사전문인 만큼 얽힐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미 특종으로 어제 PBK온라인 지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렸어. 게다가 사진도 몇 장 올렸더군. 언론의 구미를 당기기에 매력적인 사건이란 건 알고 있지?"

  그는 잠시 말을 끊고 팀을 한 명 한 명 바라보았다. 그들과 눈을 마주하고 고개를 한 번 끄덕인 뒤 말을 이었다.

  "자, 그럼 두 번째 골치 아픈 이유. 다들 짐작하고 있겠지만. 이건 평범한 살인 사건이 아냐. 다시 말하자면 부부 싸움이나 이웃 간의 말다툼 따위로 일어난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살인이 아니란 말이지. 아주 정교하고 치밀하게 계획된 살인 사건이야. 피해자는 집에 잘 붙어있는 사람이 아니었어. CD의 말을 들어보니 피해자의 바쁜 일정 때문에 취재를 잡기 어려웠다는군. 그렇다면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어. 피해자가 언제 집에 들어오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었거나-"

  현장 감식 전문인 김정석이 말에 끼어들었다. 딱히 불쾌한 기색은 없었다. 그만큼 자연스럽게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 왔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집에 들어올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만들었거나."

  "정확해. 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야."

  박현이 '나는'을 강조하며 말했다. 이 이야기 때문에 수사의 방향을 한곳으로만 터 놓지는 말자는 애기였다.

  "후자가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 그냥 이건 경험에서 나오는 직감이야. 지금은 아무 말도 하지 말자. 아무런 단서도 없으니까. 뭐, 따로 하고 싶은 말 있는 사람 있어? 의견은 다양할수록 좋으니까."

  조용히 고개만 끄덕이며 듣고 있떤 신수아가 입을 열었다. 팀의 홍일점이자 강력반의 유일한 여자였다. 그녀는 아름다웠고 일처리도 확실했으며 웬만한 범죄자는 제압할 수 있을 만큼 무술 실력이 뛰어났다.

  "사진들을 보니 시체의 상태가 말이 안 나오더군요. 깊은 원한이 서려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필시 피해자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을 듯 합니다. 최소한 피해자와 가해자는 얼굴 정돈 아는 사이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좋아."

  박현이 말을 받았다.

  "피해자에 대한 조사는 정수와 해솔이가 맡도록 해."

  여태껏 한 마디도 하지 않던 남자 두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정수와 김해솔. 이 둘의 이름이었다. 원래 과묵한 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박현도 딱히 이상하게 여기진 않았다. 별로 애기를 하진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사이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정석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너는 현장에 다시 한 번 다녀와. 감식에 관해서는 널 따라올 사람이 없잖아? 감식반이 이미 한 번 다녀가긴

  했지만 말이야. 그들이 놓친 게 있을 수도 있으니."

  "알겠습니다~."

  "수아는 CD를 한 번 더 만나고 오도록 해."

  "네, 알겠어요."

  신수아의 말을 듣고 나서 박현이 사건에 박차를 가했다.

  "자, 서둘러! 범인은 항상 우리보다 한 발 앞서 나간다고. 우리가 두 발자국 더 먼저 가 있는 수 밖에 없어."

  모두가 일어섰다. 그때 박현이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더 꺼냈다.

  "이 사건이 무슨 사건 같아?"

  "연쇄 살인."

  모두가 한 목소리로 읆조렸다. 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쩌면 당연하지. 그리고 어쩌면-"

  이번엔 신수아가 말을 끊었다.

  "이미 누구 한 명이 더 죽었을 수도 있죠.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수사는 꽤나 힘들 것이라고 그들의 오래된, 하지만 여전히 녹슬지 않은 직감이 고개를 들었다. 박현은 '어쩌면...'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다시 밀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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