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범죄자를 증오한 살인마
작가 : 훈재
작품등록일 : 2017.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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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먼지 쌓인 기억 중의 한 가지(2)
작성일 : 17-12-04     조회 : 315     추천 : 0     분량 : 4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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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x +3-5X2=29

  늙은 바보가 식을 다 쓰자마자 한 아이가 외쳤다.

  "뭐야, 이미 답이 나와 있잖아."

  "그러게."

  늙은 바보가 피식 웃었다. 하긴, 이 자식들 기준에선 오른쪽에 써져 있는 숫자가 정답이지, 뭐.

  "곱셈과 더하기, 빼기 등이 섞여 있는 식에서는 곱셈을 먼저 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있는 이 X. 이걸 미지수라고 불러요. 방금 이미 답이 나왔다고 했는데 X가 몇인지 모르면 왜 29가 나오는지 알 수 없겠죠?"

  "아, 그러네."

  "만약에 X가 10이라면 29가 나오지 않을 거에요. 100이여도 마찬가지겠죠? 이렇게 X가 몇이냐에 따라서 식이 성립이 되기도 하도 성립되지 않기도 하는 식을 방정식이라고 해요. 알겠나요?"

  "네."

  애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아, 맞다! 여러분이 한 가지 약속할 게 있어요. 오늘 이 시간에 있었던 일은 절대로 밖에 나가서 떠들면 안 됩니다. 절대로요. 우선 밖에 나가서 떠들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은 뒤에 선생님은 게임을 시작하겠어요."

  아이들은 어리둥절해했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 했다. 늙은 바보는 혹시라도 이 일이 새어나가 눈 앞의 이 녀석이 영재로 평가받을까 봐 불안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가장 순수한 존재이자 가장 오염된 존재. 훗날 이 시간은 그의 마지막 수업으로 칭해지며 세기의 대결을 지켜본 1학년 3반의 아이들은 3년쯤 지나 그가 얼마나 대단했던 건지를 몇 십 조개의 세포들로 생생하게 느낀다. 지금 이 시간의 1분 1초가 아이들의 피부 각질 하나에, 뇌세포 하나에 들러붙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전설로 남았다. 시간이 흐르고 흐른 지금도 1학년 3반의 동창회에선 '그'가 화두가 되곤 한다. 하지만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성이 박이었다는 것만은 다들 기억하고 있었다. 그를 부르는 호칭은 P로 고정되었다. 뭐, 나중의 이야기고 지금은 지금이다.

  "좋아요. 그럼 방정식을 풀어주세요. 이 식이 참이 되게 하는 X의 값을 구해내면 되요."

  물론 다른 아이들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뇌는 이미 문제를 떠 내고 있었다. 숫자를 뜯고 뜯어서 0의 상태로 되돌린 뒤 다시 이어붙인다. 다시 분해를 한 뒤에 다시 조립을 한다. 분해, 조립. 분해, 조립.

  맙소사. 놀랍도록 쉬운 문제였다. 그저 X에 대충 수를 때려 넣어 그 뒤의 식을 전개한 뒤 29가 나오면 되는 것 아닌가.

  자,

  결과를 분석하라.

  그의 뇌 한 구석에 1부터 100까지의 수가 깔렸다. 100부터 내려가기로 하였다. 100+3-10=?

  삐익.

  다시.

  99+3-10=?

  삐익.

  98+3-10=?

  삐익.

  97+3-10=?

  삐익.

  96+3-10=?

  삐익.

 ? 삐익. ? 삐익. ? 삐익.

  그의 뇌에서 경보음이 수십 번 울린 뒤였다.

  삐빗.

  X+3-10=29

  결과를 분석하라.

  36+3-10=29

  삑. 참이다. 문제가 풀렸다. 그는 숫자 하나하나를 물어뜯은 뒤에 분필 지우개를 잡았다. 그리고 -5X2를 지운 뒤에 -10을 쓰고 X를 지운 뒤 14를 써 넣었다.

  36+3-10=29

  이해되지도 않는 식을 풀어보려 애쓰던 아이들은 그제서야 칠판을 보고 저마다 감탄사를 자아냈다. 개중에는 욕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악의는 없었다. 욕은 감탄사의 대체어라니까. 아이들이 박수를 치며 하도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뜨리던 도중 단 한 명, 웃고 있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늙은 바보였다.

  말도 안 돼!

  10초 만에 이 코흘리개는 답을 적어 넣었다. 방정식이라는 개념과 이항 따위의 무기들을 손에 쥐고 난 뒤에는 매우 쉬운 문제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배우지도 않은 개념의 문제를 10초 만에 풀어냈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것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수학의 새로운 개념은 자전거를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 처음 탈 때의 그 난해한 느낌처럼 새로운 개념이 등장했을 땐 범접할 수 없는 벽 같은 것을 실감한다. 방금 늙은 바보가 써 넣었던 문제는 분명 쉬웠다. 하지만 이 교실 안에서는 답이 나올 수 없는 문제였다. 이 녀석은 방정식을 푸는 방법을 모른다. 그렇다면 X는 만화에 나오는 괴수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늙은 바보는 처음 자신이 방정식을 마주했을 때의 정체성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방법을 모르는데 어떻게 풀어낸 거지? 이 녀석이 할 줄 아는 거라곤...

  삐익-.

  맙소사. 늙은 바보의 뇌를 관통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된다. 이 코흘리개는 1에서 몇 까지의 숫자를 정해 놓은 뒤 그 숫자 하나하나를 대입해 식을 전개시켜 X의 값을 구해낸 것이다. 이딴 게 가능하다고? 10초 만에 그 많은 숫자를 대입해서 X의 정체를 찾아낸다는 게? 심지어 1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36번의 반복 과정을 거쳐야 한다.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 코흘리개는 그것을 해냈다. 수십 개의 경우의 수를 뚫고. 늙은 바보는 갑자기 옛날 옛적 대학교수가 해 줬던 애기가 떠올랐다. 늙은 바보가 강의가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앉아 문제를 풀고 있는 것을 보고 대학교수가 다가와 해 준 말이었다.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구만.

  감사합니다.

  흠... 그런데 말이야. 이건 이런 식으로 푸는 것도 가능하다네.

  교수는 문제 하나를 가리키며 마술을 보여 주었다. 늙은 바보는 그때의 황홀함을 여태까지도 잊지 못했다.

  와... 이건, 이건 정말 대단해요! 전 이런 방식은 상상도 못했어요. 이런 식으로 문제를 풀 수 있을 줄은...!

  교수가 웃었다.

  하하, 호들갑은. 자네, 수학은 기술이라고 생각하나? 이런 식으로.... 라고 하는 것을 보니.

  네, 수학은 기술이죠.

  그런데 말이야. 자네의 선배 중에 기술이라곤 도통 하나도 알지 못하던 선배가 있었네. 그 선배가 어떻게 되었는 줄 아나?

  F를 받았나요?

  교수가 크게 웃었다.

  아니, 지금으로선 한 마디만 해 주지. 기술이 없어도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 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무슨 말이죠?

  기술을 쓰지 않고도 문제를 제압해 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단 거야. 수학이란 답이라는 공주를 찾아 떠나는 왕자의 여정이라고도 할 수 있네. 이를테면 왕자가 두 손에 쥐고 있는 칼, 화살 등등이 그가 가진 기술이라고 할 수 있지.

  네, 그렇죠.

  그리고 공주를 구해내기 힘들어질 수록 공주를 감싸고 있는 괴수들 또한 강해졌다고 할 수 있겠지.

  그렇습니다.

  그런데... 공주를 구하러 갈 때, 양손에 아무런 무기도 들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되겠나? 공주를 구해낼 수 있을까?

  글쎄요, 그렇다면 괴수가 기껏해야 개구리쯤은 돼야 하지 않을까요? 아무리 된다 해도 뱀 정도? 그게 아니라면 힘들 것 같은데요.

  허허허.

  왜요? 하고 싶은 말씀이 뭡니까?

  양손에 아무것도 없어도, 케르베로스를 메두사를, 히드라를 처치하고 공주를 구해낼 수 있는 사람이 있네. 그것도 압도적이지.

  에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인데요. 기술이 없이 문제를 푼다니. 그건 마치 배우지도 않은 개념을 적당한 경우의 수를 뇌에 깔아놓고 하나하나 대조해 보는 것과 같잖아아요. 그 수 백, 수 천, 어쩔 때는 수 만 개의 수 중에서 하나를 발견한다는 게. 가능하다고요?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제가 만난다면 그 사람을 꼭 이겨보겠습니다.

  교수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 꼭 그래주게. 나는 그러지 못했다네. 게다가 그 다음 명예를 저버리는 짓까지 해 버렸지.

  늙은 바보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를 몰라 허둥거렸다.

  그러시군요...

  기껏 나온 대답이었다. 속으로 자신의 머리를 쥐어 뜯었다.

  세상은 그들을 천재라고 부른다네. 나는 좀 달라. 나는 그들을.

  교수가 허리를 펴고 말했다.

  선택받은 자들이라고 부른다네.

 

  그렇다면 지금 눈 앞의 이 녀석은 '선택받은 자들' 중 한 명에 속했다. 아니, 거짓말이다. 인정할 수 없다! 말도 안 된다. 이 녀석은... 이 녀석은 선택을 받았다고? 누구한테? 어째서? 왜? 노력으로 닿을 수 있는 곳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것은 마치.

  결코 넘을 수 없는 끝이 없는 장벽이었다. 상하좌우 그 어디로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늙은 바보는 갑자기 자신의 삶의 가치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뭐 하려고 여기까지 달려온 거지? 재능은 노력을 이길 수 없다고? 노력은 누구보다 많이했다! 이것만큼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다. 근데 왜? 도대체 왜?

  나는 대체 왜 여기까지, 그렇게 허우적대며 달려왔단 말인가? 아니, 기어왔단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숨이 찼다. 그 정도였다. 대체 뭘 하려고?

  나도 선택받고 싶어...

  갑자기 늙은 바보의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땀이 줄줄 흘렀다. 훌쩍이고 있는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가 입을 열었다.

  머, 멍... 멍청이. 그, 그, 그것도 못 푸냐? 그, 그 따위도 무서, 무서워하고 말이야.

  어렸을 적의 내가 아니랄까봐. 욕도 참 지지리도 못했다. 말도 심하게 더듬는 게 자신이 보기에도 찌질했다. 그래, 저 아이의 눈에서 눈물을 거두어주기 위해서 그렇게 달려왔던 것이다. 이렇게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아이를 다시 보았다. 웃고 있었다. 늙은 바보도 힘겹게 미소를 지었다. 눈 앞의 이 녀석은 정말 괴물이다. 맨손으로 케르베로스를, 메두사를, 히드라를 처치한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두려웠다. 하지만 굳어버릴 수는 없었다. 이겨야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겨야만 한다.

  늙은 바보가 숨을 크게 들이 쉬었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정말 말도 안 되는군요! 그럼 다음 문제로 넘어가 볼까요?"

  늙은 바보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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