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것도 없어요."
"네?"
"아무것도 없다고요."
집안으로 들어가려는 김정석에게 감식반원 중 한 명이 말했다.
"어제 밤 늦게까지, 그리고 오늘 아침 일찍부터 뒤져봤는데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어요. 절대로 못 찾아요. 진짜 절대로."
김정석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피해자가 있다는 것이 가해자가 있다는 증거에요. 그리고 우린 그걸 찾아내야 하고요. 증거 하나는 이미 구했잖아요. 시체면 충분하죠."
감식반원이 마스크와 장갑을 건네주며 투덜거렸다.
"글쎄, 아무것도 없다니까 그러네."
"사람 한 명이 죽었다, 사라졌다, 강간을 당했다, 혹은 당하고 있다,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 받았다, 구타를 당했다, 당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경찰을 움직일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그리고 그런 신고를 받았다면 마땅히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어야 하고요. 그게 우리들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감식반원이 낮게 지랄. 하고 중얼거렸다. 정석은 듣지 못했다.
"그런데 장난전화일 때도 있잖아요."
"뭐라고요? 지금 이게 장난인가요? 이미 벌어진 일이잖아요! 시체가 나왔다면 마땅히 조사를 해야지! 그리고 저는 신고를 접수받고 달려갔을 때 장난전화 였을 때가 가장 마음이 편해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거니까. 이제 조용히 좀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집중을 해야 하거든요."
감식반원은 속으로 생각했다. 아주 지랄하는군. 독종이 걸려도 웬만한 독종이 아닐 수가 없었다. 하여튼 강력반 새끼들은 아주 지들만 깨끗했다. 자신들의 직책에 대한 자부심이 어마어마하였다. 나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깨 부수는 거야! 이 사회를 밝게 비추고 있다고! 우리는 정의의 집행관이야!
별 지랄을 다하고 있었다. 지금 이걸 하기 싫다는 것도, 귀찮다는 것도 아니었다. 경찰이라는 것에 회의감이 드는 것도 아니었다. 그도 나름의 프라이드가 있었다.
진짜로 아무것도 없었다. 이 잡듯이 뒤져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감식반 생활 11년에 이런 사건은 처음이었다. 그가 풋내기 였을 때, 감식반의 전설과 한 번 현장을 나간 적이 있었다. 전설은 전설이었다. 모든 것을 보았고, 그 무엇도 놓치지 않았다. 무엇이든간에 그의 손에 들어가면 증거로 변했다. 범인이 흔적을 남기고 간 게 아니라 그가 흔적을 만들어 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거짓말 같이 그것들을 범죄와 이어붙였다. 그러면, 짜잔. 사건이 해결되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건 달랐다. 은퇴한 전설을 다시 불러오고 싶었다. 전설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장담할 수 있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정석을 따라 들어갔다. 정석은 시체를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아직 시체를 안 옮겼네요?"
"어제 박현 반장님이 치우지 말라던데요. 오늘 한 명 올 거라면서."
"잘하셨어요. 옮겼으면 큰일날 뻔 했어."
정석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그는 생각했다. 뭐라는 거야, 지가 보면 다른가.
"사인은 뭐죠?"
"정확하게는 부검을 해 봐야 알겠죠. 그런데 굳이 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아요. 총 20군데에 칼자국이 있어요. 직접적인 사신은 그거인 것 같고. 그리고 몸을 반으로 가른 거 하고... 외상은 이 정도일 거에요. 겉으로만 봐선 잘 알지 못해요. 확실하진 않을 거에요. 근데 심장 쪽에는 특히 많이 쑤신 것 같아요. 심하게 흉져 있거든요. 아무래도 심장을 제일 먼저 찌르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것 때문에 죽지 않았을까."
정석이 심장 쪽으로 눈을 돌렸다. 정말이었다. 그러다가 식탁 모서리에 핏자국이 말라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저기 식탁에 핏자국은 뭐죠?"
"아, 맞다! 시체의 뒷통수에 몇 십번은 찍은 것 같은 부분이 있어요. 우리들 생각으론 저 식탁에 찍지 않았을까 싶어요. 근데 아마도 살아있었을 때 찍었던 것 같아요. 적어도 의식이 있었을 때 찍어대지 않았을까..."
"왜요?"
"핏자국이 바닥에 남아있잖아요. 식탁 주위에 흩뿌려진 것처럼. 이건 칼에서 묻은 피가 떨어졌거나 해서 생긴 게 아니에요."
정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알고 있는 바였다. 이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핏자국이 아니었따. 흩뿌려졌다는 건 피해자의 저항의 흔적이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피해자의 뒷통수가 모서리에 찍히는 그때의 느낌과 고통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정말로 주고 싶었던 고통이었을 거에요. 제 개인적인 추측은 이래요. 우선 복부나 허벅지 쪽을 찔러 반격의 기회를 차단시킨 뒤에 머리채를 잡고 끌고 왔을 거에요. 안방에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정석은 안방에서 이어져 나오는 핏자국을 보았다. 그렇다. 첫 번째 칼질은 안방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방은 총 세
개였다. 침실이자 안방으로 쓰이는 곳 하나. 서재 하나. 그리고 오락 기기가 쌓여져 있는 방이 하나 있었다. 피해자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젊은 취미를 갖고 있었나 보다.
"그리고 머리채를 잡고. 아, 어쩌면 기절을 시킨 뒤에 팔 다리를 묶고 끌고 왔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핏자국이 안방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 가능성은 희박하고. 그리 많은 양은 아니지만 그리 적다고도 할 수 없는 양이잖아요? 그렇게 끌고 나온 뒤에 머리를 식탁에 쾅, 쾅, 쾅. 그 다음엔 칼을 뽑고 어디 한 군데에 푸욱. 그리고 푹, 푹, 푹, 푹, 푹, 푹, 푹. 아주 넝마가 될 때까지 쑤셨겠죠. 특히 심장은 제 감이긴 한데 10번 이상은 될 거라고 추정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 상황에서도 그 새끼는 이성적으로, 철저하게 이성적으로 행동했어요."
그가 말하다가 몸을 부를 떨었다. 두려운 것 같았다.
"사람이 사람을 몇 번 쑤시다 보면 흥분을 해요. 절망적으로든, 기뻐서든, 아니면 진짜 흥분이 돼서 그렇든. 그렇게 증거를 남기는 거에요. 그리고 인간은 감성과 이성이 공존하는 존재잖아요. 뭐가 됐든 흥분하 수 밖에 없어요. 아니, 시체를 보면 그 가해자의 감정이 전해져 와요. 분노인지, 슬픔인지, 미안함이든, 뭐든."
그가 눈에 띄게 벌벌 떨었다.
"그런데 이 시체는 너무 차가워요. 너무. 그저 순수한 증오만이 느껴져요. 그것말곤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것도.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았어요. 이건, 이건 가해자가 사람이 아닐거야. 사람이 아닐 거라고."
"저기요? 저기요? 괜찮아요? 저기요!"
아닐 거라고. 그가 중얼거리며 몸을 떨다가 갑자기 쓰러졌다.
"이런 미친."
김정석은 밖에 서 있는 말단들을 불렀다. 그렇게 툴툴 댔어도 베테랑이다. 숱한 사고 현장 경험이 있고, 시체란 시체는 모두 봐 보았을 것이다. 온갖 끔찍한 모습들이 그의 뇌에 박혀 있을 것이다. 그는 시체의 모습이 끔찍해 쓰러진
게 아니었다. 이것은 범인에 대한 공포였다. 시체를 통해서 전해져 온 범인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다. 날 찾겠다고? 찾아 봐. 어차피 못 찾겠지만.
그리고 자신을 쑤셔 대는 범인의 얼굴을 본 것이다. 맙소사. 아무런 표정도 없다. 웃지도, 울고 있지도 않다. 범인은
그의 복부가 터지는 것을 보다가 고개를 들어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와 눈이 마주쳤을 것이다.
깼어?
그가 기절할 만 했다. 나름대로 그의 가설은 다 들어맞는 것 같았다. 흠잡을 데가 없는 훌륭한 가설이다. 하지만 가설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우선 정석은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보았다. 감식반은 집안 구조는 하나도 건드리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뭔가 수상쩍은 게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2시간 가량을 뒤져본 결과,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단서들은 수두룩했다. 하지만 범인을 쫓을 수 있는 증거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자, 한 아파트에서 사람 한 명이 죽은 채로 발견됐다고 치자. 그리고 100M 쯤 떨어진 쓰레기통에 피가 묻은 칼이 버려져있었다면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단서'를 '증거'로 전환시키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검증이 필요하다. 칼에 묻은 피가 피해자의 혈액성분과 일치하는가? YES, 그렇다면 이건 범행 도구로 간주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만 더 들어가본다면 매우 쓸모없는 고물덩어리로 남게 될 것이다. 칼에 가해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미지의 인물의 지문이 남아있는가? NO. 이렇게 된다면 일이 여간 귀찮아지는 게 아니다. 피 묻은 칼은 범행도구로만 남을 뿐이지, 실질적으로는 범인을 쫓는 증거로 이어질 수가 없다. 물론 수 천, 수 만개의 가능성을 늘어놓고 본다면 '피해자의 피가 묻어 있어 범행도구로 간주되지만 지문이 남아 있지 않아 아쉬운 칼'은 증거로 이어질 수가 있다. 이 칼을 어디서 구입했는가? 대형 마트인가, 재래시장인가, 구멍 가게인가, 철물점인가. 피해자의 주방에서 나온 칼인가, 가해자가 미리 들고온 칼인가, 상표는 있는가? 이 칼의 판매자를 찾아낼 수 있을까? 판매자는 소비자를 한 명 한 명
기록해 놓았는가? 구입처에는 CCTV가 장착되어 있을까? 판매자에게 가서 묻는다. 최근에 수상한 손님이 있었습니까? 하지만 단서만 늘어놓고 하는 수사는 해결될 가능성이 만 분의 일이다. 정황에서 확신으로 뒤집어 줄 무언가가 나와줘야 한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대부분 직감으로 발견이 된다. 형사에게 필요한 것은 두 가지다. 정확하게 돌아가는 머리와 날카로운 직감. 이 두 가지면 충분하다. 그리고 박현의 팀은 모두 이 두 가지를 적당하게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김정석은 현장에 다녀오면 반드시 무언가는 물어오는 게 있었다.
그가 파헤치지 못했던 현장은 없었다.
머리를 굴려라. 아침에 했던 회의를 떠올려라. 그곳에 무슨 단서가 있을지도 모른다.
자, 사건을 분해하라. 그 다음, 결과를 도출해내라.
박현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 이건 평범한 사건이 아니다. 상당히 골치 아플 것이다. 정석은 손에 잘그럭거리는 목주가 느껴졌다. 어머니가 20살 선물로 사 준 것이었다. 그는 경찰이 아니었으면 스님이 되었을 것이다. 그만큼 착실하게 종교를 믿어왔다. 하지만 총을 겨누는 범인을 상대로 살생을 하지 않는다며 합장을 할 정도의 바보는 아니었다. 그는 긴장되거나, 두려운 순간, 생각이 잘 돌아가지 않을 때에는 목주를 의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왼손으로 목주를 돌리면서 눈을 감으면 마음이 차분해져 왔다. 역시 같은 절차를 밟게 되었다.
절그럭, 절그럭 소리가 두어 번 울리자 마음이 가라 앉았다. 계속해서 회의를 이어듣기로 했다.
그래, 언론의 구미를 당기기에 적합한 사건이지. 몸을 반으로 갈라놓았다는 건 범인이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그리고 이건 치밀하게 계획된 살인이다.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쳤던 게 분명하다.
두 번째, 피해자는 집에 잘 붙어있던 사람이 아니었다. 정석은 눈을 떴다. 그래, 눈에 들어오고 있는 이 남자는 자유분방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가해자는 평소 피해자가 집에 들어오는 시간을 알고 있었거나, 피해자가 집에 들어올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것이다.
정석이 한번 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후자라고 생각해, 하며 중얼거렸다. 그때, 시체가 다시 한 번 그의 눈에 들어오며 새로운 색채를 띄었다. 그의 뇌에 번쩍 스쳐 지나가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직감이 고개를 들고 조금이나마 미세한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엇인지는 명확히 보이지 않았다. 그는 도망치려 하는 녀석을 잡아두고 다시 회의실에 앉았다. 신수아가
손을 들었다. 그녀는 예뻤다. 그가 자신의 뺨을 때렸다.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신수아의 입술이 움직였다. 어느새 그의 입안에 침이 고여 있었지만 이번엔 귀는 닫지 않았다.
시체의 상태가 말이 안 나온다, 맞는 말이다. 오른손과 왼손이 취하고 있는 자세. 그리고 완벽한 결가부좌를 취하고 있는 다리. 이것은 마치 이어붙이면...
아!
정석은 스쳐지나간 것의 정체를 깨닫고 미소를 지었다. 꽤나 미세한 '단서'에 불과하지만 사건의 판도를 뒤 바꿔 줄 '증거'가 될지도 몰랐다. 그는 웃으면서 핸드폰을 꺼내 들고 사진을 세 장 찍었다. 상체만 한 장, 하체만 한 장, 둘이 같이 나오도록 한 장.
만족스러웠다. 그는 오늘은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구역질 나는 이 곳에서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배가 고팠다. 제대로 된 밥을 먹을지 대충 때울지 고민이 되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젠장, 혼자 먹긴 싫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