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범죄자를 증오한 살인마
작가 : 훈재
작품등록일 : 2017.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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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붉은 장미의 기억
작성일 : 17-12-17     조회 : 318     추천 : 0     분량 : 5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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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사 자료를 훑어보던 박현은 한숨만 나왔다.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한숨을 쉬며 속 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냈다. 주변 사람들 모두는 그에게 끊으라고 권했지만 그는 끊지 않았다. 그의 흡연량은 어마어마했다. 설사 폐암에 걸려 병동에 들어가게 되더라도 창가 자리엔 재떨이를 올려놓을 그였다. 그는 익숙하게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렇지만 불은 붙이지 않았다. 수사에서 가로막힐 때마다 취하는 그의 습관이었다. 계속해서 담배를 물고 있으면 생각들이 줄지어 떠올랐다. 하지만 간혹, 지금처럼 옛날 생각들 따위가 떠올느느 부작용이 일었다.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하긴, 이제 하루 지났는데."

  그는 다급한 마음을 제쳐두고 떠오르는 향수에 젖어들기로 결정했다. 최근 들어 그는 지나치게 서두르고 있었다. 그도 잘 알고 있는 바였다. 하지만 동시에 이젠 자신의 감각이 어두워졌다는 것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2년 전 그 사건을 겪기 전 까지만 해도 그는 서류만 보아도 현장이 보였었다. 그러나 이제는 어두컴컴하기만 했다. 자료가 부족해도, 증거가 부족해도 그의 손에 들어오면 달랐다. 자료는 필요없었고, 증거가 그의 손에서 줄줄이 흘러 나왔다. 그러나 이젠 아니었다.

  그가 담배 연기를 내 뿜었다. 생각을 포기하고 그는 자연스레 불을 붙였다.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를 타고 어렸을 적으로 돌아갔다. 그의 유년 시절은 딱히 부족할 것 없는 충분한 행복의 시간이었다. 교우 관계는 원만했고, 가족과의 관계도 별 탈 없이 지나갔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공부를 즐겨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막 놀러 다니는 아이도 아니었다. 단지 공부보다 운동을 더 좋아했고, 더 잘했을 뿐이다. 초등학생 때는 친구들과 잘 어울려 다녔고, 큰 덩치로 먹이사슬의 상위층에 자리했다. 그러나 결코 약한 애를 괴롭히거나 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오히려 정의의 사도 쪽에 가까웠다. 그는 아마 유치원 때 부터 경찰을 꿈 꿔 왔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어렸을 때 부터 토대를 쌓자고 마음 먹은 것이다.

  그가 경찰을 꿈꾸기 시작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가 다섯 살 이었고 소유와 돈의 개념에 대해서 막 알게 된 때였다. 아버지와 단 둘이 남게 된 그는 슈퍼에 가자고 졸랐고, 아버지는 그러기엔 너무 피곤했다.

  "현아, 네가 이제 몇 살이지?"

  "5살."

  "그렇지. 다섯 살이면 무슨 나이?"

  "엄마를 지켜 주고 동생을 지켜 줘야 되는 나이."

  그의 아버지가 그가 다섯 살이 되자 습관처럼 하시던 말씀이었다. 그는 2살 짜리 여동생이 있었다. 지금은 한 남자의 아내,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된 여인이다.

  "그렇지. 그런데 그런 듬직한 아들이자 오빠가 슈퍼 하나 혼자 못 가서 되겠어?'

  "안 돼."

  "그래. 가고 싶다면 혼자 다녀오도록."

  "으음..."

  혼자서 집을 나가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는 큰 두려움과 동시에 호기심에 휩싸였다. 그리고 호기심이란 감정을 그는 견뎌내기 힘들었다.

  몸을 휘감는 이 짜릿함. 그는 그때의 감정을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좋아."

  "오케이~."

  아버지는 외투를 챙겨주고 방으로 굴러들어가 곯아 떨어졌다. 그의 지갑은 두툼해졌고, 처음 겪어보는 것에 대한 두근 거림도 커져만 갔다. 심장의 두근거리는 소리가 터져버려 아버지가 일어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곤히 잠들었고 문은 손쉽게 열렸다.

  그는 주머니에 열쇠를 단단히 챙기고 슈퍼를 향해 뛰어갔다. 아버지는 손이 큰 편 이었다. 과잔 하나를 사 먹고 싶다고 하면 만 원을 주는. 그런 분 이었다. 슈퍼에는 중학생으로 보이는 형들이 세 명, 피곤해 보이는 아저씨 한 명,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이 한 명 있었다. 설령 거기에 대통령이 있었다고 해도 그의 눈에 들어오진 않았을 것이다. 그의 눈엔 오로지 과자만이 들어왔다. 초코 맛이 나는 달콤한 과자였다. 그는 당이 많은 것을 좋아했고 지금까지도 그 습관은 버려지질 않았다.

  집에서 슈퍼까진 고작 7분 거리였다. 그는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계산하고 받은 9천 원을 손에 꼭 쥐고서. 이상한 낌새가 보였던 건 계산대에서 부터였다. 그의 오른손에 쥐어져 있던 만 원을 계속해서 바라보던 눈들이 있었다. 그 눈들은 슈퍼 밖을 나오고도 계속해서 따라왔다. 곧 눈들이 말을 걸었다.

  "야, 꼬마야. 잠깐만."

  그가 뒤를 돌아보니 슈퍼에서 보았던 중학생 세 명 이었다. 처음 보는 형들이 말을 걸어서 그의 기분은 꽤나 좋았다. 그는 순수했고, 사람들을 좋아했다.

  "응, 왜?"

  "너, 남은 돈 있지?"

  그러나 순진하진 않았다.

  "어, 아빠 꺼."

  "그래? 형들 좀 빌려주라. 갚을게."

  "아... 으음. 아빠한테 허락을 맡아야 돼. 그러고 줄게."

  중학생 형들은 사람 좋게 웃더니 그를 골목으로 끌고 갔다. 그는 목마를 태워주길래 좋아했을 뿐이다. 팔을 수영하듯이 휘젓다보니 마침내 형들이 그를 내려주었다.

  "그냥 주면 안 될까? 아빠한텐 잃어버렸다고 해. 형들도 너만한 애를 데리고 이런 짓 하기는 싫은데."

  그는 도통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듣지를 못했다. 그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니 그럴 만도 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몰랐으니,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고 여태껏 이야기를 해 왔던 형이 난처한 듯 웃었다. 다시 그 형이 입을 열려고 했을 때 였다.

  "그래, 좋-"

  그때, 그의 시야가 정신없이 돌아갔다. 옆에 있던 덩치 큰 형이 그를 걷어찬 것이다. 그는 굴러 떨어졌고, 골목 벽에 머리를 박았다. 걷어차인 부위가 심하게 욱신거렸다. 계속해서 화끈거리는 게 불에 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죽도록 아팠다. 덩치 큰 형이 입을 열었다.

  "야, 애새끼는 줘 패는 게 약이야."

  "허, 참."

  덩치 큰 형이 쭈그려 앉고 그의 꼭 쥔 손에 손을 댔다.

  "이러고 그냥 가져가면 되잖아. 얼마나 쉬워. 건후야, 넌 항상 너무 고지식한 게 탈이라니까."

  그의 손은 열리지 않았다. 덩치 큰 형은 흠칫했다. 그래, 짜증이 났다는 말이다. 충분히 그의 손을 열어버릴 힘이 있었다. 그러나 잔인하게도 그의 손 마디마디를 세우고 자신의 큰 손에 가두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 더 꽉 쥐어 봐."

  우드득,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의 눈물샘이 확장되었다. 눈물이 줄줄 흘렀고, 오른손엔 불씨를 쥔듯 뜨거워 견딜 수가 없엇다. 그는 고통에 몸부림쳤고 형들은 이게 즐거운 지 깔깔 웃어댔다. 남이 우는 걸 보고 웃다니. 아버지는 그딴 짓을 하는 놈들은 죄다 두들겨 패 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는 그럴 힘이 없었다. 그 사실이 그를 더 아프게 만들었고 그들을 더욱 잔인하게 만들었다. 손바닥을 피면 돈이 나갈 것이고 형은 가혹행위를 멈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돈을 줄 생각이 없었다.

  형들은 그것에 더욱 분노하는 것 같았다. 그의 눈빛은 꺾일 여지가 없었고 손에 힘을 빼려고 하지도 않았다. 힘을 줄 여력도 남아 있지 않았으면서 말이다. 덩치 큰 형이 더 힘을 가하다가 고개를 까딱하더니 "허, 안 되겠네."라며 왼손까지 잡았을 때였다.

  그의 오른손을 덮고 있던 답답함이 벗겨지는 게 느껴졌고, 덩치 큰 형이 날아가는 게 보였다. 이 사람 또한 본 적이 있었다. 슈퍼에서 봤던 청년이었다.

  "이런 양아치 새끼들이..."

  만화에서만 보던 영웅같았다. 청년은 형들을 일방적으로 팼다. 심하다 싶어질 때쯤 한 아저씨가 달려왔다.

  "야, 야, 야! 애들 뒤지겠다. 뒤지겠어. 이러다 네가 잡혀 들어가. 하여튼 적당히를 몰라요. 적당히."

  "아, 죄송합니다. 이렇게 어린애 상대로 돈 뺏는 놈들이 있다는 게 하도 화가 나서요."

  이 아저씨도 본 적 있었다. 슈퍼에서 본 아저씨였다.

  "꼬마야, 너도 집에. 아니, 무슨 애를 이렇게 만들어 놨대?"

  그러면서 그의 손을 잡으려 했다. 손에 짜릿함이 지나치게 많이 흘러들어왔다. 그가 소리를 질렀다.

  "야! 손 부은 것 좀 봐. 이런 쓰레기 새끼들..."

  아저시가 형들에게 욕하는 게 들렸다. 그는 극도로 피곤했지만 이것 하나만은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아저씨... 그리고 저기 형은 누구에요?"

  "나? 나는 경찰이고 재는 내 부하. 쉬고 있었는데 우연히 저놈하고 만났고 너까지 만나게 됐네."

  그는 말을 끝까지 듣지 못했다. 긴장이 풀려 잠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기억할 수 있었다. '경찰' 그의 뇌에 근간에 새겨진 단어였다. 그는 이때부터 경찰을 꿈꾸기 시작했다. 덩치가 커져도 애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운동을 잘한다고 애들을 놀리지도 않았다. 친구들이 운동을 잘해 부럽다고 하면 누구나 잘하는 게 있잖아. 하며 웃어줄 뿐이었다. 그렇게 그의 유년기와 초등학교 시절이 지나갔다. 행복한 때였다. 그는 중 1때 키가 175cm 가량을 돌파했으며 어깨도 넓어져갔다. 몸무게도 군살없는 몸매를 유지해 가며 반에서 주목을 받았다. 힘센 애한테 꼭 붙는 한 두 명이 그에게 매번 달려들었으며 여자애들에게도 인기가 좋았다. 그는 누구든지 잘 어울렸다. 누구와도 잘 지냈으며 불의의 현장을 보면 참지를 못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신기하게도 중학교 3년 내내 여자친구 한 번을 사귀지 못했다. 들어오는 고백은 모두 정중히 거절했다. 연애금지 같은 학칙 따위는 없었다. 그가 1학년 때 한눈에 반해버린 여자아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애 한명에게는 도통 말을 걸질 못했으나 고맙게도 그 여자애의 친화력은 상상을 초월했고 낯가림이 전혀 없었다. 두근거리는 그의 사정은 도통 알지를 못한 채 그녀는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고, 마침내 그도 가벼운 농담 정도는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가 될 수 있었다. 그녀를 처음으로 놀렸을 때 심장이, 감정이 모든 것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만큼 그의 마음속엔 그녀의 자리가 컸다. 아니, 오로지 그녀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어떤 여자아이가 고백해도 받아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죄악이었다. 좋아하지도 않는 애의 고백을 받아주라니. 그 아이에겐 얼마나 험악한 거짓말인가.

  뭐가 됐든 그는 그녀와의 3년을 보냈다. 별탈은 없었다. 별 일도 없었고. 그와 그녀의 관계는 가벼운 농담 정도는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 딱 그 정도였고, 그 이상은 없었다. 그는 만족하지 못했지만 용기를 내지도 못했다.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럴 즈음 그의 눈에 들어온 한 남자 아이가 있었다. 그 남자애와 그녀가 붙어있을 땐 색채가 달랐다. 그는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건 질투심 따위에 눈이 먼 게 아니었다. 그 남자애와 그녀와의 사이에 그가 들어갈 자리는 없었단 걸. 그는 뼈저리게 알 수 있었다. 자신의 확신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는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그 남자애와 그녀의 애기를 유도했으며 친구들은 열에 열이면 둘이 곧 있으면 사귈 것 같다. 따위의 애기를 늘어놓으며 그를 확실하게 죽여주었다.

  자신의 감정을 알아버린 1학년 때 부터, 그 남자아개 눈에 들어온 2학년 때 부터 도통 운동을 할 수가 없었고. 경찰 시험 준비 따위의 일들도 허술해져만 갔다. 심할 때에는 밥도 제대로 삼킬 수 없었으며, 기분이 하루 종일 침울해지는 경우들도 있었다.

  인간관계에 밝은 그였던 만큼 받을 상처 또한 커다랬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남자애도 그처럼 소위 '잘 나가는'애들 중 한 명이었다. 누가 봐도 잘생겼다고 평할 준수한 외모에 적당한 키와 밝은 성격. 언변도 뛰어났다. 사실 그와 꽤나 친한 친구 중 한 명이었으나 그의 눈에 그녀가 들어오고 그가 낄 자리는 없단 걸 알게 된 순간부턴 점점 밀어내는 중이었다. 그는 그 남자애가 싫었다. 질투는 이윽고 증오로 변했고 증오는 곧 용기를 내지 못한 자신에 대한 자괴감으로 변했다. 그렇게 그의 중학교 생활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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