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범죄자를 증오한 살인마
작가 : 훈재
작품등록일 : 2017.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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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때로 진실은 심하게 가혹한 것일 수도 있다.
작성일 : 17-12-17     조회 : 301     추천 : 0     분량 : 8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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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딘가 돈 애가 틀림없었다. 녹음기를 들고 온 것부터 내일 반 친구들에게 자랑하기 위해서 일 게 뻔했다. 경찰 아저씨한테 뻥쳤다~. 이러면서. 보라, 표정도 지나치게 침착하지 않은가. 해 봤자 초등학생일 게 뻔한 아이가 엄마가 죽었다는 애기를 하면서 취할 만한 표정은 아니었다. 하물며 지금 그가 신고를 접수하고 출동할 준비를 했다가 아이의 부모님이 화목하게 차를 한 잔 마시고 있는 걸 보게 된다면 아이도, 그도 큰일 날 상황이었다. 그래, 이건 어딜 봐도 거짓말을 치고 있는 아이에 대한 최고의 배려와 맞장구였다.

  "거짓말 아니야, 진짜야. 우리 집 가자. 한번만 가줘. 죽인 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

  "꼬맹이가 돌아다닐만한 시간은 아닌데."

  오후 7시였다.

  "애야, 얼른 집에 들어가라. 아저씨들은 너 말고도 애기해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아. 너무 바쁘다고."

  그가 돌아서려던 참이었다. 아이가 그의 다리를 잡고 결의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거짓말 아냐."

  하마터면 믿을 뻔 했다. 그만큼 아이의 표정이 진지했다.

  "안 믿는 게 아냐. 너 이전에 신고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 세상은 너만 억울한 일 당하는 게 아냐. 억울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다고. 그 사람들의 억울함도 풀어줘야겠지?"

  아이가 그의 다리를 잡은 손이 파르르 떨렸다. 떨림이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윽고 아이가 곧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그래도 지금, 아니 조금 전에 사람이 죽었다니까. 사람이 죽었어. 우리 엄마가... 우리 엄마가 죽었다고. 눈을 뜨질 않아. 움직이지도 않아. 이젠... 다신 못 봐."

  끝내 울음을 터뜨리진 않았다. 그는 큰 고민에 빠졌다. 사실 같이 가 줄 만한 시간은 있었다. 그러나 꼬마애 신고 하나에 움직일 만큼 그가 순수하진 않았다. 가 줄 만한 시간은 있었지만 가 주기에 넉넉한 시간은 아니었다. 실로 오랜만에 주어진 쉬는 시간 비스무리 한 거였다. 그래, 쉬고 싶었다. 왜 많고 많은 경찰들 중에 날 찾아와 가지고 갈등을 하게 만드는 건가 싶었다. 귀찮다. 그래, 귀찮았다. 그는 감정에 솔직해지기로 했다.

  "그래, 알겠어. 너네 어머니가 돌아가셨단 건 알겠어. 그럼 하나만 더 물어보자."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 몇 살이야."

  "8살."

  8살 짜리 상상치곤 꽤나 흉측했다. 그는 더러운 기분과 약간의 불쾌함을 가래와 함께 삭혀내더니 길바닥에 뱉었다.

  "8살. 그래, 좋아. 아저씨가 약속할게."

  아이에게 새끼 손가락을 내밀었다. 아이가 손가락을 걸었다.

  "집에 가서 기다리고 있어. 아저씨가 곧 달려갈게."

  "정말?"

  "정말."

  "경찰차 타고?"

  "어."

  "...진짜로?"

  "무조건."

  아이가 방긋방긋 웃었다. 역시 거짓말이었나 보다. 이제야 꼬맹이같은 면을 보여주는 아이를 바라보며 그도 지긋이 웃었다.

  "얼른 돌아가. 금방 갈게."

  "좋아. 약속."

  아이는 총총거리며 달려갔고 그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더니 연기와 함께 꼬맹이 한 명을 마음 속에서 멀리멀리 날려버렸다. 이내 연기는 사라져버렸다.

  그런 일도 있었지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와 달라진 건 별로 없다. 그는 지금도 흡연량이 늘어났으면 늘어났지, 결코 줄어들진 않았다. 지금은 꽤나 입지를 다졌고 범죄를 보는 눈이 크게 커졌다는 것 말곤 달라진 게 없었다. 12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의 정신은 한결 같았다. 언제나 정의만을 보며 달려왔다. 사회에서 범죄의 추방을 목표로. 억울하게 죽어간 이가 한 명도 없도록. 죄의 책임을 물게 하기 위해 경찰이 된 그때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려온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팀은 검거율 100%를 목표로 했다. 그리고 꽤나 오랫동안 지켜왔다. 결국 깨져버렸지만 말이다. 강함을 목표로 한 그였기에 약한 자신을 마주할 때에 더욱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대한민국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을 제 탓으로 여겼다.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알아챘더라면, 내가 조금만 더 결단력이 있었다면, 내가 조금만 더 빨랐다면, 내가 조금만 더, 내가 조금만 더, 내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는 2년 전의 그 삭너 이후로 거의 강박 증세에 시달렸다. 그 전에도 범죄에 대한 혐오감과 배척감은 월등히 높았지만 비할 바 없이 서두르기만 했다. 요즘은 쉬는 법이 없었다. 숨 돌릴 틈도 없었다. 잠도 몇 시간 자지 않고 일에만 매달렸다. 사람들은 몸이 상한다고 쉬라고 했지만 그는 오히려 일을 쉬면 몸이 아팠다. 작동해야만 기름칠이 나는 기계같았다.

  재떨이에 담배가 꽤나 들어찼고 침이 들러붙어 있었다. 시계를 보니 뭘 했다고 슬슬 점심 시간이었다. 밥 먹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전화가 걸려왔다. 그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정석아?"

 

  ****

 

  정석은 중얼거리면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밥을 혼자 먹는 건 질색이었다. 끼니도 웬만해선 때우지 않고 제대로 챙겨먹었다. 연락처를 살펴보니 마땅한 사람은 동갑내기이자 친한 동료인 박현밖에 없었다. 사실 더 찾아보기도 귀찮았다. 벨소리가 두어 번 울리고 나서 박현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정석아?"

  "응."

  "조사는 끝났어?"

  "어. 밥 먹자."

  "좋지. 어디로 갈까?

  둘은 몇 십분 뒤 적당한 고기집으로 들어갔다. 박현은 반장의 직책을 맡고 있었지만 정석과는 사적인 자리에선 서로 이름으로 불렀다. 가끔씩 귀찮을 땐 공적인 자리에서도 이름을 부르기도 했다.

  "야, 뭐 좀 찾았어?"

  자리에 앉아 막 주문을 하고 난 뒤 박현이 물었따.

  "하아, 내가 이래서 너랑은 밥 안 먹을라 하는데. 밥 먹는 시간에도 일 애기를 하고 그러냐. 좀 분위기 가볍게 먹자."

  "하하, 미안하다."

  "한 잔 할래?"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물 말이다, 물. 새캬."

  물을 따라주고 몇 모금 들이키자 싱싱해보이는 고기들이 담겨 나왔다. 정석은 바로 집게를 잡았다.

  "너 못 굽잖냐."

  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현은 태우거나, 핏물이 뚝뚝 떨어지거나 둘 중 하나였다. 불판을 달구고 고기를 한 점 올려놓으며 정석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이번엔 좀 촉이 오십니까?"

  정석이 물었다.

  "아니, 전혀 모르겠어."

  "천하의 박현도 늙었구만."

  비꼴 의도가 없단 걸 알고 있었기에 둘 다 아주 가볍게 웃을 수 있었다.

  "넌 좀. 알 거 같냐? 아니, 뭐라도 발견한 게 있어?"

  "아쉽지만 땡~. 새로 발견한 건 없어요."

  "그러냐."

  박현이 쓸쓸하게 웃었다. 그걸 보고 정석이 미소를 지었다.

  "새로 발견한 건 없지만 그 안에서 발견한 건 있지."

  박현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참 순수한 사람이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어. 뭘 먼저 들을래?"

  "음... 나쁜 소식."

  산 위에서 먹는 초코바의 맛이 온 몸을 자극하듯 고난 뒤엔 일살의 작은 행복도 크게 다가오는 법이다. 그는 그렇기에 나쁜 소식을 선택했다. 후의 좋은 소식을 더 맛있게 들을 수 있을 테니까.

  "나쁜 소식이라, 꽤나 충격적일 텐데. 괜찮겠어?"

  "멘탈 약했으면 진작에 이 짓도 접었어."

  "오케이. 나쁜 소식은 말야. 정말 아무것도 없어."

  정석이 아무것도를 강조하며 말했다.

  "아무것도?"

  "응. 정말 아~무것도. 꽤나 힘든 싸움이 될 꺼야. 그리고 이건 내 개인적인 추측이긴 한데... 그 2년 전."

  "어, 그래."

  "응, 그 자식하고매우 유사해. 어쩌면 그 놈이 다시 움직이는 걸 수도 있어. 벽에 새겨놓던 메시지가 이젠 피해자의 몸으로 옮겨진 거지."

  "피해자의 몸? 끔찍하긴 했지."

  정석이 고기를 뒤집었다. 어느새 불판엔 남은 공간이 별로 없이 노릇노릇 연기가 올라가고 있었다.

  "만약 그 놈이 돌아온 거라면,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승산이 거의 없다고 봐."

  "인정하긴 싫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지."

  "더 성장해서 돌아왔어. 더 똑똑해졌고. 하지만 우리 팀은 그때 이후로 분열과 다툼의 연속이었지. 꽤나 봐 줄 만했어."

  "맞아. 그리고 내가 보기에도 그 자식이 돌아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고민을 참 많이 했어... 이 말을 해줘야 할지, 말지. 그래도 알아야 되는 건 알아야겠지."

  정석이 고기들을 적당한 크기들로 잘랐다. 잘 익은 것 같았다. 만족스러웠다. 둘은 서로 눈을 마주했다. 정석의 눈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박현은 알고 있었다. 항상 이 뒤에는 감당되지 않을 만한, 그러나 꼭 들어야만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을.

  "박현. 우린 그 자식을 절대 잡을 수 없어."

  "그렇겠지. 완벽하게 우릴 갖고 놀았으니까."

  "아니.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 부분이 아냐."

  "..."

  "우리 팀은 서로 갈라졌어. 팀원들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없는 팀은 제 힘들의 반도 낼 수 없어. 우린 그냥 바보짓만 한 거야. 그리고 또."

  정석이 다시 눈을 치켜세웠다.

  "더 이상 외면하지 마. 그건 팀원을 믿는 게 아니고 그저... 뭐랄까, 책임 회피. 그래, 책임 회피 같은 거고 겁쟁이 마냥 도망치는 거니까."

  박현은 말이 없었다. 그저 입술이 미세하고 떨리고 있을 뿐이었다. 팀에 배신자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밝혀지지 않은 그, 혹은 그녀도 어쩌면 지금은 팀에 최대한의 기여를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과거의 그림자가 다시 덮쳐올지도 모르니 이 애기를 하는 걸까. 박현은 고기 몇 점과 함께 상추에 쌈을 싸 먹었다.

  정석도 숟가락에 밥을 한 술 퍼 들고 말을 이었다.

  "뭐, 그래도 우리 팀이 유능하긴 한가 보더라고."

  "무슨 소리야?"

  "사실 그 자식 못 잡은 게 아냐."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박현을 쌓아왔던 반쪽이 날아가버리는 듯 했다. 뭐라고? 잘못 들은 건 아니었을까? 차라리 거짓말이었다고 해 줬으면 싶었다.

  박현은 식탁을 내리치며 몸을 일으켰다. 큰 소리가 났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큰 소리로 따지듯이 말했다.

  "뭐라고? 씨발! 지금 뭐라고 했어!"

  "야 이 미친... 일단 좀 앉아. 잡혀 갈 수도 있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정석이 연신 고개를 숙이면서 주위에 용서를 구했다. 대개 너그러운 마음으로 제 음식들에 눈을 돌려주었다. 박현이 물 한 잔을 들이키고 나서 숨을 몰아쉬었다. 조금 진정이 되자 정석이 입을 열었다.

  "그래, 진정이 좀 되?"

  "어."

  "들어도 되겠어? 힘들 텐데?"

  "말했잖아. 진작에 이 일 접었다고."

  "하하, 좋아좋아. 말한 대로야. 사실 그 자식을 못 잡은 게 아냐."

  "그럼 뭐야, 대체."

  "수갑을 채운 건 아니었지만 그 자식을 잡을 수 이쓴 모든 자료들을 확보한 뒤 cctv를 전부 뒤져봤어. 아, 오해할지 모르겠는데 모든 일은 단독으로 처리했고. 배신자가 있을 거란 게 확실해지자 아무도 믿을 수가 없더라고. 그렇게 뒤지고, 뒤지고, 뒤지고 나니 신원 확보가 완료됐어. 청테이프를 뗀, 날 것의 얼굴도 확인할 수 있었지. 조사를 막 마치고 나서 한 숨 잘까 했더니 서장이 날 부른다는 거야. 가 봤더니, 나보고 참 유능한 조사원이래. 짜증날 정도로 부러운 재능이라고도 하고."

  서장은 서 안에서 아이스 하트로 불렸다. 그만큼 아랫 사람에 대한 평가가 냉혹했고 유머감각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마냥 좋아서 싱글벙글 웃었지. 그러면서 별별 시덥잖은 애길 하며 나를 치켜세워주더라고. 좋았어, 아주 많이. 그딴 애길 하며 30분을 잡아먹었지. 내가 참 멍청했어. 말이 안 나올 정도야. 파일을 정리하지도 않고 컴퓨터를 잠궈놓지도 않고 나왔었거든. 그저 홈이라는 생각에 맘을 놓고 말이야. 뭐, 사실 컴퓨터를 잠궈놓았더라도 아무 쓸모없었겠지만. 30분 동안 일방적으로 칭찬을 듣고 나서 기분이 어떤지 알아? 하늘을 날 것 같더라고. 나이 마흔에 그렇게 주책맞게 뛰어간 것도 오랜만이었지. 돌아갔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나?"

  박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컴퓨터 본체가 사라져있었어. 어디 백업해 놓지도 않았었고 막 작업을 마친 참이어서 그 컴퓨터에밖에 저장되 있지 않았었는데. 결국 허탕쳤지."

  "그걸 가져나는 걸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

  "장난하나. 족히 5명은 있었지."

  "근데 왜 다시 찾아내지 못한 거야? 아니, 그리고 개들은 그걸 보고만 있었나?"

  "상부의 명령이라면서 가져간다 하길래 아무 말 못했다고 하더군. 한 명이 뭐라고 했다고 하던데 다음 주에 발령 났고."

  "그렇다면..."

  "맞아, 이 상황에 뭘 어떻게 하겠나? 작업이 끝나자마자 날 불렀다는 건 누가 해킹하고 있었다든가 cctv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든가. 둘 중 하나겠지. 혹시라도 접근 권한이 없는 곳에 백업해 둘 것을 대비해 아예 본체를 뜯어가버린 것 같아. 내 자리도 샅샅이 뒤졌었대. 아! 그리고 컴퓨터를 뜯어간 놈들이 일을 다마친 채비를 하고 전화를 걸었다는데 그 시간과 서장이 전화를 받은 시간이 같아. 전화를 끊고 한 5분쯤 뒤에 나보고 나가보라 하더라고. 칭찬만 20분째 듣던 때니까 기분은 좋았지만 뭔가 구린내가 나서 서장의 행동들을 주시하고 있었거든. 컴퓨터 뜯어간 놈들 본 애들도 마찬가지고. 의심스러워도 그렇게 의심스러울 수가 없잖아? 서로 전화를 건 시간을 체크해보고 내용도 이어붙여봤더니 그리 이상하지 않고. 자, 그럼 여기서 두 번째 팩트체크. 누가 연결돼 있다?"

  "서장."

  "그렇지. 난 당연히 서장한테 달려가서 말했어. 컴퓨터 뜯어간 거 당신 짓이냐, 미친 거 아니냐. 모든 정황이 확실했기에 말 가리지 않고 했어. 했는데, 서장이 당연히 부정하며 발 뺄줄 알았더니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더군. 그 모습에 더 짜증이 났어. 당신이 경찰이야! 크게 소리쳤더니 낄낄 웃더라고. 뭐가 그리 웃긴지 하마터면 몇대 칠 뻔 했어. 간신히 참았지. 서장이 갑자기 목소리를 내려깔더니 앉아보라고 하더라고. 분했지만 일단 앉았어. 무슨 애기를 할까 싶어서. 난 녹음기를 안 들고 간 걸 두고두고 후회해야 했지."

  박현이 귀를 곤두세웠다. 이미 식사는 뒷전이었다. 밥에서 피어오르던 연기는 기류에 맡겨져 흩날려 간 지 오래였다.

  "나보고 뭐라 했는지 알아? 이게 어디까지 연결돼 있는 일인 줄 아냐고 그러더라."

  "뭐라 했는데?"

  "모릅니다. 라고 했지. 흥분을 좀 가라앉힌 후 였으니까. 그랬더니 손가락을 세워서 위를 가리키는 거야. 남의 똥이나 닦아주고 있는 주제에 뭐가 그리 폼을 잡고 당당한지 모르겠더라고. 그렇지 않아?"

  둘은 피식 웃었다. 격하게 공감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러면서 경찰청장. 이러더라고. 기분이 드러웠어. 아니, 경찰청장이면 뭐 어쨋다고? 그 새끼는 우리나라의 국민이 아닌가? 그렇다면 지켜야 할 법이 있는 거고 책임이 있는 거잖아. 그치? 근데 마치 그러니까 손 떼. 이딴 투로 말하니까 더 짜증이 나는 거야. 마치 너 따위는 건드릴 수 없어. 이런 식으로. 오기가 생기더라. 그래서 어쩌라고요? 청장님은 지킬 법도 없답니까. 이랬더니 우리 팀을 싸 잡아 욕하더라고. 독종 새끼들만 모여 있다더니... 진짜 였구만. 이러면서. 잘라! 이 개새끼야. 자르라고! 이랬더니 우린 결코 자르지 않고 끝까지 간다더라. 그만한 가치가 있다면서. 그러더니 더 위에까지 연결돼 있다면서. 국회의원, 대기업 회장, 그리고 줄줄이 그 밑에 새끼들 목 줄 하나하나. 그러면서... 와, 나는 영화에서나 그런 일이 일어나는 줄 알았어. 내가 직접 겪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 그런 일, 큭큭. 뻔한 영화에서 뻔한 매수 행각의 한 장면처럼 봉투 하나를 꺼내더라고. 터질려했어. 하하하."

  정석이 물을 들이켰다. 두 눈에는 살짝 눈물이 고여있는 것 같았다.

  "재밌는 게 뭔줄 알아?"

  "뭔데?"

  "그 봉투를 앞에 두고 흔들렸다는 거야."

  "누구나 그럴 수 밖에."

  갑자기 고기들이 역하게 느껴졌다. 인육같이만 보였다. 인간의 본성 속으로 걸어들어갈수록 느껴지는 역한 오감들. 냄새, 맛, 소리, 촉감, 풍경, 모든 것들. 그것들은 결코 보고 싶지 않지만 불쑥불쑥 삶의 한가운데로 튀어 나온다. 그리고 사람들은 신기루 속에 젖어있던 가식의 가면들을 벗어 던지고 끔찍한 부도덕의 썩은 내를 한껏 들이마신다. 안의 모든 것이 뒤틀리는 것 같지만 그토록 강렬한 느낌은 더 강하게 다가와 손을 흔든다.

  정석이 담배갑을 꺼내들고 흔들었다. 둘은 밖으로 나갔다.

  "받진 않았어. 그렇기에 당당하게 혐의를 제기할 수 있었지. 근데 문에 손을 올렸을 때 서장이 그러더라. 제수 씨는 잘 지내냐고. 첫째가 벌써 고등학생이라며? 등등. 그러고 깔깔 웃는 거야. 현아, 씨발."

  정석이 담배 연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서장 새끼가 가족 사정을 알고 있는 애가 우리 서에 있긴 할까? 그 새끼들은 없던 죄라도 엮어서 우리 집을 아래로, 더 아래로 떨어뜨렸겠지. 아, 근데. 그래도 씨발!"

  정석이 연기를 몇 번 뱉어냈다. 담배 연기는 순식간에 흩날려 사라져갔다.

  "할 말은 하고 살아야 되지 않겠냐? 진짜 씨발. 하하."

  그가 건조하게 웃었다.

  "아들한테 그렇게 단단히 일러뒀던 말인데. 할 말은 하고 살라고. 키킥. 푸하하."

  어느새 그의 눈엔 눈물이 차올라 있었다.

  "웃기지 않냐? 난 남 똥 닦아주려고 경찰 된 게 아닌데. 내가 왜 경찰이 된 줄 알아? 쪽팔리게 살기 싫어서. 근데 그날은. 그냥 다 때려치우고 집에 들어갔어. 애들도 한 번씩 안아주고. 집사람하고 애기도 좀 하고. 훈장 비슷한 게 널려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역겹게 느껴지더라. 다 부셔버리고 싶은 거 간신히 참았어. 이게 결국 그 더러운 새끼들의 손때 묻은 거라고 생각하니 보기만 해도 토가 나올 것 같더라고. 실제로 토했어. 둘째가 뭐가 되고 싶어하는 줄 알아?"

  "대충 알 것 같네."

  "그래, 경찰! 씨발. 차마 하지 말라고는 말 못해주겠더라고. 하하."

  둘은 한 동안 아무 말 없이 담배만 피워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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