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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를 증오한 살인마
작가 : 훈재
작품등록일 : 2017.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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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때로 진실은 심하게 가혹한 것일 수도 있다(3)
작성일 : 17-12-18     조회 : 318     추천 : 0     분량 : 5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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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감탱이가 축 늘어지자 그는 작업을 개시했다. 1시간 가량 걸린 것 같다. 어제도 느낀 거고 2일 전, 3일 전에도 느낀 거지만 그는 자신의 예술 감각이 꽤나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안 그렇다면 어찌 이렇게 자연스러운 한 명의 인간이 만들어질 수 있겠는가. 그는 한 명의 인간을 잠재운 뒤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가르고, 가르고, 가르고. 모든 일이 끝나고 나자 그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법적으로 성인의 나이였기에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 개비, 두 개비, 세 개비, 네 개비. 아직은 초짜 흡연가였기에 여기까지만 피고 그만 피기로 했다.

  그는 죽은 영감탱이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아버지의 시체. 아버지의 까칠한 살결의 감촉. 아버지의 붉은 피가 바닥을 적셨고 그의 유년기는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아버지는 올해로 44살 이었다. 그는 3일 전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다.

 

  ***

 

  그는 말하자면 천재다. 신이 선택한 인간이다. 그의 두뇌는 항상 치밀하게 돌아갔고 감정에 휘둘리는 한낱 나약한 인간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에도 침착했고 이성을 잃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걸어갔다. 10시 경 지하철에서 내렸다. 그리고 택시를 잡아탔다. 10시 반. 그는 아버지의 집 앞에 도착했다. 은마 아파트. 마음 속으로 그리고 그리고 또 그렸던, 찾고 찾고 찾았던 그곳이었다. 별 문제 없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태연하게 복도를 걸어갔다. 엘리베이터 앞에 멈춰 섰다. 위를 향하고 있는 버튼을 눌렀다. 곧이어 10층에서 내려온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그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혔다.

  그는 16층을 눌렀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그동안 자신이 무엇 때문에 살아왔는지 생각했다. 12년. 자그마치 12년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쉬지 않고 오로지 곧 있을 그 순간만을 위해 살아왔다. 13년 전 까지만 해도 그는 그냥 평범한 한 명의 인간으로서 지구에 한 번 들렀다가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질 그저 그런 아이였다. 하지만 1년 뒤의 그 사건이 그를 송두리째 바꿔 버렸다. 작게는 그라는 인간 한 명의 근본을 뒤흔들었으며 크게는 나라 전체를 흔들리게 하였다. 13년 전, 그는 인생을 제대로 살지도 않았다. 그저 그렇게. 남들 하는 만큼만 살아가면서 남들 하는 만큼만 흉내내면서. 특별히 눈에 띄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은 다들 자기 좀 봐달라는 듯, 자기에게 관심 좀 달라는 듯 행동했지만 그는 그런 녀석들이 역겹고 바보같아서 견딜 수 가 없었다. 왜 그렇게 자기에게만 집중하라는 건지, 어찌 저렇게 이기적인지 싶었다. 아, 이 따위 생각을 하진 않았다. 그냥 여기서는 그 녀석들이 바보같아 보였다는 점에만 주목하자. 그는 그런 녀석들을 싫어했다. 남의 눈에 띄려 하고, 자신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자기만 봤으면 하는. 신기한 건 그는 그런 성향이 어린아이에게만 나타나는 줄 알았지만 8살 때 만난 처음이자 마지막의 선생님은 그 편견을 깨 주었다. 그 늙은 바보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상당히 권위주의적이었고 역겨운 놈의 표본이었다. 아니, 역겹다기보단 찌질하다는 말이 더 맞겠다.

  그래도 하나 칭찬해보자면 그땐 잘 몰랐지만 그 늙은 바보가 이제 와서 생각해보자면 바보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멍청이 중에 멍청이인 건 확실했다. 그저 지식적인 면에서 바보는 아니었지만 한 명의 인간 대 인간으로 바라보았을 때 철천지 구제불능 멍청이 인 건 보장할 수 있었다. 뭐, 다 지난 일이지만 말이다. 그 늙은 바보는 주제도 모르고 그에게 덤벼들었고 그는 그날 늙은 바보를 확실하게 짓밟아주었다. 늙은 바보는 그 충격으로 그 해까지만 선생짓을 해 먹고 나가버렸다. 반의 아이들은 그날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하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이겼고, 늙은 바보가 졌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모두가 한 목소리로 바보, 바보 외쳐댔다. 늙은 바보의 망토 뒤에 숨어있던 가녀린 아이가 기어 나왔고, 그 아이는 추위에 떨어 쓰러져 버렸다. 늙은 바보는 그날 교실 문을 박차고 뛰쳐 나갔다. 그 뒤 1시간 정도 있다가 돌아왔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수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그 누가 보지 못했으리. 수업 내내 떨리던 늙은 바보의 손가락과 미세한 몸뚱어리까지. 그 누가 듣지 못 했으리. 쩍쩍 갈라지던 늙은 바보의 쉰내 나는 목소리를. 곧 있으면 울음을 터뜨릴 아이의 목소리 같았다. 반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고 깔깔 웃어댔고, 늙은 바보는 모든 비난을 받아가며 수업을 진행했다. 달게 받았다는 건 아니다. 망토 뒤에 숨어있던 그 아이는 추위에 떨며 죽어갔다.

  운명이 뒤바뀌어 버린 그날. 어머니는 그의 앞에서 죽어 갔다. 그는 아이였다. 그냥 평범한 아이. 남의 눈에 띄려 하지 않고, 그저 남들 하는 만큼만 했던. 하지만 그날. 그날이 그라는 인간을 근본의 뿌리부터 뒤흔들었다.

  "엄마, 엄마는 왜 아빠를 신고 안하는 거야? 전에 선생님이 경찰 아저씨와 사회 복지 시스템에 대해서 애기 해 주셨는데 이런 상황은 그때 애기랑 똑같아. 엄마는 보호받을 수 있고 아빠를 처벌받게 할 수 있어. 또 내가 제일 이해가 안 되는 건 왜 그렇게 꼬박꼬박 맞고도 매일매일 아빠한테 돈을 내 주고. 또 바보처럼 웃어주면서 아프지 말라고 나갈 때마다 손 흔들어주고. 그래서 괜히 또 맞고. 왜 그래? 도대체? 엄마는 바보야?"

  하루는 그가 어머니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뭐, 항상 어머니와는 진지한 대화를 나눴지만. 그는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신고를 권장했고 어머니는 터진 입술로 힘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오른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팔소매가 살짝 걷어졌고 팔 한군데에도 빠짐없이 피멍이 드러났다. 그는 눈을 감았다. 끔찍해서 볼 수가 없었다. 그 팔이 다시 그의 눈 앞에 떠올랐다. 그는 더 눈을 질끈 감았다. 어머니가 말했다.

  "우리 아들 똑똑하네. 그런 게 무슨 말인지도 알아먹고. 엄마가 잘 못해줘서 미안해. 엄마가 아빠한테 그렇게 맞으면서도 매일 돈 주고 아프지 말라고 하는 이유는 아빠를 믿기 때문이야. 그날, 엄마 손에 반지를 끼워 줄 때, 엄마 배 위에 손을 올려놓았을 때, 그 감각, 온도, 손의 주름하나하나 엄마는 기억하고 있어. 엄마는 결코 잊지 않아. 그날의 아빠를. 그 눈빛을 어떻게 잊어. 절대 못 잊지. 그리고 믿어. 아빠가 다시 열심히 노력해서 남들 다 부러워하는 직장에 취직해서 우리가족 다 먹여 살릴 거 라는 걸. 엄마는 믿고 있어.”

  개소리. 그는 말을 삼켰다. 정말, 정말로 개소리였다. 저 따위 인간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그는 가슴 깊이 부정하는 것과 동시에 어둡고 끈적한 증오를 드러냈다. 저 따위 인간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그는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믿기 싫었다. 인정할 수 없었다. 가끔씩 아버지가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라고 할 때마다 그는 마음속으로 무릎을 꿇고 싹싹 빌었다. 제발 그랬으면 하고.

  그의 어머니는 인간 대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없는 한 명의 위대한 여신이었다. 그녀는 죽어가는 순간에도 자신을 죽인 사람을 걱정하며 용서하였다.

  "우리 아들, 약속 하나만 해줄 수 있어?"

  "응, 응."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친듯이 끄덕였다.

  "이 약속, 꼭 지키겠다고 말해줄 수 있어? 엄마가 죽고 난 뒤에도.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킬 거지?"

  "응, 응."

  "그래? 약속 한거다? 엄마 죽고나면 아빠가 하란 대로 해."

  "뭐?"

  "무슨 일이든지 간에 아빠가 하란 대로 하라고."

  "무슨...!"

  "아들..."

  그때, 그녀의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어... 어마가... 시간이 이제 없어. 빨리 약속해 줘. 제발..."

  켁켁거리는 그녀의 기침소리가 그의 귓구멍을 찢었다.

  "알겠어..."

  그때, 이미 흘러내리고 있던 눈물은 더, 더 미친듯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하나 더. 앞으론 무슨 일이 있어도 울지 마. 더 강해져야 해. 더, 더 강해져야 해."

  "미안... 미안해. 오늘만, 오늘만. 오늘까지만."

  그가 목을 놓아 울었다. 말이 또렷한 형태로 나오질 않았다. 중간중간 끊기는 단어와 단어 사이의 공백은 메꿀 수 없이 커져갔다. 그녀가 힘없이 웃었다.

  "아들, 씩씩하네. 잘 살아야 해."

  마지막으로 장렬하게 토해낸 그녀의 피는 천장에까지 흔적을 남겼다. 그는 그날 슬픔에 잠겼고 오늘을 결코 잊을 수 없었으나 어머니와의 약속 또한 어길 수 없었다.

  그리고 미안하게도 그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이미 한 번 어겼고 또 한 번 어길 예정이었다. 16.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그는 열린 문 틈 사이로 새어 나왔고 아버지의 집 문을 열었다. 비밀번호는 알고 있었다. 왜냐고? 그는 천재니까. 집을 둘러보고 서랍에 있는 자료들도 몇 번 꺼내 들었다. 그의 얼굴이 구겨졌다.

  마침내 핸드폰이 없는 그는 아버지의 집 전화를 꺼내 들었다. 혼자 살면서 웬 집전화? 라고 생각하며 그는 아버지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낮은 전화벨 소리가 서너 번 울렸다. 마침내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아, 맙소사. 이 목소리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항상 이성의 가면을 쓰고 살아왔던 그가 조금이나마 인간으로 변하려 한 순간이었다.

  "아빠."

  아아, 너니?

  아버지 또한 감격에 겨운 목소리였다. 조금은 들뜬 듯, 조금은 기쁜 듯, 조금은 슬픈 듯, 조금은 못 믿겠다는 듯. 세상에서 가장 가여운 남자 두 명의 통화였다.

  얼마나 찾았는데. 대체 그 동안 어디 있었던 거야.

  "고아원."

  뭐? 힘들진 않았어?

  "어."

  그래, 그래. 무슨 일로 전화한 거야?

  "지금 아빠 집 안이야."

  아, 그래?

  "성매매 자료들 다 봤어."

  하하, 그래?

  "미친 새끼."

  푸하하, 너무 심한 거 아냐? 그래도 오랜만이잖아.

  "12년."

  그래, 몇 년 만인데.

  "여전히 쓰레기네."

  이런, 말 조심 좀 해줘. 마음이 아프잖아.

  "거래 목록부터 납품해 주는 새끼들까지. 그 자료들을 몽땅 나무 가구 서랍에. 이렇게 보안이 허술해도 되?"

  괜찮아, 안전하거든. 나 꽤나 성실하게 살아. 남들 보기에 딱 부러울 정도?

  "경찰?"

  맞아, 전에 얽혔던 애가 한 명 있거든. 여태까지도 쓰고 있어. 아주 착실하다고! 일처리도 확실하고.

  "성매매는 성매맨데..."

  응, 좀 어리지... 나도 창피하긴 한데. 그래도 어쩔 수 없단다. 요즘은. 세상살이라는 게 그렇잖니? 너도 확실하게 알고 있을 텐데? 이거 하나는.

  "이런 건 소비자의 문제인 거야. 판매자의 문제인 거야?"

  글쎄, 그래도 수요가 있기에 공급이 있는 거겠지, 뭐. 나한테 너무 어려운 거 물어보지 마렴.

  "어디쯤 왔어."

  어, 지금 거의 다 왔어.

  주차장에 들어서는 것 같았다.

  "와, 씨발."

  왜? 무슨 일 있어?

  "이거 납품해 주는 새끼들에 우리 고아원도 껴 있는데. 에덴 고아원."

  헐, 와. 아! 기억 나. 기억 나. 그 영감님. 큭큭. 밝은 얼굴에 어쩜 그리 말을 잘하는지. 정말 나도 입장 구별을 잘못할 뻔 했다니까.

  "거길 가 봤어?"

  당연하지. 거래를 트려면 만나야 될 거 아냐.

  "20대 여자. 봤어?"

  어? 어... 음, 아! 봤다.

  그에게 감성을 부여하는 오직 한 사람. 그녀였다.

  "거기랑 거래 끊으라면 어쩔 거야?"

  아무리 너라도 그건 어쩔 수가 없단다. 우리 물량 35% 정도를 차지하고 있어. 미안하구나.

  엘리베이터에 들어서는 것 같았다.

  "거의 다 왔나 보네."

  어, 그치. 기대되는구나.

  "거래 끊어."

  왜, 소중한 사람이라도 있니?

  "어."

  아... 그렇구나. 그래, 고민해 볼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에서 걸어나온 그가 자신의 집 도어락을 풀었다. 그의 집 문이 열렸다. 여전히 그는 전화기를 귀에서 떼지 않았다.

  "안녕, 아빠."

  그래, 안녕. 잘 지내-

  뚝, 전화가 끊겼다. 그가 문을 닫았다. 그와 아버지는 눈을 마주했다.

  "잘 지냈어?"

  응. 너는?

  "난 별로. 당신 때문에."

  12년 간 갈아왔던 칼날이 그의 눈가에서 번뜩였다. 창 밖으론 유달리 밤공기가 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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