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질퍽질퍽해.. "
연습장에 발을 디딘 반 아이들은 신발에 뭍어나는 질퍽이는 진흙을 보고 궁시렁거리기 시작했다.
" 자자, 인원체크는 다됬으니 이제 연습을 해도 좋아요. "
모두가 질퍽이는 땅을 밟고 표정을 찌푸리고 있을 때 단 한사람, 선생님은 너무도 밝게 웃으며 말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런 선생님을 그닥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하는 듯 했지만, 궁시렁거리면서도 연습을 위해 하나 둘씩 자리를 잡았다.
" ...야, 뭘 그렇게 멀뚱히 서있어. "
그렇게 비가 많이 내린다는 악조건에도 하나 둘씩 웃으며 연습을 시작하는 반 아이들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던 세이렌은 뒤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 가만히 있으면 또 감기걸릴거 아니야. 빨리 와. "
여전히 그의 말투는 평소와 다르게 장난기 하나 없는 차가운 목소리였지만, 말걸기를 고민하고 있던 그녀는 먼저 말을 걸어준 아르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아르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 그.. 그날일 말이야.. 그땐 너가 구해준 것도 모르고 미안하고 카일이랑 파트너하고 싶다 했던건 말이ㅇ... "
" 그일에 대해선 이제 됐으니까 더이상 꺼내지마. 연습이나 하자. "
그는 자신에게 다가와 평소처럼 당당히 대드는 듯이 말하는 것이 아닌 작은 목소리로 자신을 무서워하듯 말하는 그녀의 말을 차마 다 들어보지도 않은채 연습을 핑계로 화제를 전환하였다.
" 아.. 으응.. "
역시 저렇게까지 행동하는 걸 보면 화가 많이 난 걸까. 그녀는 너무도 단호하게 말을 끊어버리며 말하는 그를 보며 끄덕였다.
" 세이렌 너, 이제 어느정도 기본적인 마법들은 가능한거지? "
" 아.. 응! 아제 왠만한 것들은 가능해..! "
그녀는 더이상 꼬맹이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을 부르는 그를 보고 흠칫 놀라며 말을 이어갔다.
" 그럼 먼저 해봐. 너 며칠동안 쉬느라 연습 안했잖아. "
표적 앞에 서있던 그는 표적 앞에서 몇걸음 물러나며 말했다.
" 응, 알았어. "
저번과는 다르게 이젠 잘할 수 있다는 듯 젖은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며 표적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앞에 당당히 서보였다.
" 세이렌 펠디아의 이름으로 명하노... 응.. ? "
그렇게 당당히 표적을 향해 손을 뻗어 마법주문을 영창하려던 그녀는 갑자기 손을 내리더니 주문 영창을 멈추었다.
" ... 왜 멈춰. "
평소같으면 바보같이 그거 하나 못하냐며 비웃었을 그는 그녀를 싸늘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 ... 아니 그게.. 마력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아.. "
" .... 뭐? "
그는 되돌아오는 꽤 충격적인 말에 그녀를 쳐다보며 되물었다.
" .... 마력이 하나도, 정말 하나도 안느껴져.. "
그녀는 본인도 놀란듯 자신의 손과 그를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 그게 지금 말이라고 하는거냐..? "
그는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정색하며 물었다.
" 중간점검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고 하는 말이지? 내가 너였으면 적어도 그렇게 멀뚱이 서있진 않았을텐데? "
오늘의 그는 무언가에 쫒기는 듯 여유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 ..너 무슨일 있었어.. ? "
오늘 하루 그가 보이는 행동들에서 이상함을 느낀 그녀는 그의 말이 끝나고 한참 뒤에 조심히 물었다.
" ...아니. 그런거 있을리가 없잖아. 너는 지금 나한테 신경쓸 시간 같은거 없을텐데? "
" ... "
조금도 여유를 두지 않고 꾸짖어오는 그에게 그녀는 아무말도 하지 못한채 시선을 질척해진 땅으로 떨어뜨렸다.
" 너가 잘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빨리 어떻게든 하는게 어때. 콜록.. "
그는 역시 몸의 상태가 좋지 않은 듯 작게 기침을 하며 말했다. 세이렌은 그런 그가 걱정되 가까이 다가갔지만,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자마자 그는 고개를 돌려 피했다.
" 오지마. 얼른 연습해. "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젖은 옷소매를 걷어올리며 자신도 연습하기 위해 옆으로 자리를 피했다.
그렇게 둘 사이의 갈등은 추적추적 내리고 있는 비처럼 젖어들어 점점 깊어져만 갔다.
***
그날 방과후, 거의 늦은 밤에 가까운 시간.
그녀는 교복에서 편안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창 밖을 바라보았다.
" 아직 비가 많이오네.. 조금 불편해도 개인연습실이 좋으려나.. "
창 밖으로 여전히 쏟아지듯 내리는 비를 본 그녀는 우산 하나를 집어들었다.
" 더 늦기 전에 가야지..! "
역시 아까 아르에게서 들은 말이 신경쓰였던 그녀는 우산을 펼치고 서둘러 연습실로 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 ....뭐.. 왜 안열려 있는.. 응? 사감 선생님 개인 사정으로 이번주는 잠궈둔다고..? "
왜 꼭 힘든 일은 한번에 몰아서 오는 건지. 그녀는 개인연습실 문 앞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 이러면.. 비 맞으면서 해야할까.. 으아아아.. "
그녀는 머리가 복잡한 듯 자신의 머리를 잔뜩 헝클이며 혼자 문 앞에서 중얼거렸다.
" 아르랑은 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오... "
그렇게 한참을 주저앉아 고민하던 그녀는 무언가 떠오른 듯 벌떡 일어섰다.
" 랜디 선배...! 지금 별을 보고 계실지도.. 고민이 있으면 언제든 와도 된다 하셨으니까.. "
그녀는 일어나 다시 우산을 펼쳐 천문학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역시나 그녀의 예상대로 천문학실에서는 랜디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랜디의 목소리를 들은 세이렌은 살며시 천문학실 문을 열었다.
" 응? 세이렌이잖아. 이 시간엔 동아리 때문에 온건 아닐테고 무슨일이야? "
망원경으로 별을 보고 있던 그는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는 금발의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며 들어온 세이렌을 반겨주었다. 역시 언제 들어도 다정한 저 말투는 누구든 언제나 의지하고 싶게 만든다.
" 아.. 저 랜디 선배, 저번에 상담전문이라 하셨었죠... ? "
그녀는 비에 젖어 물이 떨어지는 우산을 문 옆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 아, 정말 와줬구나. 그래 그래서 고민이 뭔데? "
그는 자신의 옆으로 의자 하나를 당겨놓고 앉으라는 듯 톡톡 두드렸다.
" 아, 잠시만 기다려봐. 추울텐데 따듯한거라도 줄게. "
세이렌이 의자에 앉자 랜디는 센스있게 따듯한 차를 끓여 세이렌에게 건넸다.
" 자, 그래서 무슨 고민이 있어서 이 시간에 여기까지 오셨을까요? "
랜디는 자신이 건넨 차를 받아 손으로 감싸쥐고 있는 세이렌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 아.. 그게.. "
세이렌은 그에게 여태까지 겪어온 일들 그날 천문학실에 갇혀있던 이유부터 시작해서 창고에서 있었던 일 그리고 제일 고민이었던 아르와의 문제까지 꽤 긴시간에 걸쳐 털어놓았다. 물론 이를 들은 랜디의 표젇은 썩 좋지 않았다.
" ...혼자서 많이 힘들었겠네. "
세이렌이 말을 끝내자 그는 큰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무도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듯함에 세이렌은 눈물이 나올것 같았지만,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울음을 참아내고 있었다.
" 그럼 지금은 아르와의 관계가 제일 고민인거지? "
랜디는 쓰다듬던 손을 내리고 다정하게 묻자 세이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 아르가 그렇게 화가 난 이유가 뭘지는 생각해 본거야? "
" 음.. 제가 카일이랑 파트너하고 싶다한것도 있고,, 또 구해준 은혜도 모르고 카일한테 안겨서 울어버렸으니까요.. ? "
세이렌은 랜디의 말을 듣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 흐음~ 그 이유도 틀린건 아닌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엔 다른 이유가 있는 거 같은데? 그 이유로 그렇게까지 화낼 아이는 아니잖아, 만약 너한테 정이 떨어진거라면 당장 파트너부터 끊으려 하지않았을까 싶은데. "
그녀는 그의 말을 듣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면 그도 그럴것이 아르에게는 같이 파트너를 하자고 달려들 아이들이 줄을 서고도 남을 아이였기 때문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랑 같이 연습도 하려는 생각이 있다는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 아닐까? 평소에 그렇게 팔팔하던 애가 그렇게 얼굴이 초췌해졌다면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 적어도 내가 본 아르는 그래. "
" ...하긴 선배말도 틀린 것 같진 않네요.. "
정말 그가 한말은 일리가 있었다. 뭔가 숨기는 듯 해보이기도 했었으니까.
" 그럼 내일 된다면 그 이유를 물어보고 같이 해결해 보는건 어때. 타이틀상 파트너니까 말이야? "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빈 컵을 정리하며 말했다.
" ... 그러는게 좋을거 같아요..! 랜디 선배 진짜 상담 잘하네요.. "
" 그치? 앞으로도 자주와도 되니까 언제든 와. "
그녀에게 오늘 그가 해준 상담은 이젠 만날 수 없는 유리아와 다시 대화하는 것만 같은 너무나도 다정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대화한 둘은 그제서야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계의 바늘이 향하고 있는 곳은 숫자 12. 어느새 자정이 넘어가고 있던 시간이었다.
" 아.. 제가 너무 늦게까지 선배를 붙잡고 있던거 같네요.. 죄송해요..! 이제 그만 가볼게요! "
시계를 본 그녀는 허둥지둥 벗어둔 겉옷을 챙겨입고, 우산을 다시 집어들었다.
" 아, 그렇게 서두를 거 없어. 나도 평소에 이 시간까지 별보는 날 많으니까! 늦었으니까 괜찮다면 데려다줄게. "
랜디는 그렇게 말하며, 짐을 가방에 정리해 넣고 옷걸이에 걸어둔 겉옷을 챙겨입었다. 그리곤 세이렌의 우산 옆에 있던 우산을 집어들었다.
" 이제 갈까? "
그는 천문학실에 불을 끄며 말했다.
" 네! 이제 가요 선배! "
어두워서 잘 모이지 않았지만, 은은하게 들어오는 달빛 틈에서 그녀의 환한 웃음만큼은 랜디에게 선명하게 보였다.
" 웃으니까, 귀엽네 "
랜디는 어느새 자신의 옆으로 총총 뛰어온 세이렌의 머리를 살짝 헝클이며 쓰다듬었다.
" ㄴ.. 네.. ? "
" 아니야, 늦었으니까 얼른 가자. "
귀엽다는 말에 당황한듯 그를 쳐다본 세이렌이지만, 랜디는 그 마저도 귀엽다는 쿡쿡 웃고 있었다.
그렇게 둘이 나란히 우산을 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기숙사로 돌아가기위해 야외연습장 쪽을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꽤 늦은 시간인데다가 비까지 많이 내려 멀리서 누군지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분명 누군가가 무리하는 듯 비틀거리며 연습하고 있었다.
" ..선배, 저기.. "
그녀는 놀란 듯 야외연습장 쪽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가 손으로 가리키며 말하자 곧 그도 고개를 돌려 손이 가리키고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 멀어서 잘 안보이지만.. 쟤는 분명.. "
[ To be contin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