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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벨린의 노래
작가 : 아리움
작품등록일 : 2017.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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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거절과 설득(3)
작성일 : 17-11-08     조회 : 256     추천 : 0     분량 : 5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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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화 거절과 설득(3)

 

 게른은 오늘 이 마차를 세 번이나 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진은 뭐가 그리도 신나는지 창문을 덮어 놓은 천을 살짝 들춰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 콧노래마저도 엉망이어서 게른은 실없이 웃었다.

 

 “뭐가 그렇게 웃겨?”

 “저보단 진님이 더 즐거워 보이시는데요.”

 “당연하지 궁전을 나가니까.”

 

 진은 심각해 보이는 게른의 표정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얼굴 좀 펴. 분위기 가라앉으니까.”

 

 게른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이마에 주름이 늘어가는 기분이었다. 해가 어둑어둑 지고 있었다. 시종장이 진을 찾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는 식사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서 항상 5분 전에 진을 데리러 왔다. 아침과 점심은 게른이 직접 진에게 전달했기에 시종장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저녁뿐이었다. 저녁에 진을 데리러 오는 게 시종장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오늘은 그 즐거움을 이루지 못해 실망하며 잠자리에 들 것이다.

 도착했는지 마차가 천천히 멈췄다. 게른은 먼저 나가 주변을 살폈다. 진은 잠깐 마차에 있으라는 게른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차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공기만 마셔도 상쾌해. 밖이 최고야.”

 

 진은 요란하게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그의 후드가 살짝 흘러내렸다. 게른이 놀라며 그의 머리를 감쌌다. 진이 발버둥 치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게른이 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제발 가만히 좀 있으세요.”

 “가만히 있었는데 지금 자네가 날 괴롭히고 있잖아.”

 

 진이 더 격렬하게 움직이자 게른이 손을 뗐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후드를 다시 뒤집어쓰고 게른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정말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이렇게 한결같기도 어렵다고 게른은 생각했다.

 진은 익숙한 듯 여관으로 들어갔다. 저녁 식사가 한창때라 식당은 꽉 차 있었다. 게른이 제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를 본 제스가 험악한 얼굴을 하고는 바 안쪽에서 나와 천천히 게른에게 다가왔다. 그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여관이 울리는 듯했다. 뭔가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너 유리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무슨 짓? 그녀가 너한테 뭐라고 했지?”

 

 제스가 주먹을 꽉 쥐며 들어 올리자 게른이 그의 팔을 두 손으로 붙잡으며 말했다.

 

 “저녁을 안 먹는다잖아!”

 “그런 사소한 이유로 날 때리려 드는 거야?”

 

 제스는 게른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팔이 힘을 주었다. 이대로 갔다간 정말 저 주먹에 맞을 게 분명했다. 진은 흥미롭다는 듯 문가에 기대어 웃고 있었다.

 

 “오늘 애들 레슨도 안 했단 말이지. 유리나가 그런 건 몇 달 만에 처음이야.”

 “흠 좋은 선생이 아닌데? 기분이 안 좋다고 레슨을 취소하다니.”

 

 기분을 안 좋게 한 원인이 자신이라는 걸 모르는지. 진의 말에 제스가 천천히 그를 향해 다가갔다.

 

 “당신은 누군데 그런 말을 하지?”

 “분홍색 원피스, 여전하네. 제로스.”

 

 제스의 본명을 알고 있는 건 진과 게른 뿐이었다. 자신의 본명을 들은 제스는 조금 당황한 듯 보였지만, 이내 후드를 살짝 들춰보고는 환하게 웃으며 진의 등을 세게 내리쳤다.

 

 “이게 몇 년 만이야.”

 

 제스의 손이 진의 등을 내리칠 때마다 진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반가운 건 이제 알겠으니 그만 때려. 감정이 좀 실린 것 같은데?”

 “당연하지. 이 사람아. 어떻게 한 번을 오지 않을 수가 있나?”

 

 제스가 진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얼굴을 잔뜩 찌푸린 진은 머리를 조심스레 정돈하며 말했다.

 

 “유리나는 어디 있지?”

 “네가 그녀를 왜 찾아?”

 “내 선생님이니까.”

 

 게른은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었다. 제스는 무슨 일인지 이해하지 못한 듯 게른과 진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

 

 “유리나, 저녁 먹으러 내려와.”

 

 제스였다. 저녁을 먹지 않겠다고 한 것 같은데, 제스는 고집이 센 사람이었다. 유리나는 온종일 누워있고 싶었다. 질리지 않겠지만, 질리도록 말이다. 유리나가 대답하지 않자 제스가 문을 두들겼다. 어떻게든 깨울 참인가 보다.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켜 문으로 향했다. 문밖이 조금 소란스러웠지만, 옆 방 사람이 지나가고 있겠거니 하며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바로 닫았다.

 

 “유리나 문 좀 열어봐.”

 

 밖에는 제스와 게른 그리고 황제가 있었다. 게른은 그렇다 쳐도 황제는? 꿈이다. 꿈이라기엔 심장이 너무 생생하게 뛰고 있었다. 다시 잠들어야겠어. 유리나가 침대로 향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자 밖이 조용해졌다. 역시 꿈인 거야.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을 때 제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애들은 보내고 나 혼자 있으니까 잠깐 나와 봐 유리나.”

 

 애들? 게른과 황제를 말하는 건가? 제스가 게른과 친구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황제와도 가까운 사이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아는 사이지? 제스의 간절한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유리나는 다시 일어나 문을 살짝 열었다. 제스의 얼굴이 문틈으로 보였다.

 

 “놀랐어?”

 

 유리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제스의 얼굴에 미안함이 가득해졌다.

 

 “혼자 가서 데리고 오겠다니까 기어코 올라와서 네가 사는 곳이 어떤지 보고 싶다고 해서.”

 

 제스가 아래충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게 왜 궁금한 거지 싶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들이 왜 왔느냐는 거였다.

 

 “그래서 왜 온 거래요?”

 “그건 나도 모르겠어. 저녁을 먹으러 왔다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잖아.”

 

 제스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유리나는 머리가 아파져 이마를 짚었다.

 

 “내가 돌려보낼게. 아 그리고 저녁밥은 방으로 가져다줄게. 지금은 내려오지 않는 게 좋겠어.”

 

 유리나에게 저녁밥을 먹이는 걸 절대 포기하지 않을 그였다. 유리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제스가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그가 1층으로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유리나는 문에 잠깐 기대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당황스러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문을 열까 하다가 잠깐 기다려보았다. 제스가 아닐 수도 있었다. 익숙한 목소리가 유리나를 불렀다.

 

 “선생님!”

 

 유리나가 노래를 가르치고 있는 제스의 아들, 레인이었다. 문을 열자 스튜 그릇을 들고 유리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레인이 서 있었다.

 

 “아빠가 선생님 가져다주라고 하셔서요.”

 

 유리나는 그릇을 조심스럽게 받아 탁자에 올려놓았다. 레인은 여전히 문 밖에서 그녀를 보고 있었다.

 

 “선생님 오늘은 왜 레슨 안 했어요?”

 

 레인은 조금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종소리처럼 맑은 레인의 목소리를 들으니 유리나는 기분이 좀 나아지는 듯했다. 유리나가 레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선생님 몸이 안 좋아서. 미안해 레인아.”

 

 레인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싶어 레인에게 물었다.

 

 “오늘 혹시 안 좋은 일 있었어? 선생님이랑 노래 못한 게 그렇게 슬펐던 거야?”

 

 레진이 고개를 젓고는 1층을 가리키며 말했다.

 

 “1층에 아빠 친구가 왔는데, 선생님을 데려갈거라고 해서요.”

 

 유리나는 놀랐지만, 레인을 달래려 침착하게 말했다.

 

 “선생님은 절대 여기서 안 떠날 거야. 걱정 하지마 레인아. 계속 여기서 레인이랑, 친구들이랑 노래할 거야.”

 

 그 말에 안심이 되었는지 환하게 웃어 보이며 유리나에게 매달렸다. 설득이 안 되니 이제 납이, 협박인가. 유리나의 기분이 급속도로 가라앉았다. 역시 한 번 노예는 영원한 노예라는 건가? 역시 귀족들은 다를 게 없었다.

 

 “선생님?”

 

 유리나가 가만히 있자 레인이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레인에게 환하게 웃어 보이며 아버지에게 잘 먹겠다는 말을 전해 달라 했다. 레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볍게 1층으로 내려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밥을 먹고 내려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유리나는 가지 않을 거야.”

 “왜지?”

 

 테이블에 엎드려 있던 진이 제스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어선지 얼굴에 그늘이 졌다.

 

 “귀족을 정말 싫어하거든. 나랑 똑같이.”

 “지금 눈앞에 있는 자네 친구도 귀족인데 말이지.”

 

 게른이 웃어 보이며 말했다. 진이 머리를 들어 올려 다시 물었다.

 

 “그게 여기를 떠나지 않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너희가 귀족이니까 같이 안 간다는 말이지. 또 궁전에는 온통 귀족뿐이잖아.”

 “보이지 않는 곳에는 귀족이 아닌 자도 많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유리나한테는 부담스러운 일이라고.”

 “어떻게 하면 그녀를 데려갈 수 있지?”

 “노래 선생을 구한다며, 왜 이제는 그녀를 데려가는 거로 목적이 바뀐 거야?”

 “그녀가 왔다 갔다 하기 힘들 테니까.”

 

 진의 말에 제스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리나는 궁전에서 머무는 걸 더 힘들어할 거야. 내가 잘 알아.”

 “그렇게 잘 알면 설득 좀 해줘.”

 “아니 궁 안에 그렇게 인재가 많은데 왜 여기까지 와서 유리나를 괴롭히냐고.”

 “리벨린 황제의 노랫소리가 들리면 나라가 망한다. 다들 그 말을 믿는데 누가 나를 가르쳐.”

 “애초에 네가 노래를 배우는 것부터 이상해.”

 

 진의 인상이 잔뜩 찌푸려졌다. 그러더니 갑자기 음을 잡기 시작했다. 게른이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리벨린의 백성들은 황제의 얼굴은 잘 몰라도 그의 노래는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가 즉위식에서 불렀던 리벨린의 국가를. 물론 아무도 그게 국가라는 걸 알지 못했다.

 

 “제발 제스 부탁일세. 그녀가 마음을 돌릴 수 있게 도와줘.”

 “나도 하는 데까지 해보겠다만…….”

 

 어느새 1층으로 내려온 유리나가 그들이 앉은 테이블을 두들겼다. 세 사람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할 말이 있어서 오신 것 같은데요.”

 사뭇 진지한 유리나의 표정이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진이 유리나에게 자리를 비켜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자 게른이 그에게 의자를 양보했다. 진은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다. 유리나가 머뭇거리자 진이 앉으라는 듯 의자를 가리켰다. 유리나는 진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의자에 앉았다. 게른은 재빨리 옆 테이블에서 의자를 가져왔다.

 

 “저를 데리러 오셨다구요?”

 “레인이 이 자식을!”

 “아이는 잘못이 없어요. 미리 들어서 조금 생각할 시간도 있었구요.”

 

 제스가 벌떡 일어나 매서운 눈으로 레인을 찾다가 유리나의 말에 다시 앉았다.

 

 “데리고 갈 생각은 아니었지만, 당신이 사는 곳을 보니까 마음이 바뀌었어요.”

 “제가 사는 곳이 어떤데요?”

 

 진이 대답하지 못했다. 아마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다.

 

 “여기 사람들 다 그렇게 살아요. 동정보단 동전이 더 필요한 곳이죠.”

 

 유리나의 단호한 목소리에 제스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진은 흥미롭다는 듯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유리나가 결심한 듯 말했다.

 

 “여기까지 오셔서 부탁하는데 거절할 수 없죠. 제가 무슨 힘이 있겠어요. 다만 레슨 일정이나 방법은 제가 원하는 대로 하겠습니다. 그 정도 부탁은 해도 되겠죠.”

 

 진의 눈을 계속 피해오던 유리나가, 그의 눈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1초, 2초, 3초. 눈싸움하듯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있던 두 사람은, 진이 고개를 끄덕인 후에야 시선을 돌렸다.

 게른과 제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틀 뒤에 뵙는 걸로 하죠. 황제께서 무슨 노래를 알고 계시는지 잘 모르니 리벨린의 국가를 연습해주세요. 노래를 들어보고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야 계획을 짤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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