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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 : 내일과 어제를 잇는 다리
작가 : 러군
작품등록일 : 2017.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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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작성일 : 17-11-07     조회 : 51     추천 : 0     분량 : 6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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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이 그 모습을 보며 다급히 소리쳤다.

 "뛰었다. 잡아. 지금 떨어진다."

 

 그 말을 하고 난 찬이 방금 전의 다급함과는 달리 얼굴을 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아이고, 내 코야. 아이고. 아이고."

 

 건물 밖에서는 서남기가 떨어지는 순간 바로 위층에서 로이가 와어이에 의지한 채 뛰어내렸다. 마치 번지점프를 하는 모습처럼 허공을 날으는 휴고가 되어 아래로 향했다. 아래로 향하던 로이가 떨어지는 서남기의 몸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잡지를 못 하고 허공만 휘저었다. 뛰어 내린 서남기의 등을 몇 센치 남기고 그는 더 아래로 내려갔고 로이의 손은 그 이상 미치지 않고 허공만 휘저었다.

 

 다음 순간 이번에는 아래층의 레온이 창 밖으로 뛰었다. 레온은 거의 비슷한 시점에 점프를 하여 서남기 바로 앞까지 갔고 그의 팔을 잡을 정도까지 다달았다. 조금만 더 앞으로 나가면 그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순간 서남기가 팔을 자기 품으로 끌어 당기며 피해버렸다. 이건 누가 봐도 의도적인 행동이며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행동이었다. 그의 의지가 이미 레온의 손을 멀리하고 있었다. 레온이 발버둥치며 다시 잡으려고 했지만 그는 순식간에 피했고 아래로 떨어졌다.

 

 레온의 눈에 아래로 떨어지는 그의 모습이 생생하게 보였는데, 그는 웃고 있었고 행복해 보였다.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음을 선택함에도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뭐가 그를 이렇게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고통을 이기기 위해 허공에 떠있게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레온을 통해 보고 있는 큐브의 시선에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왜 저 인간은 이런 길을 선택한 걸까?'

 

 아래로 떨어지는 서남기는 밝게 웃고 있었다. 9층에서 이야기할 때의 침울하고 괴로워했던 그런 얼굴이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발을 디디고 서있는 9층은 고통이지만 발을 디디지 못하는 지금의 허공은 자유로 느껴졌던 모양이다.

 

 서남기를 잡기 위해 창문 앞까지 왔다가 간발의 차이로 그를 놓친 휴고가 그제야 찬의 고통스러워하는 고함소리를 듣고는 뒤돌아서 그에게 다가왔다.

 "괜찮으세요. 누구십니까?"

 

 그제는 목소리가 굵은 남성 목소리로 들렸다. 방금 전 설득을 할 때의 여자 목소리와는 완전히 다른 목소리다.

 

 찬이 여전히 코를 잡고 뒹굴다가 올려다보며

 "야, 날 때리면 어떻게."

 

 휴고가 눈부분의 라이트를 켜 찬의 얼굴에 비추며

 "죄송합니다. 전 동물이나 그런 건 줄 알고 그만. 많이 다치지 않았습니까?"

 여전히 휴고는 남자 목소리를 내고있었다.

 

 그제야 목소리가 달라진 걸 알게 된 찬이 놀라워하며

 "뭐야? 좀 전에는 여자 목소리였는데. 이젠 왜 남자 목소리야? 너 혹시 사람 설득법에 대한 프로그램 작동 중이야?"

 

 "아닙니다. 방금 전에는 저의 관리자님의 음성이셨습니다. 저는 Y23구역 재개발 현장 A.I인 시청 소속의 재개발 PS-5(*)입니다. 휴고보다는 사람이 사람을 더 잘 설득할 수 있다고 저 대신에 관리자께서 하신 겁니다."

 

 "아! 그랬구나."

 

 찬이 대답을 하며 일어났는데 그의 손에 피가 묻어 있고 코에서는 코피가 흐르고 있었다. 찬이 놀라 팔짝팔짝 뛰며 고함을 쳤다.

 "아! 피나잖아. 코피야, 코피."

 

 그 모습은 마치 어린 아이가 처음으로 코피를 흘릴 때나 아니면 어른 앞에서 응석을 부릴 때의 행동 같았다. 그때 찬의 이어를 통해 로이와 레온의 목소리가 들렸다.

 

 "실패, 실패. 잡지 못했습니다."

 

 조금 뒤, 다시 큐브가 안타깝다는 듯이

 "어어어. 아아. 놓쳤습니다."

 

 그 소리에 찬은 방금 전까지 마치 피를 보고 죽을 것처럼 호들갑을 떨다 말고 창 쪽으로 달려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9층이라 상당히 강한 바람이 불고 있었는데 가장 먼저 보인 것이 와이어에 매달린 로이와 레온이다. 로이는 찬의 눈 높이에서 바로 앞에 매달린 채 올라가고 있었다. 레온은 좀 더 아래에 매달려 있는 등이 보였다. 둘 다 서남기를 잡지 못 한채 올라오는 중이다.

 

 다음으로 아래가 보였는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에어 매트다. 붉은색의 대형 에어 매트릭스가 첫 눈에 들어왔다. 에어 매트릭스 주변을 둘러쌓고 있는 제법 많은 휴고들도 눈에 들어온다. 마지막으로 에어 매트릭스 위에 서남기가 떨어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제야 찬은 안도할 수 있었다.

 "휴. 됐어. 안전해. 다행이다."

 

 여전히 그의 코에서는 코피가 흘르고 있었다. 

 

 계단을 찬이 앞에 서고 뒤에 찬과 같이 있던 은색의 P-휴고가 따르고, 그 뒤에 레온과 로이가 따라내려왔다. 계단을 다 내려와 건물 밖으로 나갔다. 건물 밖에는 그새 도착한 구급대 P-휴고가 서남기를 구급차에 태우고 있었다. 주변에는 은색의 P-휴고들이 벌써 에어 매트릭스를 치우고 있는 중이다. 그때 찬의 눈에 그들 중간에 서있는 여자 사람이 보였다.

 

 그 모습은 마치 은색 풀밭에 한송이의 아름다운 꽃이 아우라를 뿜으며 서있는 모습같이 보였다. 어깨까지만 오는 단발머리를 뒤로 묶어 한 가닥으로 만든 모습은 뭐가를 하려 했음을 보여준다. 아마도 서남기를 구하기 위해 휴고를 독려한 모양이다.

 

 휴고에게 지시를 하고 있는 그녀는 그리 큰 키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작은 키도 아니다. 도드라지는 것이 안경이다. 의술이 좋아져 안경을 쓰는 사람이 줄어든 세상에서 안경이라니 좀 생소했다. 특히나 뿔테 안경이 얼굴 전체를 가리고 있어 더욱 그러했다. 작고 하얀 예쁜 얼굴은 똘똘하면서도 다부져 보인다. 자기 치장만 하고 허영만 부릴 것 같은 그런 모습은 아니다.

 

 그녀의 모습을 유심히 보고 있던 찬이 한눈에 반했는지 갑자기 그녀에게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자기도 모르게 관심이 가지면서 발걸음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은 여러번 들어봤지만 이런 경우가 그 경우인지 그는 알지 못했다. 그냥 이 순간에는 마음이 그녀를 향해 있을 뿐이었다. 많은 휴고 사이를 빠져나가 그녀에게로 향했다.

 

 민희 앞에 온 찬이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방금 휴고로 이야기를 하셨던 분이십니까?"

 

 찬의 출현에 당황한 민희가 먼저 인사를 했다.

 "죄송해요. 제가 짐승인 줄 알고 그만."

 이야기를 하며 찬의 코를 손으로 가리켰다.

 

 찬의 코는 한 방 맞는 것처럼 조금 부어있고 주변으로는 여전히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찬이 쑥스럽다는 듯이 코를 손으로 가렸다.

 "아! 괜찮습니다. 그보다 다행히 우리가 올 동안 서남기 씨를 잡아 주셨어 도리어 고맙지요. 전 유찬이라고 합니다. 국민 안전 감시 센터 직원입니다."

 

 찬이 내심 민희에게 마음이 있는 모양이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먼저 통성명을 하려고 했다.

 

 민희가 조금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아! 예. 전 오민희라고 이곳 재개발 담당 직원입니다. 다행이었어요. 우리 카메라에 그 사람이 잡히는 바람에 도와줄 수 있었어."

  

 그때 눈치 없이 큐브가 조금 떨어진 건너편 자동차 앞에 서있는 레온을 통해 소리쳤다.

 "찬님, 코 때문에 병원에 가셔야 하다면서요. 지시하신 자동차가 도착했습니다."

 

 찬이 그 소리에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민희를 보다가 다급히 네가 왜 나서하는 제스처를 지으며 레온을 봤다. 그리고 다시 어색한 표정으로 민희를 보며 웃었다.

 "하하하. 예, 예. 맞습니다. 그쪽 덕에 한 생명을 살렸습니다. 그걸로 고맙다는 인사를 더 해야 하는데."

 

 그때 레온에게서 다시 소리가 났다.

 "안 가실 겁니까? 조금 전까지는 죽는다고 하셨으면서."

 

 그 소리에 찬이 속으로 화를 냈다.

 '저게 눈치도 없이. 망쳤다. 망했어. 에이 씨.'

 

 "알았어. 지금 가. 지금 간다고."

 

 레온을 향해 화를 내듯이 고함치고는 다시 민희를 볼 때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

 "휴고가 독촉을 해서 더 인사를 못 드리겠네요. 별로 다치지도 않았는데 휴고가 괜히 호들갑을 떨어서. 오늘 고마웠습니다."

 

 민희가 찬의 칭찬에 아니라는 듯이 손사래를 쳤다.

 "아니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 그럼 잘 가세요."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찬이 연신 뒤에 남겨둔 민희를 힐끗힐끗 봤다.

 

 민희도 9층에 올라갔던 P-휴고와 나란히 서서 멀어지는 찬을 봤다.

 

 9층에 갔던 P-휴고를 통해 데이비드가 말했다.

 "재미난 사람입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코 때문에 죽을 듯이 엄살을 피우던 사람인데. 민희님 앞에서는 괜찮다고 하네요."

 

 민희가 여전히 차를 타고 떠나가는 찬을 보며.

 "좋은 사람 같아. 거기가 어디라고. 사람을 구하겠다고 몸을 날려. 난 엄두도 안 나 널 보냈는데."

 

 엉뚱한 대답에 휴고가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얼굴을 봤다.

 "직업정신 아닐까요?"

 

 민희는 여전히 멀어지는 찬을 보며.

 "로봇 세상에 직업정신이 어디 있어. 위험한 일은 다 로봇이 하는 세상에서. 그건 직업정신이 아니라 인간애야. 분명히 인간애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야."

 

 민희의 말투가 왠지 동조하거나 칭찬하는 모양새다. 특히나 음성에서 풍겨 나오는 뉘앙스가 묘한 분위기를 담고 있다.

 

 민희의 말투에 데이비드가

 "왜요? 관심 있으십니까? 연락처를 알아봐 드릴까요."

 

 그녀의 말투와 여전히 멀어진 차를 보고 있는 모습에서 데이비드는 뭔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장난을 치듯이 말했다.

 

 그 말투에 놀란 민희가 당황하여 정색하며 돌아섰다.

 "데이비드, 너, 날 놀려."

 

 데이비드는 민희가 있는 현장 관리 A.I인 PS-5의 애칭이다. 민희만 불렀던 애칭인데 이제는 오후 담당자도 PS-5를 그렇게 부른다.

 

 

 그 날 오후 1시가 넘어선 시각.

 

 찬의 집 앞에 자동차가 멈춰 서고 그가 내렸다. 코는 치료를 받은 모습인데 여전히 부어있는 모습이다.

 

 앞에 보이는 찬의 집은 단독 주택의 단층 집이다. 넓은 정원 중간에 있는 집은 아담해 보인다.

 

 찬이 집 앞으로 걸어오자 현관문이 먼저 알아서 자동으로 열렸다.

 

 집 안은 밖에서 볼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상당히 넓으면서도 고급스럽고 화려했다. 고급스러운 식탁이 있는 주방, 큰 소파가 있는 넓은 거실, 거실 옆 넓은 서재, 집 중앙에 있는 침실은 문이 개방식이라 지금은 열려 있어 거실가 일체를 이루고 있는데 깔끔한 모습이다.

 

 거실은 남쪽을 보고 있는데, 남쪽 벽 전체가 대형 유리로 되어 있어 내부에서 밖이 보이지만 밖에서는 안이 안 보이는 구조다. 대형 유리를 통해 보이는 밖의 정원에서는 휴고가 잔디를 관리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거실 옆 동쪽편, 서재의 반대편에는 계단이 있고 위에는 작은 수영장이 실내에 있다.

 

 찬이 거실로 들어서자 이 집의 NDR-11인 앤드류가 천장 스피커를 통해 말했다.

 "코는 괜찮아?"

 

 젊은 남성의 목소리다. 찬과 같은 나이 또래의 활기찬 목소리가 마치 친구처럼 물었다. 찬은 이 NDR-11을 앤드류라 부른다.

 

 찬이 자기 방으로 들어가며.

 "응, 괜찮아. 나 따뜻한 물에 목욕하고 싶어. 샤워하고 나올 테니까 풀에 물 따뜻하게 받아죠."

 

 앤드류의 목소리가 이제는 방 안에서 들렸다.

 "점심은 어떻게 할까?"

 

 찬이 방 안에서 옷을 벗으며.

 "간단하게 먹을래. 휴고 보내서 간단하게 샌드위치하고 샐러드 식당에서 가지고 오게 해."

 

 "OK"

 

 유리 너머의 정원을 관리하고 있던 H-휴고가 도구를 내려놓고는 어디론가 갔다.

 

 잠시 뒤, 찬이 알몸의 상반신을 물 밖으로 내어놓고 작은 풀에 앉아 접시에 담긴 작은 샌드위치를 먹고 있다. 겉보기처럼 운동을 한 근육질의 가슴이다. 샌드위치를 먹으며 찬은 머릿속으로는 오전에 본 민희를 떠올리는 중이다. 왠지 자꾸만 민희 얼굴이 떠나질 않고 여운처럼 남아 있어 지금도 생각이 난다.

 

 찬이 먹다 말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묘하네. 기억에 자꾸 남아 있네. 마치 잘 아는 사람처럼."

 

 그렇게 중얼거리며 샌드위치와 샐러드를 먹다가 천장을 보며.

 "앤드류, 오전에 본 여자 신상 알 수 있을까?"

 

 이번에는 앤드류의 목소리가 작은 풀 위 천장에서 들렸다.

 "오전에 본 여자라면? 누구를?"

 

 "참, 넌 모르지. 마틴, 넌 알지. 그 사고 현장에서 본 여자. 그 여자 연락처 알 수 없을까?"

 

 풀 한 쪽 탁자 위에 놓인 웨어러블 RTF-7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죄송합니다. 알 수 없습니다."

 마틴이라 명명된 RTF-7의 목소리도 젊은 남자의 목소리다.

 

 그 대답에 찬이 아쉽다는 듯이 발길질로 물을 걷어찼다. 그로 인해 풀에 있던 물이 밖으로 넘쳐 흘렀다. 그러자 바로 휴고가 청소기를 들고 와 물을 깨끗이 닦기 시작했다.

 

 찬이 다시 혼잣말을 했다.

 "괜찮았는데. 레온만 아니었어도 연락처 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는데. 어떻게 다시 만날 기회를 만든다."

 

 그렇게 말하고는 풀에 몸을 서서히 담그더니 마지막에는 잠수를 했다. 그 옆에서는 휴고가 정원 청소를 끝내고 거실에 들어와 그곳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사람처럼 이곳저곳을 열심히 청소하고 있었다.

 

 [* 각주]

 PS-5 (피에스 파이브)

 MPI 7의 직속 하위 A.I다. 용량으로 보면 중형 A,I 시스템이다. 사람이 정부이던 시절로 치면 현장 관리직 역할을 하는 A.I 시스템이다. 시설, 건설, 복지, 안전, 소방, 등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특히 이 시스템은 휴고라는 휴머노이드 형식의 로봇을 통제 관리 운영할 수 있다. 사람이 해야 할 일을 로봇이 할 때 직접 사람의 역할을 하는 로봇이 휴고인데. 이 휴고를 한 대의 PS-5가 최대 500대까지 무선을 통해 동시에 개별적인 일을 명령하고 컨트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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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재회 1/25 318 0
47 재회 1/23 33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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