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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 : 내일과 어제를 잇는 다리
작가 : 러군
작품등록일 : 2017.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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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작성일 : 17-11-07     조회 : 47     추천 : 0     분량 : 5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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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브에 저장된 오민희 주인님의 일상 기록.

  이천 오십이 년 오 월 X 일 하루일과 중 일부 내용입니다."

 

 * * *

 

 Y23 구역의 도로 위를 민희와 P-휴고들이 걷고 있다. 20대의 휴고 사이에 사람인 민희가 끼여있는 모습이다. 이들은 지금 막 서남기를 구한 곳에서 작업장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군중처럼 모여서 걷고 있는데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모두가 조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이라고는 민희 혼자뿐이고, 다른 모든 휴고는 데이비드에 의해 움직여지는 로봇이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이 걷고 있는 도로는 왕복 6차선으로 제법 큰 도로다. 예전에는 자동차도 많이 다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차가 다니질 않는 폐허가 된 텅 빈 도로다. 민희는 걸으며 멍한 시선으로 주변을 보고 있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른다. 그저 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애써 외면해야 할 그 무언가가 있는 것인지. 겉으로 드러난 모습으로는 구분이 안 된다.

 

 지금은 막 고개를 돌려 자신의 좌측을 보고 있다. 도로 좌측은 이미 재개발이 끝나 허허벌판이 펼쳐져 있다. 지난 1년간 자신이 관리하는 재개발 A.I인 PS-5 일명 애칭으로는 데이비드가 밤낮없이 24시간 일해 완공한 곳이다. 그 많았던 빌딩과 집과 아파트들은 모두 철거되었고 마지막으로 복토작업까지 끝나 이제는 텅 빈 벌판이 되었다.

 

 민희가 그 모습을 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시간이 지나면 풀이 잘 자라 녹지가 되겠지."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사람이 없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우측을 봤다. 우측은 서남기가 뛰어내렸던 빌딩이 남아있었던 것처럼 아직은 철거가 되지 않았다. 빌딩이며, 집들이며, 아파트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인데 보고 있는 그녀의 시선은 불편해 보였다. 좌측을 볼 때와는 다른 시선으로 그곳을 보았다. 뭐랄까 꽉 막힌 풍경에 답답함을 느꼈다고 할까. 아니면 폐허가 된 흉측한 모습이 싫었다고 할까. 그도 아니면··· 예전 기억이 떠올라 두려웠다고 할까. 여하튼 좋은 인상은 아니다. 불현듯 방금 전에 서남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무도 없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아. 이젠 나 혼자야.

 ...

  이런 세상에서 뭐 하며 살라고. 아무도 없는 세상에서 나보고 어떻게 살아가라고.

 ...

  가족은 모두 죽고 내가 알던 사람도 모두 사라졌는데.

  이건 살아 있는 게 고통이야.

  살아 숨 쉬는 게 악몽이야.

 ...

  아무도 없는 행복한 이곳은 저주야.

  나에게 필요한 것은 이제 죽음뿐이야.

  나에게 행복이란 그들에게 돌아가는 거야."

 

 곧이어 민희는 자기도 모르게 엄마가 떠올랐다. 그리고 아버지도.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는 두 분의 모습이 단풍이 물들어 있는 어느 가을을 배경으로 자기를 보고 있었다.

 

 "아아. 안 돼! 안 돼!"

 

 자기도 모르게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마치 부모님 모습이 기억에 떠오르면 안 되는 사람처럼 고함을 치며 부정했다. 그리고 생각을 지워버리려는 사람처럼 머리를 마구 흔들었다. 그녀의 이런 행동에 주변에 있던 휴고들 중 단 한 대만이 반응을 보였다. 바로 옆에 있던 휴고다.

 

 "괜찮으십니까?"

 

 민희가 그 말에 당황하여 자세를 바로 하고는

 "응! 괜찮아. 휴, 휴우, 아무 일도 아냐."

 

 고개를 드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악몽을 꾸고 난 사람의 모습 같았다. 두려운 터널을 급하게 빠져나온 사람의 모습을 하고 멍한 시선으로 앞만 보고 있었다.

 

 말을 걸었던 민희 옆 휴고가 다시 말했다.

 "시 도시개발 담당 MPI 7(*)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 말을 하고는 바로 자기 목소리가 아닌 여자 목소리로 녹음 파일을 들려주었다.

 

 "지금 하는 우측 구도심 철거작업을 중단하십시오. 주 도로 지하에 있는 지하철 구간 철거 작업을 먼저 수행하십시오"

 

 이 말이 끝나고 나서야 다시 데이비드 목소리로 돌아왔다.

 

 "이렇게 연락이 지금 막 도착하였습니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듯한 민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그럼 그렇게 해야지. 건물들 내부에 있는 재활용 물자 이동 작업은 어느 정도 끝났잖아."

 

 "예, 얼마 남지 않은 곳은 시 재활용 센터 휴고가 와서 가지고 가면 되는 일만 남았습니다."

 

 "잘 됐네. 그럼 바로 오후 관리자께 보고하고 오후에 지하 작업 시작해."

 

 그 사이 일행은 도로 중앙에 놓여있는 큰 트레일러 앞에 도착하였다. 민희가 트레일러 안으로 들어갔다. 휴고들은 지휘본부 트레일러에서 백여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여러 개의 컨테이너로 갔다. 거기서 일부는 안에 들어가고 일부는 다른 작업장으로 이동을 계속했다.

 

 그로부터 한 시간 뒤, 한 대의 자동차가 Y23 구역을 빠져나오고 있다. 차 안에는 민희가 타고 있는데 내부에서는 외부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측면 유리는 불투명한 색으로 하늘 사진을 보여주고 있고 전면 유리에서는 영화인지 드라마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민희는 영화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집중을 못하는 눈치다. 몇 번이고 애써 내용에 집중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걸로 봐서 지금 그녀 내부에서는 묘한 갈등이 벌어진 모양이다.

 

 사실 그녀는 차에 올라타기가 바쁘게 바로 지금과 같은 모습을 의도적으로 요구했다.

 "좌우 영상은 편안하게 하늘 사진으로, 전면에는 최근 영화나 드라마 보여줘."

 

 그랬던 그녀였지만 여전히 뭔가를 극복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다. 사고 현장에서 트레일러로 오는 사이에 그녀는 말로서 밖으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금기시하는 일을 떠올렸음을 두려워했다. 특히 그녀의 행동에서 알 수 있듯이 외부에 보이는 과거의 모습이 기억의 모티프가 될까 봐 걱정하는 것 같았다.

 

 2052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과거를 지우고 살아간다. 과거를 떠올리는 것을 지금 민희처럼 아주 두려워하고 극단적으로 싫어했다. 누구든 지금의 그녀와 같은 상황이 되면 잊기 위해 잊어버리기 위해 애를 쓴다. 그건 당연한 행동이었다. 이게 지금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였다.

 

 과거를 떠올리지 않는 것.

 과거를 지우고 살아가는 것.

 

 민희가 괴로워하다가 갑자기 말했다.

 "C4(*), 시내로. 시내로 가자. 차 돌려서 시내로 가죠."

 

 차량에서 C4가 말했다.

 "집으로 안 가실 겁니까?"

 

 민희가 고개를 저으며

 "아니, 집으로는 가는데. 곧장 바로 가질 말고 시내로 돌아서 가죠."

 

 "시내 드라이브를 한 후에 집으로 가자는 말씀이군요."

 

 "응, 그렇게 해죠."

 

 자동차가 천천히 속도를 줄이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U턴을 하였다.

 

 잠시 뒤, 민희가 타도 있는 자동차가 시내로 접어들고 있다. 이전까지 풀과 나무들이 자란 녹지 공간을 지나왔는데 녹지가 끝나자 화려한 도심이 나왔다. 도심으로 접어들자 차가 속도를 줄여 천천히 움직였다.

 

 "시내에 도착했습니다."

 

 민희가 측면으로 고개를 돌리며

 "그래, 그럼 모든 유리를 외부가 보이게 해죠."

 

 그녀의 명령에 순식간에 차 안 유리가 전부 외부가 보이는 투명 유리처럼 바깥 모습이 보였다. 그제야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편안해졌다. 좀 전까지의 찌푸린 얼굴은 사라지고 밝은 얼굴로 돌아왔다. 이제는 더 이상 괴로워하거나 뭔가를 지우기 위해 애쓰지도 않았다. 애써 다른 곳을 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행동도 하질 않았다.

 

 모니터로 보이는 시내의 풍경은 화려하면서도 번화했다. 그녀가 철거를 하고 있는 구역의 빌딩 숲처럼 높은 건물들이 있는 곳은 아니지만 2,3층의 건물들이 화려하게 치장이 되어 눈을 현혹한다. 다양한 모형과 화려한 모습들이 도심을 호화스럽게 꾸몄다. 다양한 모형들과 형태들은 천편일률적으로 높게 쏟아 올라만 있던 Y23 구역보다 더 아름답고 화려한 모습이다.

 

 그 속에서 돌아다니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은 그녀를 한결 더 편안하게 만들었다. 하나같이 밝은 표정을 하고 돌아다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느새 그녀 자신을 그들 속으로 동화(同化) 시켰다. 그 모습을 보며 연신 밝게 웃으며 모니터로 보이는 모습을 구경하는 중이다.

 

 그녀가 시내에 나오거나 시내를 이렇게 드라이브하는 것은 연례행사 같은 것이다. 그녀 마음이 방금 전처럼 복잡해지는 날이면 으레 이곳을 찾았다. 그러면 다시 마음이 편안해지고 복잡했던 잡념들도 연기처럼 사라졌다. 마치 치료약처럼 가끔씩 복용하면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그녀만의 비상약이다.

 

 이 외에도 이와 같은 효과를 주는 것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는 H 강변을 드라이브하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이곳 시내는 기분에 따라 드라이브를 하거나 내려서 직접 구경을 하기도 하는데, H 강변은 드라이브는 해도 단 한 번도 내려서 직접 걸으며 구경한 적은 없었다. 무슨 이유인지 그곳만 가면 내릴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냥 드라이브하는 것으로 최대의 만족을 느끼고 돌아오기 일쑤였다. 마지막 방법은 친구와 수다다. 가장 큰 효과를 발위하면서도 어느 것보다 더 자수 사용하는 방법이다.

 

 밖을 구경하던 그녀가 갑자기 그 생각이 들어 왼팔을 들었다.

 "월, 설민이 지현이 연락해서 우리 집으로 올 수 있는지 물어봐죠."

 월은 그녀의 웨어러블 A.I의 애칭이다.

 

 잠시 후, 월이

 "예, 오실 수 있답니다. 지현님은 10분 거리에 있고, 설민님은 40분 거리에 있다고 합니다."

 

 민희가 이제는 자동차를 보며

 "그래! 그럼 우리 집으로 오라고 해. C4 우리는 집까지 얼마나 걸리지?"

 

 "30분 소요됩니다."

 

 "그럼 어서 집으로 가죠."

 

 민희는 그제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시내에 더 머무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또 다른 방법을 통해 지금의 마음을 극복하려고 한다. 친구와의 수다. 자동차가 그제는 천천히 시내를 주행하다가 속도를 높여 앞으로 달려나갔다.

 

 

 [* 각주.

 MPI 7(엠피아이 세븐)

 서밋 하위 대용량 AI 시스템이다. 원명은 정부 부처 운영 시스템 대용량 A.I로 생산 명칭은 MPI 7002이다. 사람이 정부이던 시절로 치면 각 부처의 모든 업무를 담당하던 기관이다. 각각의 MPI 7이 서로 유기적으로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정부를 이루게 된다. 이와 같은 대용량의 다중처리 능력을 가진 같은 모델명의 A.I가 두 종류가 더 있다. C4(씨 포)와 HAL 9(할 나인)이다.

 

 C4 (씨 포)

 시청 자동차 통제 센터(city car control conter) A.I의 약칭이다. 모든 차량은 국가가 운영하고 국민은 무상으로 공유하는 쉐어링 시스템이다. 1인구당 한 대 꼴로 자동차가 운행되고 있어 공유의 불편은 없다. 자동차는 자율 주행장치인 UCV와 함께 A.I가 무선으로 컨트롤하는 C4에 의해 작동한다. C4 A.I 한 대가 운행 관리할 수 있는 자동차의 수는 500대다. 사람이 필요에 따라 호출을 하면 무인 자동차가 나타나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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