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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 : 내일과 어제를 잇는 다리
작가 : 러군
작품등록일 : 2017.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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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을
작성일 : 17-11-13     조회 : 43     추천 : 0     분량 : 1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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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스무살이 되던 2048년에 그 잔인하던 혼돈 시기가 끝이 났다. 불가항력적인, 자연 발생적인 원인으로 인해 수천 만 명의 희생을 만들어 냈던 혼돈 시기가 끝나자 사람들은 안심을 했고 더 이상의 희생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오판이었다. 사람에 대하여 너무 모르는 생각이었다. 그해부터 이어진 혼돈 시기의 산물은 3년 동안 끊임없이 세상을 괴롭혔다. 매일 같이 수십 또는 수백 명의 자살자가 속출하였다. 2048년에 600만 명이 살아남았는데 그 이후 3년 동안 100만 명이 혼돈 시기의 산물인 자살을 통해 스스로의 생명을 중단하는 극단적 선택을 하였다.

 

 사람들의 뇌가 혼돈 시기의 트라우마를 이겨내지 못했으며, 사람들이 마음이 가족과 이웃과 사람을 잃은 상실감을 이겨내지 못했다.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고 얻은 세상이 아무리 좋은 유토피아라 해도 그들의 마음과 머리를 채울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고 그 증거는 스스로의 죽음으로 나타났다.

 

 당시 2047년에 이미 PSWC는 가동 중지된 상태였다. 더 이상 회사의 업무를 수행할 이유가 없어지면서 모든 활동이 중지되어 있던 회사였다. 그런 회사를 3년 간 이어진 새로운 죽음의 폭풍에 놀란 정부가 4년 만인 2050년에 다시 살려내야만 했다. 찬도 이때 회사에 취직하였다.

 

 그제부터는 PSWC가 모든 국민의 일상을 매일 매시 매초 감시를 하여 그들에게 다가올 죽음에 대한 선택을 막는 것이 임무가 되었다. 그 결과 2050년 부터는 자살율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하여 지난해 까지는 전체 인구 대비 한 자리 숫자 이하까지 낮아졌다. 국민을 감시하며 자살을 막은 것이 큰 효과를 발휘하였던 것이다.

 

 찬이 멍하니 서서 생각을 하다가 다급히 자기 자리로 가서 앉으며

 "큐브, 어제 서남기 사건."

 

 "예."

 

 "우리가 왜 그렇게 늦었지. 30분 이상이 지체되었어. 무슨 이유야?"

 

 "그집 엔디알 일레븐이 통보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엔드알이 통보를 하지 않아?

 ...

  그럴 수도 있나?"

 

 "보통의 경우 주인의 상태를 체크한 홈 A.I가 이상 징후를 통보하게 되어 있는데. 이번 경우는 아무런 통보가 없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위험 경고를 알았던 거야?"

 

 "사건 현장인 Y23구역 피에스 파이브가 위험 인물 신고를 하며 인적 조회를 하는 통에 알게 되었습니다."

 

 찬이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인의 신체 상태를 체크하는 알티에프은?"

  

 "알티에프 세븐도 모든 데이터를 엔디알 일레븐에 통보하여 기존 자료를 바탕으로 판단하는 시스템이라 메인 A.I인 엔디알 일레븐이 전송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큐브의 말에 찬이 이해를 못한 표정을 지으며

 "이상하네. A.I 아시모프 법칙에 의해 움직이는 모든 A.I는 사람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이잖아."

 

 "예 맞습니다."

  

 그 대답에 찬이 뭔가 깊은 고민이 있는 듯 아무 말도 하질 않고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는 앞쪽을 보며 다급하게 말했다.

 

 "그럼 사람은 아닌 모양이군. 난 또 누군가의 말이 원인이 되었나 했더니.

 ...

  그렇다면...

  큐브, 최근 며칠 사이에 서남기와 그 집 A.I 사이의 대화 내용 중 이상한 점이 있는지 확인해 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만약에 사람의 문제라면 우리 쪽이던 아니면 상대 쪽 할 나인이던 어느 쪽에서는 이상 징후를 발견하였을 거야."

 

 "예, 맞습니다. 자살을 유도하거나 자살과 관련된 단어가 있으면 저희 할 나인이 단번에 비상 신호를 주었을 테니까요."

 

 "그렇지! 그런데 그런 신호가 없었다는 건 뭐야? 다른데서 시작되었다는 말이잖아."

 

 "엔디알 일레븐을 의심하는 겁니까?"

 

 "사람이 가장 많이 접촉하고 대화하는 상대가 누구야. 가족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는 대상이 지금은 누구지. 이제는 홈 A.I인 엔디알이나 알티에프잖아."

 

 "아! 예, 그렇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찬은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한 모양이다. 지금 현실에서 인간을 가장 잘 보호하는 것은 개인들 집에 있는 NDR-11 아니면 각자의 손에 차고 있는 RTF-7이다. 그리고 그들의 명령을 받는 H-휴고가 보디가드 역할을 한다.

 

 현시대에 폴리스가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참, 아니다. 법을 집행하는 임무를 가진 A.I는 있다. 대형 A.I 시스템인 MPI 7 중에 법 집행부 MPI 7이 있다. 하지만 그 아래 하위에 다수의 PS-5는 있어도 명령을 수행하는 P-휴고는 없다. 어떤 사고가 생기거나 주변에 문제가 발생하면 법 집행부 MPI 7이 문제를 인식하고 바로 하위의 PS-5에 지시를 한다.

 

 그럼 PS-5가 문제 주변의 모든 하위 A.I나 휴고에 접속하여 사람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이때는 주인의 유무나 소속에 상관없이 모든 A.I와 휴고가 국민을 보호하도록 가드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엄밀하게 따지면 방식이 PSWC의 HAL 9과 같은 방식이다.

 

 따라서 그걸 바탕으로 보면 이번 사고는 뭔가 문제가 많은 특이한 현상이었다. 사람을 보호해야할 A.I가 자신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지 않은 것이 된다.

 

 앞의 대형 모니터에 다른 영상들은 사라지고 서남기가 집에서 대화하는 모습들이 여러 개 나오기 시작했다. HAL 9이 자료를 검색하여 찾는데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수십 만 개의 개인 일상 자료 전체를 다 조사하여 그 중 의심스러운 영상을 찾아내는데는 반 시간이면 충분했다.

 

 앞쪽 모니터에 특정 몇 개의 영상들이 다 사라지고 단 하나의 영상만 재생되기 시작하면서 큐브가 말했다. 

 "다른 영상은 특별한 것이 없고 이 영상만 조금 특별합니다."

 

 찬이 영상을 보며

 "뭐가 특별하지?"

 

 "대화 장면은 있는데 대화 내용이 없습니다. 지금 보시는 것처럼 무음으로 전송되었습니다."

 

 영상에서는 큐브의 말처럼 서남기가 집 거실에서 혼자 말하는 모습은 보이는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독백처럼 큰 소리로 대답하는 모습은 있으나 음성이 저장되어 있지 않았다.

 

 영상을 자세히 보던 찬도 이상한지 몇 번이고 들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저 모습을 보면 분명히... 서남기가 입을 뻥긋거리며 말을 하고 있는 모습인데.

  그런데 음성이 안 들리네.

 ...

  큐브, 저 영상 엔디알이 음성을 보내지 않은 거 맞지."

 

 "예, 맞습니다. 다른 이상 신호가 없는 것으로 봐서 분명합니다."

  

 "그럼 뭔가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네.

 ...

  그렇다면...

  큐브, 이 영상 이전 영상 중에서 이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영상이 있는지 한 번 알아봐.

  뭔가 냄새가 나."

  

 그의 말이 끝나자 모니터의 영상이 일시 멈추었다.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 PSWC는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한 개인이 있는 곳이면 모든 영상과 음성 대화을 다 확인할 수 있었다. 국가 안에서 운영되고 있는 모든 카메라는 PSWC의 HAL 9에 의해 다 수집되도록 프로그램 되어있는 것이 현재의 A.I 시스템의 기본이다. 그 개념 안에는 개인 집에 있는 NDR-11에서부터 RTF-7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지금의 영상처럼 영상은 나오나 음성이 나오질 않는다면 그건 고장이거나 문제가 있다는 말이 된다. 특히 의심을 품는 이유는 고장이면 A.I가 자체 수리를 거쳐 바로 수리가 되었어야 했다. 그게 아니면 시청 A.I 정비과에 스스로 신고하여 수리를 요청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단계가 전혀 없이 무음이 되었다.

 

 그때 큐브가 기존의 영상은 지우고 새로운 영상을 그 자리에 올렸다. 그 영상에서는 서남기의 집 밖 현관문 앞에 일반 H-휴고 한 대가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한참을 들어가지도 않고 그렇다고 돌아가지도 않고 그 자리에 서있기만 했다.

 

 영상을 확인한 찬이 손을 들어 영상 속 휴고를 가리키며

 "저 휴고는 어디 휴고야?"

 

 "그게 이상합니다. 시 휴고 관리부 MPI 7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휴고입니다. 인식 코드 신호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게 말이 돼? 인식 코드 신호가 없다니... 그런 휴고가 어디 있어?"

 

 "저도 처음입니다. 저희들 데이터에도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왜 이제야 아는 거야? 저때는 왜 몰랐어?"

 

 "휴고니까요. 사람이 아니니까요."

 

 찬은 무의식적으로 큐브의 말에 당연하다는 듯이 반문을 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했다. 이때는 이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는 알아채지 못했다. 인식 코드 신호가 잡히지 않는 휴고가 돌아다녀도 HAL 9이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 정보인지를 그는 몰랐다. 그가 회사에 들어온지 3년 차가 되었지만 그 사실은 일반적인 것이라 생각했지 특별하다 여기지를 않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저 모습은 우리에게는 안 들리지만 대화를 하고 있는 거겠지."

 

 "예. 사람으로 치면 그렇게 표현할 수 있고 A.I로 치면 데이터를 주고받는 중이라 생각하시면 맞을 겁니다."

  

 찬이 이상하다는 듯이 모니터의 영상을 유심히 보며

 "대체 무슨 데이터이기에 저렇게 오랫동안 주고받아야 할까?

 ...

  지금의 기술이면 웬만한 자료는 몇 초 몇 분 아닌가!

 ...

  음... 이상하네. 인공 지능 시스템이잖아. 그런데 왜?

 ...

  큐브, A.I의 데이터 주고받음도 인간처럼 대화를 통해 서로의 의견이나 생각을 평가하고 분석하는 단계가 필요하겠지? A.I도 그런 통과 과정을 거치는거 맞지!"

 

 "예, 단순한 자료면 다운받으며 스스로 검사를 하지만 의심스럽거나 일반적이지 않다면 A.I 끼리 서로 대화를 통해 자료의 이상 유뮤와 필요 유무를 확인한 다음에 내려받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래서 A.I가 자료의 보안이나 해킹에 가장 안전하다고 하는 겁니다."

 

 "그렇지! 그렇다면...

  만약에 말이야. 만약에 어느 한 쪽이 거부 반응을 보이면.

  그렇게 되면...

  저런 모습이 되지 않을 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우리 인간들 처럼."

 

 "예, 그럴 수 있습니다. 반드시 그런 통과 과정을 꼭 거쳐야 하니까요."

 

 "잠깐, 그럼 여기서 질문. 그런 통과 과정을 거치는 내용은 뭐야?"

 

 "A.I 아시모프 법칙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A.I 아시모프 법칙!"

 

 "만약 지금 담당자님이 의심하는 경우 같다면 필경 A.I 아시모프 법칙에 의해 제어되는 엔디알 일레븐이 상대의 데이터에 거부 반응을 나타낸 걸로 추정됩니다."

 

 찬이 뭔가를 찾았다는 듯이 기뻐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그래! 그거야. 저기에 답이 있었던 거야. 자살을 유도하는 어떤 명령어.

 ...

  저 휴가가 그 명령어를 엔디알에 주입한 거야.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린 거고.

 ...

  그거 였구나! 결과론적으로 보면 그 방어벽을 저 휴고는 깼어. A.I 아시모프 법칙에 의해 사람을 보호하라는 가장 큰 원칙을 깨도록 만들었어.

 ...

  뭐지?

  저 휴고는 대체 뭐지?

  큐브, 저 영상은 됐고 저 휴고가 어디서 왔는지 주변 영상을 다 찾아 봐."

 

 "예."

 

 찬은 모니터의 영상이 변화되는 동안 생각했다.

 '이제는 보통 일이 아니다. 아주 중대하고 큰 문제다.

 ...

  A.I를 인간이 아니라 A.I가 제어할 수 있다니.

 ...

  그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A.I의 창조주는 인간이고 그래서 A.I를 제어할 수 있는 것도 인간만의 능력이다.

 ...

  그런데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그 절대적 법칙을 깨는 모습이다. 상상하기도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이건 그냥 단순히 휴고와 홈 A.I 간의 대화만으로 끝날 문제가 절대 아니다.'

 

 한참이 걸렸다. 그런데도 큐브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있었다. 방금 전에는 개인의 모든 일상이 담긴 수십 만 개의 영상 자료를 단 30분 만에 분석하여 이상 증상이 있는 영상을 찾아내던 그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한 시간이 흘렀지만 묵묵부답이었다.

 

 답답한 찬이 먼저 입을 열었다.

 "왜 늦어? 없어?"

 

 그 말에 영상 하나가 다시 기존 영상을 지우고 나타났다. 그 영상에서는 서남기 집 앞에 있던 휴고가 도심의 복잡한 거리를 걷다가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재생되었다.

 

 "저기 이후로 행방불명입니다. 이 뒤로는 어느 영상에서도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찬이 놀라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영상 앞으로 걸어가며

 "없어져?

 ...

  그게 말이 돼? 모든 영상에서 사라질 수 있다?

 ...

  우리 회사가 PSWC고 네가 할 나인 인데. 그게 가능해?

 ...

  그건 말이 안 되는 일이야."

 

 찬이 이렇게 당황하고 놀라는 이유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새롭게 시작된 국민의 집단 자살을 막기 위해 PSWC는 이 땅 안에 있는 모든 카메라를 무제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어 있었다. 따라서 자기 담당 대상자가 있는 곳의 영상이라면 그 어떤 카메라도 다 확인할 수 있고 볼 수 있고 저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그야말로 무제한의 영상 확인이 가능했다.

 

 그런 현실에서 PSWC의 HAL 9이 찾을 수 없는 영상이 있고 그의 눈을 벗어나는 어떤 물체가 있다는 사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 개인을 지목하면 그 개인의 일상 전부를, 심지어 생체 활동에서 은밀한 사생활까지 다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인데 그 시스템을 벗어나는 경우가 있다는 건 말이 안되는 경우였다.

 

 "큐브, 다시 확인해 봐. 사라진 일대 전부를 다시 다 확인해 봐."

 

 "예,"

 

 큐브의 대답이 있고 10분도 지나지 않아 큐브가 다시 말했다.

 "전혀 흔적이 보이질 않습니다."

 

 "정말 전혀야?"

 

 "예,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흔적도 없이."

 

 큐브의 말에 찬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계속 반복되는 휴고가 사라지는 장면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심각하게 말했다.

 "이건 말이 안 돼. 이럴 수는 없어."

 

 찬은 퇴근 때까지 사무실에 앉아 영상만 보았다. 서남기 집 앞에 서있었던 휴고가 그 집에 도착하기 전에 처음으로 나타난 영상에서부터 그 집에서 나와 시내에 가기까지의 경로, 그리고 시내에서 사라지는 곳까지의 이동을 전부 조사하였다.

 

 모든 카메라에 잡힌 휴고의 영상이란 영상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확인했다. 하지만 휴고가 어디서 왔는지와 어디로 갔는지는 끝내 찾아 낼 수 없었다. 나타날 때도 어느 카메라 없는 골목에서 불쑥 나타나서는 사라질 때도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 사라졌다.

 

 그래서 그 영상을 몇 번이나 보며 그는 말했다.

 "휴고를 통제하는 A.I나 사람은 알고 있었던 거야.

 ...

  분명해. 저기 카메라가 없다는 것을...

  그들은 우리가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 잘 알고 있는 존재들이야.

 ...

  아니면 법집행부 엠피아이 세븐이 사고 영상을 확인한다는 것을 아는 A.I나 사람이야."

 

 그외에는 달리 답을 내놓을 방법이 없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영상을 보는 사이 오후 1시가 되었고 의무적으로 무조건 퇴근을 해야 할 시각이 되었다. 더 이상 업무에 관여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결국 그는 퇴근을 해야 했고 집에 돌아와서도 오전에 본 영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다음 날 아침에 출근하기가 바쁘게 찬은 자기 사무실로 달려왔다. 뭔가 아주 바쁜 사람 같았다. 그리고는 사무실 의자에 앉기도 전에 소리쳤다.

 

 "큐브, 우리 대상자 중에서 이 달에 몇 명이 자살로 죽었지?"

 

 찬은 집에서 고민을 하다가 뭔가를 떠올렸다. 그게 뭐냐하면 사라진 휴고가 처음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 촘촘한 감시의 경계를 쉽게 벗어날 수 있다는 것, 연기처럼 사라질 수 없는 세상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는 것, 그건 뭔가에 대비를 한 휴고라는 사실이다. 휴고가 대비를 했다면 왜 이겠는가. 그건 하나다. 자기가 서남기의 A.I에게 한 짓과 같은 짓을 더 하겠다는 목적이 있는 것이다.

 

 "이 달만 모두 3명입니다."

  

 "그들의 사고 이전 한 달 사이의 기록을 다시 재조사해."

 

 "그건 왜?'

 

 "서남기 영상과 같은 두 종류의 영상이 있는지 철저히 확인해.

  무슨 뜻인지 알겠어."

 

 "아! 예. 그와 같은 경우가 원인이 될 수 있다 그 말씀인 거군요."

 

 "그래, 놓치지 말고 다 찾아내."

  

 "예. 알겠습니다."

  

 그때 손목에서 소리가 났다.

 "앤드류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무슨 일이야?"

  

 마틴을 통해 앤드류의 말이 전달되었다.

 "집으로 시 재활용 센터에서 메모리 칩이 하나 도착했어."

  

 "재활용 센터에서."

  

 "응, 예전 부모님과 살던 집을 철거작업하다가 나왔데. 보관함 속에 들어 있었는데 보관함에 네 이름이 적혀 있었어."

  

 "내용이 뭔데?"

  

 "그건 확인할 수 없어. 생체 확인 잠금장치가 되어 있는 메모리칩이야. 네가 직접 해야 해."

  

 "그럼 지금은 바쁘니까 어디 보관해 둬. 다음에 볼게."

  

 "응, 알았어."

  

 그때 때마침 모니터에 영상 6개가 동시에 떴다. 각 영상들은 이미 앞서 본 서남기의 영상과 동일한 장면들이 나타났다. 주인과 NDR-11이 대화하는 모습은 나오는데 음성이 안 들리는 영상. H-휴고 한 대가 집 앞에서 서있는 영상. 그 모든 영상들이 화면은 있는데 음성이나 데이터는 없는 상태였다.

 

 영상들을 보며 찬이 외쳤다.

 "저거다. 저거야. 내 그럴 줄 알았지.

 ...

  우리 대상자들에게 일어난 자살 시도가 다 저것 때문이었어. 저게 원인이었던 거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단은 그들에 대한 조사도 다시 시작해야지. 우선은 휴고 출처를 찾아 봐."

 

 "예."

 

 그때부터 찬과 큐브는 세 사람의 집에 나타난 휴고의 출처를 찾는데 매달렸다. 어디서 나타나서 어디로 갔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이들 세 명에게 나타난 휴고도 인식 코드 신호가 없었으며 앞선 경우와 같이 어딘가에서 나타날 때나 어디론가 사라질 때는 감시 카메라가 없는 곳을 통해 연기처럼 나타났다 연기처럼 사라졌다.

 

 세 영상 모두가 서남기 연상을 재반복 또는 붙여넣기를 한 것처럼 동일한 방법으로 나타나 동일한 방법으로 사라졌다. 주변을 아무리 수색하고 찾아봐도 그 어디에서도 정체불명의 인식 코드 신호가 없는 휴고가 나타나는 배경과 사라지는 원인을 찾아낼 수는 없었다. 결국 또 다시 업무 종료 시각이 되어 하던 일을 중지하여야만 했다.

 

 이틀째 집에 와서도 회사 일로 머리가 복잡했다. 2050년에 이 일을 시작하여 3년째인데 이렇게 회사 일에 매달려 집에까지 가지고 온 것은 처음이었다. 항상 HAL 9이 다 알아서 하고 자신은 그냥 현장에 나가 있다가 HAL 9이 알려주는 레드 경고에 따라 사건 발생 현장에 나가 위험한 사람을 구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퇴근을 하고 나면 다른 조 직원이 자기 대상자를 보호하기 때문에 별도의 관심이 필요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가 찾은 사건은 그 모든 일과는 완전히 별개의 특별한 일이었다. 단순하게 자살을 기도하는 어떤 사람을 찾아 구하는 것에 국한 된 일이 아니었다.

 

 집안 거실에 앉아 고민에 빠져있던 찬이

 "어떻게 한다. 지금까지의 조사가 사실이면 이건 관리자에게 당장 보고를 해야 하는 일이다.

 ...

  어떻게 하지? 내일 보고를 해. 아니면 하루 더 찾아 봐.

 ...

  아! 복잡하네."

 

 수요일 오전인 오늘은 찬이 회사에 바로 가질 않고 현장에 나왔다. 그는 지금 서남기를 비롯한 네 사람의 집과 휴고가 나타난 지점과 사라진 지점을 직접 찾아다니며 답사를 하고 있었다. 자기 눈으로 직접 봐야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생각했다.

 

 지금은 휴고가 사라진 지점에 나와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주변에는 많은 감시 카메라들이 보였고 때로는 좌우로 움직이는 모습도 보였다. 그걸 보며 찬이 휴고가 사라진 방향으로 움직였다.

 

 찬의 사무실 HAL 9 모니터에서는 찬이 어디론가 움직이는 모습이 다섯 대의 모니터에 서로 다른 각도에서 보여지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지점을 통과하고 나자 찬의 모습이 사라졌다. 다섯 대의 영상에서도 사라지고 새롭게 추가된 두 대의 영상에서도 사라졌다.

 

 찬이 두리번거리며 걷고 있는데 마틴을 통해 큐브의 음성이 들렸다.

 "찬님, 방금 전에 모든 영상에서 사라지셨습니다."

 

 찬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듯이 말했다.

 "내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거야?"

 

 "예, 지금 일곱 대의 영상이 그 일대를 보여주고 있는데 담당자님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찬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카메라를 찾으며

 "바로 이거군. 이래서 휴고가 도망을 쳤던 거야.

 ...

  큐브, 내가 이쪽 반대 방향으로 움직일 테니 언제 나타나는지 알아 봐."

 

 그 말을 하고 찬이 오던 길이 아니라 가던 길로 다시 걸어갔다.

 

 채 다섯 걸음도 못 걸어 큐브의 음성이 마틴을 통해 들렸다.

 "지금 막 나타났습니다."

 

 그 소리에 찬이 놀라며

 "뭐야? 겨우 여기야. 그런데 왜 우리 영상에서는 다음 장면이 없었던 거지?

 ...

  뭐야?"

 

 찬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영상이 사라지는 구역으로 뒤돌아 걸어갔다.

 

 사무실의 HAL 9의 영상에서는 찬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찬이 카메라를 보며 나타나 마치 큐브와 영상 통화를 하듯이 카메라를 올려다 보며 소리쳤다.

 

 "큐브, 우리 관리 대상자 중에서 가장 위험인물 한 명만 골라 봐."

 

 "상위 위험군 인물들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 위험군 인물 중 한 명을 골라 봐."

 

 "그건 왜?"

 

 큐브의 질문에 대답은 하질 않고

 "외부의 개입이 생길 수 있는 인물로 골라."

 

 "예, 알겠습니다."

 

 그 말을 하고 찬이 다시 모니터 영상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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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악연적 1/17 323 0
43 악연적 1/15 312 0
42 재회 1/13 330 0
41 재회 1/11 307 0
40 재회 1/9 314 0
39 필연적 1/7 304 0
38 필연적 1/5 310 0
37 필연적 1/3 326 0
36 제3장, 필연적 12/30 27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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