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준의 다이어리 기록.
2026년 6월 X일.
USB에 저장된 문자 기록을 보여드리겠습니다.]
* * *
아침부터 원준은 바쁜 사람처럼 방송국 복도를 다급히 달리고 있었다. 그가 도착하여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은 기자실이다. 사무실 안에 들어와서 두리번거리던 원준의 눈에 일명 김 선배라 한동안 불렀던 김정섭이 보였다. 그에게로 곧장 걸어가 반갑다는 듯이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선배, 오랜만입니다."
"어? 어! 낙하산. 바쁘신 분이 의회 안 가고 여긴 어쩐 일이야?"
"또 그러신다. 저 낙하산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냐. 한 명 공채에 유일한 합격자에. 수습 끝나자 바로 정치부 들어간 놈이. 낙하산 아니면 누가 낙하산이야. 너 자꾸 금수저 아니라고 말하는데, 금수저 맞지?"
원준이 옆에 있는 빈 의자를 당겨 앉으며
"선배, 또 술 생각나는구나. 날 갈구는 걸 보면."
정섭의 조금은 비아냥거리는 듯한 말투에도 원준은 전혀 내색하지 않고 농담처럼 웃어 넘겼다. 아마도 이런 류의 주고받음이 서로에게는 예전부터 많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조금의 비아냥거림도 별 일 아닌 것처럼 넘길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래, 어쩐 일이야?"
원준이 종이 한 장을 정섭에게 내밀었다.
"일주일 전 사고인데. 이거 한 번 봐 주세요.
...
사고 뒤처리가 어떻게 되었나 알아보려고. 부탁 좀 드리려 왔습니다."
"어디 보자. 오! 제법 큰 사고였네.
SUV에 탄 일가족은 전원 사망이고. 앞 차인 승합차에서는 뒤에 앉은 세 사람이 사망하고. 그 외에 7명이 중경상을 입었네.
왜? 누구 아는 사람이야?"
김정섭의 입에서 나온 '왜 누구 아는 사람이야?'라는 말. 참 익숙한 말이다. 경찰이나 기자 같은 직업의 사람은 누군가가 어떤 일을 부탁하면 대뜸 나오는 첫 마디가 '누구 아는 사람이야' 또는 '아는 사람 일이야'가 기본이다. 원준 스스로도 어제 김정섭에게 준 종이를 받으며 그런 말을 했었다.
"아는 사람이야?"
그 말이 생각나 원준은 어제를 떠올렸다.
원준과 상민이 커피숍에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원준은 앞에 앉아있는 상민에게 종이를 다 읽고 방금 그 말을 물었다.
둘이 만나게 된 처음은 오전에 상민에게 연락이 왔다. 원준이 방송국 복도를 걷고 있는데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했다.
[친구 상민]
원준이 전화를 받으며 자주 통화한 사람처럼 말했다.
"어, 왜? 술 한 잔 할까?"
대뜸 술 이야기를 꺼내는 것으로 봐서 둘은 최근에 자주 술자리를 가졌던 모양이다.
장난삼아 술자리 이야기를 했던 원준과는 달리 상민의 진지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술은 됐고. 오늘 바쁘냐?"
원준이 무슨 일인가 하여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니. 왜?"
"그럼 좀 만나자. 할 이야기가 있어."
"할 이야기?
...
무슨 일인데?"
원준은 친구가 할 이야기가 있다는 말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와 다시 만나기 시작하고 한 달 남짓이 흘렀지만 할 이야기가 있다며 만나자고 한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간에는 그저 술이나 한 잔 하자거나 저녁이나 같이 하자는 말이 전부였다.
"전화로는 다 설명할 수 없고. 만나서. 만나서 이야기할게."
'만나서? 만나서 이야기할 정도로 중요한 일이야? 무슨 일이지?'
원준이 조금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어... 그럼. 지금은 안 되고 퇴근 후에 보자. 어디서 볼까?"
"내가 너희 회사 앞에 갈게. 거기서 보자."
"응, 응. 그렇게 하자. 대체 무슨 일인데?"
"그때 봐."
상민이 먼저 끊었다. 이유를 말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정말로 전화로는 나눌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는 모양이었다. 원준이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모니터를 유심히 봤다. 묘한 기분이랄까 이상한 기분이랄까 전화를 받고 나니 기분이 이상했다. 뭔가 있을 것 같고,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그날의 떠올렸다.
원준이 1년 만에 상민을 처음 만났던 날이다. 한참 동안 이야기를 하며 주거니 받거니 술을 나누던 터라 그제는 어느 정도 술기운이 돌아 건들거리는 상민이 머리를 비틀거리며 말했다.
"내가 그 시한폭탄이라고.
...
시한폭탄."
원준이 당황한 눈빛으로 상민을 보며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게 대답했다.
"미친 새끼. 무슨 소리야. 네가 시한폭탄이라니."
하지만 그는 술기운이 확 달아날 만큼 놀랐다. 지금까지 몇 시간동안 둘이서 나누었던 그 심각한 저주에 대한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앞에 있는 친구의 이야기 였다니. 이걸 술 기운에 하는 농이나 거짓말로 들어야 할지 아니면 정말 심각하여 1년 동안이나 연락도 없어 숨어 있었던 친구의 입에서 나온 진실이라고 해야 할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상민이 고개를 스스르 떨구며 술잔을 처량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그 사람이 쓴 글을 내 글처럼 만들어 우리 대학에 들어갔다고.
...
나도 우리 누나처럼.
...
우리 동네 애들처럼.
...
그렇게 대학에 들어갔다고.
...
훔친 남이 쓴 글로.
훔친 글을 내가 쓴 글로 속여서.
도둑질한 글로 대학을 갔다고.
나도 저주 받은 놈이라고.
...
이 병신아. 그러니까 넌 내 가까이에 있으면 안 돼.
알겠냐. 알았어.
...
내 가까이에 있으면 너도 다친다고. 너도."
원준이 바로 대답을 못하고 그냥 보기만 했다. 그제는 정말 술기운이 확 달아나 정신이 말똥말똥해졌다.
상민이 그런 원준의 모습에 슬픈 표정을 지으며 보고만 있던 술잔을 급하게 들어 단숨에 입안으로 털어 넣고는
"그래서, 그래서 넌.
넌 정말 내 옆에 오면 안 돼.
...
난. 난 말이야. 난 널 만날 수 없어.
...
절대로. 절대 안 돼.
...
난. 난 말이야.
...
그 사람의 말 그대로... 그 사람 말대로 하면...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존재거든.
...
시한폭탄."
상민의 말을 듣고 난 원준이 그를 똑바로 보다가 단번에 술잔을 비웠다. 그의 모습은 마치 뭔가 각오를 한 사람 같았다. 그리고는 다시 자기 손으로 술을 잔에 따르고는 호기롭게 술잔을 번쩍 들어 건배를 하는 듯이 흔들면서
"괜찮아. 괜찮아. 누가 그런 미신을 믿는다고 난 안 믿어. 괜찮아, 걱정 안 해."
"미친 새끼.
...
너 죽을 수도 있어. 내 옆에 있으면 죽을 수도 있다고.
...
내가 시한폭탄이란 말이야. 시한폭탄."
들고 있던 술잔의 술이 사방으로 쏟아지는 줄도 모르고 허공에서 팔을 흔들며
"죽기는 뭐가 죽어. 난 안 죽어. 그리고 너도 안 죽어. 그러니 이젠 그만 도망 다녀. 내가 전화하면 꼭 받고. 알았어."
"미친 새끼.
...
죽는다는데도.
...
죽는다고.
...
우리 옆에 있으면 다 죽는다고. 저주 받아 죽어.
...
우리 저주 때문에 다 죽는다고."
"괜찮아. 괜찮아. 이미 대학 들어가면서 아버지 때문에 인생 포기한 놈인데. 그걸 다시 살려놓은 것이 너와 너희 누나인데.
...
누나... 우리 누나...
...
까짓 네가 가지고 간다면 그냥 주지 뭐. 그래, 가져가라 가져가. 까짓것 준다 줘."
상민이 머리를 앞으로 드리밀고 있는 원준의 머리를 밀치며
"이거 회사 들어가더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 회사가 그렇게 힘드냐. 누군 그놈의 회사 들어가고 싶어 난린데. 호강에 겨워 요강에 빠질 놈아."
원준이 그제는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그래, 호강이던 요강이던 상관없다. 이젠 더 이상 널 잃지 않는다. 절대 못 도망쳐."
그리고는 기절을 하듯이 테이블에 쓰러졌다.
그 일이 있고 며칠 뒤에 다시 원준과 상민은 저녁 식사를 하며 만났다. 그날 상민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었다. 사람들이 글을 도둑질한 사람의 컴퓨터에 있던 이야기라며 들려준 이야기다.
학생들이 저수지 주변 물가에 줄을 지어 서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들 뒤에는 몇 걸음 뒤에 부모들도 각자 자기 아이들 뒤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이 나타나 저수지 물가에 서있는 학생들을 발로 차서 저수지에 밀어 넣었다.
학생들은 가만히 선 채로 꼼짝도 하질 않고 그대로 밀려 물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런데 그 모습을 뒤에 서있는 부모들이 아무것도 하질 않고 지켜보기만 했다.
자기들 손을 잡고 이곳에 온 자식들이 물에 빠져 죽는 동안에도 부모라는 사람이 아무것도 하질 않고 구경만 하고 있었다.
저수지 둘레에 서있던 학생들이 다 물에 빠지고 나서도 부모들은 구경만 했고.
아이들을 물에 빠트린 사람들은 그들이 물 밖으로 나오려고 하면 다시 발로 차 저수지 안으로 밀어 넣었다.
자식들이 다 죽어갈 때까지도 부모는 아무것도 하질 않았다.
그들이 한 것이라고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저수지에 온 것과 그들을 저수지 물가에 세워둔 것이 전부였다.
그 뒤에는 구경만 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원준은 아무 말도 하질 않았다. 뭔가 말을 하면 그게 직접적이게도 친구 상민의 일이 되었기 때문에 그냥 듣기만 했다. 하지만 이야기 속에는 많은 내용들이 함축되어 있었다. A 마을 이야기의 함축된 콩트 같았다.
원준이 전화를 끝내고 나서 다시 가려던 곳으로 걸어가며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슨 일이 있나?
...
평소 느낌과는 완전히 다른데.
...
녀석의 말투도 그렇고. 회사에 직접 찾아오겠다는 것도 좀 그렇고.
...
무슨 일이지?"
그때 김정섭이 같은 말을 반복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는 사람이냐고. 아는 사람이야?"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린 원준이 대답했다.
"아니요. 아는 사람의 부탁을 받아."
"그럼 아는 사람 맞네. 어디 쪽이야? 가해자 아니면 피해자."
"가해자 쪽입니다."
"뭐가 궁금한데?"
"사고 후 처리가 좀 어설픈 것 같아서 무슨 일이 있었나 선배 라인으로 알아보려고."
정섭이 고개를 들어 앞쪽 벽에 붙어 있는 일정표를 적어둔 패널을 봤다.
"이 정도의 사고인데 사회부에서 취재를 하지 않았으면 의심을 품을 만도 하겠네. 알았어, 내가 알아보지. D 시에 있는 친구에게 알아보면 쉽겠군. 어디 보자. 거기 누구가 있더라."
정섭이 연락할 사람을 찾는 동안 원준은 다시 어제 상민을 만났던 일을 떠올렸다. 상민의 연락을 받은 원준은 회사 인근의 커피솝에서 그를 만났다. 거기서 지금 정섭에게 준 종이를 건네 받았다. 원준은 그 종이를 읽고 있었고 상민은 그 모습을 커피를 마시며 보고 있었다. 종이를 다 읽은 원준이 앞에 앉은 상민을 봤다.
"잘 아는 사람이야?"
"애들 엄마는 같은 고향 사람이기는 한데 우리보다 나이가 많아 잘 몰라. 우리 누나는 잘 알거... 대신에 몇 달 전에 죽은 애들 외삼촌은 나이 차이가 나도 동네 안에서 같이 커서 대충은 알아."
상민이 누나 이야기를 하려다 그만두고 다급히 다른 이야기를 했다. 아마 누나는 애들 엄마와 친분이 있고 알았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그걸 원준도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는 바로 물었다.
"혹시 이 사고가 A 마을 저주의 연장선이야?"
상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준이 재차 종이를 보며
"그런데 왜 이걸 나에게 준거야? 무슨 이유야?"
"거기 애들 엄마와 장모 쪽. 그 가족이 올해 몇 달 사이에 일가족 모두를 잃었어. 한 달 조금 전에는 장인이 죽었어. 마지막으로 죽은 것이 그 사고야.
...
그런데 그냥 일반 교통사고로 유야무야됐어. 자율 주행장치 차량에 충돌방지센서가 부착된 차량이었는데 사고가 났어."
상민이 마지막 말은 자동차의 특징적인 장치를 열거하였지만 그의 말투나 의도로 보면 이건 분명 무슨 의심이 있어 알아보는 거야 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원준은 다른 말 필요없이 바로 물었다.
"이들도 남의 글을 훔쳐서 자기들 쓴 글로 속여 대학 간 사람들이야?"
원준의 단조직입적인 질문에 조금은 머뭇거리던 상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응, 맞아. 애들 엄마하고 외삼촌.
...
이야기 하나 들려줄게."
"왜 뜬금없이 이야기?"
"그 외삼촌이라는 사람이 친구들이나 고향 동년배들 만나면 꼭 하는 이야기가 있어."
상민이 들려준 이야기는 이러했다.
외삼촌이라는 사람이 대학 다닐 때 친구들과 놀이공원에 갔는데, 아이스크림을 사려고 갔다가 고등학교 때 선생님을 만났다는 것이다.
그 분도 아이들과 같이 아이스크림을 사려고 줄을 서 있었다.
거기서 그분이 애들 외삼촌과 친구들을 보더니 갑자기 자기 아이들의 손을 잡고는 다급히 서있던 줄에서 도망을 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 해서 지켜보니 뒤쪽에서 쉬고 있는 부인에게 곧장 가서는 어서 공원에서 나가자며 도망을 치는 걸 보았다는 것이다.
영문을 몰랐던 부인은 남편에게 무슨 일이냐고 소리치고, 엉겹결에 놀이공원을 나가야 했던 아이들은 울고불고 했다는 것이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도망치는 모습이였고 피하는 형국이었단다.
그 이야기를 그 외삼촌이라는 사람이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처럼 들려주었다는 이야기였다.
상민이 이야기를 다 끝내고
"그 사람에게서 그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때 그의 얼굴은 연신 웃고는 있었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남이 쓴 글로 제자를 대학 보낸 선생님조차 훗날에는 도망을 치셔야 할 만큼 저주받은 사람이 우리가 되었다는 걸 알려주려고.
그런 존재가 그 집에는 두 명이나 있었어. 그리고 그 두 사람이 이번까지 몇 달 사이에 가족과 함께 모두 죽었고."
상민의 표정이나 말투가 차츰 어두워지고 암울해져 갔다.
원준이 그런 친구의 변화를 알아채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여전히 과거의 잘못에 발목이 잡혀 저주에 허덕이고 있구나. 한순간의 욕심을 위해 남이 쓴 글을 도둑질하여 대학을 간 잘못이 두고두고 저주가 되어 죽음에 두려워해야하는 운명이라니 참으로 안타깝다.
원준이 속으로 안타까워하며
"그래서 이걸 알아보면 뭐가 되는데?"
"그걸 알다보면 우리에게 닥친 죽음이..."
상민이 뭔가 말하려다 입을 닫았다.
"우리에게 닥친 저주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 알려고."
원준의 말에 상민이 대답 대신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이미 다 아는 사실이잖아. 과거의 잘못으로 인해 생겨난 저주라며.
너희들 스스로가 고향에 있을 때 타인이 쓴 글을 도둑질하여 대학을 갔고, 그걸 숨기기 위해 짬짜미를 통해 은폐하고 조작하는 일을 했다며.
그게 진실이고 그게 원인이잖아.
...
다른 또 뭐가 있어?
다른 원인이 있는 거야?"
"... 그게... 그런니까 그게..."
주저하는 친구가 답답한지 원준이 추궁을 하듯이 물었다.
"뭐가. 뭐가 더 있는데. 대체 그것 말고 다른게 더 뭐 있는데?"
"아아아 아니. 그런 거 없어.
...
단지... 이 사건을 두고.
사람들이.
다시 저주가 시작되었다고 해서 그냥 알아보는 거야.
...
정말 불가항력적인 사고인지 아니면 막을 수 있는 사고가 갑자기 발생하여 우연처럼 보였는지."
"넌 뭐이길 원하는데.
...
이 종이 보고서처럼 불가항력적인 것이 아니라 인위적 사람의 실수에 의한 사고이기를 원하냐?"
상민이 다시 대답을 못했다.
"그렇게라도 해서 저주가 아니기를 바라는 거야?"
"운명이... 우리들 운명이... 시한폭탄 아니냐.
...
언제 터질지는 몰라도 당장은 아니기를 바라고.
당장이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난 것도 시한폭탄이 아니기를 바라는.
...
그게 시한폭탄의 운명이잖아."
상민의 말에 아무 대답도 없이 한참동안 친구의 얼굴을 보고 있던 원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알았다. 내가 한 번 알아볼게.
...
그러니까 이 사고의 원인이나 사후 처리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보면 되는 거지."
상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준이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정섭은 핸드폰을 들어 저장된 명단을 찾기 시작했다. 잠시 뒤, 번호를 찾았는지 통화 버튼을 누르고 다시 원준이 준 종이를 봤다. 정섭이 서류를 다시 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날짜가 어떻게 되냐... 그러니까, 어디 보자... 일주일 전이니까..."
날짜를 확인하다가 정섭이 다급히 들고 있던 핸드폰을 얼굴 근처에서 내려 통화 버튼을 꺼버렸다.
정섭이 많이 놀란 표정으로 원준을 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이날 이 장소면 그 사고 났던 곳이야.
그 사고!
거기야. 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