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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 : 내일과 어제를 잇는 다리
작가 : 러군
작품등록일 : 2017.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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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이
작성일 : 17-11-30     조회 : 55     추천 : 0     분량 : 12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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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살 때 DA 대교 붕괴사고로 두 부모님을 잃었다. 다행히 오 박사님이 양자로 키워주셨어 1,2년은 그 집에서 부모님을 잃었다는 사실을 잊은 채 행복하게 보냈다. 그런데 9살이 되던 해에 오 박사님 마저 돌아가셨다. 그해 오 박사님 사모님과 아들 오혁이 또한 아무런 소식을 남기지 않고 어느날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졌다. 부모님을 잃었을 때보다 더 고통스러웠고 힘들었다.

 

 자기 주변에 가족도 친척도 주변 사람도 아무도 없자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았다. 그때부터 민희는 혼자였다. 혼자서 인공지능 A.I인 NDR과 NDR의 통제를 받지만 마치 사람 같았던 휴고와 함께 살았다. 그 당시에 그녀에게 가족은 그 둘 뿐이었다.

 

 혼자가 되고 난 다음부터 그녀에게는 이상한 습관이 있었다. 낮잠을 자는 것을 두려워했다. 낮잠을 자고 나면 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허망한 시간을 보낸 것 같은 두려움에 빠져 괴로워했다. 마치 잠 잔 시간을 허망한 잠으로 아깝게 날려버린 것 같은 공허감과 아쉬움이 들었다. 그건 마치 남들과 같이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소외감과도 같은 괴로움이었다. 막상 잠을 자지 않았어도 많은 시간을 남들과 같이 보내고 있지 않았음에도 번번히 그런 허망함과 아쉬움에 낮잠을 자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건 지금까지 이어져 좀처럼 낮잠을 자지 않았다. 아주 피곤한 날이면 낮잠을 자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과거 어린 시절에 혼자 살 때 가졌던 마음이 다시 나타나는 것 같아 이상한 기분이 들곤 했다. 시간을 날려버린 것 같은 허망함과 아무것도 하지 않아 공허한 아쉬움과 나만 혼자가 되거나 같이 있지 않은 것 같은 두려움과 외로움이 밀려들었다. 그래서 여전히 낮잠을 자는 것을 두려워했고 무서워했다.

 

 7살 때 엄마가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아파트 단지 붕괴 사고로 돌아가셨다. 그날이 크리스마스 이브 날이다. 그때 동생 창동의 나이가 2살이었다. 7살짜리 여자애가 2살 동생을 돌볼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A.I와 휴고가 활성화 되기 시작하던 시대였다. 어린 동생이 있다고 설민이 집에는 휴고가 두 대나 보급되었다. 유모 휴고라고 하여 아예 어린 창동을 돌보는 휴고가 한 대 더 있었다.

 

 10살에 아버지마저 돌아가셨다. 그때부터 가족이라고는 단 둘 뿐이었다. 10살 누나와 5살 동생. 그때부터 설민은 동생 창동을 자기 시선이 미치는 안에 계속 두려고 했다. 통제와 간섭과 창동이 보기에 구속과도 같은 동생 보호가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그 강도가 집착에 가까웠다. 잠시라도 동생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으면 불안했고 걱정이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때부터는 모든 일을 내팽개치고 동생 찾는데 매달렸다.

 

 구속받는 창동이 입장에서는 그게 고통이었을지 모르지만 가족을 지켜야 할 가장이고, 유일하게 남은 동생을 지켜야 했던 누나의 입장에서는 그건 신념과도 같은 것이었다. 자기 전체나 다름없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그녀는 무슨 일이든 다 할 것처럼 동생 창동을 자기 주변에 잡아 두려고 했다.

 

 9살 때 H강 나비 문화제에 가셨던 부모님이 돌아오시지 않았다. 그녀가 알게 된 것은 스포츠 문화 센터에 있을 때 사람들의 어수선한 분위기와 어디선가 들리는 "H강 나비 문화제 장소에서 테러범으로 보이는 자들의 공격을 받아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습니다."라는 반복적인 방송 내용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스포츠 센터에 남아 있는 사람은 자기 혼자 뿐이었다.

 

 그 넓은 스포츠 센터 실내 체육관에 혼자 있었던 것이 현실에서의 모습인지 꿈에서의 모습인지 지금은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 그 장면은 지현에게는 충격이었고 괴로움이었다. 그날 이후 그녀는 자꾸만 주변에 친구를 가까이 두려고 했다. 단 한번도 혼자인 적이 없을 만큼 주변에 누구가 있는 것에 집착했다. 그래서 그녀가 선책한 방법은 아름다움인 미모였다.

 

 원래부터 예뻐서 사람들의 칭찬을 받던 그녀였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것과 예쁘다는 것이 혼자가 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임을 그녀는 일찍 깨달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치장과 화려함이 빠져들었다. 혼자서 살 때는 어떻게든 남들보다 예뻐보여 주변에 친구들이 모이게 하려고 했고, 나이가 들어서는 미모를 통해 남자친구를 항상 만들어 옆에 세워두려고 했다.

 

 셋은 그렇게 가족을 잃은 상실감으로 저마다의 개인적 트라우마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모두가 가지고 있는 공통의 트라우마인 혼돈 시기에 대한 두려움 외에도 저마다의 트라우마는 있었다. 혼돈 시기의 트라우마가 만들어낸 또 다른 트라우마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혼돈 시기의 트라우마와는 별개의 개인적 트라우마라고 해야 할지 구분할 수는 없지만 저마다의 트라우마를 간직하고 살았다.

 

 혼돈 시기가 끝난 다음에는 세 명 모두에게 새로운 루틴이 생겼다. 여행을 가면서 생기는 루틴인데 변함이 없었다. 항상 그랬다. 언제부터 이랬는지 잘 모르겠지만 여행만 나서면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세 명이서 같이 모여서 어딘가를 가면, 여행을 하면, 항상 그랬다.

 

 억지 웃음.

 억지 기쁨.

 

 오늘도 그랬다. 설민의 연락을 받고 여행을 나섰다. 지금은 B시로 향하는 고속 기차를 타고 있는데 기차에 타면서부터 그야말로 미친 듯이 기뻐했고, 잠시도 쉬지를 않고 수다를 떨었으며,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큰 소리로 웃었다. 아니, 눈치를 보고 그런 행동을 했을 수도 있다. 우리는 기쁘고 즐겁고 행복해서 여행을 할 이유와 목적이 있다는 듯이. 그게 마치 대놓고 크게 기뻐해야 한다는 의무 같이 소리내 웃고 떠들었다. 권리요 의무 같았다. 사소한 일에도 연신 박장대소하며 깔깔거렸다.

 

 지금도 별 일 아닌 일들을 가지고 포복절도할 정도로 심하게 소리내 웃고 있다.

 

 그 중 민희가 지현을 보며

 "호호호. 그런데. 호호호. 그런데. 어떻게 B 시에 갈 생각을 했어?"

 

 지현이 설민을 보며

 "호호호. 아! 그거. 호호호. 그건 말이지. 설민이 전화받고 그냥 떠올랐어. 당장 가고 싶어 하는 눈치라."

 

 설민은 지현을 보며

 "호호호. 얘는... 호호호. 놀라워. 거침이 없어. 우리 같으면 이리저리 재보면서 고민을 할 텐데. 그냥 직진이야. 직진."

 

 지현이

 "호호호. B시 잖아. 거길 가는데 뭘 재보냐. 이렇게 가니 좋잖아. 하하하."

 

 민희가

 "호호호. 난 또 외국 여행 가자고 하나 했지. 갔다 온 지 석 달도 안 지났는데 '또 야'라고 생각했어. 하하하."

 

 설민이

 "호호호. 해외여행은 다음에 계획 딱 잡아서. 하하하. A부터 Z까지 완벽하게 해서. 호호호."

 

 지현이 순간 웃음을 그치고 조금은 비아냥거리 듯

 "저러니까 내가 당장 가자고 한 거야. 얘는 여행도 성격 그대로야 뭐든 다 갖추어져야 움직여."

 

 그녀의 말에 설민도 웃음끼가 금방 사라진 얼굴을 하고 째려보며

 "완벽하게 갖추고 가면 편하잖아. 거기 가서 없어서 허둥되는 것보다야 좋지."

 

 둘은 더 이상 웃지 않았다. 그들의 말과 행동 변화에 민희는 아무 말도 하질 않았다. 그녀 예상에는 왠지 지금 시작한 말이 꼬투리가 되어 싸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뭔가 아는 눈치였다.

 

 지현이 지지 않겠다는 듯 언성을 높여가며

 "그렇게 허둥 되는 것도 추억인데."

 

 설민도 지지 않겠다는 기세로

 "추억도 추억 나름이지. 처음부터 잘 정리하여 힘들지 않으면 더 좋잖아."

 

 민희의 예상이 맞아들어갈 것 같은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누구 하나 지지 않겠다는 듯 말대꾸를 한다. 이게 어떻게 흘러갈지는 그녀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세 사람은 미친 듯이 과하게 웃다가도 어느 순간 말이 꼬이기 시작하면 언성을 높이며 싸웠다. 마치 조울증의 조증과 울증이 파도를 타듯이 오르내리는 형태였다. 그게 마치 일상 같아 세 사람은 그 일이 이상한 행동인지 잘 몰랐다. 다른 사람이 옆에 있었다면 이상하다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보고 만 있던 민희가 이제는 말려볼까 생각하고 있는데 그 순간 둘이 말문이 터진 사람처럼 말꼬리 잡기를 시작했다.

 

 지현이 화가 난 것처럼

 "야, 그렇다고 딱히 우리가 고생한 적도 없잖아."

 

 설민도 언성을 높이며

 "고생했다는 것이 아니라 고생할 걸 대비하자는 거지."

 

 지현이

 "네 말은 나처럼 여행 가면 고생한다는 식이잖아."

 

 설민이

 "내가 언제. 그게 아니라 대비를 잘하면 고생 안 한다는 거지."

 

 둘은 기차를 막 탔을 때의 깔깔거리던 분위기와는 달리 지금은 근방이라도 싸울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 분위기에 민희가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한지 연신 주변의 눈치를 봤다.

 

 민희가 작은 소리로 말렸다.

 "야, 그만해. 이러다 정말 싸우겠다. 그만. 그만해.

 ...

  우리 B 시에 오랜만에 가지. 처음 갔을 때가 언제였더라."

 

 조금은 뾰로통해진 설민이 화가 난 듯이 새침하게 대답했다.

 "19살 때. 첫 여행지가 거기잖아.

 ...

  기억 안 나. 혼돈 시기 끝났다는 대 국민 발표가 있은 뒤에."

 

 민희가 여전히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 맞다. 그때도 지현이가 대뜸 B 시를 떠올렸지."

 

 지현이 내심 친해지고 싶지 않다는 듯이 민희 쪽만 보며 새침하게.

 "그랬던가?

  아! 맞다. 그때도 내가 거기 가자고 했지.

 ...

  그때 누가 무작정 나오니까 좋다며 페이퍼 탭에 연신 자기감정 쏟아 놓던 사람이 있었는데. 다음에 자기 소설에 인용하겠다고.

 ...

  누구더라."

 마지막 말을 할 때가 되어서야 설민을 봤다.

 

 설민이 민희 쪽만 보며 아니라는 듯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여벌 옷도 챙기질 않고 와놓고는 1박 하자고 하는 바람에 사람들 고생시킨 사람은 누군데."

 

 민희가 둘을 말리며

 "또 또. 이런다. 그때 재미는 있었잖아. 바닷물에 빠져서는 옷도 없이 오들오들 떨기도 하고. 지현이가 물이 줄줄 흐르는 옷을 입은 채로 당당하게 마켓까지 걸어가서 옷 가지고 오는 바람에 갈아입고."

 

 기억이 생생하게 나는지 마지막 말을 할 때는 지현을 봤다. 그런데 지현은 민희를 보지 않고 딴 곳을 보고 있었다.

 

 민희가 이상해서

 "지현아, 뭐 해?"

 

 지현이 건너편 의자에 앉아 있는 중년의 부인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응? 아! 저기 저분 좀 봐."

 

 설민도 그제는 지현을 보았다.

 "야, 민망하게 뭘 그리 빤히 쳐다봐."

 

 지현이 여전히 같은 곳을 보면서 건성으로 대답했다.

 "저 사람 좀 보라니까?"

 

 지현이 가리키는 곳에 있는 중년 부인은 50대 후반 정도로 보인다. 나이에 비하여 젊어 보일 만큼 기품이 있고 정갈한 모습이다. 외모적 분위기로는 여유로운 중년의 세련된 부인 같은 느낌을 주고, 얼굴에서는 공부를 많이 한 지적인 여성의 향기가 풍긴다. 간혹 빙그레 웃는 얼굴에서는 아무런 티끌 없이 편한 세상을 살았을 것 같은 여유도 느껴진다.

 

 그제야 부인이 자기를 보고 있는 세 명의 시선을 느꼈는 모양이다. 급기야 부인이 고개를 돌려 그들을 봤다.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설민이 다급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아아 안녕하세요. 아니요. 그냥 보다가··· 그냥 주위를 보다가···"

 

 민희도 고개를 숙이며

 "죄송합니다."

 덩달아 인사를 하고는 지현의 고개를 강제로 돌리려 했다.

 "지현아, 그만 봐. 민망하게. 고개 돌려."

 

 지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치 뭐라도 발견한 사람처럼 환히가 가득한 시선과 얼굴로 부인을 보고 있었다.

 

 민희가 급기야는 지현을 옷을 잡아 당기며

 "야, 상대가 민망하게 왜 자꾸 쳐다봐."

 

 그 사이 설민이 중년 부인과 인사를 나누고 나서는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부인의 이름은 민지영이었다. 부인은 세 명의 깔깔거리는 웃음과 활기찬 대화가 좋게 보였던 모양이다. 연신 부럽다는 말씀과 웃으니까 좋아 보인다는 말씀을 했다. 설민은 부인에게 연륜이 있어 보이고 기품이 있어 보인다는 칭찬을 했다. 특히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일 만큼 아름답다는 말도 했다.

 

 그제야 지현이 민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 옷이야. 내 옷. 내 옷을 입고 계셔."

 

 민희가 놀라며

 "무슨 소리야. 네 옷이라니."

 

 지현이 재차 흥분한 음성으로

 "내가 인터넷에 올린 내 디자인 옷이야. 내 옷이라고."

 

 그 말을 부인이 들었는 모양이다. 대뜸 지현을 보며 물었다.

 "송지현 디자이너 되세요?"

 

 지현이 금세 기뻐하며 민지영을 보며 인사를 했다.

 "예, 제가 송지현입니다. 안녕하세요."

 

 지현이 쳐다본 이유가 그거였다. 자기가 디자인한 옷을 입고 있는 부인을 발견하고는 기쁜 나머지 보고 있었던 것이다.

 

 부인이 반가워하며

 "어머, 안녕하세요. 전 민지영이라고 해요. 이 옷이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 이렇게 디자이너 분을 만나네요. 반가워요."

 

 민지영은 아주 상냥하게 지현에게 인사를 했다. 그때부터 일행은 민지영과 친해져 B 시에 도착할 때까지 같이 이야기를 하며 내려갔다. 이름은 민지영으로 지금 직업은 실용 디자이너 일을 한다고 했다. 설민이 궁금해 어떤 일이냐고 구체적으로 물어보았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사람들이 인터넷이나 국가 데이터 베이스에 자기들의 창작 아이디어를 올려놓으면 그걸 보고 실용적인 물건이 될 수 있으면 그에 합당하게 실용적 디자인을 적용해서 제품이 될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을 한다고 했다. 민희가 제품이 생산될 수 있게 서포트 역할 같은 것이냐고 물어보자 민지영은 대충 그렇다고 했다.

 

 S시에서 B시까지 2시간 반 정도가 걸렸는데 그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가족에 대한 이야기나 과거에 대한 이야기는 일체 하질 않았다. 세 명은 원래 자기들끼리도 그런 이야기는 하질 않은 편이라 입 밖으로 내놓지를 않았다. 민지영 또한 뭔가를 아는 사람처럼 절대로 가족 이야기나 혼돈 시기 때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네 명이 교묘하리 만큼 절묘하게 금기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듯이 피했다.

 

 

 그 시각 S시의 민지영 집 앞에서는 갑자기 불쑥 B시에 가야 한다는 말에 당황한 큐브가 로이를 통해 이유를 물었다. 찬은 그 이유로 방금 통화한 김동주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했다. 크로우가 NDR-11을 접촉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을 접촉해 자살을 유도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마지막에 심각하게

 "우리 감시 대상자가 여행지에서 크로우와 접촉할 우려가 있어. 내가 보기에 확률이 가장 높아."

 

 "그럼 서둘러야 겠군요."

 

 "응, 한시가 급해. 벌써 오전을 날렸잖아. B 시까지 가장 빠른 길은 뭐야?"

 

 "고속 기차를 타면 두 시간 반이 걸리는데. 문제는 여기서 기차역까지 최소 30분이 걸리고. 지금 민지영이 있는 곳까지는 B시 기차역에서 다시 30분이 소요되어 총 3시간 30분이 걸립니다."

 

 찬이 다급하다는 듯 큰 소리로

 "더 빠른 거 없어?"

 

 "드론을 이용하면 총 세 시간 안에는 민지영 바로 앞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그럼 알파가 여기 남고 나와 로이, 레온이 간다. 드론 여기로 보내. 당장."

 

 찬과 2대의 휴고는 10분 뒤에 그곳 인근에 있는 드론 탑승장에서 드론을 탔다. 드론을 탄 찬은 그 즉시 페이퍼 탭을 꺼내 펼쳐서 큐브에게서 전송되는 민지영의 감시 영상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 발견한 것은 기차 안에서 젊은 여자들과 대화하는 장면이다. 찬은 민지영의 하루 일과인 아침부터 그 시각 전까지는 빠른 검색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여자들과 있는 장면에서 마틴에게 보통 속도를 외쳤다.

 

 화면의 재생 영상이 정상 속도로 움직였는데 기차 안에서 민희 일행과 대화하는 장면이다.

 

 찬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어? 누구였더라. 많이 본 얼굴들인데. 어디서 봤더라?"

 

 드론 안에서는 찬의 옆에 레온이 앉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큐브가 레온을 통해 말했다.

 "지금 시각이 오후 2시입니다. 그 속도로 보시면 이전 영상을 도착하기 전에 다 보실 수는 없을 겁니다."

 

 "알았어. 마틴, 다시 빠른 화면으로."

 

 찬의 말에 페이퍼 탭의 영상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영상에서는 기차 안에서 네 명이 이야기하는 모습이 계속 이어졌다. 대부분의 영상이 네 명이 밝게 활짝 웃는 모습들이다. 기차를 내린 다음부터는 민지영이 혼자 돌아다녔다.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도 보였고, 해변에 도착하여 바다를 구경하는 모습도 보였다. 점심때쯤에는 시내를 구경하고 있는데 그때까지도 특정 휴고인 크로우를 만나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모두 혼자 있는 영상이었다. 시내 장면에서 찬이 뭔가를 봤는지 다시 정상 속도라 외쳤다.

 

 화면을 열심히 보다가 찬이 중얼거렸다.

 "큐브, 왜 이 사람이 특별 관리 대상에 올라있는 거야?"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이 사람 표정과 행동을 좀 봐. 이런 사람이 왜 고위험군의 특별 관리 대상이 될 수 있지.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고위험 증후군에 속하는 사람의 행동이나 얼굴이 아냐."

 

 "기존의 위험 전력 때문입니다. 총 6번의 시도가 있었고. 4번째와 5번째는 사망 직전까지 간 경우도 있었습니다."

 

 찬이 그제야 이유를 알고는

 "응! 그래서 지정되어 있는 경우구나. 그런데 지금 모습은 어느 정도 치료가 잘 된 모습 같은데. 특별한 자극이나 개입이 없으면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할 것 같은 행동이야."

 

 "현재 저희 프로그램에 들어오고 있는 신체적 심리적 정보도 동일한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그때 막 민지영이 식당에 들어갔다. 그런데 식당 안에서 다시 기차에서 본 민희 일행을 만났다. 지영이 합석하여 식사를 같이 했다.

 

 이 장면을 여전히 정상 화면으로 보고 있던 찬이 갑자기 뭔가가 떠오른 사람처럼 소리쳤다.

 "아! 생각났다. 그 여자다. 그 여자. 저번에 Y23 구역에서 자살 시도가 있을 때 대화를 했던 그곳 담당자. 그때 누구 사고였더라?"

 

 "서남기 사고입니다."

 

 "그래! 서남기 사고. 그때 나 대신에 대화를 하고 있던 사람. 아! 그 사람이네. 신기하네. 여기서 다시 보다니."

 

 찬의 말투나 행동으로 봐서는 그리워했던 사람을 이제야 만난 것처럼 반가워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그의 시선은 연신 민희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더 아이러니 한 것은 바로 옆에 있는 설민은 기억하지 못 했다는 것이다. 창동의 일로 인사를 한 얼굴인데도 기억하지 못 했다. 그건 옆에 있는 지현도 같은 상황이었다. 같은 날 공원에서 서로 부딪혀 넘어트린 사람인데도 기억하지 못 했다. 유독 민희만 기억하고 있었다. 찬이 민희의 모습을 보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그 시각 다시 B시 유명 해변 언덕 관광지.

 민희와 두 명이 언덕을 힘겹게 오르고 있다. 민희는 조금 힘들어하는 모습이고 설민은 맨 앞에서 여유 있는 모습이다. 그에 비해 지현은 아주 힘들어하는 모습으로 맨 뒤에서 허우적거리며 따라오고 있다.

 

 지현이 힘들었는지 걸으며 화를 냈다.

 "바닷가에 와서 왜 산에 올라."

 

 맨 앞선 설민이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보며

 "여기가 B 시에서 제법 유명한 언덕이잖아. 이곳 언덕 위 뷰가 최고래. 예전에 B 시 중앙에 있는 산에는 가봤지만 여긴 못 왔잖아."

 

 지현이 투덜거리며

 "최고고 지랄이고 힘들어 죽겠다.

 ...

 허허허.

 ...

  난 더 못 올라간다. 여긴 전기 자동차나 타는 거 없냐."

 

 민희가 숨을 헐떡이며 설민 옆에까지 올라와서야 멈춰서서

 "좀 힘들긴 힘들다. 탈게 있었으면 좋겠다."

 

 설민이

 "이게 다 문명의 혜택이 만든 허약한 인간들의 모습이야. 겨우 이거 올라오는 게 힘들어 앓는 소리를 하냐. 힘내."

 

 세 명이 언덕 위에 다 올라왔을 때 그곳에 있는 민지영을 발견하였다. 민지영은 그곳 벤치에 앉아 옆에 있는 휴고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녀를 처음 본 설민이다.

 "어! 또 그분이다."

 

 뒤따르던 민희도 그 모습을 보았다.

 "맞네. 세 번째다. 휴고와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막 힘들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올라선 지현은 아예 보지도 않았다.

 "남 대화에 간섭할 생각하지 말고 그 좋다는 뷰가 어딘지 한 번 보기나 하자. 사람 생고생 시켜서 보는 뷰가 대체 얼마나 예쁜지 어서 보자. 어서."

 

 그로 인해 민희와 설민은 벤치에 앉아 있는 민지영에게 아는 척을 할 수 없었다. 지현의 등쌀에 곧장 언덕 가장자리 전망을 구경할 수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 시각 드론 안에서는 여전히 찬이 페이퍼 탭 영상을 보다가 소리쳤다.

 "이거다. 민지영이 크로우를 만나고 있다. 큐브, 저 휴고 누구 휴고인지 확인해 봐."

 

 잠시 뒤, 레온의 스피커를 통해

 "확인 불가입니다. 인식 코드 신호가 차단된 휴고입니다."

 

 찬이 확신한다는 듯이 강한 어조로 말했다.

 "크로우다. 이거 실시간 영상이지."

 

 "예"

 

 "저리로 가자. 드론 내가 보고 있는 영상의 장소로 이동해."

 

 그때 페이퍼 탭 영상에서 민지영과 대화를 하고 있던 크로우가 벤치에서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시 레온을 통해 큐브가

 "어떻게 할까요. 민지영을 계속 관찰할까요 아니면 크로우를 따라갈까요?"

 

 찬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영상을 보다가

 "민지영이 움직이지 않고 있으니 내 페이퍼 탭 화면은 크로우를 따라가. 대신에 넌 민지영 잘 지켜. 드론, 이곳까지 얼마나 남았지."

 

 "10분 안에는 도착할 수 있습니다."

 

 "좀 더 빨리 가죠. 한시가 급해. 어서, 어서."

 

 찬은 아주 다급한 모습을 하며 안절부절 못했다.

 

 

 같은 시각 B시 언덕 위에서는 가장자리에 서서 언덕 아래의 바다 뷰를 구경하고 있는 세 명의 모습이 보인다. 모두가 아름다운 풍경에 매료되어 열심히 보고 있었다. 그때 세 명 중에서 민희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벤치에 앉아 있는 민지영의 모습이었다. 이제는 혼자가 된 민지영이 벤치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이다. 그 모습을 민희가 고개를 돌리지 못 하고 계속 보고 있었다.

 

 민희의 행동에 옆에 있던 설민이 보고는 이상한지

 "왜? 무슨 일 있어?"

 

 민희가 여전히 시선을 돌리지 않고

 "그게··· 그게 말이야. 그게···"

 

 민희의 대답을 못 하는 행동에 그제는 앞만 보고 있던 지현까지 고개를 돌려 뒤를 보며

 "무슨 일인데?

 ...

  어? 아줌마가 이제는 혼자네. 휴고는 어디 갔어?"

 

 민희가 지현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마치 그 말을 못 들은 사람처럼 혼잣말을 하듯이 중얼거렸다.

 "저 아줌마 시선이 달라졌어. 저 얼굴 어디서 봤는데."

 

 설민이

 "뭐가 달라졌다고···

  어? 그리고 보니 기차에서나 식당에서 봤을 때와는 좀 달리진 것 같다."

 

 지현이 덩달아 자세히 보려고 하며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생사람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려고···

  어? 아줌마가 왜 저렇게 앉아있지?"

 

 민희가 불쑥 말하기 시작하더니 톤이 점점 더 커져갔다.

 "나, 기억나. 나, 저 표정 기억나. 이제 기억 났어. 저 표정 저번에 봤어. 저 표정 알아. 그때 그 사람의 얼굴이 저랬어. 안 돼. 안 되는데."

 

 심각한 민희의 얼굴과 무슨 일인가 싶어 민희의 얼굴을 보는 두 명의 표정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아직도 드론을 타고 있는 찬이 여전히 페이퍼 탭을 통해 크로우를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그는 말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안타까워하고 있는 중이다. 왜냐하면 그때 크로우는 벌써 언덕을 내려와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위험한 민지영은 언덕 위에 있었고 그녀를 위험에 빠트린 반드시 잡아야 할 크로우는 다른 곳으로 도망치고 있는 중이었다. 둘 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할 입장이 된 것이다.

 

 '제길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 거야. 언덕 위 사람이야. 아니면 언덕 아래 크로우야.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한다.'

 

 그가 속으로 갈등하고 있는 사이 드론 유리창으로 B시의 유명 관광지 언덕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페이퍼 탭을 보다가 시선을 돌려 아래를 내려단 본 찬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래, 사람이 우선이지. 사람 먼저 구하고 크로우는 차후에 생각하자."

 

 그렇게 결심하고 드론에게 지시를 하려고 했다.

 "드론, 우리 저기 언덕 위에..."

 

 차츰 낮아지는 드론의 정면 유리 너머로 보이는 시야에 처음에는 목표지점 상공에서 착륙하기 위해 선회하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드론이 언덕 위가 아니라 언덕 아래 크로우가 간 방향으로 이동하는 느낌이 나더니 유리창 너머 시야에 언덕의 모습이 보였다. 그건 분명 언덕 아래로 내려오고 있다는 의미였다.

 

 찬이 다급히 페이퍼 탭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드론, 뭐 하는 거야. 저기 언덕 위에 내려줘."

 

 "명령이 크로우가 있는 곳에 내려주라고 되어있습니다."

 

 찬이 버럭 화를 냈다.

 "누가. 누가 그런 명령을 해. 누가. 난 그런 명령한 적 없어. 언덕 위로 가."

 

 그때 레온을 통해 큐브가 말했다.

 "B조 관리자께서 명령하셨습니다. 크로우를 먼저 잡으라고."

 

 찬이 흥분하여 고함을 쳤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담당잔데 왜 오전 근무조인 B조 관리자가 명령을 내려. 언덕으로 가."

 

 레온을 통해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나이가 조금은 있어 보이는 목소리다. 아마도 B조 관리자 같다. A조 관리자라면 찬이 알았을 것이다.

 

 "유찬씨, 당신의 근무 시간은 20분 남았습니다. 정규 근무 시간이 종료되므로 인해 이제는 모든 장치와 휴고는 3구역 관리 담당자인 제 소관이 되었습니다. 명령에 따라 주십시오."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중후하고 굵은 음성이 딱 잘라 명령을 하듯이 말했다.

 

 찬은 그제야 마틴의 시계를 보면서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래도 사람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아직은 20분 전입니다."

 

 다시 레온을 통해 B조 관리자의 단호한 음성이 들렸다.

 "한 사람의 생명보다 더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길이 우선입니다. 크로우를 잡으면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습니다."

 

 찬도 흥분하여 언성을 높였다.

 "한 사람의 희생을 통해 얻어지는 결과입니다. 한 사람을 구하는 일은 당장 필요한 일이지만 크로우를 잡는 일은 예측에 의한 선택에 불과합니다."

 

 "명령은 이미 결정되었습니다. 당신의 근무 시간은 끝나고 있습니다."

 

 찬이 듣기 싫다는 듯이 B조 관리자가 말하는 도중에 큰 소리로 외쳤다.

 "드론, 나 여기 내려죠. 어서 내려. 아직은 내 시간이야."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지금 착륙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찬이 드론 밖을 보니 착륙지가 벌써 언덕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해변 지점이다.

 

 그 모습에 찬이 화를 내며 좌절했다.

 "으아. 이건 아냐. 이러면 안 된다고."

 

 그때 레온을 통해 큐브의 속삭이는 듯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찬님, 안심하십시오. 다 괜찮을 것 같습니다." 

 

 찬이 덩달아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무슨 소리야?"

 

 "그녀 옆에 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라니?"

 

 "기차에서 같이 있던 사람들 말입니다. 서남기 구하던 여성분."

 

 "아! 그래. 정말이지. 정말로 그들이 같이 있는 거 맞지."

 

 "예."

 

 "그럼. 그럼 일단은. 조금은 다행이다."

 

 찬은 그날의 민희를 떠올리며 기뻐했다. 그때 사람을 구하기 위해 설득하던 그녀의 음성이 다시금 떠오르는 느낌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의 불행을 그냥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큐브가 찬이 생각할 동안 다시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들의 모습이 지금 보이는데 민지영의 태도를 눈치 챈 것 같습니다."

 

 찬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 다행이다. 잘 보고 있다가 알려줘."

 

 그제야 찬의 얼굴이 밝아졌고 때마침 드론이 지면에 착륙하였다. 찬이 열린 문으로 힘차게 내려 크로우가 간 방향을 향해 달려갔다. 그의 옆에 어느새 두 대의 휴고가 나란히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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