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혼돈 : 내일과 어제를 잇는 다리
작가 : 러군
작품등록일 : 2017.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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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미(Dummy)
작성일 : 17-12-16     조회 : 53     추천 : 0     분량 : 1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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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흑같이 어두운 공간이다. 갑자기 밝은 불빛이 몇 개 나타나더니 앞으로 다가왔다. 천천히 다가온 불빛은 휴고의 얼굴에서 나온 불빛이다. 앞에 휴고 두 대가 서서 길을 열어가고 있고 뒤에 방호복을 입고 얼굴에는 방독면을 덮어쓴 민희가 뒤를 따르고 있다. 그녀 뒤에 다시 두 대의 휴고가 있다. 그들은 큰 상자를 함께 들고 있는데 휴대용 배터리와 전구 상자다.

 

 방독면 유리를 통해 보이는 민희의 시선이 불안해 보인다. 아마도 칠흑같이 어두워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지하에 들어온 것이 겁이 나는 모양이다. 방독면을 통해 불안해하는 그녀의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잠시 뒤, 민희를 비롯한 4대의 휴고가 어떤 출입문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이미 와있는 두 대의 휴고가 문으로 들어오는 일행을 향해 불빛을 비추었다. 안으로 들어온 일행 중 뒤에 있던 두 휴고가 가지고 온 배터리를 바닥에 내려놓더니 속에서 전등을 꺼내 사방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다른 두 휴고도 그 일을 도와주는 모습을 민희는 방독면을 통해 보고는 손에 든 전등으로 사방을 살폈다. 손전등으로는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갑자기 어두운 공간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그제는 공간 안의 먼지조차 선명하게 보일 정도가 되었다. 민희가 뒤를 돌아보니 두 휴고가 그 사이 방 사방에 전등을 달고 전선을 연결했던 것이다. 잘했다는 듯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든 민희는 그제야 사방을 둘러 보았다.

 

 방 안은 좀 전에 휴고가 미리 보여주었던 영상처럼 그 모습 그대로였다. 책상과 가구와 소파. 그리고 사진 액자와 여자 인형. 그런데 다른 점이 있다면 먼지가 뒤덮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상으로는 잘 보이질 않던 먼지가 내부에 온통 눈처럼 뒤덮여 있었다. 그래서 방금 전에 들어온 민희와 휴고의 움직임으로 인해 안개가 끼인 것처럼 먼지가 자욱했다. 자욱하던 먼지가 조금 가라앉고 나서야 민희는 가장 먼저 인형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유심히 살폈다.

 

 "누군가가 애지중지하며 오랫동안 가지고 놀던 인형인데. 여기 분명히 여자 아이가 있었어."

 

 데이비드가 민희의 이어로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민희가 인형의 각 부위를 손으로 지목하며

 "여기 손 떼나 이곳 더럽혀진 걸 좀 봐.

 ...

  아무리 봐도 20년 동안 이곳에 있던 물건은 아냐."

 

 그 말을 하면서도 계속 인형을 보다가 자기 뒤에 있는 휴고에게 인형을 건넸다. 인형을 건네받은 휴고가 들고 있던 봉지에 담았다. 민희가 이번에는 책상 쪽으로 이동하여 사진 액자를 봤다. 그때 그녀가 짚은 책상에서 먼지가 다시 피어올랐다. 그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대뜸 데이비드를 불렀다.

 

 "데이비드, 혹시 먼지의 두께로 사용하지 않은 시간을 측정할 수 있을까?"

 

 "지금 저에게는 그런 정보가 없습니다. 국가 데이터 베이스에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민희가 검지 손가락으로 책상의 먼지를 한번 끍어 손자국을 내며

 "그럼 알아보고 만약 있으면 여기 먼지 두께를 측정해서 언제까지 사용하고 중단되었는지 한 번 알아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민희가 그제는 액자의 먼지를 손으로 털며

 "아무리 봐도 오래된 것 같지가 않아. 가까운 최근까지 사용하던 공간 같아."

 

 "예, 정보를 확인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데이비드의 대답을 듣고 나서 민희는 자신이 여기 온 목적인 사진을 보기 위해 액자를 자세히 보았다. 액자에 들어있는 사진은 앞에서도 보았듯이 두 개다. 접이식 액자에 두 개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하나는 결혼사진이고 다른 하나는 가족사진이다. 그녀가 가장 먼저 집중한 것은 가족사진이다. 나란히 앉은 부모와 뒤에 배경처럼 서있는 세 명의 자식들 모습. 두 명의 딸과 한 명의 아들.

 

 가족사진을 보다가 민희는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다.

 "그 사람이다. 예전 대통령. 맞다. 그 사람이 분명하다."

 

 이어를 통해 놀란 데이비드의 소리가 들렸다.

 "무슨 말씀입니까?"

 

 영문을 몰랐던 데이비드가 놀랐던 모양이다.

 

 "아니, 너에게 한 말 아냐. 그건 그렇고 조사를 하고 있어?"

 

 "예, 국가 데이터 베이스에 먼지의 양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정보가 있어 다운로드한 다음에 휴고를 통해 조사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좌측 코너를 보십시오."

 

 데이비드의 말에 따라 민희가 고개를 돌려 좌측을 보니 방안 좌측 구석에서 한 휴고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먼지의 두께를 조사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난 민희가 들고 있던 액자를 뒤에 봉지를 들고 서있는 휴고의 얼굴 앞에 내밀며

 "이 사진 속의 인물. 나이가 있는 아버지로 보이는 인물. 검색 좀 해봐. 아무리 봐도 예전 대통령 같아."

 

 "예.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

  맞습니다. 마지막 대통령이던 한종채님입니다."

 

 '그렇구나! 내 예상이 맞았어'

 

 데이비드가 한종채라는 말을 할 때는 머릿속에서 순간 그가 죽었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아주 오래전 어느 때인지는 가물가물하지만 분명하게 기억하는 사실은 그가 마지막 대통령이고 혼돈 시기 중간에 죽었다는 뉴스였다. 그게 떠올라 그녀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가족들과 찍은 단란한 가족사진을 애처롭게 봤다.

 

 다음으로 옆 결혼사진을 봤다. 결혼사진을 보다가 신부 얼굴이 가족사진 속의 딸과 같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몇 번이고 두 사진을 번갈아가며 봤다. 결혼사진의 신부는 분명히 한종채의 딸 중에 한 명이었다.

 

 그때 데이비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사가 끝났습니다. 먼지의 두께와 장소와의 상관관계를 따지는 프로그램을 가동해 보면. 최소 삼 개월 전, 최대 육 개월 이후로는 사용되지 않은 곳으로 나왔습니다."

 

 민희가 놀란 음성으로

 "석 달 전? 그럼 석 달 전이나 여섯 달 전에는 사용되었다는 증거라도 있어?"

 

 "예. 먼지 아래 바닥이 청소가 된 흔적이 남아 있고. 먼지의 두께와 오래된 정도로 봤을 때 6개월 이전에는 그곳에 누군가가 거주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청소까지 하면서."

 

 "이상하잖아. 누가 이런 곳에 살아. 개인 알티에프가 그냥 있지 않았을 건데?

 ...

  이런 곳에서.

  어떻게 누가 이곳에 들어와 살겠어?"

 

 그 말을 하고 이상하다는 듯이 주변을 요리조리 살폈다.

 

 "시 건설과 엠피아이 세븐에 신고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어, 응. 그렇게 해."

 

 엉겁결에 대답을 한 민희가 다시금 결혼사진과 가족사진을 봤다. 그녀의 불길한 예상에 의하면 거기 살았던 사람들이 이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결혼한 부부라면 아이가 있을 수 있고 그러면 방금 전에 찾은 인형이 설명이 된다.

 

 '죽은 한종채 대통령의 가족들 이야기는 없더니. 혹시 이들이 여기서 살았단 말인가?

 ...

  그런데 왜?

  왜 이런 열악한 곳에서?'

 

 

 찬은 지금 식당 겸 휴게실에 와서 음료수를 마시고 있는 중이다. 복잡한 머리를 식히기도 할 겸 음료수가 생각나 식당까지 나온 걸음이었다. 식당 안에는 오늘따라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크로우 사태로 정신없어 그런지 보통 때 같지 않게 한산했다.

 

 음료수를 반 정도 마셨을 때 마틴이 말했다.

 "주인님, 큐브가 적색경보를 내렸습니다."

 

 적색경보라는 말에 찬이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이야?"

 

 마틴을 통해 큐브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림자가 나타났습니다. Y22 구역에 그림자 출현입니다."

 

 그림자란 PSWC 안에서 직원들끼리 통용되는 은어다. 원래 명칭은 '등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란 명칭이 있다. 하지만 직원들 끼리는 그냥 그림자로 통한다. 그림자라 명명되는 사람의 특징은 정부 데이터 베이스에 등록이 안 된 사람이다. 달리 표현하면 RTF-7을 가지고 있지 않는 인물이 된다.

 

 RTF-7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인물은 국민의 일상을 감시 관찰하는 PSWC 입장에서 보면 정체불명의 국민이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PSWC는 즉각적으로 적색경보를 발령하고 회사의 MPI 7이 이끄는 휴고를 보내 검거하게 된다. 검거 이후에 어떻게 되는지 찬은 모른다. 단지 잡혀간다는 사실만 알고 있다.

 

 사무실로 다급히 들어온 찬이 모니터를 보며

 "어디, 어디야?"

 

 찬이 들어오자 앞쪽 대형 모니터에 영상이 나타났다. 영상 위에 Y22 구역이라 적혀 있다. 지하철 입구에 서있는 허름한 옷을 입은 긴 머리의 여자 뒷모습이 화면에 나타났다. 오버코트같이 긴 코트를 계절에 맞지 않게 입었는데 옷이 낡고 남루한 모습이다.

 

 "알티에프 없는 거 확실하지."

 

 "예. 전혀 개인 정보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찬이 의자 앞 중앙으로 움직이며

 "저기 주변에 있는 모든 영상 수집해. 그리고 회사 휴고 출동시키고."

 

 "예."

 

 사무실 중앙 의자 앞에 서서 모니터를 집중해서 보다가 갑자기.

 "아니, 아니다. 나도 같이 간다. 로이와 레온 불러. 나도 같이 가."

 

 "예? 지금은 크로우로 인해 비상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 그림자 찾기를 하시려고요?

  이런 건 엠피아 세븐에 맡기시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알아. 하지만 지금은 내가 여기 있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수리가 된 친구들과 다시 같이 나가고 싶어.

  큐브, 넌 가급적이면 관리 대상자들에게 크로우 위험성을 알려."

 

 "그건 정부에서 계속 홍보하고 있습니다."

 

 "아니. 사람 말고 에이아이들에게. 우리 대상자 소속의 에이아이에게 에이아이 아시모프 법칙을 강조하라고."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때 영상 속의 여자가 이상한 걸음걸이로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동하는 여자의 걸음걸이가 보통 사람의 걸음걸이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어둔하고 느리고 주춤거리기까지 했다. 어딘가 불편한 사람이 걷는 발걸음이다. 특히나 속도가 아주 느렸다. 보통 사람이면 몇 초만에 몇 걸음 갈 거리를 그녀는 마치 거북이 이동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느릿느릿 이동했다. 그것도 이상한 발걸음 모양새로.

 

 그런데 찬을 답답하게 하는 것은 영상이 뒤쪽 먼 곳에서 찍고 있는 영상이라는 사실이다. 영상은 연신 여자의 뒷모습만 보였다. 거기다 차츰 멀어지는 영상이라 인물이 자꾸만 작아졌다. 어느 순간 작은 형체의 흐릿한 여자 모습이 골목 사이로 사라지는 모습이 마지막 영상이었다.

 

 밖으로 나가려고 돌아서던 찬이 이상하다는 듯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모니터의 영상을 계속 봤다. 그의 눈에는 자꾸만 이상하리 만큼 큰 모양새의 오버코트와 이상한 걸음걸이가 뇌리에서 지워지지를 않았다. 얼굴이 보이질 않는 영상에 대하여 화를 내기 보다는 유달리 커보이는 겉옷과 느린 걸음걸이에 관심이 더 갔다.

 

 그 모습을 계속 보다가 영상에서 여자의 모습이 차츰 작아지는 것을 보고는 시선은 여전히 모니터를 보고 있지만 발걸음은 느릿느릿 게걸음처럼 옆으로 걸어 문으로 향했다. 마지막 영상인 사라지는 장면까지 보고서야 다급히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 모습은 뭐 마려운 사람이 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참는 모습 같았다.

 

 그가 그렇게 서 있었던 이유는 지금 당장 달려가면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고, 반대는 잡아야 할 상대의 모습이나 행동을 잘 알아야 하는 정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가지도 못하고 그냥 있지도 못한 형국이 된 것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질 않는다. 휴고들의 불빛이 없다면 코앞도 분간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런 곳에 사람이 살았다는 단정,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대체 누가 이런 곳에서 살았단 말인가. 누가 이 어둠의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하고 살 수 있단 말인가. 대체 뭐가 그를 이런 열악한 곳에서도 살게 만들었단 말인가. 삶에 대한 의지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이곳과 같은 곳에서 살 수 있다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 누군가가 있었다는 생각의 판단이 잘 한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민희는 지금 지하 3층 내부 조사를 끝내고 지상으로 올라오는 중이다. 방독면 너머로 보이는 암흑을 보다가 별생각이 다 들었다. 자신이 잘못 판단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더 강해진 것은 B 시에서 만났던 민지영 때문이다. 누군가는 삶의 희망을 놓고 죽음을 선택하려 했다. 고작 주변에서 들려주는 과거의 회상이 원인이 되어서 죽음을 선택하려 하였다. 아무것도 불편하지 않고, 부족하지 않고,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되는, 빛이 가득한 유토피아 같은 세상이다. 그럼에도 모든 것을 포기한 자살을 선택하려 했다.

 

 다른 누군가는 살기 위해 현재의 고난과 고통을 참고 있었다. 이 어둠과 불편한 세상 속에서. 누군가가 쉽게 버리려고 했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암흑의 지옥과도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 빛 하나 들어오질 않는 암흑의 지옥에 모든 것이 부족하고 모든 것이 자유롭지 못한 세상에서도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살아 있었다.

 

 '둘의 차이는 뭔가?

  둘에게는 대체 어떤 힘이 작용한 것일까?

 ...

  모르겠다.

  대체 누가 이 최악의 환경 속에서 살았단 말인가?

  그를 이런 환경 속에서도 살 수 있게 만들었던 이유는 뭐란 말인가?

  대체 뭐가 그를 이 지하 깊은 공간 안으로 밀어 넣었단 말인가?'

 

 그때 민희의 이어로 데이비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민희님, 시 안전 관리부에서 연락이 왔는데 지금은 검사를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왜?"

 

 "자살 유도 휴고 사태로 시 안전 관리부 소속 휴고들이 다른 곳에 나가 이곳에 올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럼 어떻게?'

 

 "우리 자체 휴고로 조사하라고 합니다."

 

 "그럼 일단은 다른 일 중단하고 모든 휴고를 방금 나온 내부와 주변 수색에 투입해."

 

 "예. 그런데 두려우십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목소리가 떨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와 통화를 하시면서도 멈춰 서있지 않고 계속 움직이고 계십니다. 특히 보호복 안에 장착된 사용자 생명 확인 장치의 많은 정보들이 이상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자기가 무의식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달리 표현하면 허겁지겁 도망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런 행동을 알고서 스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절박하게 도망치게 만들었는지 그녀는 잘 알았다. 그래서 부정할 수 없었다.

 

 "맞아. 도망치는 중이야.

  나라면 도저히 이런 곳에서 살 수 없을 것 같아. 도저히.

  대체 누가 이런 곳에서 살았던 걸까?

  왜?"

 

 

 Y 22 구역 트레일러 앞에 막 도착한 찬이 강훈을 만나고 있었다. 강훈은 이곳 재개발 담당자로 민희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다. 찬은 검은색 옷에 파워 슈트를 착용하고 있다. 전투복 같은 느낌인데도 그렇게 도드라지게 과하거나 이상한 느낌은 아니다. 그에 비해 옆에 서있는 강훈은 상의는 러닝셔츠를 입고 있는데 방금 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 땀이 흥건하게 배여있었다. 하의는 작업복인데 낡고 허름한데다 먼지나 흙이 잔뜩 묻어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체격은 찬 만큼 크고 우람했다. 특히 러닝셔츠 밖으로 보이는 상체는 탄탄한 근육으로 되어 있었다.

 

 찬의 바로 뒤에는 로이와 레온이 서있었고 그들 주변으로는 이곳에서 일하는 은색의 이곳 P-휴고들이 지금 막 모여들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주변이 휴고로 복작복작 들끓었다.

 

 찬은 강훈을 보고 있는데 그의 마음은 늘 모니터로 보던 사람을 직접 눈앞에서 보는 것이 새로운 기분이었다. 특히나 자기가 담당하는 관리 대상은 5000명이나 되었고 그중에서도 특별 관리자가 아니면 HAL 9이 관리하기 때문에 잘 기억하지 못 한다. 그중 한 사람이 강 훈이다. 그래서 특별 관리자들 만큼의 익숙함이 없어 마치 그를 처음 대면한 느낌은 TV나 영화에 나오는 배우를 만난 기분 같았다.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훈은 찬에게 별 신경도 쓰질 않고 자기들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하는 휴고들을 보느라 바쁜 모습이다. 그는 휴고 무리 안에서는 마치 지휘관 같았고 장군 같았다. 한 무리를 완벽하게 통솔하는 대장 같았다.

  

 찬이 그런 강훈에게 설명을 했다.

 "휴고를 모으는 이유는 죄를 짓고 도망친 사람을 찾으려는 겁니다. 알티에프를 제거하고 도망 다니는 중이라 수색이 필요합니다."

 

 강훈이 찬은 보지도 않고 휴고를 확인하며 대답했다.

 "예, 방금 전에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 휴고가 필요한 겁니까? 그쪽 국민 안전 관리부서는 휴고가 없습니까?"

 

 강훈의 대답은 막힘이 없었다. 마치 상대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아는 것처럼 물어보고 싶은 말을 더듬거리거나 익숙하지 않아 생각을 해야 하는 그런 일이 없다는 듯이 바로 물었다.

 

 그 모습을 찬은 알아채지 못했다.

 "아니요.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터진 자살 유도 휴고 때문에 그쪽 일을 하느라 여기에 파견할 휴고가 부족합니다."

 

 강훈이 그제야 묘한 표정을 지으며 찬에게로 몸을 돌렸다.

 "아 그렇군요. 그래서 못 온 거군요. 이제 다 모인 것 같은데. 그럼 우리가 뭘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찬이 그제는 다 모인 휴고들을 보며

 "피에스 파이브를 통한 휴고 명령권을 잠시 저에게 양보해 주십시오. 그럼 제가 알아서 수색에 사용하고 돌려드리겠습니다."

 

 강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하십시오. 피에스 파이브, 이제부터 명령 권한을 이 분에게 줄 거다. 이 분의 명령에 따라 휴고를 움직여."

 

 트레일러의 스피커로 PS-5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

 

 찬은 PS-5의 대답을 듣고 나서 주머니에서 페이퍼 탭을 꺼내 펼치고는 사무실의 큐브로부터 자료 영상을 전송받았다.

 

 찬이 페이퍼 탭을 보며

 "지금은 어디 있어?"

 

 이어를 통해 큐브가 대답했다.

 "지금은 사라졌습니다. 보이질 않습니다."

 

 "그럼 지금까지의 영상을 보여줘."

 

 "예."

 

 그때 옆에서는 강훈이 자기 PS-5에게 재차 찬에게 복종하라는 당부를 하고 있었다.

 

 "이 분 말씀 잘 따라야 해. 알았지. 이제 나라고 생각하는 거야. 나 대신에 잠시 너에게 명령을 할 거야."

 

 그 소리를 듣고는 찬이 강훈을 보며 말했다.

 "아니요.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이제부터는 우리 쪽 에이아이가 그쪽 휴고를 통제할 겁니다. 그쪽 피에스 파이브는 이 일에서 잠시 제외될 겁니다."

 

 강훈이 찬의 말에 이제 알았다는 듯이 탄식을 하며

 "아! 그렇게 하는 거군요.

  그럼... 저는..."

 

 "그쪽 분도 쉬시면 됩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여기서 쉬고 계시면 됩니다."

 

 강훈이 찬의 옆에 바짝 다가서서는 그가 보는 페이퍼 탭을 보며

 "제가 이곳 지리는 잘 아는데. 거기 보이는 화면의 장소를 제가 잘 압니다."

 

 그가 찬이 들고 있는 페이퍼 탭에 나온 영상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페이퍼 탭에는 사무실에서 봤던 그림자의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그렇습니까. 그럼... 도와주시겠습니까."

 

 찬은 잠시 망설이는 것 같더니 강훈을 한 번 보고 나서 흔쾌히 받아들였다. 사실 강훈이 아니드라도 로이와 레온을 통해 큐브가 내비게이션을 작동하면 이곳 지리는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그가 강훈의 도움을 흔쾌히 받아들인 것은 자기 회사에 대한 관심을 줄이는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강훈과 로이, 레온이 앞서고 그 뒤에 찬이 따라가는 형태로 그림자 찾기가 시작되었다. 다른 휴고들은 흩어져 이들 네 명의 주위를 따라가며 수색을 했다.

 

 

 Y23 휴고들이 지하에서 인형이 나온 공간 주변 일대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새로운 정보가 더 많이 나왔는데 그중 가장 놀라운 것은 주거지가 나온 것이다. 일반 가정집처럼 조리가 가능한 부엌도 있고 침실도 있었다. 침실 같은 경우는 3개나 발견되었다. 처음 발견한 서재인지 거실인지 알 수 없는 사무용 공간 외에도 다수의 공간들이 더 발견된 것이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침실의 사용 여부를 통해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최소한 3명 이상 최대 10명 가까운 인원이 그곳에 상주하고 있었음이 휴고의 분석을 통해 드러났다.

 

 트레일러 안 의자에 앉아 인형을 보고 있던 민희는 데이비드의 분석에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게 말이 돼. 어떻게 그런 공간에서 사람이 살아. 잘못 분석한 것은 아냐."

 

 "아닙니다. 분석은 정확합니다. 단지 최종 사용 시기가 조금씩 차이가 있을 뿐 그 인원이 사용한 것은 맞습니다."

 

 민희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맙소사. 저 어둠 속에서 어떻게. 어떻게 살 수 있었지. 대체 왜? 무슨 이유로."

 

 모니터에서는 어두운 내부를 휴고의 불빛이 비치고 있는데 간이침대들이 보인다. 다른 화면에는 부엌이 보이는데 거기에는 전자레인지도 있고 냉장고도 있다. 어지럽게 쌓여있는 식기류들은 근방이라도 누군가가 음식을 먹고 설거지를 안 한 모습처럼 보일 정도다. 불빛의 움직임에 따라 그런 것들이 보일 때 민희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영상에 오버코트를 입은 여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이상한 걸음으로 걷던 여자가 어느 건물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는 연신 고개를 좌우로 돌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뒷모습이라 얼굴 표정이 정확하게 나타나지 않았지만 행동으로 봐서 뭔가를 경계하는 모습이다. 그러더니 갑자기 몸이 흐물거리듯이 움직이는 특이한 행동을 했다. 특히 다리 아래 부분이 심하게 흔들거렸는데, 잠시 후 다리 사이에서 작은 체구의 또 다른 사람이 오버코트를 펼치고 밖으로 나왔다.

 

 단순하게 보면 불쑥 나타난 모습 같지만 자세히 보면 여자의 몸 안에서 밖으로 나온 모습이다. 오버코트 안에서 나온 것이고, 여자가 이상한 걸음을 걸었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마치 한 사람처럼 행동하려 노력한 증거였다. 둘로 나누어진 두 사람은 잠시 그곳에 서있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찬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뭐야? 두 명이야."

 

 그에 비해 강훈은 그리 놀란 표정이 아닌 묘한 인상을 쓰며 화면을 보고만 있었다. 그의 인상은 달갑지 않은 것 같은 얼굴이었다.

 

 찬의 이어를 통해 큐브가

 "예. 두 명입니다. 엄마와 아이로 추정됩니다."

 

 찬은 다시금 영상을 봤다. 여자의 이상한 걸음걸이. 계절에 맞지 않은 두꺼운 긴 오버코트. 옷 속에서 나온 아이. 그 순간 번쩍 뭔가가 떠올랐다.

 

 '저 사람은 누군가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던 거야.

  저 행동은 자기를 지켜보는 상대에게 자기와 아이를 숨기려는 행동이야.

  감추려는 행동이 분명해.

  지금까지 감추고 있었어. 대체 누구야?'

 

 찬이 영상을 보며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 강훈도 묘한 얼굴을 하고 영상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뒷모습만 보입니까?'

 

 그의 말에 찬이 그를 봤다. 그리고는 다시 영상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큐브, 왜 뒷모습만 보여 다른 영상 없어?"

 

 "그곳 일대가 철거 예정지라 다른 카메라는 이미 다 철거한 구역입니다. 작업자의 안전을 위해 대로 주변과 관리 구역 주변만 카메라가 있어 전면을 찍은 영상은 없습니다."

 

 "뭐라고 해요?"

 

 "얼굴을 찍은 카메라는 없다고 하네요.

  그럼 큐브, 이 영상은 언제 찍힌 거야?"

 

 "5분 전입니다."

 

 "5분전 영상이라고 하네요. 혹시 여기를 아십니까?"

 

 "예, 그럼요. 이 건물은 저기 저쪽에 있는 건물입니다."

 

 "5분 전이면 멀리 가지는 못했겠죠."

 

 "그럼요. 어린 아이까지 있는데."

 

 "큐브, 지금 바로 출동할 테니 넌 영상 속의 아이를 분석해줘. 성장 그래프를 이용해서 몇 살 되었는지 알아봐."

 

 "예."

 

 찬은 큐브의 대답을 듣고는 바로 페이퍼 탭을 접었다. 찬이 준비를 끝내자 강훈이 앞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옆에는 로이와 레온이 바로 옆에 붙어 뛰었다. 찬은 그들 뒤에서 달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디에서도 카메라는 보이질 않았다. 모든 것이 폐허가 된 건물들뿐이었다.

 

 

 [각주]

 

 1. HAL 9(할 나인)

 국가 기관인 PSWC에 속한 A.I 시스템으로 국민의 안전을 위해 영상을 모니터링하는 기능이다.

 한 대가 5000명을 관리할 수 있다.

 

 2. PS-5 (피에스 파이브)

 MPI 7의 직속 하위 A.I다. 용량으로 보면 중형 A,I 시스템이다.

 사람이 정부이던 시절로 치면 현장 관리직 역할을 하는 A.I 시스템이다.

 시설, 건설, 복지, 안전, 소방, 등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특히 이 시스템은 휴고라는 휴머노이드 형식의 로봇을 통제 관리 운영할 수 있다. 사람이 해야 할 일을 로봇이 할 때 직접 사람의 역할을 하는 로봇이 휴고인데. 이 휴고를 한 대의 PS-5가 최대 500대까지 무선을 통해 동시에 개별적인 일을 명령하고 컨트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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