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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네이크맨
작가 : 엄길윤
작품등록일 : 2017.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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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 아니, 스네이크맨!
작성일 : 17-11-09     조회 : 281     추천 : 0     분량 : 3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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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려주세요!”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말을 뱉고 나니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내가 왜 소리를 질렀을까. 주변은 이미 어두컴컴한 밤이었다. 조깅을 나온 운동복 차림의 사람들이 나를 돌아봤다. 그들에게서 붉은 열기가 느껴졌다. 얼굴과 상체에 특히 열기가 많았고, 하체로 내려갈수록 온도도 파랗게 내려갔다. 어떻게 된 거지?

 

 벤치에 앉은 내 몸을 살폈다. 온통 파란색이었다. 온몸에서 열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주위 사람을 살폈다. 그들의 몸에서 나는 열이 두 눈으로 보였고, 느껴졌다. 주위를 밝게 비추는 길가의 가로등도 붉었다. 온도를 감지할 수 있게 된 거였다. 분명히 뱀에게 물린 후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손등을 확인했다. 송곳니 자국이 선명하다. 그럼 뱀에게 물린 건 확실한데. 이상하게도 컨디션이 좋았다. 벤치에서 나와 주변을 살피며 걸었다. 몸이 가볍다. 고딩들에게 맞아 온몸이 쓰렸던 게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공원 화장실로 가 거울에 얼굴을 비쳤다. 긁히고 까진 채 멍투성이였던 얼굴이 예전처럼 말끔해졌다. 손등의 상처를 다시 살폈다. 뱀에게 물린 후 이런 일이 벌어졌다. 상의를 들춰 옆구리와 배를 확인했다. 부러진 갈비뼈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고, 근육이 붙은 가슴과 복근은 탄탄하게 솟았다. 만져보니 차가운 강철처럼 단단했다. 이건 마치 스파이더맨 같잖아?

 

 온몸에 힘이 넘쳐났다. 세면대 귀퉁이를 잡고 힘을 주자 빠직 소리를 내며 세면대 플라스틱 조각이 한 움큼 뜯겼다. 깜짝 놀라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열기를 머금은 사람들이 눈앞을 지나쳤다. 저 멀리 떨어진 곳은 물론이고, 나무나 공원 시설물 너머에 있는 사람들도 그들이 내뿜는 열기를 통해 어디에 있는지 뭘 하는지 정확히 식별 가능할 정도였다. 이건 분명히 뱀이 가진 피트 기관의 능력이었다. 뱀에게 물림으로서 뱀의 능력이 생긴 거다.

 

 나도 모르게 흐뭇한 웃음이 나왔다. 제일 먼저 생각난 건 이제 그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고딩놈들을 혼내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지금은 밤이니 진작 집으로 돌아갔을 터다. 내일 보자, 좆만한 존마니들아. 꼭 담배 피우러 나오렴. 최대한 많이 끌고 오면 더 좋고. 니들은 이제 사망 각이다.

 

 집에 들어오니 거실에서 예능 프로그램을 보던 아빠가 고개만 돌려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다. 아뇨. 아무 일도 없어요. 뒤늦게 화장실에서 나온 엄마가 내 얼굴을 확인하더니 낮에 봤던 것처럼 깜짝 놀란다. 걍 장난 친 거예요. 얼버무리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침대에 눕자 새삼 뱀의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침대 구석에 박힌 베개를 두 손으로 쥐었다. 잡아당기자 투둑! 베갯잇이 양쪽으로 찢어지면서 안의 내용물이 침대 위로 쏟아져 사방으로 흩어졌다. 아 뭐야. 대충 배게 내용물을 주워 담아 휴지통에 버린 후 찢긴 베개를 바라봤다. 엄청난 힘이었다. 이 정도 힘이라면 고딩들을 혼내주는 건 일도 아니었다. 사자도 맨손으로 때려잡을 기세였다. 내일 무릎 꿇고 빌 고딩들을 생각하니 피식피식 웃음이 터졌다. 아마도 오늘 밤은 잠을 이루지 못하리라.

 

 

 

 아침을 대충 먹고 서둘러 놈들의 담배 핫스팟인 골목으로 향했다. 아파트 단지에서 뛰기 시작해 한 번도 쉬지 않고 골목에 도착했다. 전혀 숨이 차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탄탄한 근육이 붙은 다리 덕분인지 엄청난 속도로 뛰는 게 가능했다. 호흡을 멈추고 가만히 기다렸다. 몇 분이 흘렀는데도 숨이 막히지 않았다. 이러다가는 한 시간 동안 숨을 안 쉬어도 아무 문제 없을 지경이었다.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담배 연기부터 찾았다. 없다. 기대와는 달리 어두운 골목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사방에 버려진 담배꽁초와 얼룩덜룩한 가래침 자국만이 고딩들의 흔적을 말해줬다.

 

 그중에서 담배꽁초가 제일 많이 쌓인 곳으로 가 쭈그리고 앉았다. 좋아. 기다리지, 뭐. 어제도 오늘을 기다리느라 잠 한 숨 못 잤는데 조금 더 못 기다릴까. 얼른 와라. 진심펀치면 죽을지도 모르니까 살살 해줄게.

 

 

 

 미친! 어찌된 게 죽치고 기다리니까 서로 짠 것처럼 안 와? 벌써 오후 2시가 넘었다. 슬슬 배도 고프고, 무엇보다도 지루했다. 행인들은 골목에 있는 날 보고는 무슨 바퀴벌레 보듯 지나쳤다. 동네 양아치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안 되겠다. 핸드폰을 꺼내 그때 고딩들에게 밟혔던 애한테 전화를 걸었다. 연결 음이 들리다가 곧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갔다. 수업 중인가? 교복을 보면 근처 상일고등학교 녀석들인데. 에라 모르겠다. 기다리기 귀찮다. 찾아가자.

 

 

 

 상일고등학교 정문에 떡하니 섰다. 보통의 고등학생이라면 밤늦게나 교문을 나설 테지만, 녀석들은 분명히 중간에 땡땡이를 칠 거다. 아마도 자랑스럽다는 듯이 당당히 나오겠지. 다시 그 애한테 전화를 걸었다. 여전히 받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가서 헤집어 볼까도 생각했지만, 너무 범위가 넓었다. 낮에는 온도가 높아 열 감지 능력만으로는 사람을 구분하기 쉽지 않았다. 직접 눈으로 봐야 한다는 이야긴데.

 

 또 기다림의 시작이었다. 한 시간이 넘은 것 같은데 아무도 교문을 나서지 않았다. 잘못 생각했나? 그때 학교 건물에서 이상한 상황을 목격했다. 3층에 온몸이 새파란 사람이 매달렸다. 학교 본관 건물 뒤쪽이라 눈으로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감지되는 온도를 통해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형체는 분명히 사람인데 온몸에 열기가 하나도 없었다. 학교 여기저기에 위치한 다른 학생들을 살폈다.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은 분명히 붉은색이었다. 사람에게 체온이 없다니? 그건 말도 안 된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3층에 매달려 건너편으로 뛰어다니던 사람이 2층으로 미끄러지더니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그러고는 저 멀리 사라졌다. 아마도 반대편으로 나간 모양이다. 따라가 볼까 생각하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조심해야 한다. 혹시 나와 같은 능력을 갖춘 걸지도 몰랐다. 그가 사라진 후 유난히 학교 안이 시끄러웠다. 얼핏 여학생의 비명과 울부짖음이 들린 것 같았다. 무슨 일일까?

 

 느닷없이 뒤에서 경찰차 사이렌이 울렸다. 뒤돌아보니 경찰차 3대가 사이렌을 번뜩이며 내 앞에 멈춰 섰다. 우르르 내린 경찰들이 나를 둘러쌌다.

 

 “여기에서 뭐하시는 겁니까?”

 

 황당해 경찰들을 둘러봤다. 그들의 얼굴에는 잔뜩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할 말이 없어 우물쭈물하다가 아무 말이나 지어냈다.

 

 “그냥 지나가는 길이었는데요?”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 정문 앞에 서 있습니까? 신분증 좀 보여주시죠.”

 

 경찰들이 더 가까이 접근했다. 여차하면 수갑이라도 채울 기세였다. 뒤쪽의 경찰은 테이저건을 꺼내 들고, 다른 경찰들은 도주로를 차단하려는 듯 근처의 골목 앞을 지키고 섰다. 이럴 때는 최대한 협조해야 한다. 의심을 사지 말자. 주섬주섬 바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운전면허증을 보여줬다. 경찰이 신상정보를 수첩에 적은 후 왜 여기 있느냐고 물었다.

 

 “진짜 지나가는 길이었다니까요. 옛날 학교 다니던 때가 생각나 잠시 구경 좀 한 거라고요.”

 

 학교 본관 건물에서 교장과 몇 명의 선생이 뛰어나왔다. 뒤이어 여학생 세 명이 한 아이를 부축하며 조심스럽게 걸어왔다. 체육복을 몇 겹이나 껴입은 여학생은 같은 반으로 보이는 다른 여학생들에게 몸을 의지한 채 흐느꼈다. 옷깃을 잔뜩 여미는 거로 보아 성범죄를 당한 모양이었다. 분명히 3층에서 내려와 멀리 사라진 자의 짓이었다. 혹시 우리 동네를 발칵 뒤집어 놓은 발바리? 3층에서 1층으로 내려올 때 걸린 시간이 채 3초도 되지 않았다. 거의 뛰어내린 거나 다름없었다.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경찰 몇 명이 피해자를 향해 뛰어갔다. 다행히 피해 학생의 진술로 내가 범인이 아니라는 게 밝혀졌다. 고개를 떨어뜨린 여학생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경찰차를 탔다. 옆에는 여선생이 동승해 피해 여학생을 위로했다. 교장과 다른 선생들은 경찰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피해자를 태운 경찰차는 병원으로 향했다.

 

 한쪽에 비켜서 그 광경을 지켜보자니 입안이 썼다. 기분이 차갑게 가라앉는 걸 느꼈다. 지금 고딩들이 문제가 아니었다. 발바리를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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