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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네이크맨
작가 : 엄길윤
작품등록일 : 2017.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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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강간의 왕국이야?
작성일 : 17-11-10     조회 : 318     추천 : 0     분량 : 3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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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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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사람이라는 동물은 힘이 있으면 그걸로 남을 짓밟을 궁리만 한다. 상대방을 짓누르는 게 기분이 좋기 때문이었다. 고딩들이 담배를 피우던 골목 입구에 들어서자 벌써 메케한 담배 냄새가 났다. 정문으로 학교를 째지 않고, 다른 루트를 이용한 모양이었다. 쓴웃음이 나왔다. 나도 힘을 가진 다른 자들과 똑같았다. 순전히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해 고딩들을 찾아 헤맸다. 이러면 발바리와 다를 게 뭐란 말인가.

 

 혼란스러웠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담배 연기를 헤치며 고딩들이 시시덕거리는 골목을 지나쳤다. 지금은 놈들을 혼내줄 기분이 아니었다. 힘을 어떻게 써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야, 저거 봐봐. 탈주한 꼰대네.”

 

 “맞으려고 제 발로 찾아오셨나. 병신들아. 담배 좀 그만 빨라고.”

 

 “에이, 새삥인데. 넌 오늘 뒤져쓰.”

 

 나를 발견한 고딩들이 입에 문 담배를 내던졌다. 하나둘 어두컴컴한 골목 안에서 어슬렁거리며 나왔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침을 걸쭉히 뱉었다. 그러면 자기네들을 무서워할 거로 아는 모양이었다. 그냥 무시하며 걷자 도망치려는 걸로 착각한 놈들이 허겁지겁 달려들어 주위를 에워쌌다. 혼내줄 기분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장단 맞춰 줄 기분도 아니었다. 가만히 기세등등하게 선 고딩들을 바라봤다.

 

 “어디 한 번 또 튀어보시지?”

 

 “아주 밟아 쳐 죽이까. 아니면 장애인을 만들어 주까.”

 

 “뼈까지 발라서 콘크리트로 묻는 건 어떠냐? 콘크리트 암매장도 3년밖에 안 받았다더니만.”

 

 “그럼 우리는 더 적겠네. 해볼 만하다. 안 그러냐?”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서 사람을 위협하고 비웃는 게 수준급이었다. 자기들의 힘이 세다고 착각하는 모양이었다. 힘은 힘으로 눌러야 한다. 다른 방법은 없다. 약한 모습은 오히려 고딩들을 부추기는 것밖에 안 된다. 그게 힘의 추악한 본질이었다.

 

 이제는 자신감이 붙었는지 제일 처음 나한테 맞았던 외계인 새끼가 거들먹거리며 다가왔다. 다른 놈들은 주변에 선 채로 낄낄대며 상황을 지켜봤다.

 

 “이제는 아저씨가 존내 처맞을 차례네. 그치?”

 

 외계인이 이죽거리며 내 뺨을 후려 갈겼다. 짝. 놈의 손바닥이 내 얼굴에 부딪힌 후 옆으로 흘렀다. 손가락과 손바닥이 출렁이면서 부풀었던 팔뚝이 살짝 오므라드는 게 보였다. 이게 살과 살이 맞부딪쳤을 때 일어나는 현상일까? 아무 느낌도 나지 않아 좀 어이가 없었다. 내가 가만히 있자 쫄았다고 생각한 녀석은 침을 튀기며 신나게 지껄였다.

 

 “뭐라고 말 좀 해보세요. 씹탱아. 그때는 무슨 깡이었대? 응? 응?”

 

 놈이 다시 내 따귀를 후렸다. 뭔가가 어루만지고 지나간 듯 얼굴에는 아무런 충격도 전해지지 않았다. 이것도 뱀의 능력일까? 굳이 대응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가만히 놈의 얼굴을 쳐다봤다. 나를 완전히 제압했다고 착각한 녀석은 패거리를 돌아보며 건들거리다가 다시 나를 보고는 코웃음 쳤다.

 

 “하, 내가 이런 좆밥 새끼한테.”

 

 자기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듯 눈을 끔뻑이다가 주위를 둘러보며 씩씩거렸다.

 

 “생각해보니까, 씨발. 좆같네? 나 말리지 마. 오늘 살인 난다. 아주 죽여 버릴 테니까.”

 

 미친놈인가. 꼴같잖아서 더 못 보겠다. 놈이 나를 홱 돌아보고는 뭘 쳐다보느냐며 주먹을 휘둘렀다. 날아드는 손을 잡았다. 깃털처럼 가벼웠다. 손 하나 정도는 몇 달간 못 써도 괜찮을 거다.

 

 놈의 주먹을 움켜쥔 채 살짝 힘을 줬다. 빠드득. 뼈 부러지는 소리가 나며 놈이 울부짖었다. 자신의 주먹을 빼내려고 다른 쪽 손으로 내 팔을 잡았다가 그 손마저 잡히자 당황해 길길이 날뛰었다.

 

 뒤에서 구경하던 패거리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껴들지도 못하고 긴장한 얼굴로 주위를 서성였다. 내 손에 잡힌 녀석의 주먹을 확인하니 다섯 손가락이 축 처진 채 덜렁거렸다. 너무 힘을 줬나. 꼴을 보니 이러다간 손이 영영 불구가 될 것 같아서 놓아줬다. 놈이 무릎을 꿇고는 뼈가 다 으스러진 오른손을 붙잡은 채 펑펑 울었다. 그제야 고딩들이 씨발 씨발거리며 덤벼들었다. 보통 이 정도면 다 도망갔을 각인데 한 번 다구리에 성공한 경험 때문에 이번에도 그럴 거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제일 첫 번째로 덤빈 녀석의 가슴팍을 손바닥으로 밀었다. 뒤로 쭉 밀려나며 더러운 담벼락에 등이 부딪쳤다. 아차, 힘을 너무 많이 줬다. 벽에 부딪힌 녀석이 앞으로 천천히 고꾸라졌다. 죽으면 안 된다. 얼른 달려가서 상태를 확인했다. 덤벼들던 놈들이 화들짝 놀라 옆으로 비켜섰다. 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녀석의 얼굴을 들어 올리자 헐떡거리며 기침했다. 다행히 죽지는 않았다. 다시 놈의 얼굴을 바닥에 처박고는 주위에 얼쩡대는 놈들을 돌아봤다.

 

 “병신들아. 분위기 파악 못 하냐. 탈주 각이다.”

 

 그런데도 녀석들은 덤벼드는 것도 아니고, 도망가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포지션으로 주위를 얼쩡거렸다.

 

 “급식이라 그런가, 말이 안 통하네.”

 

 주먹으로 옆의 건물 벽을 쳤다. 쾅! 벽 중앙에 주먹보다 더 큰 구멍이 뻥 뚫렸다. 내가 더 놀랐다. 그냥 겁만 주려고 그랬는데. 내친김에 발을 들어 시멘트 바닥을 밟았다. 사방으로 시멘트 조각이 튀면서 밟은 자리가 움푹 팼다. 그리 큰 힘을 준 것도 아니었다. 놀란 고딩들이 개미 떼처럼 사방으로 달아났다. 진작 힘을 보여줄걸. 뒤돌아 바닥에 엎어진 채 하염없이 우는 놈에게 다가갔다. 그러고 보니 궁금한 게 있었다.

 

 “그때 왜 다구리 깐 거냐?”

 

 놈이 내 말은 듣지도 않고, 눈물 콧물로 범벅된 침을 흘리며 흐느꼈다. 오른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왜 다구리 깐 거냐고!”

 

 소리치며 한 손으로 놈의 목덜미를 잡아 들어 올렸다. 내 팔에 뒷덜미를 잡힌 녀석이 화들짝 놀라 바지에 오줌을 지렸다. 에이 씨. 놈을 들어 던져버렸다. 바닥을 구른 놈이 일어나 달아나려다가 다시 넘어졌다.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다리가 휘청거리더니 다시 바닥에 주저앉았다. 천천히 걸어가 뒤에서 헤드록을 걸었다.

 

 “뒤진다, 진짜. 빨리 말해라.”

 

 “그, 그, 그게요. 실은 그놈이 먼저. 진짜예요. 먼저 그런 건데요. 나중에 우리가 알았는데··· 열 받잖아요. 왜, 왜, 우리만 놔두고.”

 

 말을 하다 말고 놈이 울었다.

 

 “뭔 소리야. 똑바로 말 안 할래?”

 

 목을 감은 팔에 힘을 주자 녀석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그놈이 먼저 강간한 거예요. 우리는 나중에 알았다고요. 그니까, 왜 혼자만 하느냐고요. 열 받잖아요. 같이 해야지."

 

 잠깐, 이게 뭔 소리야. 강간이라니.

 

 “누굴 강간했는데?”

 

 “1학년 후배 여자애요. 걔가 일진에 들어오고 싶다고 해서. 민기찬 이 개새끼가 우리만 쏙 빼놓고 모텔로 끌고 간 거예요. 그 씨발 놈이.”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왔다.

 

 “그래놓고는 나중에 따먹었다고 자랑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거예요. 진작에 알려줬음 처맞지나 않았지.”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

 

 놈이 우물쭈물 대답하지 못했다. 화가 치솟았다. 놈의 목을 풀어주고는 정면으로 가 목을 움켜쥐었다. 천천히 들어 올렸다. 놈이 내 팔에 매달려 버둥거렸다. 숨이 막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내 눈을 피했다.

 

 “똑바로 대답 안 하면 죽일 것 같아서 그래. 빨리 말해주지 않을래?”

 

 놈이 내 눈을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온몸에 닭살이 돋는 게 보였다. 말을 하려다가 숨이 막혀 컥컥대기를 반복했다. 목을 놓아주자 반쯤 정신 나간 얼굴로 웅얼거렸다.

 

 “같이 했어요. 민기찬 그 새끼랑 다 같이 애들 모아서 했다고요. 썅년이 안 나오려는 거예요. 몰카 찍었다고 구라쳐서 불러냈죠. 다 같이 해주니까 좋아하던데요? 진짜예요. 신음도 막 내고. 좋으니까 내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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