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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네이크맨
작가 : 엄길윤
작품등록일 : 2017.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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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 조까!
작성일 : 17-11-16     조회 : 326     추천 : 0     분량 : 5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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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을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오는 내내 주변을 살피고, 어둠을 주시했다. 놈이 가만히 있으면 상관없겠지만, 움직이면 분명히 티가 날 거였다. 절대 사는 곳을 보여서는 안 된다. 곳곳에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하긴, 놈도 날 쫓을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을 것이다.

 

 집으로 들어왔다. 엄마, 아빠는 이미 주무시고 계셨다. 자꾸 헛소리하는 동생을 방에 던져놓은 후 아까의 일을 떠올렸다. 주사기라니. 그 생각까지는 못했다. 확실히 직접 무는 것보다 빠르고 간단하다. 대응해야 한다. 어떻게? 매일 소량의 독을 먹어서 독에 면역이 된 왕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것도 가능할까?

 

 하지만, 이건 보통의 뱀독과는 달랐다. 독이 체내로 들어오면 종류에 따라 적혈구를 파괴하고, 출혈이 발생하는가 하면 호흡 마비까지 일으킨다. 어떻게 해서든지 몸에 큰 타격을 주는 것이다.

 

 내 송곳니에서 나오는 건 독이라기보다 일종의 안정제였다. 몸만 마비될 뿐 후유증이 남지 않았다. 그건 놈도 마찬가지일 터. 만약 독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내 몸에 면역이 되어야 한다. 목숨과 직접 연관이 있기 때문이었다. 원래 생명체는 다 그런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제 살길을 찾거든.

 

 마취제는 독과 다르다. 수십 번 맞아도 몸에 적응이 되지 않는다. 기껏해야 조금 완화되는 정도이려나.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안 맞는 수밖에. 아니면 동생이라도 데리고 다녀야 할까. 그건 더 말도 안 되는 소리고. 결국은 선빵이 답이라는 이야기였다. 날 잡으려고 대기탔던 그 발바리 새끼처럼 말이지.

 

 생각할수록 열 받았다. 나를 마비시켰다고 맘대로 개소리를 늘어놓는 걸 보면 내가 어지간히 졸로 보였단 거다. 좆은 원래 쓰려고 달린 거라고? 좋은 경험? 애초에 왜 자극 하느냐고? 미친 새끼. 또라이다. 이런 놈은 가만히 놔둬서는 안 된다. 그 힘으로 몹쓸 짓을 하고 돌아다닐 걸 생각하니 피가 거꾸로 솟았다.

 

 온몸으로 오한이 들었다. 기분 좋은 떨림이었다. 흥분됐다. 놈을 죽이고 싶다.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책상 옆의 듀오백 의자를 잡아 비틀었다. 파편이 튀면서 등받이와 팔걸이가 부서졌다. 어떻게 하지? 이를 악물었다. 또다시 마음속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이 정도로는 만족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잡아 짓뭉개야 한다. 그래야 가라앉는다.

 

 형광 뱀에 물린 후부터 파괴 욕구는 수시로 찾아왔다. 마치 뱀파이어가 피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뭐든지 잡아 족쳐야 한다. 그래서 고른 것이 성범죄자들이었다. 나처럼 힘을 써 다른 이를 짓밟는 가장 야만적인 행위였으니까.

 

 이 시간대에 어디 가서 성범죄자를 찾지? 발바리 놈은 분명히 어둠 속에 숨었을 게 틀림없다. 급하다. 지금 당장 아무나 잡아야 한다. 이러다가 방 안의 모든 집기를 다 때려 부수게 생겼다.

 

 방 안을 뛰쳐나가려다 멈췄다. 아니지. 확실한 한 가지 방법이 있다. 그건 스스로 몸을 마비시키는 거다. 바로 혀를 깨무는 것. 그럼 못 움직여서 괴롭더라도 어쨌든 성 범죄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나 방 안의 물건들은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이럴 때만 나타나는 빌런이 있지. 바로 빅-스틸-맨. 동생 놈. 술에 곯아떨어졌어도 내가 마비되면 분명히 나타날 거다. 꼭 그럴 때만 오더라, 개새끼. 내가 뻔히 눈을 뜬 상태에서만 멋대로 가져가는 걸 즐기는 녀석이다.

 

 못 참겠다. 손이 떨렸다. 온몸의 근육이 터질 듯 불거졌다. 이러다가는 진짜 큰일 난다. 그렇다고 동생을 마비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침대에 몸을 던진 후 혀를 깨물었다.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온몸이 굳은 채 실실 쪼개는 동생 놈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혀 말고 볼 안쪽을 몇 번 더 깨물었다. 정신이 아득히 멀어지면서 잠이 몰려왔다. 오, 이거 좋네. 여러 번 독을 주입하니 효과가 뛰어난 셀프 수면제가 됐다. 나중에 이걸로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한방에 재우는 거다. 음, 피부 속으로 침투해야 하니 알약은 안 되고. 코난에서 나오는 마취 총처럼 할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주사기보다 이쪽이 더 빠르고 확실할지도 몰랐다. 기다려라. 발바리 새꺄. 마취 총을 만들어서 널 사냥해주마.

 

 잠이 쏟아졌다.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온몸이 굳어가는 와중에도 손에 닿는 이불을 잡아 뜯었다. 욕망이 폭발했다. 이제 나도 어쩔 수 없다. 침대에서 밖을 향해 기었다. 잡히는 건 뭐든지 다 찢어발기고 싶었다. 사람이라도 어쩔 수 없다. 아니, 사람이면 더 좋지. 제발 한 놈만 걸려라!

 

 꿈틀거리며 침대 가장자리에 도달했다. 조금만 더 움직이면. 조금만 더!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방 천장이 눈앞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고는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떴다. 창문으로 햇볕이 들어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벌떡 일어났다. 팔을 휘두르며 상체를 이리저리 틀었다. 몸 상태는 괜찮다. 어두운 욕망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옆에 놓인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3시. 집에 들어온 시간이 새벽 3시였으니 아주 그냥 12시간 풀 취침한 거다.

 

 방 안을 살폈다. 특별히 사라진 건 없었다. 역시, 내가 아예 기절하니까 동생 놈은 오지도 않았네. 아휴, 이걸 그냥.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동생은 그새를 못 참고, 친구들을 만나러 나간 것 같았다. 냉장고에서 대충 몇 개의 반찬을 꺼냈다. 다 꺼내기는 너무 귀찮다.

 

 큰 대접에 밥을 가득 푼 후 핸드폰으로 유튜브에 접속했다. 내가 올린 스네이크맨 동영상 조회수가 한 건당 벌써 100만이 넘었다. 별로 중요한 건 아니니까.

 

 화면을 밑으로 내리다가 연관 동영상에 뉴스가 링크됐다. 제목은 ‘경찰, 스네이크맨에 대해 심각한 우려 표방. 전담반을 꾸려 조사 착수’였다. 이건 뭔 소리야? 얼른 동영상을 확인했다.

 

 내용은 이랬다. 요즘 한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에서 스네이크맨이라는 영상이 큰 인기를 얻는다는 거였다. 성범죄자라고 추정되는 사람을 무차별 폭행하는 영상으로서, 너무 잔인해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라고.

 

 경찰 측에서는 이 스네이크맨이라는 신원불명의 남자를 쫓는 중이라고 했다. 이미 CCTV를 확보했고, 신변이 확보되면 바로 구속 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라나.

 

 소식을 전하던 앵커는 끝으로 경찰의 공권력을 무시하는 건 심각한 범죄 행위라는 말을 덧붙이며 뉴스를 마무리했다.

 

 뭐? 이미 CCTV를 확보했다고? 큰일이다! 핸드폰으로 다른 뉴스를 확인했다. 스네이크맨에 대한 뉴스가 생각보다 많았다. 이 정도로 관심을 받을 줄이야. 이게 국회 의원과 판사들 덕분이다. 우리나라 법이 성범죄에 관대하니 내가 설치는 거지.

 

 그래서 더 억울했다. CCTV라니. 그것까지는 생각 못 했다. 단순히 올린 동영상에만 내 얼굴이 나오지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꼴좋다. 그런 거 하나 캐치 못 하다니.

 

 괜히 걱정하는 게 아니었다. 형사들이 범인을 잡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하는 게 바로 CCTV였다. 일단 범인의 인상착의를 특정할 수 있고, 동선을 파악해 수사의 범위를 좁혀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게임은 끝난 거다.

 

 어디에 CCTV가 있었더라? 범위가 너무 넓다. 어쩌면 내가 복면을 쓰거나 혹은 벗는 장면이 CCTV에 찍혔을지 모른다. 다 부술 수 있을까? 가능하다 해도 주차된 차들의 블랙박스에서 증거 영상을 확보할지 모른다. CCTV를 없애는 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었다. 이런, 씨발!

 

 지금 한가롭게 밥이나 처먹을 때가 아니다. 언제 형사들이 들이닥칠지 모른다. 얼른 스네이크맨으로 활동할 때 입었던 옷들과 복면을 없애야 한다. 어떻게? 이 시간에 다 태울 수도 없고. 갖다 버려야 한다. 그것 말고는 답이 없다.

 

 지문이 묻지 않게 수건으로 스네이크맨 복장과 복면, 안팎으로 지문을 닦아낸 장갑까지 집어 가방에 쑤셔 넣었다. 이제 어떻게 한다? 어디로 가지? 일단 밖으로 나가자.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 쓰레기통을 찾아 버리면 된다. 아, 근처에 혹시 CCTV가 있는지도 확인하고.

 

 가방을 메고 아파트 단지를 나왔다. 일단 시내로 가자.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데 저만치서 두 명의 남자가 걸어왔다. 딱 봐도 경찰이었다. 설마 나를 부르는 건 아니겠지.

 “저기요.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경찰관입니다.”

 

 이대로 잡히면 안 된다. 여차하면 쓰러뜨리고 달아나야 한다. 그들이 가까이 와 내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혹시 이런 사람 본 적 있어요? 키는 한 178 정도 되고, 주로 이 근방에서 나타나는 사람인데.”

 

 그러면서 덩치가 큰 형사가 한 사람의 뒷모습이 찍힌 핸드폰 화면을 보여줬다. 그건 스네이크맨, 바로 내 뒷모습이었다. 멀리서 찍혀 화질이 좋지 않았다. 밤이라는 것도 한몫했다. 이것만으로는 특정 인물을 지목하기 힘들어 보였다. 다행이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옆의 형사가 투덜거렸다.

 

 “범인을 찾는 중이거든요. CCTV 화질이 영 좋지 않아 힘드네요.”

 

 그러거나 말거나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그럼 이건 어때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형사가 화면을 넘기며 몇 장의 사진을 더 보여줬다.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중간중간 복면을 벗은 내 모습이 CCTV 화면에 잡혔다. 민얼굴이 그대로 드러난 채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주위가 어두웠고, 여전히 멀리 떨어진 시점이라는 거였다.

 

 “누군지 아시겠어요?”

 

 “아, 아뇨.”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으며 뒤로 물러섰다. 오래된 지인이나 가족이라면 나라는 걸 알아챌지도 모른다.

 

 “이게 뭐예요. 너무 어둡잖아요. 얼굴도 작게 나왔고. 이것만 가지고 누군지 어떻게 알아요?”

 

 최대한 사진이 개쓰레기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덩치 큰 형사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런 거로 범인을 찾는다는 게 참 쉽지 않죠.”

 

 더 있다가는 뭔가 의심을 살 것 같았다. 대충 둘러대자.

 

 “이제 됐죠? 지금 도서관에 가야 하거든요. 혹시라도 비슷한 사람 보면 경찰에 신고할게요.”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형사가 말했다.

 

 “협조 감사드립니다. 시간을 많이 뺏었네요. 요새 공부하시느라 힘드시겠어요.”

 

 “아, 예. 뭐 그냥저냥···”

 

 얼버무리며 형사들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덩치 큰 형사가 수첩을 꺼내 뭔가를 적었다. 옆의 형사가 나를 살피며 물었다.

 

 “운동하시나 봐요? 몸이 아주 그냥 끝내주시네.”

 

 “아, 예. 조금.”

 

 형사들을 지나쳐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잠깐만요!”

 

 천천히 뒤돌아봤다. 덩치 큰 형사가 핸드폰을 흔들며 말했다.

 

 “형사가 웃긴 게 뭔지 알아요? 이런 거로도 결국은 범인을 찾거든. 키 178가량에 근육질 몸매. 약간 팔자걸음. 딱 선생님이네요. 그쵸?”

 

 당황해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아, 뭔 소리야.”

 

 “아, 말이 그렇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범인이 아니라. 늦겠네. 어서 가세요.”

 

 형사들이 가만히 서 나를 노려봤다. 저 눈빛은 의심에 가득 찬 눈초리였다. 아마 이제부터 뒤를 캐기 시작할 거다.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CCTV 조까! 여긴 내 나와바리라고! 꼬투리 잡히기 전에 발바리 새끼부터 족칠 거다. 절대 그전에 잡히지 않는다.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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