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스네이크맨
작가 : 엄길윤
작품등록일 : 2017.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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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은 뱀을 잡아 먹는다(1)
작성일 : 17-11-17     조회 : 337     추천 : 0     분량 : 4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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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지로3가에 있는 인쇄 골목으로 가서 스네이크맨 복장을 버리고 왔다. 물론 가방은 그대로 멘 채 말이다. 빈손으로 오면 형사들이 의심할 테니까.

 

 내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걸터앉았다. 일단 증거가 될 만한 것은 처리했다. 남은 건 CCTV 영상뿐. 조까라 그래.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 쳐죽일 발바리 놈이 동네를 돌아다니는데 그깟 CCTV가 뭐가 중요하다고.

 

 화질구지인 영상으로는 나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 어이가 없었다. 애초에 나를 잡기 전에 발바리부터 잡는 게 순서 아닌가? 대체 경찰은 뭐 하고 있는 거냐고. 아니, 놈의 존재를 알기는 할까? 놈부터 잡은 후에 나를 잡는다고 돌아다니면 내가 이해라도 하지.

 

 놈에게 진 빚은 반드시 갚을 거다. 다시금 살의가 불타오르려는 걸 꾹꾹 눌러 삼켰다. 지금은 냉정해져야 한다. 차가워진 내 몸처럼. 어둠에 도사린 채 먹이를 노리는 뱀의 눈처럼.

 

 상가나 가게가 있는 건물에는 거의 무조건 CCTV가 달려 있다. 주차된 자동차들의 블랙박스도 피할 수 없을 터. 그럴 바에는 아예 처음부터 신원을 알 수 없게끔 변장을 하고 나와야 한다. 절대 중간에 복면을 쓰거나 벗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럼 사람들이 없고, CCTV도 없을뿐더러,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면서 동네로 바로 연결된 장소가 있어야 한다. 그게 어딜까?

 

 지하철역은 어떨까? 정확히 말하면 지하철역 화장실. 워낙 유동 인구가 많아서 누가 누군지 구별할 수 없을뿐더러, 화장실 안은 익명성이 보장된 곳이기도 하다. 안에서 갈아입고 나오면 내가 누군지 어떻게 알 거야?

 

 하지만, 복면을 뒤집어쓰고 나오면 온갖 사람들 앞에 노출된다는 이야기인데. 위험하다. 광역 어그로 시전은 기본이고, 그만큼 경찰에 신고당할 확률도 높다. 사람들이 무슨 반응을 보일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생각해보니 시간대도 안 맞다. 주로 새벽에 활동하는데 그 시간대에 지하철역 화장실은 닫혀 있을 테고. 또 유동 인구가 없어 들어왔다 나가는 게 쉽게 눈에 띌 테고.

 

 아오, 씨. 가슴이 고구마를 서너 개는 먹은 것처럼 답답했다. 그럼 어쩌라고! 그냥 확, 얼굴 까고 돌아다녀? 기자회견을 열어서 내가 아이언맨입니다! 해 버려?

 

 아니. 그럼 안 되지. 괜히 아이언맨을 빌런이라고 부르겠어. 일단 나는 가족이 있으니까. 재벌에다가 가족이 없는 사람만 그 지랄 할 수 있는 거지. 쩝.

 

 갑자기 나타나야 한다.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내가 무슨 하늘을 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하늘에서 나타나지? 잠깐, 꼭 하늘일 필요는 없다. 말 그대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 된다. 옥상.

 

 옥상이다! 보통 CCTV는 거리를 비추는 용도로 달려 있지, 옥상에 설치된 건 많지 않다. 맞다. 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바깥을 향하지, 옥상 자체를 비추는 CCTV는 흔하지 않으니까.

 

 일단 빌라나 원룸 건물의 옥상을 계단으로 오른 후 CCTV를 확인하고, 없으면 바로 갈아입으면 된다. 그러고는 옥상에서 옥상으로 여러 번 건너뛴 후 계단이나 건물을 타고 내려오면 그만이다. 집으로 되돌아올 때도 역순으로 하면 되고.

 

 최대한 우리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옥상이어야 한다. 그럼 어디에서 오르고 어디에서 내린 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날 어떻게 찾을 거야? 경찰이 그 넓은 지역의 모든 CCTV를 다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제 남은 건 하나다. 발바리 이 씹새끼를 어떻게 잡지?

 

 마취 총을 만들자고 생각했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쉽나. 스파이더맨은 웹 슈터를 어떻게 만든 거야? 말도 안 돼. 아무리 똑똑하더라도 고딩이 그런 걸 만드는 건 좀 어거지 아냐? 보니까 아주 만능이더만.

 

 직접 만드는 건 포기다. 원래부터 뭔가를 만드는 데에 소질이 없었다. 대신 기존의 걸 이용하자. 적어도 발바리 새끼가 쓰는 주사기보다 더 빠르고, 다루기가 쉬워야 한다. 여러 번 사용 가능하면 더 좋고.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다가 얼핏 유튜브에서 본 장면이 떠올랐다. 바로 ‘사고를 부르는 초딩들의 유행’이라는 뉴스 동영상이었다.

 

 예전에는 구슬치기나 딱지치기 같은 놀이를 주로 했지만, 요새 아이들은 피젯스피너나 비비탄 총 같이 날카롭고 위험한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는 소식이었다. 그거야 마땅히 놀만 한 데가 없어서 그렇지. 요새는 동네 놀이터도 위험하다는 마당에.

 

 어쨌든 그중에서도 비비탄 총이 특히 위험하다고 했다. 어찌나 위력이 센지 유리창이 다 깨질 정도라고.

 

 이거다. 이걸로 마취 총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조금 생각하다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발바리나 나나 둥그런 비비탄으로는 상처 하나 입지 않는다. 그게 아무리 빨리 날아온대도 말이다. 실탄이라면 모를까. 피부 속으로 파고들지 않으면 마취액도 주입하지 못한다.

 

 또 다른 문제는 아무리 장난감 총이라고 해도 실제 총기라고 생각될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밤에는 더더욱 실제 총이라고 오인당할 수 있다. 범죄자가 총까지 들고 있어? 그럼 바로 경찰들에게 총기 사용 허가가 떨어질 테고. 총에 맞으면 아무리 나라도 벌집 되는 거지 뭐.

 

 그럼 생각을 해보자. 위험해 보이지 않아야 하고. 총 같이 멀리서 쏴서 맞춰야 하는 것. 연속으로 사용 가능하고. 휴대하기도 쉽고. 그런 게 뭐가 있을까. 혹시 불심검문에 걸려도 의심을 사지 않을만한 어떤 것.

 

 요새 애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피젯스피너가 제일 그럴듯하다. 날카로운 날을 가진 것만 골라서 많이도 필요 없고, 두 개나 세 개 정도 들고 다니면 된다. 날을 송곳니로 깨물어 마취액을 묻힌 후 온 힘을 다해 던지면 아무리 근육으로 뒤덮인 몸이라도 상처는 날 거다. 날은 회전이 빨라질수록 더 날카로워질 테니까.

 

 이론적인 준비는 다 끝났다. 이제 피젯스피너를 몇 개 사고, 새로운 복면을 마련한 후 놈을 잡으러 다니면 된다. 기다려라. 여자의 영혼을 뿌리째 갉아먹는 강간범들. 그리고 발바리 너 이 새끼. 아무래도 놈을 잡으면 살려둘 수 없을 것 같다. 너 나쁜 놈인 거 안다. 그러니까. 내가 너 죽이는 거 이해하지?

 

 

 

 

 새벽에 나와 옆 동네까지 걸어왔다. 한쪽 주머니에는 복면과 가죽 장갑을. 반대편 주머니에는 인터넷으로 주문한 날카로운 피젯스피너를 세 개 집어넣었다.

 

 약간 허름한 6층 원룸 건물을 골라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문이 자물쇠로 잠겼다. 힘을 줘 자물쇠를 통째로 뜯어낸 후 문을 열었다. 역시 옥상에는 CCTV가 없었다.

 

 집에서 나갈 때와 돌아올 때의 복장이 같아야 한다. 형사들이 나중에 CCTV로 확인할 터였다. 그래서 생각한 게 전혀 다른 옷을 2개 껴입는 거였다. 일단 옷을 벗어 옥상에 숨겨 놓은 후 활동하고, 끝나면 다시 돌아와 옷을 입고 내려오면 끝이다. 참 없어 보이지만, 뭐 하는 수 없지. 물론 올라가는 옥상은 그때그때 다를 거다.

 

 복면과 장갑을 끼고, 옷을 벗어 에어컨 환풍기 뒤에 숨겼다. 이제 다른 옷을 착용한 완벽한 스네이크맨이었다. 우선 다른 옥상으로 이동해야 한다. 바로 옆 건물을 살폈다. 같은 원룸 6층이었지만, 대략 7m 정도 떨어졌다.

 

 할 수 있을까? 뒤로 물러섰다가 앞으로 내달렸다. 해보면 알겠지. 난간에 가까워지자 다리에 힘껏 힘을 줬다. 모서리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어? 바람을 가르며 몸이 공중으로 튀었다. 몸이 너무 가볍다. 앞의 6층 건물 옥상을 훨씬 뛰어넘어 다음 건물을 향해 날아갔다. 10층 아파트였다. 속도가 너무 빨라 중간에 방향을 틀 수 없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그대로 아파트 건물 중간에 부딪혔다. 잡을 만한 곳이 하나도 없는 밋밋한 옆면이었다.

 

 밑으로 떨어지려는 찰나 오른손을 휘둘러 아파트 외벽을 쥐었다. 악력이 워낙 세서 잡을 게 없는데도 다섯 손가락의 힘만으로 80kg 몸무게를 버텼다. 소리를 지르며 밑을 내려다보다 나머지 왼손을 뻗어 똑같이 밋밋한 아파트 외벽을 잡았다. 두 다리가 공중에서 위태롭게 흔들렸다. 각각 한발씩 벽에 갖다 대고는 허벅지와 종아리에 힘을 줬다. 온몸이 아파트 외벽에 착 달라붙은 셈이었다.

 

 그 상태로 몸을 쭉 뻗었다. 마치 뱀처럼 곡선을 그리며 아파트 외벽을 타고 미끄러지듯 위로 올랐다. 팔다리의 근육을 부풀리고 줄여 몸을 아래에서 위로 밀어내는 원리였다.

 

 10층 아파트 난간을 잡고 옥상에 오르자마자 다시 주위를 살폈다. 건너 건너에 12층 상가 건물이 보인다.

 

 내친김에 건너편 8층 건물로 달렸다. 난간에 가까워지기도 전에 맞은편으로 뛰었다. 온몸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느꼈다. 밑으로 도로와 주차된 차들이 보였다가 사라졌다. 옥상에 착지하자마자 멈추지 않고 계속 뛰었다. 맞은편 12층 상가 건물이 점점 커졌다. 허리를 숙이고 다리를 굽힌 후 힘껏 다리를 펴 지면을 박찼다.

 

 몸이 마치 로켓처럼 위로 솟구쳤다. 상가 건물 옥상보다 훨씬 높이 떠올랐다가 하강했다. 무릎만 굽혀 옥상 중앙에 가볍게 착지했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다리를 편 후 두 팔을 번갈아가면서 만졌다.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시험 삼아 다리도 이리저리 굴려봤다.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건물 벽을 타는 건 이미 첫 번째 발바리를 잡을 때 해봤으니 그렇다 쳐도, 이렇게 점프력까지 좋을 줄은 몰랐다.

 

 주위를 살폈다. 상가 건물이라 그런지 옥상을 비추는 CCTV가 설치됐다. 하지만, 이미 스네이크맨으로 변한 후였다. 있든 말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발바리 놈이 나를 습격한 게 이 근처였다. 이제는 내 차례다. 놈이 어둠 속에 숨어 나를 기다렸다면, 나는 위에서 놈을 굽어볼 것이다.

 

 주변의 건물을 살폈다. 근처에서는 이 상가 건물이 제일 높다. 분명히 언젠가 한 번은 놈이 밑을 지나칠 거다. 주머니의 피젯스피너를 만지작거렸다. 이미 수십 차례 던지는 연습을 마쳤다.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난간으로 다가가 옆으로 길게 누웠다. 그리고 밑의 상황을 주시했다. 아직은 체온을 가진 몇 명의 사람만이 지나갈 뿐이었다.

 

 어서 모습을 드러내라. 차가운 몸을 끌고 어둠 속을 뱀처럼 기어갈 때. 그때가 너의 제삿날이다.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네 놈을 잡을 때까지 끝까지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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