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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네이크맨
작가 : 엄길윤
작품등록일 : 2017.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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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은 뱀을 잡아 먹는다(4)
작성일 : 17-11-22     조회 : 331     추천 : 0     분량 : 4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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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놈과 내가 점점 지면에 가까워졌다. 이대로 떨어지면 둘 다 죽는다. 이를 악물고, 양손에 힘을 줬다. 뽀각. 놈의 두 팔목이 부러지면서 손이 축 늘어졌다. 주사기가 바람에 날려 저 멀리 사라졌다. 놈이 입에 거품을 물며 눈을 까뒤집었다. 존나, 오버하네. 내가 더 죽을 것 같다고 이 븅신아!

 

 놈의 얼굴을 움켜쥐고는 아래로 내던졌다. 몸이 머리를 따라 곤두박질치면서 추락 속도가 더 가속됐다. 동시에 몸을 힘껏 틀어 회전했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적어도 그냥 떨어지는 것보다는 낫다. 아파트 단지 내 바닥은 아스팔트였다. 각오해야 한다.

 

 철퍼덕! 놈이 그대로 아스팔트 바닥에 꽂혔다. 이제 내 차례다. 시커먼 바닥이 눈앞으로 정신없이 돌며 들이닥쳤다. 눈을 질끈 감았다. 온몸으로 딱딱한 바닥을 들이받았다. 원심력에 의해 아스팔트에서 퉁겨져 나와 다시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몇 분을 정신없이 돌다가 드디어 멈췄다.

 

 엎어진 상태에서 팔을 살짝 들어봤다. 움직였다. 다리도 구부렸다. 으윽! 입에서 절로 비명이 나왔지만, 어쨌든 다리를 구부리고 피는 게 가능했다. 끙끙대며 일어섰다.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도 잠시였다. 몸을 회전시킨 게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게 조금이나마 충격을 줄여줬다.

 

 저만치 떨어진 발바리 놈을 살폈다. 놈이 몸을 꿈틀거리며 신음을 흘렸다. 20층 높이에서 맨몸으로 아스팔트에 처박혔는데 아직도 살아있다니.

 

 비틀거리며 놈을 향해 다가갔다. 죽이기 전에 물어볼 말이 있다. 온몸이 다 아팠다. 내가 이렇게 움직이는 걸 보면 놈이 살아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몰랐다.

 

 가까이 가자 놈이 쿨럭거리며 입술을 달싹였다. 뭔가를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아마도 죽음을 예감했겠지.

 

 “왜요. 왜 여자를 따먹는 게 잘못한 거예요? 얼마나 소름 끼치도록 좋은지 아냐고요. 왜 이해를 못 해요?”

 

 죽기 전에 내뱉는 게 겨우 이런 말이라니. 한심했다. 힘겹게 팔을 들어 놈의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 퍽! 순식간에 코와 입이 피투성이가 됐다.

 

 “그만 싸물고.”

 

 놈의 주둥아리를 잡고 물었다.

 

 “너도 형광 뱀에게 물린 거냐? 어디로 갔는지 봤어? 아니, 그 전에. 그 뱀의 정체가 뭔지는 아는 거야?”

 

 놈이 피를 토하며 계속 혼잣말을 지껄였다.

 

 “여자는 말이죠. 강간해주면 좋아해요. 진짜예요. 내가 좋거든요. 그러니까 여자도 좋은 거예요.”

 

 “뭔 개소리야! 똑바로 대답 안 할래?”

 

 놈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상체를 일으켰다. 싸다구를 날렸다. 턱이 휙 돌아갔다. 새끼가 아직도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모양이었다.

 

 “그게 세상의 이치잖아요. 예? 내가 좋으면 다 좋은 거잖아요.”

 

 놈이 울면서 말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화가 났다. 이런 놈은 쉽게 죽이면 안 된다. 그래서는 내 욕망이 가라앉지 않는다.

 

 머리카락을 놓고, 발을 들어 놈의 두 무릎을 밟았다.

 

 “으악!”

 

 놈이 비명을 질렀다. 한두 번 밟는 거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계속 발길질을 했다. 너덜거리던 놈의 무릎이 박살 나면서 종아리가 제멋대로 꺾였다. 흐느끼는 놈의 머리를 다시 아스팔트 바닥에 처박았다.

 

 “다시 물을게. 형광 뱀의 정체가 뭔지 알아? 언제 물렸냐니까? 개새끼야, 정신 안 차릴래? 빨리 뱀에 대해서 말하라고!”

 

 놈의 대가리를 바닥에 수차례 찍어가며 재촉했다. 쾅! 쾅! 놈의 온몸이 파르르 떨렸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초점 없던 눈이 나를 향했다.

 

 “여자예요. 그 여자. 그 여자가 날 이리 만들었어요.”

 

 “이 새끼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UFC 경기에 나오는 파운딩처럼 놈의 가슴을 주먹으로 쾅쾅 내리쳤다. 단단한 몸이었지만, 수차례 때리자 결국 갈비뼈가 부러졌다. 입에서 울컥 피를 토했다.

 

 “컥! 여, 여자 맞아요! 길 가다가 날 유혹했다고요! 공중 화장실에 같이 들어갔는데 갑자기 정신을 잃었어요. 깨고 나니 그년은 없었고요. 그 후로 능력이 생긴 거예요. 진짜예요!”

 

 다시 놈을 때리려다가 멈췄다. 뱀에 물린 게 아니라고? 여자. 여자를 만난 후에 갑자기 능력이 생겼다니. 이게 무슨 소리야?

 

 “자세히 설명해봐.”

 

 “기절한 후 뱀의 힘이 생겼는데. 분명 근처에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그년을 따먹으려고 아무리 돌아다녀도 못 찾겠더라고요. 씨발.”

 

 “자랑이다. 씨발아!”

 

 휘청이면서 놈의 몸 위에 올라탔다. 당장에라도 놈을 죽여 버리고 싶었다. 어떻게 된 게 머릿속에 온통 그 생각뿐일까?

 

 얼굴을 주먹으로 때렸다. 몇 대 때리니 손이 얼얼했다. 발로 밟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일어서다가 넘어졌다. 다시 일어설 힘이 없다. 놈의 몸 위로 기어 올라와 목을 움켜쥐었다.

 

 “그래서? 여자에 대해 뭘 알아냈는데?”

 

 “···그, 그게 다예요. 컥. 뭐, 덕분에 다른 여자도 따먹을 수 있었고.”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이제 죽여야 할 때다. 온몸이 살의로 가득 차올랐다. 놈이 피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흉하게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어쨌든 나보다 여자를 많이 강간한 사람도 없을 테니까.”

 

 안 되지. 머리에서부터 시작된 차가운 기운이 손에서 가슴으로 다시 하반신과 발끝으로 순식간에 퍼졌다. 놈은 수많은 여자의 삶을 파괴했다. 죽이는 건 너무 시시하다. 더 강한 처벌이 필요하다. 그래야 내 욕망이 채워질 거다.

 

 놈의 목을 물어 마취액을 주입했다. 놈이 어떻게든 저항해보려고 팔을 휘저었지만, 부러진 손목으로는 아무것도 잡아챌 수 없었다. 힘없는 손가락으로 내 머리와 몸을 툭툭 건드리는 게 다였다.

 

 이런 놈은 사회와 사람들로부터 영원히 격리해야 한다. 그럼 답은 하나다.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영원히 혼자 사는 거다.

 

 숨도 쉬지 않고, 마취액을 계속 주입했다. 몸 안에 든 독을 모두 놈에게 쏟아부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진작 쇼크로 죽었을 테지. 놈은 보통 사람이 아니니까.

 

 쉽게 죽지 않는 강인한 몸 덕분에 놈은 늙어 죽을 때까지 몸을 움직일 수 없다. 마취액에 의해 일종의 식물인간이 되는 거다. 사회와 사람들로부터 영원한 단절이다. 멀쩡한 정신으로 자신의 몸에 갇히는 거. 그게 너에게 합당한 처벌이다. 그렇지?

 

 놈이 공포에 충혈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제 말도 안 나오지? 놈의 팔다리가 축 늘어졌다. 입에서 침이 흘렀다. 이제야 조금 만족스러워졌다.

 

 앞으로는 얼마든지 깐족대도 상관없다. 물론 듣는 사람은 너 혼자겠지만. 혼자만의 세상을 원했으니 억울하진 않을 거다. 는 개뿔. 좆나 억울하겠지. 근데 어쩌냐? 네가 이제껏 저지른 죄를 갚기엔 그걸로도 부족한데.

 

 핸드폰을 찾아 주머니를 뒤지다가 가져오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놈을 잡는 데에 온 정신이 팔려 그 생각을 못 했다. 힘든 싸움이었다. 결과는 이미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지만.

 

 놈은 어떻게 뱀의 능력이 생긴 걸까? 놈의 말에 의하면 정체 모를 여자가 뭔가 술수를 썼다는 이야기인데. 그러고는 감쪽같이 사라졌고. 마치 날 문 형광 뱀처럼.

 

 어느새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벌써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대고 동영상을 찍는 사람도 있었다. 직접 찍어야 더 만족스럽겠지만, 지금은 저렇게라도 찍혀 유튜브에 올라오는 거로 참아야 한다.

 

 경찰들이 저놈의 발바리 행각을 캐치할까?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서 쉬고 싶었다. 몸 상태가 안 좋다.

 

 발바리 새끼를 버려두고 눈앞의 아파트 외관에 달라붙었다. 눈앞이 자꾸 침침해지고, 어지러웠다. 일단 사람들의 눈을 피해야 한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벽에 달라붙은 채 힘을 줬다. 그대로 위를 향해 미끄러졌다. 근육의 움직임만으로 벽을 타는 거라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들지 않았다. 아파트 옥상까지 올라왔다. 건너편 옆 동 아파트를 보며 생각했다. 여자와 형광 뱀이라니. 무슨 관계가 있을까?

 

 더 이상한 건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과 놈의 공격이 느리게 보이지 않는다는 거였다. 같은 뱀의 능력인 줄 알았는데 뭔가가 달랐다. 대체 그 여자를 어디에서 찾는단 말인가. 애초에 형광 뱀의 정체가 뭘까?

 

 뒤로 물러섰다가 건너편 아파트 옥상으로 뛰었다. 계속 이렇게 활동하면 뭔가 반응이 올 거다. 그냥 신나게 성범죄자들을 때려잡으면 된다.

 

 바람을 가르며 건너편 옥상으로 착지했다.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몇 바퀴를 굴렀다. 이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세상엔 성범죄자들이 너무 많다. 그들은 뱀이다. 그리고 또 다른 뱀이 있다. 뱀은 뱀을 잡아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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