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스네이크맨
작가 : 엄길윤
작품등록일 : 2017.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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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작성일 : 17-11-24     조회 : 292     추천 : 0     분량 : 5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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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진짜 좆같네. 군대 끌려갈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가기 전에 추억 좀 남기고 가야 할 거 아녀? 근데 뭐 술만 퍼마시고 있냐. 인마. 내가 술 쏘면 넌 여자를 쏴야지 뭐 하냐? 형 옷이나 액세서리도 이젠 못 빌리겠다. 아재 냄새가 나서. 아, 그래서 여친이 안 생겼던 거야. 그거네!

 

 왜 그렇게 사람이 변한 거야? 군대 갔다 와서 그런가. 패션 고자가 됐어.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옷을 안 사. 사더라도 검은 색 옷만 사고. 액세서리는 당연히 안 하고. 이상해. 사람이 변했어.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만 응시하는 경우가 많고. 방에서 뭐 하는지 고함도 들리고, 뭔가 때려 부수는 소리도 들리고. 뭔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듯한 신음도 들려.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야, 내 말 듣고 있냐? 창문 밖에 지나가는 여자는 봐서 뭐 할 건데? 따라가서 번호라도 따게? 아서라. 네 뚜껑만 따인다. 아니면 고자킥 날라 오던지.

 

 여튼, 좀 들어보라고. 나 심각하다. 사람 눈빛이 변했다니까? 몇 주 전에는 방에 들어가니까 형이 가만히 침대에 누워있더라고. 그래서 이것저것 빌려달라고 말하는데. 글쎄, 몸을 부들부들 떨며 눈물을 흘리는 거야. 막 입을 뻥긋거려. 저건 이상하다. 보자마자 딱 느꼈지. 눈빛이 그거였어. 살려달라고. 도움을 요청하는 그런 눈빛이었단 말이야. 세상에. 날 그렇게나 괴롭히던 형이? 나한테 그런 모습을? 절대 그럴 사람이 아냐.

 

 그래도 형인데 어떻게 모른 척해? 가까이 가서 얼굴을 살폈지. 솔직히 좀 쫄리더라. 막 형 같지가 않은 거야. 입에선 침을 질질 흘리지. 눈알을 막 치켜뜨고 날 노려보더니만. 또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애원의 눈길을 보내고.

 

 그날은 너무 무서워서 그냥 방을 나와 버렸어. 나도 사람인데. 아무리 형이 도와달라고 해도. 쉬운 게 아니더라. 상황이 앞뒤가 안 맞잖아? 나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고.

 

 다음날 새벽에 깨서 물 마시러 나왔거든? 근데 형이 떡 하니 거실에 앉아있는 거야. 불도 끄고. 미동도 없이. 불을 끄고 형을 봤는데. 근데 또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어제 무슨 일 있느냐는 듯 평온한 얼굴로 나를 보더라고. 물 마시는 척하며 등을 돌렸어. 도저히 어제 일을 물어볼 수가 없더라. 새끼야. 졸지 말고 들어봐. 술 좀 더 시킬까? 내가 살 테니까, 제발 집에 간다는 말 좀 하지 마. 너밖에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그래.

 

 아무튼, 그걸 보니 잠이 확 깨더라. 물을 마시는 둥 마는 둥 방으로 들어왔는데. 어제의 형의 모습과 지금 상황이 자꾸 겹치더라니까. 왜, 있잖아. 매치가 안 되는 거.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고. 내가 아까 말했지? 방에서 남자의 신음도 들렸다고.

 

 뭐? 게이냐고? 아놔, 내가 한 말을 똥구멍으로 들었냐? 그런 게 아니라니까! 누군가 있는 거라고. 형 몸 안에. 귀신같은 게 말이야. 그러니까 내가 다른 사람한테 말도 못하고, 너한테만 하는 거 아니냐? 그 신음. 그거 누군가 형 몸 안에서 내는 거라고.

 

 엑소시스트란 영화 알지? 거기에서 귀신 들린 소녀가 침대에 누워 막 남자 목소리를 내는 거. 형이 딱 그랬다니깐? 진짜야. 구라 아니라고! 형이 침대에 누워 괴로워하면서 눈물을 흘리는데. 딱 그거였어. 자기 좀 죽여 달라고. 더는 자기도 버틸 수 없다고. 그런데 어떻게 그러냐? 아무리 그래도 형을.

 

 눈물이 다 나더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슬퍼서.

 

 한 번은 밤늦도록 술을 마신 적 있거든. 걔 알지? 김수민 여자 친구의 남사친이라는 이종혁이. 그놈이랑 죽이 잘 맞아서 늦게까지 마시다가 집으로 가는 중이었거든. 근데 그 오밤중에 어두컴컴한 골목에 형이 누워있는 거야. 위에 누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림자 같은 게 있었어. 저건 뭐지?

 

 그래서 불렀더니만. 형이 벌떡 일어나서 앞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다시 날 보는데. 눈빛이 막 이상한 거야. 씩 웃는데 소름 끼치더라. 한밤중에 그것도 골목에서. 날 보고 웃는 게 말이 돼? 그때 예감했지. 아 이제 형이 형이 아니구나.

 

 근데 이건 시작에 불과했어. 이제껏 있었던 일은 영화로 치면 그냥 오프닝이었다고. 사건의 도입부.

 

 너, 사람 살 썩는 냄새 맡아본 적 있냐? 없지? 5일 전에는 형 방에서 막 이상한 냄새가 나는 거야. 처음엔 어디서 음식물 쓰레기가 썩나 했어.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 묘하게 달라. 막 삶은 계란을 오래 놔뒀을 때와 비슷한 냄새면서도 시큼해.

 

 형 방문을 살짝 열고 안을 들여다봤거든. 형이 침대에 누워있는 거야. 그것도 쥐죽은 듯 가만히. 보니까 형한테서 나는 거야. 어떻게. 사람 몸에서 그런 냄새가 날 수 있어? 그것도 살아있는 사람의 몸에서. 진짜 이건 문제가 있는 거잖아.

 

 검은 사제들 보면 그러더라. 구마 의식을 했던 신부가 골골 앓더니만 갑자기 몸에서 썩은 내가 나는 거. 딱 그거였다니깐? 이미 그 신부한테 귀신이 씌운 거지. 난 그게 영화에서나 있는 일인 줄 알았어.

 

 이제는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어. 안으로 뛰어들었지. 형 무슨 일 있느냐고. 소리쳤어. 형의 어깨를 흔들며 내가 도와주겠다고 울부짖었어. 근데 형의 반응이 이상한 거야. 시끄럽대. 나가라고 말하는데 그건 결코 형이 원하는 게 아니었어. 난 아직도 자신을 도와달라는 형의 그 눈빛을 기억하거든. 그러던 형이 이제는 인상을 찌푸리며 나가라는 게 말이 돼?

 

 네가 생각해도 이상하지? 맞아. 이미 형은 귀신한테 쓰였던 거야. 이대로 놔두면 귀신이 형의 몸 전체를 잠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몸에서 나는 썩은 내를 참아가며 열심히 주기도문을 외우고, 찬송가를 불렀어.

 

 형이 눈을 부릅뜨고는 날 쳐다보더라. 형 안에 있던 귀신이 날 노려보는 거였어. 반응을 보인 거잖아. 효과가 있다는 얘기거든.

 

 그래서 더 크게 찬송가를 불렀어. 그러자 형이 벌떡 일어나서 화를 내는데. 알겠더라. 지금 이 귀신은 위기감을 느낀 거야. 노래를 바꿔 가며 계속 부르니까 형이. 아니, 귀신이. 막 침대 위에서 발광하는 거야. 개새끼 어쩌고저쩌고하면서. 평소 우리 형은 욕 같은 거 절대 안 하거든? 귀신이 막 소리치는 거지. 동생 너 이 개새끼 하면서.

 

 무시하고 계속 찬송가를 부르니까 귀신의 얼굴이 막 일그러져. 폭발하기 일보 직전으로. 주먹을 꽉 쥐더라니까? 그 이상은 나도 쫄려서 더 못하겠더라. 아마 계속 있었으면 나도 귀신한테 홀렸을걸? 나온 게 잘 한 거지 뭐.

 

 그러고 3일 내내 누워있는데. 밖에서 지켜보며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더라. 나 귀신같은 거 안 믿었거든. 근데 지금 형한테서 일어나는 게, 딱 귀신이 몸에 들어온 현상이잖아. 엄마나 아빠한테는 말도 못 꺼냈어. 얼마나 걱정하실 거야. 백수도 서러운데 거기에다가 귀신까지 들러붙었다니. 에효.

 

 지루하냐? 고생했다. 얼마 안 남았어. 이제 클라이맥스니까. 3일이 지나고 나니까 형이 멀쩡한 얼굴로 방에서 나오는데 딱 알겠더라. 아, 이미 끝났구나. 이미 형이 아니었던 거야. 귀신이 완전히 형의 몸을 차지한 거지. 냄새도 안 나더라니까? 그 지독한 썩은 내가 사라졌다고? 듣고 있냐?

 

 눈 감고 있지 마라. 조는 거로 오해하잖냐? 여튼, 나오자마자 바로 냉장고로 가더라. 반찬을 있는 데로 다 꺼내더니만. 밥통도 통째로 들고 오는 거야. 그리고 밥통째로 허겁지겁 반찬을 집어 먹는데.

 

 너무 놀라서 지릴 뻔했다니까. 그거잖아, 그거. 곡성에서. 귀신 들린 여자애가 정신없이 밥 먹는 장면. 왜 귀신이 사람 몸을 차지하면 제일 먼저 느끼는 게 식욕이라잖아. 진짜 미친 듯이 먹는 거야. 그 많은 음식이 어떻게 사람 몸속에 다 들어가나 싶을 정도로. 하긴, 이제 사람이 아니니까. 허주니까. 황정민이 그랬잖아. 헛 귀신이라고.

 

 귀신이 냉장고 안의 반찬과 밥통의 밥을 다 먹어치우고선 또 먹을 거 없냐고 물어보는 거야. 그러고선 부엌 쪽을 쓱 쳐다보데? 칼 찾는 거잖아! 가족들 다 죽이려고!

 

 에라, 다 처먹어라. 그동안 모은 쿠폰으로 치킨을 시켜줬는데 한 마리를 뭐 몇 분도 안 되는 사이에 해치우더라고. 그러고선 입맛을 다시더니 다시 주위를 살펴. 그래. 네가 생각한 게 맞다니깐. 칼을 찾는 거야. 다 죽이려고.

 

 상황이 이쯤 되니까. 아무것도 눈에 안 보이더라. 주마등처럼 내 인생이 쫙 펼쳐지더라고. 진짜야, 그거. 일단 내일 한섭이 만나러 갈 돈으로 피자 1판을 시켜줬거든. 근데 10초 컷이야. 한입에 꿀꺽 삼키고는 날 보더니 다시 주위를 살피고 이 지랄.

 

 안 죽으려면 빨리 뭐라도 시켜줘야 했어. 진짜 눈물이 나오더라. 여친 생기면 펜션 놀러 가려고 모아놓은 돈으로 짜장면, 탕수육, 만두. 되는대로 시켜줬어. 그걸 또 꾸역꾸역 다 먹대?

 

 이제 좀 배가 찼는지 다시 방으로 기어들어 가는 거야. 다행이다 싶었지. 근데. 다음날 일어나보니 또 식탁에 앉아 밥통을 끌어안고 냉장고 반찬들을 축내는 거야. 엄마와 아빠는 그걸 보고도 별말씀 안 하셔. 왜 이렇게 많이 먹느냐고 핀잔만 좀 하다 나가셨거든.

 

 단둘이 남으니까 무서운 거야. 공포 영화의 전형적인 클리셰잖아. 귀신과 단둘이 남은 사람은 죽는 거. 근데, 그냥 도망쳤다가 나중에 엄마 아빠를 죽이면 어떡해?

 

 귀신이 텅 빈 밥통을 식탁 위에 쿵 내려놓고는, 주위를 살피는 거야. 침을 흘리고. 탐욕에 가득한 눈빛으로. 칼을 찾는 거야. 다행히도 전날에 칼을 다 치워놨어.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알아챘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칼 말고 다른 흉기를 찾더라니까? 진짜야. 분명히 사람 죽이려는 눈이었다고! 눈빛만 봐도 다 알아.

 

 얼른 먹을 걸 시켜줘야 했어. 근데 난 돈이 한 푼도 없었거든. 고민 끝에 예전에 형한테 받은 용돈으로 치킨 2마리에다 보쌈을 시켜줬어. 근데 10분도 안 돼서 다 처먹고 또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거야. 이쯤 되니 모든 걸 다 내려놓게 되더라. 예전에 형 금목걸이를 팔아 꼬불친 돈으로 빅맥 올인원 버거세트 3개와 족발, 돈가스를 시켜줬어. 속으로 빌었어. 제발 이제 그만하라고.

 

 근데 몇십 분 만에 그 많은 걸 다 먹고, 입맛을 다시며 주위를 살피는 거야. 하염없이 눈물만 나오더라. 엉엉 울면서 형 한정판 운동화를 팔아 챙겼던 돈으로 삼겹살과 감자탕, 닭발을 시켜줬어.

 

 귀신이 그걸 다 먹고는 그제야 만족한 듯 꺽 트림하더라. 그리고 날 보며 씩 웃는 거야. 당분간은 살려주겠다는 이야기지. 얼마나 소름 끼쳐? 그 후에 방으로 들어가 버리더라고. 벌써 이틀째 이 지경이란 말이야. 앞으로 얼마나 더 그럴지 모른다고! 씨발. 왜 자꾸 눈물이 나오지?

 

 그러니까 친구야. 내가 내기로 한 이 술값. 네가 좀 내면 안 되겠니? 제발, 부탁이다. 나 개그지야. 형, 아니 그 귀신한테 싹 털렸다고! 개털이란 말이야?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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