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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기
작가 : 진설우
작품등록일 : 20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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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작성일 : 16-04-04     조회 : 682     추천 : 1     분량 : 5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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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일단 4황자님이 거하시는 궁에 가 봅시다.”

 중앙의 그랜드체임버를 기점으로 남쪽으로는 병사들과 기사들이 훈련하는 병영이 위치했고 북쪽으로는 황제가 생활하는 황제 궁과 더불어 각 황비들과 황자들의 개인 궁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었다.

 4황자 궁은 그곳에서도 조금 깊숙이 들어가야 하는 외진 곳에 있었다. 황궁 안은 웬만한 도시 규모에 필적하는지라 하이드와 제롬은 마차를 타고 4황자 궁에 도착했다.

 막아서는 경비병들의 앞으로 하이드가 나섰다.

 “이분은 제롬 님입니다. 4황자님을 뵙기 위해 왔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안으로 뛰어 들어간 경비병은 곱게 늙었다는 표현이 딱 맞는 백발의 미중년인과 함께 나왔다.

 4황자궁의 집사장인 모리코리였다.

 하이드가 아는 인물인지 반갑게 인사했다.

 “집사장님,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게나, 하이드.”

 집사장 모리코리는 인사를 받아 주며 제롬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하이드가 급히 말했다.

 “이분은 드리미티 공의 마지막 제자 제롬 님입니다. 4황자님을 만나 뵈러 왔습니다.”

 “흐음, 황자께서는 지금 궁에 계시지 않네.”

 하이드가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허면,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 알 수 있습니까?”

 집사장 모리코리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분이 어디 목적지를 남겨두고 가셨던가.”

 “그렇군요.”

 하이드가 씁쓸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제롬을 돌아봤다. 그의 의중을 묻는 것이었다.

 제롬이 웃으며 모리코리에게 직접 물었다.

 “황자님이 언제쯤 궁을 나섰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내일 다시 찾아와도 되겠건만 딱히 할 일도 없는지라 직접 찾아나서 볼 생각이었다. 모리코리가 그런 제롬의 눈빛을 담담히 넘겨받았다.

 한동안 속내를 들추어 보기라도 하듯 제롬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던 모리코리의 입술이 열리었다.

 “어제 카포 왕국으로부터 진상품이 도착했는데, 아시오?”

 카포 왕국에서 보낸 사신단이 어제 도착한 것은 제롬도 주워 들어 알고 있었다. 제롬이 고개를 끄덕이자 모리코리가 말을 이었다.

 “빅레드 품종 몇 필이 들어왔는데 그중에 블러드스톰 한필이 섞여서 들어왔다오. 그걸 들으시곤 오늘 부랴부랴 궁을 나가셨소.”

 “히야, 블러드 스톰이라니.”

 하이드가 감탄성을 내질렀다. 빅레드는 카포 왕국에서 나는 유명한 말의 품종으로 이름 그대로 붉은 털을 가진 큰말이었다.

 덩치가 크고 힘이 좋아 속도도 뛰어나고 지구력도 좋아 군마로 쓰이는 품종이었다. 빅레드 중에서도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명마가 블러드 스톰이었다.

 “그럼 블러드스톰을 찾아가면 황자님을 뵐 수 있겠군요?”

 제롬의 물음에 모리코리가 어깨를 으쓱했다.

 “벌써 다른 곳으로 가셨을지는 모를 일이지요.”

 제롬이 인사를 한 후 하이드와 함께 다시 마차에 올랐다. 제롬이 궁금하여 하이드에게 물었다.

 “4황자님께서는 말에 관심이 많은가 보군요?”

 하이드도 4황자궁의 전속 하인은 아닌지라 자세히는 알지 못한다. 다만 흘려들은 이야기가 있어 답해 주었다.

 “사냥을 즐겨 하신다 하니 말에게도 관심이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냥을 즐겨 하는 4황자라.’

 한 달 전 황족들과의 저녁 만찬 자리에서 본 4황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와인을 홀짝이던 4황자의 얼굴은 무료하고 권태로워 보였다.

 제롬은 4황자가 말을 타고 달리며 사냥하는 모습이 도무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제국의 황자로서 제왕학은커녕 기초적인 학문마저 등한시한 채 사냥과 술에 빠져 있는 4황자의 모습은 분명히 손가락질받을 만했다.

 그가 황태자였다면 제국의 안위를 걱정할 정도의 일이겠으나 그 외에도 황위를 물려받을 황자들이 많으니 어쩌면 그렇게 사는 것도 복이리라.

 제롬은 4황자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황궁의 전용 마구간에 도착해 있었다.

 기사들의 연무장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지어진 마구간은 군마는 물론 마차를 끄는 말과 짐말 등 황궁에서 쓰는 모든 말을 관리하고 있었기에 그 규모가 대단했다.

 넓은 마장을 자유로이 뛰고 있는 몇 마리 말들을 훑어보던 제롬의 시선이 사람들이 한데 뭉쳐져 구경하듯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저리로 가 봅시다.”

 마차에서 내린 제롬과 하이드는 사람들 틈으로 섞여들어 한 마리 말을 볼 수 있었다.

 “저것이 블러드 스톰이군.”

 보통의 말보다도 덩치가 조금 큰 빅레드종인데 블러드스톰은 그보다도 조금 더 커 우람한 덩치를 자랑했다.

 검은빛에 거의 가까운 붉은 털을 가졌고 그와 대비되게 갈퀴는 흰빛을 띠고 있었다.

 히이이잉! 푸르륵.

 “히야, 그놈 성격 참.”

 “허어, 위험하이.”

 5명이나 되는 조련사들이 달려들어 블러드스톰을 잡아 고삐를 채우려는데 녀석의 성격이 워낙에 흉포해 접근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블러드스톰은 주인을 가려 아무나 등에 태우지 않는다고 하는데 보아하니 녀석은 주인이 아직 없는 것 같군요.”

 제롬의 말에 하이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만큼 성격이 고약하다면 예까지 끌고 오는 것도 애를 먹었겠군요.”

 제롬과 하이드의 말을 듣고 있던 옆의 남자가 콧방귀를 뀌더니 한껏 거드름을 피웠다.

 “흥! 나 산샤드가 아니었다면 블러드스톰이 이곳에 있는 것도 기적이지.”

 하이드가 깜짝 놀라 사내를 돌아봤다.

 “누구신지?”

 제롬도 의아한 빛으로 산샤드를 살폈다. 복색을 보아하니 황궁의 사람은 아닌 듯했다.

 ‘카포 왕국에서 왔군.’

 아마 진상품으로 쓰일 블러드스톰과 빅레드들을 끌고 온 조련사 같았다. 제롬이 말을 붙였다.

 “도와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요령이 없어서인지 손을 타서인지 블러드스톰은 황궁에서 꽤나 능력 있다고 평가받는 조련사 다섯이 달려들어도 고삐 하나 채우지 못하고 있었다.

 헌데 산샤드는 구경만 하며 냉소했다.

 “이미 놈의 인수인계가 끝났으니 나는 관여할 바가 없소. 설마 대제국인 세피온에서 저깟 말 한 마리 못 다룬다고 하면 그 무슨 창피겠소?”

 산샤드의 도발적인 말에 하이드의 표정이 흠칫 굳었다.

 좋은 말들이 많이 나기로 유명하고 말을 조련하고 다루는 기술 또한 뛰어나기로 소문이 난 카포 왕국이다.

 누가 보더라도 제국의 조련사보다는 카포 왕국의 조련사가 더 실력이 뛰어나리라. 그렇다고 그것을 인정할 수도 없었다.

 하이드의 표정이 잔뜩 굳어져 있는데 제롬이 웃으며 나섰다.

 “블러드스톰 같은 명마는 주인이 가려지면 오직 그 주인의 말만을 듣고 따른다고 하는데, 주인을 가리는 데는 조련사의 도움이 절대적이라고 들었습니다.”

 산샤드가 냉소했다.

 “흥, 어디서 들은 것은 많은가 보군. 하나 내가 맡은 임무는 블러드스톰 한 필과 빅레드 다섯 필을 제국에 잘 인도하여 전달하는 것뿐이었소.”

 산샤드의 고압적인 태도에 제롬이 어색히 웃으며 물러섰다. 그가 마구간의 책임자도 아닌 바에 더 이상 나서서 무얼 하겠는가.

 산샤드는 묘한 웃음을 흘리며 날뛰는 블러드스톰을 구경했다. 자신도 예까지 블러드스톰을 끌고 오며 얼마나 애를 먹었던가.

 ‘클클, 쌤통이군.’

 타는 것이야 오직 주인만을 태운다지만 돌보는 것만이라면 주인 외에도 가능했다.

 하나 자신과 같이 경험이 많고 숙련된 조련사에게도 어려운 일인지라, 블러드스톰을 처음 보는 제국의 조련사들이라면 며칠이 걸려도 고삐 하나 채우지 못할 것이다.

 ‘흥, 제국 놈들이 그렇지.’

 산샤드는 고생하는 제국의 조련사들을 보며 자신의 기술적 우위에 우월감과 함께 쾌감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제롬이 블러드스톰에게서 시선을 거두고는 4황자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는데 저 멀리서 기사 제복 차림의 사내가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플릭스 기사단이군.’

 마리아 황비와 그의 아들인 4황자 다비드의 호위를 맡은 30명 규모의 기사단의 제복이었다.

 기사가 급히 말에서 내려 군중 틈의 어느 한 사내에게 다가갔다.

 가죽 튜닉을 챙겨 입은 경장 차림의 사내는 청년이라 하기에는 아직 풋내가 난다고 할까. 청년을 보는 제롬의 눈에 놀란 빛이 떠올랐다.

 ‘4황자님이시군.’

 경장 차림의 청년은 이제 갓 성인이 된 4황자 다비드였다. 다비드는 호위 기사가 가져온 양피지를 풀어 읽어 보고는 얼굴 한가득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아바마마께서 윤허하셨구나.”

 다비드는 양피지를 들고 마구간의 책임자 도르도 남작에게 다가갔다.

 “블러드스톰을 내게 내리신다는 아바마마의 명이오.”

 양피지를 받아 읽어 본 도르도 남작은 난색을 표했다.

 저토록 귀한 명마를 선뜻 한량과 같은 4황자에게 내려 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자신은 블러드스톰을 길들여 2황자인 피에르 황자에게 진상할 생각이었다.

 블러드스톰의 가치는 한량인 4황자의 손에 넘어가 사냥말로 쓰이기엔 과분하다.

 마땅히 군마로 길들여져 기사인 2황자에게 주어져야 하는 것이다. 하나 황제의 명령서까지 내려온 마당에 그가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끄응, 알겠습니다. 이제 블러드스톰은 4황자님의 소유입니다.”

 도르도 남작은 희대의 명마가 한낱 사냥말로 쓰일 처지에 놓이자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렇다고 겉으로 표를 낼 수는 없었다.

 “블러드스톰은 주인을 정하기 전까지는 그 성정이 매우 난폭하여 승마하기 어렵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도르도 남작이 황자를 향해 고개를 숙인 후 산샤드를 향해 갔다.

 사신단의 책임자로 온 산샤드의 태도가 하도 고압적인지라 그의 도움 없이 직접 부딪혀 가며 천천히 블러드스톰을 연구하며 길들일 생각이었는데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큭, 저놈에게 머리를 숙여야 한다니.’

 도르도 남작이 낭패한 표정으로 산샤드를 향해 가는데 뒤에서 놀란 외침이 들려왔다.

 “화, 황자님!”

 “응?”

 뒤돌아본 도르도 남작이 너무 놀라 눈이 툭 튀어나왔다.

 언제 간 것인지 황자가 블러드스톰의 코앞에 가 있었다. 조련사들이 그런 황자를 보며 쩔쩔맸다.

 “저, 저 황자님, 위험합니다!”

 도르도 남작도 화들짝 놀라 만류했으나 다비드는 듣는 둥 마는 둥했다. 제롬이 흥미로운 눈길로 다비드의 행적을 좇았다.

 제국의 황자가 저토록 무모하게 위험을 자초하는 것만 해도 경악할 일이지만 제롬은 정작 다른 것에 흥미를 나타내고 있었다.

 ‘눈빛이 다르다.’

 사내는 본디 자기가 좋아하는 일 앞에서는 그 눈빛부터가 다르다 했던가.

 저녁 만찬에서의 무료하기 그지없는 4황자의 얼굴이 아니었다.

 기대감이 잔뜩 어린 눈은 열정으로 빛나고 있었다.

 “비키거라.”

 “화, 황자님.”

 다비드가 블러드스톰을 둘러싼 조련사들을 물렸다. 우람한 덩치의 블러드스톰을 올려다보는 다비드의 눈빛은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명마라는 빅레드 품종에서도 희귀한 명마 중의 명마라. 과연 대단하구나.”

 명성에 걸맞은 덩치와 위용이었다. 흉흉한 눈빛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심장을 쪼그라들게 하는 것이 있어 그 기개가 남달랐다.

 말 중의 왕, 희대의 명마다웠다.

 저 등에 타고 들판을, 산을 내달리면 그 기분이 어떠할까.

 그의 입매가 쭉 찢어지며 웃었다.

 “너는 이제 내 것이다.”

 히이이잉!

 다비드의 말을 알아들었음인지 블러드스톰이 콧김을 내뿜었다. 그러더니 돌연 앞발을 치켜들며 위험천만한 장면을 연출했다.

 저 커다란 말발굽에 찍히면 힘 좋은 장정이라 해도 무사치 못하리라.

 “저, 저런!”

 “어서 피하십시오!”

 구경하는 사람들이 모두들 놀라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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