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판타지/SF
패왕기
작가 : 진설우
작품등록일 : 20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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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작성일 : 16-04-04     조회 : 612     추천 : 0     분량 : 5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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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에 뭐가 있다고?’

 제롬은 그들의 반응에 치솟는 궁금증을 참기 어려웠다. 4황자에 대해 알면 알수록 놀람의 연속이었다. 아직도 무언가 숨기는 것이 있다는 말인가.

 솔테르 강의 풍부한 수량덕분인지 알레고리 숲은 그 규모가 수도인근에서는 제일이었는데 숲의 남쪽에 불쑥 솟은 작은 바위산의 초입까지 나무군락이 이어져 있었다.

 본디 몬스터들이 터전으로 삼던 이 바위산은 7대 황제가 수도를 이곳으로 옮기며 몇 차례에 거친 토벌이 진행되어 이제는 몬스터의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 규모가 큰 산도 아니고 이렇다 할 생물이 살지 않으니 자연 동물들도 찾지 않아 사냥꾼들의 발길마저 끊긴 버려진 산이었다.

 단지 알레고리 숲에 인접해 붙어 있다하여 알레고리 산으로 불렸다. 바위산이라고는 하나 온전히 바위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닌지라 듬성듬성 나무와 흙길이 있어 4필의 말이 산길을 따라 중턱까지 올랐다.

 앞장서는 다비드를 따라 꾸불꾸불한 길을 몇 차례 돌아가니 커다란 바위에 가려진 제법 큰 공터가 나왔다.

 의도적으로 산에 올라 찾지 않으면 산 아래에서는 절대 보일 수 없는 교묘한 위치였다.

 “허어…….”

 제롬이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탄성을 내뱉었다. 공터에는 여기저기 물건들이 나뒹굴고 있었는데 검술을 연마할 때 쓰는 허수아비부터 활 과녁도 있었다.

 ‘4황자는 이곳에서 눈을 피해 무술을 연마하고 있었구나!’

 제롬은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4황자는 철저히 외부의 눈을 속이고 홀로 단련하고 있었다. 그 호위 기사들의 반응을 보아하니 그들은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아니, 그들로부터 검술을 배웠으리라. 한편에는 오두막과 마사가 자리하고 있었으니 사냥을 핑계로 황성을 빠져나와 이곳에서 며칠을 머물렀으리라.

 ‘한데 왜 모두 부서져 있지?’

 제롬이 궁금증에 4황자와 기사들의 표정을 살폈다. 그들 또한 지금의 상황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 듯했다.

 “이럴 수가…….”

 아포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그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마법을 익힐 수 없게 된 4황자가 관심을 가진 것은 검술이었다.

 익혀 보았자 쓸데가 있겠냐만은 몸 안의 힘이 다 빠질 때까지 허공에 검을 휘두르고 나면 오만 잡생각이 없어져 좋았다.

 점차 그 매력에 빠져들어 아포에게 몰래 검술을 배우며 방에서 익혔으나 점점 성장하며 좁은 방 안에서의 수련은 한계가 있었다.

 궁여지책으로 마련한 곳이 이곳이다.

 다비드의 호위 책임자인 아포와 그 휘하에 가장 믿을 만한 기사 파울로, 모스, 에레즈를 제하면 아무도 모르는 곳이었다.

 해서 제롬과 신디를 대동한 채 이곳으로 오는 것을 꺼리지 않았던가.

 당황해하는 기사들과 달리 다비드는 그저 입술을 꾹 다물고 찬찬히 공터를 살피고 있었다. 아포는 참담한 심정이 되었다.

 ‘누가 있어 이러는가.’

 4황자의 재능은 뛰어나다. 흥미를 가지면 곧 재능을 보였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성과를 나타냈다. 그의 배다른 형제들과 그들의 어미인 황비들은 그런 4황자를 견제했다. 아니, 눈엣가시로 여겼다. 4황자의지지 기반이야 없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그 혼자 잘나 황제가 되기는 어려운 일이다. 있으나 없으나 크게 상관은 없으나 없었으면 하는…….

 그저 좋았고 배우고 익힘을 즐겼다. 학문을 멀리했으며 마법을 포기했다. 어찌 알았는지 몰래 숨어서 수련하던 검술마저 들통나 버렸다.

 다비드의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본 아포는 그 마음이 전해지는 듯해 가슴이 떨렸다. 지금 4황자의 참담한 심경을 어찌 헤아릴 수 있단 말인가.

 ‘저분께는 황자로 태어난 것이 화로구나!’

 여태 6년을 다비드에게 검술을 가르쳤던 아포다. 진정 즐기며 익히고 노력하는 다비드의 모습은 순수한 것이었다.

 무언가를 행하려 하는 복수의 칼도, 야망의 칼도 아니었다. 그저 검술 자체가 좋아, 모든 세상사를 잊게 해 주는 검술이 좋아 익혔을 뿐이다.

 그때 조용한 틈을 타 오두막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숨기고 있던 사내 하나가 품에서 꺼낸 무언가를 조작하고 있었다.

 “에레즈!”

 아포의 부름에 기사 에레즈가 반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하나 사내의 손이 더 빨랐다. 작은 원통형의 꽁지에서 불이 붙더니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간발의 차이로 도착한 에레즈의 주먹이 사내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커헉!”

 피유우웅, 퍼퍼펑!

 하나 이미 사내가 쏘아올린 폭죽은 대기를 울리고 있었다.

 

 차갑게 가라앉은 다비드의 얼굴은 더없이 어두워 보였다.

 ‘무슨 신호일까?’

 자신과 호위 기사들밖에 모르는 장소다. 의도적으로 이곳을 파괴한 뒤 홀로 남겨진 사내가 남긴 신호는 어떠한 의미일까?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이 이곳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일 것이다.

 ‘누구에게?’

 아마 레고르 마을을 점령한 도적패들일 것이다. 간 크게도 수도 인근의 마을을 약탈했으면 빨리 재물을 챙겨 달아날 것이지 버젓이 마을을 점령하고 있는 것은 분명 만용이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사내가 쏘아올린 폭죽은 그들을 향해서일 것이다. 단순히 레고르 마을을 약탈하기 위한 도적패의 소행은 아니다.

 도적으로 위장한 사라반 용병대는 분명 임무를 받고 움직이고 있다. 그 임무가 무엇일까?

 ‘나인가?’

 매번 사냥을 나설 때면 레고르 마을에 들렀다. 자신 외의 형제를 지독히도 증오하고 경계하는 그들이라면 분명 고깝고 의심스럽게 보였으리라.

 ‘큭.’

 우스웠다.

 같은 아버지 밑에서 났건만 어머니가 다르단 이유로 이리도 미워할 수 있단 말인가.

 몸속을 흐르는 황가의 피로 인해 형제애 같은 건 애초에 기대할 수 없었다. 의심하고 경계하며 밟고 올라서야 할 경쟁자이다.

 모두들 그렇게 들어왔고 그렇게 자라 왔다. 애초에 형제애를 나눌 기회 같은 것은 없었다. 세뇌와 교육, 무거운 부담감뿐.

 반드시 황태자가 되어 다음 대 황위를 이어야 한다는 주위의 기대.

 차일피일 황태자 즉위를 미루는 황제의 우유부단함은 점점 그들을 지치게 했다. 그리고 기대하게 했다.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선의의 경쟁은 점차 생존으로 바뀌어 갔다.

 ‘이기지 못하면 죽는다.’

 모두가 자신을 뽐내며 우월함을 드러낼 때 다비드는 감추는 법부터 배웠다. 자신은 관계없는 일이었다. 어머니도 바라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서 관심 두지 않았다.

 ‘부질없는가…….’

 스스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까지 그러지는 않았다. 황가의 피를 이어받은 이상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누구일까?’

 4황자의 침중하고 어두운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누구 하나 쉬이 입을 열지 못했다.

 그때 에레즈에 의해 기절했던 사내가 깨어났다.

 “으윽.”

 머리를 휘이 흔들던 사내는 기둥에 꽁꽁 묶여 있는 처지를 보고는 당황한 듯 바동거렸다.

 “너는 누구냐?”

 다비드의 물음에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앳된 청년 외에도 서너 명의 사내들이 더 있었다. 모두들 검을 차고 있었다.

 자신이 어떻게 기절했는지가 떠오른 사내의 얼굴에 두려움과 함께 다급함이 떠올랐다.

 “사, 살려 주시오!”

 “폭죽의 의미는 무엇이냐?”

 사내는 쉬이 입을 열었다.

 “모, 모르오! 그냥 사람이 나타나면 쏘라는 명만 받았소. 정말이오!”

 조무래기다. 어차피 목적이라 봐야 그들이 이곳에 도착함을 알리는 것이다. 다비드가 알고 싶은 것은 그 신호를 받은 자들의 다음 행동이다.

 “너도 사라반 용병대겠지?”

 흠칫.

 “아, 아니요! 난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오.”

 뻔한 거짓말이다. 아무래도 용병대의 조무래기를 연락용으로 심어 놓은 것 같았다.

 레고르 마을에 있는 사라반 용병대의 본대는 어찌할 것인가? 굳이 다비드가 입을 열지 않아도 일행들 모두 다음 행동을 예측하는 듯했다.

 “아포, 사라반 용병대의 전력이 어느 정도지?”

 아포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대장인 사라반이 A급 용병으로 익스퍼트 중급에 이르는 실력이라 합니다. 그 아래 부대장 넷을 두고 있는데 모두 익스퍼트 초급 정도의 실력이라 들었습니다. 제국에서도 꽤 유명한 용병대입니다.”

 익스퍼트라면 기사의 작위를 받을 수 있는 실력이다. 사라반 용병대의 실력이 의외로 대단한지라 제롬이 흠칫 놀랐다.

 호위 기사인 아포와 에레즈, 모스야 모두 기사의 신분이니 익스퍼트 초급의 경지는 될 것이다. 아포의 실력이야 그 이상이겠지만 아직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에레즈와 모스는 초급 이상의 실력을 기대하긴 힘들어 보였다.

 그들이 신호를 보고 여기로 몰려온다면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 아닌가?

 ‘어서 도망가야…….’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하겠으나 황자에게 도망가자 먼저 말을 걸 수는 없었다. 그저 결정을 기다릴 뿐이다.

 제롬은 스승에게 거두어지기 전에는 항상 기근에 죽음을 가까이하고 살았지만 그 후는 학문에 매진하며 평온하게 살았다.

 새삼스레 다시 죽을 위기에 놓이자 살고 죽는 것이 하늘의 뜻이라는 그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어찌하시려오, 4황자.’

 사라반 용병대의 전력을 들은 다비드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

 “자신은?”

 아포가 슬쩍 제롬의 눈치를 살폈다. 비밀 수련 장소까지 데려온 마당에 더 이상 무엇을 숨기겠는가?

 “사라반은 제 검을 다섯 번 받기 전에 죽을 것이옵니다.”

 아포가 자신 있게 말하자 제롬의 표정이 기이하게 변했다.

 ‘오만인가, 자신감인가.’

 하나 그 말을 듣는 다비드는 추호의 의심도 없는지 그저 고개를 담담히 끄덕였다.

 “기다릴 것 없다. 가자.”

 호위 기사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에레즈가 기둥에 묶인 사내를 가리켰다.

 “어찌하오리까?”

 그 말에 사내는 두려움에 턱을 덜덜 떨었다.

 “졸개가 두목을 따른 것이 무슨 죄겠는가? 공연히 피를 볼 필요야 없다.”

 써니에 올라탄 다비드가 기둥에 묶인 사내를 차갑게 노려봤다.

 “사라반 용병대는 사라질 것이다. 너는 이제부터 갱생하여 살도록 하라.”

 다비드의 말에 사내가 몸이 묶여 숙여지지도 않으면서 연신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리!”

 “가자.”

 신디를 다시 자신의 앞에 태운 다비드를 선두로 호위 기사들과 제롬이 뒤따랐다.

 

 ***

 

 염려와 달리 산을 내려올 때까지 사라반 용병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무사히 알레고리 숲으로 접어든 다비드는 신디를 말에서 내려 주고는 제롬을 보았다.

 “이 아이를 데리고 가시오. 파울로가 경비대를 차출해 달려오고 있을 것이니 중간에 합류하게 되겠지.”

 다비드의 말에 제롬이 깜짝 놀랐다. 산을 내려올 때 혹시 적들이 매복하고 있을까 걱정했지만 그러한 징후는 없었다.

 이곳까지 무사히 내려왔으면 당연히 경비대가 올 때까지 기다려 함께 들이쳐야 할 것이 아닌가? 아포가 사라반을 상대할 자신이 있다지만 그 아래 부대장 넷은 어찌할 것이고 200이나 되는 일반 대원들은 어찌 감당할 것인가.

 “공자님은 어찌하시렵니까?”

 모두들 입을 맞춘 듯 공자라 불렀기에 제롬도 그리 불렀다.

 “나와 기사들은 레고르 마을로 간다.”

 다비드의 확고한 말에 그 안색을 살폈다. 꾹 다문 입술이 여간 고집스럽게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다비드가 한다고 해 놓고 안 하는 일들이 없었다.

 아포를 비롯한 호위 기사들도 순순히 따를 뿐이다. 호위가 아닌 장군을 모시는 종군기사들 같았다. 철저한 상명하복이다.

 ‘고집이 대단하든지, 이들의 충성심이 대단하든지.’

 어찌 되었든 다비드와 기사들은 자신이 말려도 레고르 마을로 갈 것이다.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제롬의 말에 아포가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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