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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기
작가 : 진설우
작품등록일 : 20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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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작성일 : 16-04-04     조회 : 651     추천 : 0     분량 : 5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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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비드는 제롬이 포르미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자 홀로 도서관을 찾았다. 황실 도서관답게 제국은 물론 대륙 전체의 지도와 지명을 나타낸 지리서가 수백 권에 달했다.

 사서를 시킬 수도 있겠으나 다비드는 직접 포르미엘이라는 지명을 찾아 나섰다. 다비드가 도서관에 틀어박힌 지 2주가 지났다.

 그간 제롬은 황제와의 만남이 잦아졌으며 하루에 한 번씩은 다비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갔다. 오늘도 어김없이 제롬은 도서관에 틀어박힌 다비드를 찾아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떠났다.

 제롬이 나오자마자 사서 중 하나가 조용히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사서가 향한 곳은 1황자인 포시드의 궁이었다.

 1황자궁의 집사장이 나와 주위를 두리번거려 살핀 후에 사서를 궁 안으로 들였다. 사서가 안내된 방에는 2명의 사람이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제국의 현 재상인 페틸 공작과 그의 외손자이자 제국의 제 1황제인 포시드 황자였다.

 사서는 자신의 등장에 둘의 시선을 동시에 받자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숙였다.

 페틸 공작의 입술이 열렸다.

 “그래, 알아보라 한 것은 어찌 되었느냐?”

 사서가 떠듬거리며 말문을 열었다.

 “네에, 4황자님께서는 처음 열흘은 지리서를 살피시다가 이제는 역사서를 보고 계십니다.”

 페틸 공작의 눈매가 좁아졌다.

 “지리서와 역사서라……. 눈에 띄는 다른 것은 없더냐?”

 “네에, 매일같이 제롬이란 자가 찾아오는 것 외에는…….”

 “제롬이라…….”

 한참을 고민하는 것 같던 페틸이 사서를 향해 손을 훠이 저었다.

 “그만 나가 보아라. 도서관장에게 유능한 사서가 있다고 일러 두마.”

 “네, 전하.”

 사서가 희희낙락하여 인사하고는 물러나자 페틸 공작의 안색이 심각해지며 고민에 잠겼다. 페틸 공작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사내가 웃으며 대꾸했다.

 “외숙께서는 왜 그리도 그놈을 신경 쓰시는지요?”

 아무런 힘도 능력도 없다. 자신은 관심도 없는 4황자를 페틸 공작은 어려서부터 굉장히 신경을 쓰고 있었다.

 수심에 차 있던 페틸 공작이 고개를 들어 포시드를 보았다. 자신의 외손자이자 황제의 맏아들이다. 그리고 자신의 야망을 실현시켜 줄 아이다.

 페틸 공작의 얼굴에 더없이 인자한 웃음이 맺혔다.

 “제롬이란 자를 아십니까?”

 포시드가 가만히 생각해 보더니 답했다.

 “드리미티 공의 마지막 제자라는 자가 아니오? 나도 몇 번 만나 본 적이 있던 자이지요. 현자의 제자답게 그 학식이 대단하더이다.”

 포시드는 페틸 공작을 위시한 유능한 학자들로부터 어려서부터 체계적인 정치학을 배웠다. 황후가 태기가 없으니 다음 대 황제를 의미하는 황태자의 자리는 당연히 포시드의 것인지라 어려서부터 그리 배웠다.

 하나 운명은 알 수 없어 황후가 뒤늦게 사내아이를 잉태하여 낳으니 포시드는 정통성에 있어 한발 뒤처지는 처지였다.

 “그 제롬이란 자가 요즘 폐하와의 회동이 잦다는 것은 아십니까?”

 포시드가 생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겉모습만 본다면야 사람 좋고 풍채 있는 학자의 모습이나 포시드 속에 담긴 야망 또한 대단했다. 그도 황제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서는 항상 눈과 귀를 열어 두고 있었다.

 “폐하께서 제롬이란 자를 아낀다 들었습니다.”

 페틸 공작이 맞장구쳤다.

 “그자가 매일같이 4황자를 만나고 있소이다. 황자께서는 그 이유를 아십니까?”

 페틸 공작의 물음에 포시드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시며 안색이 살짝 굳었으나 곧 풀어졌다.

 “폐하의 총애를 받는 학자 하나가 다비드와 친하게 지낸다 하여 내가 걱정할 정도입니까? 외숙께서는 다비드에 관해서는 너무 예민하십니다.”

 “으음.”

 페틸 공작이 달싹이던 입술을 끝내 닫았다. 포시드의 말이 사실이었다. 페틸은 지나치게 다비드를 경계하는 경향이 있었다.

 객관적으로만 보자면 다비드는 전혀 신경 쓸 계제가 못 되었다. 하나, 페틸 공작의 감은 계속 다비드를 경계하라 이르고 있었다.

 “외숙, 외숙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 녀석이 천재로 불리던 때는 벌써 7년 전입니다. 지금은 그저 밥만 축내는 한량과 다름없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지요.”

 포시드가 차게 웃었다.

 “지금에 와서 놈이 무엇을 계획하든 한낱 신기루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것이야 없지 않습니까?”

 페틸은 한번 관심을 둔 주제에 대해서는 집요하다.

 “괜히 건드렸다가 두 눈을 시뻘겋게 뜨고 있는 그놈들에게 책잡힐 수 있지 않습니까? 다비드 녀석이 아무리 날고뛰어도 크게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알겠소이다, 황자.”

 포시드의 웃었다. 겉으로야 외숙이 수긍했지만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임을 안다. 괜스레 건드려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다. 황태자 후보로 유력한 나머지 두 황자 피에르와 러시드에게 약점을 잡히는 것이다.

 하나 외숙의 성격상 가만있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티내지 않게 행동하는 데에는 외숙의 능력을 믿을 만했다.

 둘은 한참 동안 담소를 나누다 헤어졌다. 포시드의 궁을 나와 마차에 오른 페틸은 마차의 옆자리에 타고 있는 자신의 보좌관 세츠 남작에게 지시했다.

 “일전에 일을 지시했던 그 무리에 다시 일을 맡길 수 있겠나?”

 페틸 공작이 말하는 무리를 떠올린 세츠 남작이 히죽 웃었다.

 “녀석들은 이미 수족이나 다름없습니다.”

 “조만간 맡길 일이 있으니 대기하라 이르게.”

 “네, 전하.”

 페틸 공작은 조금이라도 신경 쓰이는 일이 있으면 직접 손을 써 놓기 전에는 안심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저 속편한 포시드 황자를 대신해 더럽고 추잡한 일은 자신이 하면 되는 것이다.

 천재적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4황자 다비드에 대한 황제의 기대는 남달랐다.

 페틸은 오래도록 황제를 보필해 온 신하답게 즉시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독초는 자라기 전에 싹을 잘라야 하는 법.’

 알게 모르게 다비드에게 위협을 가했던 페틸 공작이었다. 다비드를 고깝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만은 아닌 듯 불후의 사고를 당해 마법 재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것에 대한 충격이 컸는지 다비드는 날이 갈수록 총기를 잃어 가니 페틸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러던 것이 최근 조심스레 한번 건드려 보았다.

 ‘검을 연마하다니.’

 사냥과 승마에 심취해 돌아다니는 줄 알았던 다비드가 몰래 검술을 수련하고 있던 것이었다.

 ‘검을 놓고 책을 본다라.’

 지리서와 역사서.

 무엇을 공부하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찝찝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특히나 제롬이란 자가 황제와 자주 만나고 또한 4황자와도 자주 만나는 것이 가장 신경이 쓰였다.

 ‘기회만 생긴다면…….’

 1황자파가 아닌 다른 곳에서 다비드를 해치운다면 일거양득이다. 눈엣가시 같은 다비드도 없어지고 또 자신은 그것을 빌미로 그들을 압박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쩌면 포시드 황자의 말대로 내버려 두어도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을 수 있다. 하나 페틸 공작은 다비드를 떠올릴 때면 불편해지는 마음이 들었다.

 재상까지 오른 자신의 정치적 감을 믿었고 철학을 믿었다. 조그만 위험 요소도 남겨두지 않는 것은 페틸 공작이 재상에까지 오를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

 

 “찾았다!”

 다비드의 얼굴에 더없이 환한 미소가 내걸렸다. 지리서를 모두 뒤져보아도 찾지 못한 지명이다. 혹, 놓치고 보지 못했나싶어 다시 꼼꼼히 지리서를 보았지만 찾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역사서에서 포르미엘이라는 이름을 찾아낸 것이다.

 “신의 구원이라.”

 천 년 전 있었던 고대의 이야기였다. 지옥에서 풀려난 마룡들이 날뛰어 여러 사람들을 현혹하고 죽이니 신들이 나서서 용들을 물리쳤다는 이야기다.

 ‘용의 선택자.’

 다비드는 손등을 바라보았다. 포르미엘은 지명이 아니었다. 여러 악룡들 중 가장 강력하고 포악한 두 마리의 악룡 중 하나의 이름이었다.

 ‘마룡 포르미엘이라.’

 포르미엘은 프로방 평원에서 신들과 인간들의 공격으로 최후를 맞이했다고 쓰여 있었다. 프로방 평원에 관한 지명을 들추어 보았다.

 천 년 전 프로방 평원이라 불렸던 곳은 지금의 크리넥스 백작령이었다. 즉시 지도와 지리서를 꺼내 들고 크리넥스 백작령의 정보를 모았다.

 “사막이라니.”

 크리넥스 백작령의 크기는 웬만한 후작령의 크기와 비슷했는데 이는 영지의 크기만을 보았을 때 이야기이고 절반 이상이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영지의 동쪽에 지어진 크리넥스 백작성 주위에 영지민들이 기거했고 서쪽의 절반이 넘는 땅덩어리는 모두 사막이었다.

 사막을 동서로 통과하자면 성인 남성의 걸음으로 일주일이 걸렸고 남북으로 통과하자면 보름이 걸렸다.

 그리 큰 사막은 아닌지라 모험가들이나 사냥꾼들이 종종 부산물이나 고대의 유물을 찾으러 들어서기도 하는 곳이었다.

 “수도에서 말을 타고 이십여 일.”

 크리넥스 백작령은 수도에서 동남부로 20여 일을 가야 한다.

 1황자파의 요주 인물인 페틸 공작의 영지가 동북부에 위치해 있는데 그 근접지의 동부 대부분의 영지가 페틸 공작을 주축으로 하는 1황자파였다.

 크리넥스 백작령은 위치상으론 그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는데 딱히 어느 황자를 지지하지는 않았다.

 수도에 저택도 없는 것이 중앙 정계에 진출할 관심도 없이 영지를 운영하며 생활하는 지방 영주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 황제의 근신 명령이 떨어진 터라 다비드가 궁 밖을 출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찌한다?”

 전에 같았으면 사냥을 나선다 하고는 몰래 갔다 오면 될 것이나 한번 위험에 처하고는 황제의 엄명이 떨어졌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일단은 좀 더 알아봐야겠군.”

 다비드는 천 년 전 신들과 마룡들의 대결에 관한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자 신과 용의 전쟁에 대하여 대략적인 개념이 잡히기 시작했다.

 특히 마룡 포르미엘에 관해서는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는데 대부분의 서적에서 포르미엘을 포악하고 인간 세상을 혼란에 빠트린 악룡으로 묘사했는데 소수지만 일부 서적에서는 신에 버금가는 존재로 묘사하고 있었다.

 몇몇 지방에서는 토속신앙과 같이 용들을 신들과 같이 떠받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크리넥스 사막에 가 봐야 해.”

 노파의 말이 생생했다. 포르미엘로 가 보라고 하였다. 그것이 지명이 아닌 다음에야 살아 있지도 않은 포르미엘을 어떻게 찾아갈 것인가.

 포르미엘이 최후를 맞이했다는 프로방 평원, 지금의 크리넥스 사막에 가 보라는 것은 아닐까? 그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다비드가 고심하는데 마침 제롬이 도서관으로 들어왔다.

 “제롬이 4황자 전하를 뵙습니다.”

 “어서 오시게.”

 매일같이 제롬이 찾아오긴 했지만 딱히 다비드와 같이 무언가를 하지는 않았다. 황궁에서의 마땅한 직책이 없는 제롬은 평소 도서관 다니기를 자주 하였고 서로 책을 보거나 자료를 찾다가 가끔 대화를 주고받는 정도였다.

 다비드가 벌써 3주 가까이 도서관에서 책을 보며 포르미엘에 관하여 찾고 있음을 알고 있던 제롬이다. 일주일 전 처음 포르미엘에 관하여 발견하고는 꽤 많은 자료를 모은 다비드였다.

 한데 다비드의 얼굴에 어린 수심을 보고는 제롬이 물었다.

 “고민이라도 있으십니까?”

 “흠.”

 다비드는 제롬에게 말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제롬과 만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이미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눈 끝에 제롬은 믿을 만한 사람이라 판단을 내린 다비드다.

 이미 알게 모르게 황제와 다비드의 사이에 징검다리 역할을 해내고 있지 않은가. 제롬이라면 지금의 문제를 도와주는 최고의 아군일지도 모른다.

 “크리넥스 백작령에 다녀와야겠어.”

 “네에? 갑자기 무엇 하러…….”

 제롬은 질문을 하다 말고 책상 위에 널브러진 서책들과 지도를 보았다. 지난 3주간 다비드가 찾던 것이 크리넥스 백작령에 있는 모양이었다.

 “폐하께서 허락하시겠습니까?”

 이미 황궁 밖의 출입을 삼가도록 명받은 다비드가 아닌가. 다비드가 제롬의 손을 덥석 잡았다.

 “도와주게.”

 “으음.”

 돌연한 다비드의 행동에 제롬은 옅게 신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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