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싸늘한 4월의 아침. 아침 이라기보다는‘새벽’이라는 단어가 어울렸다.
거대한 운동장을 지낸 ‘진’아카데미의 육상 트랙에 하나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아침 이슬에 나뭇잎에 촉촉이 젖어있고, 해 역시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아직 사람이 다니기에는 이른감이 없지 않아 있는 이 시간에 어깨를 들썩이며 트랙을 열심히 달리고 있는 하얀 체육복 차림의 하루노 사쿠라.
매일 아침 6시. 사쿠라는 자신의 신체 단련을 위해 400미터 운동장을 10바퀴 씩 뛴다.
자신의 랭크인 A랭크와‘천재’라는 명성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 남자’를 위해서 이기도하다.
그리고 본격적인 성장을 위해서 오늘부터는 좀 더 부가적인 훈련을 하기로 하였다.
단순한 조깅이 아닌 한 바퀴를 돌 때마다 전력 질주로 다음의 한 바퀴를 도는 방침이었다. 닌자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심폐기능 단련을 위해서.
사쿠라가 막 조깅을 다시 시작하려고 하는데, 또 다른 그림자가 운동장에 드리워졌다.
사쿠라는 알 수 있었다. 그 그림자가 누구의 것인지. 사쿠라와는 정 반대로 검은색의 체육복에 깁스를 한 왼손. 검은 머리카락에 날카로운 턱선. 검은 체육복은 남성이라는 것을 알렸다.
그는 조금 놀랐다는 듯이 사쿠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성월화였다.
“오오오! 너는!”
곧 입을 연 그는 오버스러운 말투로 사쿠라를 불렀다.
“여긴 무슨 일이야?”
스탠드에서 폴짝 뛰어 내려온 월화는 사쿠라에게 곧장 달렸다. 왼손을 자유로 움직일 수 없어 달리는 것이 불편해 보였다.
“보면 몰라? 훈련 중.”
“쳇, 어제는 날 잘도 엿 먹였겠다!”
“응? 뭐가?”
“감히 사람의 호의를 거절해? 기껏 멋지게 존을 내밀었는데 그냥 무시해버리고.”
“아아~ 그건 됐고.”
그것 보다 의외였다. 사쿠라는 월화의 옷차림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체육복으로 완전 무장을 한걸 보면 단순히 산책이나 잠을 설쳐서 나온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벌점을 받아 하는 아침 청소는 아직 시간이 1시간이나 남아있다.
그렇다면 월화가 이곳에 온 이유는 무엇인가? 사쿠라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보았다.
“그러는 너는? 여긴 왜 온거야?”
월화가 콧방귀를 뀌며 흥분의 상태로 말했다.
“어제 분명 말했잖아! 널 이기겠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정도 쯤이야.”
설마...했던 예상이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그러나 사쿠라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왼손을 다쳤다면 훈련을 잠시 멈추고 쉬는 것이 정상. 그것에 어긋나는 월화의 행동은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그럼, 열심히 해보라고.”
그 말과 함께 사쿠라는 조깅을 시작했고 그에 맞춰 월화도 나란히 달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월화는 거기서 만족하지 못하였는지 사쿠라를 조금 앞질러갔다.
그것을 눈치 챈 사쿠라 역시 다시 월화를 조금 앞질렀다.
월화가 다시 속도를 내어 사쿠라보다 한발자국 앞섰다.
사쿠라는 가볍게 그보다 더 앞서 나갔다.
더 속도를 올려 몇 발자국 앞서나가는 월화는 사쿠라가 다시 자신을 쫒아올 기미를 보이자 전력을 다해 달리기 시작하였다.
괜스레 지기 싫은 마음이 생긴 사쿠라 역시 월화를 강렬히 추적했다.
둘의 간격이 급격하게 좁아지고, 둘은 트랙의 끝에 다다르자 동시에 온 힘을 쏟아 부었다.
““흐아아아아아아-!””
* * * * *
“허어...어어어어어어....으웨에에엑....”
숨 쉬기 힘들어하며 헛구역질을 하는 월화. 그는 지금은 비록 헛구역질이지만 곧 위장에서 진짜 구정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반면에 숨은 가쁘게 쉬지만 땅에 쓰러져 있는 월화와는 달리 멀쩡히 서서 수건으로 땀을 닦고 있는 사쿠라.
예정보다 더 빠르게 일정을 진행해서 그런지 몸에 다소 무리가 있었다. 목표량은 달성했지만 평소보다 배로 몸이 무거워져 있었다.
그렇지만 또 다른 놀라운 점은 월화가 비록 흐느적거리며 기어서 자신을 따라왔지만, 한참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결국 자신과 비슷한 양의 운동을 했다는 것이다. 사쿠라는 물었다.
“너, 아침 운동.. 이번 처음이 아니지?”
등을 보이며 엎드려 있던 월화가 힘겹게 몸을 돌려 사쿠라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자랑스럽다는 표정으로-
“당연하지! 이곳에 입학하기 전부터 계속 하고 있다고! 그나저나 나 너의 훈련을 따라잡은 것 같은걸?”
엄지를 올리며 말했다. 그러나 가소롭다는 듯이, 그리고 보란 듯이 사쿠라는 월화의 앞에서 철봉에 매달려 여러 가지 운동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거의 묘기에 가까웠다.
“이...이런..... 그런 것 쯤이야......”
최대한 몸을 의지대로 하려 했지만 월화의 신체의 판단은 냉정하게 사쿠라와의 체력 차이를 확실히 보여주었다.
“넌 쓸데없는 허세가 많은 것 같아.... 그런 소리는 집어 치우는게 어때? 조금은 자신을 인정할 줄 알아야지....”
사쿠라는 가볍게 철봉에서 내려와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월화도 목이 마른지 벤치에 올려두었던 물통을 꺼내 들었다. 월화는 오른손잡이. 물통의 뚜껑을 열려면 왼손으로 물통의 몸체를 잡은 후 오른손으로 돌려야한다.
그러나 어제 사쿠라와의 경기에서 왼 손목을 다치는 바람에 물통을 지탱하지 못하자 자구만 손이 미끄러졌다.
몇 번을 시도해도 열리지 않았다.
“하아... 이리 줘봐.”
보다 못한 사쿠라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월화에게 손을 내밀었다.
월화는 조금 당황한 기색이 있었지만 곧 그녀의 호의를 달게 받았다. 뚜껑은 아주 쉽게 열렸다.
도움을 받은 것이 괜히 민망해진 월화는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하하... 미안... 괜히 신세만 졌네...”
“도대체 제대로 할 줄 아는게 뭐냐?”
월화는 다시한번 생각했다. 사쿠라는 굉장히 까칠한 녀석이라고.
그라고는 사쿠라는 운동장에서 훤히 보이는 학교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학생들이 생활하는 기숙사 건물에는 맨 위층부터 2개의 층을 덮는 크기의 플랫카드가 달려있었다.
‘전국인술제’라고 적혀있는 그 화려한 카드는 이 근방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솔릴 듯 했다. 그것에 의문이 생긴 사쿠라는 월화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야, 너도 저기 참가해?”
월화는 사쿠라의 시선을 다라 눈동자를 움직이더니
“아- 저거? 하긴, 넌 모르겠구나.”
“당연하지. 빨리 설명이나 해봐.”
“그냥 한마디로 하면 너네 일본에 있는‘사이쿄진주’같은 거랄까?”
“음... 토너먼트도 똑같은 건가?”
“아마 그럴걸? 그런데 왜? 너도 참가하게?”
“난 몰라 그런거. 그런건 너나 참가하셔.”
‘사이쿄진주’는 일본의 인술 대회이다. 전국의 각 지방에서 대표들이 모여 인술 경기를 치르는 토너먼트 형식의 경기.
그곳의 우승자에게는 막대한 부와 명예가 쏟아진다. 그러나 한국의 이 인술제는 부는커녕 그저 우승자라는 타이틀을 얻는 것 밖에 없다. 월화는 참가하는 눈치였다.
“넌 저기 왜 나가려는 건데?”
“난 더 강해져야 해. 그러려면 전국의 모든 놈들과 붙어볼 필요가 있어.”
월화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모든 녀석들과 붙어보는 건 무리야. 그러니깐 여기서 가장 쎈 놈들만 모이는 저 대회에 가서 모두와 함께 겨뤄볼거야.”
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연스레 대화가 오고갔다. 문득 월화와 대화를 하던 사쿠라도 조금 놀라웠다. 여태까지 이렇게 사람과 쉽게 대화를 해본 적이 없다. 어릴 적 이후로.
그런데 뭔가 모르게 월화는 편하게 느껴졌다.
사쿠라는 어째서 자꾸 강한 상대들과 싸워보고 싶어하는지, 무슨 목적이라도 있는건지 궁금하여 물어보려고 했다. 혹시 자신과 비슷한 이유라도 있는 것인지....
하지만 사쿠라는 그 물음대신-
“흥, 겨우 그런 실력으로?”
붕대를 감은 월화의 팔을 보며 쌀쌀맞게 대답했다.
사쿠라의 가벼운 도발에 안그래도 힘든 운동으로 붉어진 월화의 얼굴이 더 새빨개져 흥분상태가 되었다.
“야! 또 그 얘기냐? 두고 봐! 반드시 널 이겨주겠다고!”
또 다시 그들만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4월의 쌀쌀한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에‘인술제’플랫카드가 펄럭였다.
그 펄럭임은 얼마 남지 않은 대회의 개막을 알렸다.
* * * * *
“자아아~! 모두들 환영한다! 모두들 해초가 되어버린 3학년들과는 다른 파릇파릇한 병아리들이네?”
학생들을 향해 양팔을 벌리며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끌어안을 듯한 기세인 젊은 남교사는 얼굴에 웃음을 지었다.
“내가 바로 오늘부터 너희 1학년 5반의 담임을 맡게 된 모가온 이라고 한다. 교사는 올해로 5년차이고 3학년만 맡아왔으니까 날 본적이 아마 별로 없을거야. 그냥 편하게‘가온 선생님~’이라고 불러주면 좋겠어.”
서로 어색한 학생들과는 다르게 가온은 서슴없이 자기소개를 했다.
검은 댄디한 흑발에 조금 큰 키. 얼굴 또한 조금 괜찮게 잘생겨서 몇몇 여자애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귀찮은 선생님이네..........”
텐션이 높은 가온을 바라보며 사쿠라가 웅얼거렸다.
만사가 귀찮고 흥미없다는 표저의 사쿠라는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운동장에도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교실을 둘러봐도 월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죄송합니다아!”
교실 뒤쪽의 문이 벌컥 열리며 월화의 모습이 보였다.
“늦었구나. 이름이 뭐니?”
‘성월화’라고 대답하자 가온은 핀잔아닌 핀잔을 줬다.
“다행이도 오늘은 첫날이라 수업이 없지만 다음에도 이렇게 늦으면 감점이야. 알겠니?”
전혀 핀잔을 주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혼자서 기분이 좋은건지 아니면 학생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서 가식적인 웃음을 보이는건지 사쿠라는 알 수 없었다.
월화는 교실을 조금 둘러보더니 사쿠라를 보고는 이내 아는 척 하며 옆자리로 다가왔다.
“설마 같은 반이 될 줄......은 알고 있었지. 같은 조니까.”
“그야 상관없지.”
“응? 무슨 소리야?”
“아냐, 아무것도..........”
앞에서 혼자 떠드는 가온의 말은 무시한 채 사쿠라는 월화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왜 늦은거야?”
월화는 민망하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하핫........ 그게 말야 아까 아침에 운동을 너무 과하게 한 것 같아서..... 준비 도중에 잠이 들었단 말이지.........”
어이없는 이유에 말문이 막혀 아무말도 할 수 없는 사쿠라는 다시 턱을 괴고 가온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자, 내 소개는 대충 끝났고. 그럼, 이제 너희들이 그렇게 관심을 갖는.....‘인술제’에 대해 얘기하도록 하자꾸나. 마침 상부에서 지침이 있었거든?”
가온이 잘 차려입은 정장의 안쪽 자켓 주머니에서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액정 단말을 꺼내 들었다.
그 태블릿은 곧 있으면 신입생 전원에게 지급될 일명 ‘지침 공책’이었다.
이곳의 아카데미는 그 지침 공책으로 학생들이나 각 교사들에게 전달 사항 혹은 여러 가지 소식들을 알린다.
이외에도 학생증, 인터넷, 전화까지 되는 꽤나 쓸만한 물건이다.
“흐음......... 어디보자...... 아! 여기 있네!”
가온이 공책의 화면을 손가락으로 몇 번 두드리자 그의 뒤에 있는 칠판에 커다란 화면이 띄워졌다.
그곳에는 두 학생이 서로 칼을 들고 맞부딪치는 장면과 함께 인술제의 설명으로 보이는 글들이 난무했다.
“자, 이 복잡한 글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올해의‘인술제’는 아마 너희들이 여름방학 직전에 대표자들을 뽑아 여름방학이 끝난 후, 바로 본선을 치를 예정이야. 너희들도 알다시피 인술제는 3인 1조가 한 팀이 되어 출전하게 돼. 그렇게 상위 10팀을 선발하여 나가는 거지. 개인의 능력치도 중요하지만 이 대회의 취지는 팀워크에 있다는거 잊지 말고! 그리고 선발 경기의 일정, 상대 학생 등 관련된 모든 정보가 이따 석식 시간에 지급 될 공책에 발송 될 거니 그걸 잃어버리면 알아서해.”
“선생님!”
갑자기 월화가 손을 들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난 너희와 친해지고 싶어. 가온 선생님~ 하며 불러주지 않으련?”
“........가....가온 선생님...?”
‘이래저래 똑같을 것 같은데.....’
사쿠라가 가온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생각했다.
“그래, 말해봐.”
“시합은 얼마나 할 예정이죠?”
“음.... 아마 한 팀당 가볍게 5경기, 많으면 10경기 정도를 할 것 같아. 4일에서 5일에 한번 씩은 반드시 경기가 있을 걸? 아마도.”
그 말을 듣고 교실 안의 대부분 아이들이 술렁거렸다. 다들 불만이 조금씩 있는 듯 했다.
놀러갈 수 없냐는 둥 아니면 한 녀석이 다시 손을 들고 질문하였다.
“가온 선생님! 인술제는 무조건적 인가요?”
“뭐가?”
“참가하는 거요. 반드시 필수냐고요.”
모두가 월화와 같은 마음인 것은 아니었다. 인술제에 관심이 없는 학생들도 괘 존재했다.
그 이유는 인술제는 월화와 사쿠라의 모의전처럼‘환술’로 하는 것이 아닌 ‘실제’로 하기 때문이다.
환술이란 쉽게 말해 가상의 형태를 대상의 머릿속에 이미지화 시키는 술법을 말한다. 월화와 사쿠라 또한 그 술법에 걸린채 경기를 진행하였기에 몸의 육체적인 피로만 쌓였지 실제의 내장이나 피부가 찢겨 나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인술제는 말 그대로 실제의 전투이다. 날카로운 쇠붙이와 칼 등으로 상대의 피부를 베어내야 하는 싸움.
그 싸움을 무서워하는 학생들은 꽤 많았고 그런 목숨을 위협 받으면서 가지 자신의 위상을 드높이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아니, 완벽하게 자유야. 참가 신청서가 공책으로 메일 형태로 갈거야. 그때‘불참’에다가 체크를 한 후에 다시 선생님들께 제출하면 돼............... 하지만 말야........”
문득 가온은 모든 아이들과 시선을 마주하기 위해 눈동자를 한 방향으로 쭉 둘렀다.
그런다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번뿐인 인생. 멋지게 장식해야하지 않겠니? 목숨이 달려있으니까 별 다른 말은 안하겠지만..... 웬만해서 남은 생을 평범하게 지내려고 하지는 마. 모두가 노력을 해서 자신의 노력이 얼마의 값을 지녔는지, 자신의 성장을 확인 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 되지 않는다?”
월화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월화를 가온은 잘 알고 있었다.
아카데미의 입학시험 때였다. 당시에 가온은 심사위원을 맡게 되었다.
가장 낮은 성적으로 그 누구보다 입학을 간절히 원했던 월화. 그 마음이 가온에게 진심으로 다가섰던 것이다.
결국 모든 선생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가온은 스스로에게 책임을 묻으며 월화를 입학 시켰던 것이다.
물론 이 사실을 월화는 모른다.
그렇게 몇 개월 전의 일을 회상하고
‘그러고 보니 저 녀석은............’
“조오오오오오옿았어어어어어!!! 다같이 참가해보자아!!!!!!!!!!”
교실 전체가 울릴듯한 목소리로 크게 외치는 월화. 한 손을 들고 있는 그는 혼자 자신만의 세계에서 이미 우승을 한 것 같았다.
‘......자신감이..... 너무 좋았었지...?’
그 사실을 새삼 가온은 떠올렸다.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서 끝인가요?”
“여기서 더 하기를 원하니? 모처럼의 오리엔테이션만 하라는 지침인데 오늘까지만 놀자!”
환호성을 지르며 밖으로 뛰어나가는 아이들을 보며 가온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제 막 교실을 나가려는 월화와 사쿠라를 보며
“사쿠라, 너는 나를 잠깐 볼 수 있겠니?”
사쿠라를 불러세웠다.
* * * * *
“상록반이요?!”
교무실로 불려와 갑작스런 제의를 받아 당황하는 사쿠라를 보며 가온은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래. 너를 제외한 모든 교환학생들은 이미 다 결정한 일이야. 너만 결정을 하면 되는데..... 어떻게 할래? 참가는 너의 자유니까.”
‘난 너의 의사를 존중해’라는 어투로 가온은 사쿠라에게 지긋이 물었다.
‘상록반’은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로 이루어져 있는 반이다. 성적을 상위 30위까지로 잘라 이루어졌다.
상록반이 되면 기존의 반을 완전히 나와 상록반 학생들과 어울리게 된다. 이는 굉장한 이득이다. 강한 자들과만 겨룰 수 있고 자신을 급격하게 성장 시킬 수 있으니까.
이런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
“그.... 히코노도 상록반에 들어갔나요?”
가온은 조금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아! 그 갈색 머리! 항상 트윈테일을 하는......”
“네, 맞아요. 들어갔다 보군요?”
“응. 너랑 친하니? 계속 네 얘기를 하던데.... 너 상록반에 들어오냐고”
의자에 몸을 기대고 사쿠라의 응답을 기다리는 가온은 정장이 불편한 듯 몸을 이리저리 돌렸다.
“음.....”
고민하는 사쿠라. 그 대답을 더 신중히 결정하길 바라는지 가온은 말했다.
“뭐, 굳이 지금 말 안해도돼. 내일까지 시간을 줄게.”
‘네’하며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교무실의 문을 열자 월화가 사쿠라를 맞이했다.
“무슨 일이야?”
궁금한 표정을 하고 묻는 월화에게
“그냥, 상록반 할거냐고.......”
그러자 월화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음, 역시 이렇게 되나. 같은 반이 되었는데... 일단 같은 조가 되어 활동은 하지만 반은 다르다는 건가.....”
“아직 한다고는 안했어.”
“엥? 왜?”
“그냥, 굳이 거기 들어간다고 이득을 보는 것도 없을 것 같고 말야.”
사쿠라의 대답에 월화가 놀라며 되물었다.
“에? 거긴 들어가고 싶어서 안달난 사람들도 못 들어가는 곳인데? 어째서?”
계속 되는 질문에 귀찮아진 사쿠라는 더러 짜증을 냈다.
“네가 상관할 바 아니야. 이제 그만 좀 물어봐 줄래?”
갑자기 들어온 일침에 월화는 풀이 죽어 조용해졌다.
“그나저나, 이제는 그냥 쉬면 되는건가?”
“그렇겠지. 난 들어가서 조금 눈 좀 붙여야겠어. 이런 날이 아니면 언제 또 잠을 편히 자보겠어?”
사쿠라가 기지게를 피며 복도를 걸어나갔다.
* * * * *
[난 그냥 들어가서 쉴거야. 그리고 더 이상은 날 쫒아다니지 말아줘.]
사쿠라의 동행 거절의사를 받은 월화는 방에 들어가서 지침 공책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뭐야, 괜찮은 녀석 같다가도 이럴 땐 재수 없다니까?”
10평 정도의 작은 방. 바의 구석에 있는 침대에 뒹굴거리며 월화는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무 일 없이 내일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그에게 맞지 않는 생활.
뭐라도 하기 위해 월화는 방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정리안된 방은 옷가지가 어지럽게 널려져 있었고, 며칠 째 세탁하지 않은 체육복과 속옷 몇 개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나는 듯 했다.
빨래는 하기 싫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건 더욱 싫어서 운동장에서 운동이나 할까 생각했다.
[더 이상 수행은 무리야. 더 했다가는 손목이 완전히 나갈 수도 있어. 몇 주는 갈걸?]
...............의무 선생님의 말이 떠올라 그만뒀다.
그때였다.
각 방에 울린 알람소리에 놀란 월화는 방송에서 지침 공책의 소식을 듣고 문밖으로 나갔다. 옆방의 몇몇 아이들과 눈도 마주쳤다.
문에는 월화의 학번이 적힌 테블릿이 문고리에 걸려있었다. 검고 투박한 케이스 안에 들어간 테블릿은 그 깨끗하고 투명한 액정이 돋보였다.
그리고.......... 전원은 켜져있었다.
문을 닫고 침대에 다시 누운 월화. 공책을 이래저래 살폈다.
그 순간 -
한통의 문자가 왔고 그것을 확인한 월화는 액정에서 눈을 땔 수 없었다.
‘신입생 여러분 환영합니다! 교장입니다. 이렇게 여러분을 문자로 뵙게 된 것에 대해 유감입니다. 다름아닌 여러분이 수업을 받을 때 필요한 조원과 인술제 참가 신청서 알림을 드리고자 이렇게 문자로 연락드렸습니다. 참가 양식은 문자의 가장 하단에 첨부되어 있으며, 참가 형식에 그대로 다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함께 조원이 되어 수업을 받은 여러분의 조원은..............’
월화는 빠르게 글을 읽으며 내려갔다. 사쿠라와 자신의 이름이 보이지 ㅇ낳자 답답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찾았다!’
그건 사쿠라도 마찬가지였다. 월화와 한 팀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나머지 한명이 궁금했기 때문.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찾았을 때,
““..........얜 누구지.......?””
둘은 윤시완 이라는 이름을 보고 의문을 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