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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청혼
작가 : 온난화
작품등록일 : 2017.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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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처음, 눈을 뜨다.
작성일 : 17-11-12     조회 : 360     추천 : 0     분량 :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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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ㅡ도와줘요.

 

 

 

 꿈 속이었다. 사방이 온통 거뭇한 어둠 뿐인 곳에서 길을 잃어버린 꿈이었다. 눈을 대신해줄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어떻게든 길을 찾으려다가 울음이 터졌을 때였다. 앞이 캄캄하던 와중에 문득, 목소리가 들려왔다. 낮은 남자의 목소리는 그녀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의 것이 분명했다.

 

 

 

 ㅡ나를, 도와줘요.

 

 

 

 어차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도 그녀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디에서 들려오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목소리는 자꾸만 같은 말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도와줘, 나를 도와주세요. 언뜻 보면 애원하듯 느껴지는 그 말은 그러나 도움을 청하는 이의 것이라기에는 강압적이고 위압적인 힘을 가졌다.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그녀를 재촉하듯 조금씩 크게 울렸다.

 

 

 

 ㅡ나를 도와주면,

 

 

 

 남자의 어조가 달라졌다. 여전히 방황하고 있는 그녀를 위에서 내려다보듯 모든걸 알고있는 말투였다. 조금전까지 명령하듯 말하던 이와는 다른 사람인 것처럼, 꿈 속인데도 그녀의 몸이 경직되었을 만큼 은근하고도 달콤한 목소리였다. 그녀의 귓가로 지나치게 현실적인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ㅡ'가장 원하는 것' 을 줄게요.

 

 ㅡ내내 원했으나 단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을 줄게요.

 

 ㅡ그러니 날 도와줘요. 나에게 와줘요.

 

 

 

 이건 역시 꿈이 분명하다, 고 그녀는 생각했다. 가장 원하는 것, 지금껏 한 번도 가지지 못했던 것, 그 말들은 전부 그녀에게 오직 하나를 의미했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도 간절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꿈이라는걸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그랬다. 그 때까지 꾹 다물려있던 입술이 열렸다. 망설이지 않는 목소리로 말한다.

 

 

 

 "당신을 도울게요, 약속해요."

 

 

 

 그리고 그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시야에 한 순간 환한 빛무리가 터졌다. 너무 밝아서 도리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빛, 그녀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제서야 꿈 속의 그녀는 '눈을 떴다'.

 

 

 

 "……."

 

 

 

 처음 인식한건 붉은 빛이 은은하게 드리워진 방이었다. 방 한 켠을 가득 채운 커다란 창 너머로 들어온 달빛이 붉었다. 그 장면을 의아하게 생각할 틈도 없이 남자는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여전히 이 모든 일이 꿈의 연속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멍한 눈동자에 남자의 모습이 비쳤다.

 

 짧은 머리칼이 검었다. 정리하지 않은 앞머리가 눈까지 닿아있었다. 그 머리칼 사이로 언뜻 스치는 눈동자는 어김없이 붉은색이었다.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했을 만큼 새빨간 눈 한 쌍이 그녀를 똑바로 응시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 눈은 즐거운 것 같기도, 흥분한 것 같기도, 또는 분노한 듯 싶다가 음울한 듯도 싶은 기묘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아,"

 

 

 

 남자가 입을 열었다. 낯설지만 익숙한 목소리가 옅은 웃음기를 담았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가만히 남자를 올려다보고 있는 그녀에게로 손을 뻗는다. 붉은 달빛이 비추는 손은 비현실적으로 희게 보였다.

 

 

 

 "가여운 인간."

 

 

 

 노래하는 것 같은 목소리가 어조와는 어울리지 않는 말을 내뱉는다. 그녀의 눈이 조금씩 감기기 시작했다. 머리는 어지러웠고 시야는 흔들리고 있었다. 이건…,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그녀는 생각했다.

 

 이건 정말이지 최악의 꿈이야.

 

 풀썩. 순식간에 기력을 잃고 앞으로 쓰러지는 상체를 남자는 간단히 받아냈다. 마치 예상하기라도 한 듯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그녀의 몸을 다정하게 감싸안으며 남자는 웃는 얼굴로 속삭였다.

 

 

 

 "'약속'은 그렇게 쉽게 맺는게 아니에요."

 

 

 

 안쓰러운듯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그러나 조금의, 아주 조금의 동정심조차 품지 않은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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