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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은 모태솔로(개정판)
작가 : HOSA
작품등록일 : 2017.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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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 전조
작성일 : 17-11-13     조회 : 271     추천 : 0     분량 : 5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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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창한 화요일 아침 JUNE 식품 건물 앞. 검은색 세단이 JUNE 식품 건물 앞에 멈추고 여주와 찬미가 내렸다. 여주의 휘황찬란한 패션은 여전했지만 오늘은 아버지의 말대로 검은색 세단에 기사까지 달고 왔다.

 

 “꼭 아빠 말을 들은 날은 아빠가 없어.”

 

 여주가 선글라스를 아래로 내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어차피 회장님 들어오시면 주차장에서 차 확인하실 거예요.”

 

 “그건 나도 알아. 근데 아빠 말 들었다고 생색내고 싶단 말이야. 딱 마주쳤으면 나 효녀 아니냐고 생색냈을 텐데.”

 

 “그럼 또 혼났을 텐데요.”

 

 “그 맛에 내는 거야 생색.”

 

 그때 여주의 눈에 아버지의 차가 회사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차 창문이 지이잉 아래로 내려가고 김준 회장이 고개를 빼 여주를 불렀다.

 

 “김여주! 오늘 점심은 나랑 먹게 회장실로 올라와!”

 

 “뭐 사줄 건데!”

 

 “샐러드!”

 

 “웬 샐러드?”

 

 “잔말 말고 올라와!”

 

 여주와 김준 회장은 전화로 하면 될 것을 굳이 원격으로 소리를 질러댔다. 주변에 출근하던 직원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둘의 대화를 구경하고 있었지만 정작 둘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어쩌면 여주의 관심병은 김준 회장으로부터 유전된 것일지 모른다. 김준 회장은 용건이 끝나자 차 창문을 다시 올렸고 차는 주차장으로 사라졌다.

 

 “뭐야 맨날 자기 말만 해...”

 

 여주는 혼잣말로 툴툴거렸다.

 

 “간만에 두 분이 오붓한 시간 가지시겠네요.”

 

 “비서 언니도 같이 가야지. 비서 언니는 나랑 세트야.”

 

 여주는 씨익 웃으며 찬미의 손을 잡았다. 찬미는 여주의 고집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차마 자기는 안 가는 게 좋을 거 같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

 

 한편 그 시각 호텔 아무르 앱솔루. 지훈이 출근하자마자 도철은 쪼르르 달려와 스케줄을 일러주었다.

 

 “전무님 오늘 저녁 6시에 호텔 레스토랑에서 중요한 약속 있습니다.”

 

 “제가 잡은 약속이 아닌데 뭐죠?”

 

 “사장님이 중요한 선 자리라고 하셨습니다.”

 

 “올 것이 왔구나...알겠어요.”

 

 지훈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회전의자에 풀썩 앉았다. 의자가 제멋대로 회전했지만 지훈은 아무 의욕도 없이 의자에 몸을 맡겼다.

 

 “상대방 정보 브리핑 해드리겠습니다. 이름은 김...”

 

 역시나 눈치 없는 장도철 비서는 지훈의 표정도 살피지 않고 멋대로 브리핑을 시작했다. 도철은 본인의 선 자리도 아닌데 꽤 상기된 표정이었다. 도철은 자기가 모시는 상사가 장가를 잘 가 훗날 사장이 되면 자기도 사장 비서가 될 거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전무 비서나 사장 비서나 연봉에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건만. 도철은 어디 가서 자신을 소개할 때 ‘사장 비서’라고 말하며 으스대고 싶었다.

 

 “필요 없어요. 어차피 거절할거니까.”

 

 지훈이 말을 딱 잘라먹자 상기됐던 도철의 표정이 순간 시무룩해졌다. 지훈은 다시 한숨을 내쉬며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그리고 책상 위에 있는 액자를 매만졌다. 액자 속 사진은 꽤 오래돼 보이는 어떤 여자아이의 초등학교 졸업사진이었다. 지훈은 한동안 멍하니 그 사진 속의 여자아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

 

 오전 근무 시간이 지나고 점심시간이 되자 찬미와 여주는 회장실로 올라갔다. 여주는 회장에게 방문을 알리려는 회장실 비서들을 무시하고 노크도 없이 회장실로 쳐들어갔다.

 

 “또 찬미 데리고 왔냐?”

 

 김준 회장은 문이 벌컥 열려도 별로 놀라지 않는 눈치였다. 점심시간에 여주에게 올라오라고 했으니 분명 이렇게 등장할 것이라 예상한 것이다. 회장은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태연하게 여주를 맞이했다.

 

 “비서 언니는 나랑 세트라니까. 샐러드 2인분만 준비한 건 아니지?”

 

 “네가 그럴까봐 찬미 것도 준비했다.”

 

 “거봐 비서 언니. 같이 오자고 했지?”

 

 찬미는 대답이 없었다. 여주와 오랜 시간 함께 했지만 김준 회장과는 그렇게 편하게 말을 트는 사이가 아니었다. 찬미는 손을 앞으로 모으고 눈을 아래로 깐 채 회장에 대한 예의를 다 하고 있었다. 여주는 각목같이 서 있는 찬미의 손을 잡고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너 언제까지 찬미랑만 붙어 다닐래? 나이가 서른셋인데 결혼 안하냐?”

 

 김준 회장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팔자주름을 한껏 드러내며 여주를 쳐다봤다.

 

 “연애도 해본 적이 없는데 무슨 결혼을 해.”

 

 여주는 뭘 그런 걸 묻냐는 말투로 뻔뻔하게 말했다. 얼마나 뻔뻔한 지 코딱지라도 파며 말할 기세였다.

 

 “그래 말 잘했다. 너 왜 여태까지 연애 한 번 못하고 그러고 있어? 네가 돈이 없어? 학벌이 부족해? 외모가 딸려? 하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연애 뜯어말린 적도 없는데 왜 못하는데?”

 

 회장의 언성이 조금씩 높아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회장의 관자놀이 옆 혈관은 퍼렇게 솟아올랐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한 거지.”

 

 여주는 역시나 뻔뻔했다. 잔뜩 성질 난 아버지 앞에서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었다.

 

 “왜 안 하는데?”

 

 “멋있는 남자가 없으니까.”

 

 “연애를 멋으로 하냐?”

 

 “그럼 그지 깡깽이처럼 해?”

 

 또다시 시작된 여주의 말장난에 회장은 짜증이 치밀었다. 그는 미간 사이에 내천 자를 그리는 것으로 참을 인을 대신했다.

 

 “됐어. 이제 너 나이도 있고 연애고 뭐고 결혼 해.”

 

 “싫어.”

 

 회장의 화난 표정에도 여주는 전혀 움츠러들지 않았다. 회장도 소리를 쳐봤자 여주가 꿈쩍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더 이상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

 

 “원래 재벌 딸로 태어나면 결혼에 선택권이 없어. 오늘 여섯시에 약속 잡아놨으니까 야근할 생각 말고 아무르 앱솔루 호텔 레스토랑으로 가. 그 호텔 둘째 아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오늘? 무슨 약속을 당일 날 말해!”

 

 회장이 조근조근 말하자 이번엔 여주가 언성을 높였다. 팽팽했던 여주의 미간에 주름이 갔다.

 

 “네가 약속 당일 날엔 절대 약속 안 깨는 걸 아니까 일부러 오늘 알려줬지롱.”

 

 “와 세상에 내 매너를 그런 식으로 악용하나?”

 

 60대 아버지와 30대 딸의 대화라고 하기엔 너무도 유치했다. 머리가 희끗한 60대 회장은 비서들이 보는 와중에 33살 딸에게 메롱을 시전하고 딸은 또 거기에 화를 내는 풍경. 병풍처럼 서있던 회장 비서들은 차마 그 광경을 눈 뜨고 볼 수 없어 눈을 질끈 감았다.

 

 “찬미야 밥 다 먹으면 여주 데리고 나가서 옷 좀 싹 갈아입히고 준비 다 해가지고 레스토랑으로 데려가.”

 

 “네.”

 

 찬미는 기계처럼 대답했다. 찬미는 여주에게는 가끔 잔소리도 하고 자기 생각도 얘기했지만 회장에게는 대드는 법이 없었다.

 

 “네는 무슨 네야. 아빠는 이런 엄청난 부탁을 하면서 점심에 풀떼기를 먹여? 진수성찬을 대접해도 못자랄 판에.”

 

 여주는 아버지에게 고분고분한 찬미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며 짜증을 냈다.

 

 “너 살 좀 빼서 예쁘게 나가라고 풀 먹이는 거야. 너 60킬로 넘지?”

 

 “장난해? 내 키가 175인데 넘는 게 당연하지! 내 키에 65킬로면 완전 정상이거든! 이 탄탄한 바디라인을 봐!”

 

 여주는 몸을 돌려 회장에게 자기 옆태를 뽐냈다. 하지만 돌아오는 회장의 표정은 ‘근데 어쩌라고’였다. 회장실에 잠시 민망한 정적이 흘렀다.

 

 “너 헬스장 다니면서 근육 키우는 거 그만하고 에스라인으로 살 좀 빼. 요가하면 몸매가 잘 잡힌다더라. 가끔 기업인 모임 사진 찍힌 거 보면 너 무슨 조폭마누라 같아. 어깨가 태평양이다. 내가 아들이 있었나 한다니까?”

 

 회장이 팔을 한껏 양 옆으로 뻗으며 여주의 몸을 과장되게 표현했다. 장난끼는 부전여전이었다. 회장은 33살 먹은 자기 딸을 놀리면서 아주 신이 난 표정이었다.

 

 “주변 남자들 키가 작아서 크게 나온 거거든.”

 

 여주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복화술을 하듯 읊조렸다.

 

 “시끄럽고. 오늘도 예전처럼 맞선자리에서 이상한 짓 하면 진짜 죽는다.”

 

 회장은 불현듯 5년 전 여주의 첫 맞선 때가 생각나 몸서리를 쳤다.

 

 **

 

 5년 전 여주가 전무였던 시절의 일이다. 여주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자신의 첫 맞선 상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의 성화에 옷도 맘대로 입지 못하고 억지로 끌려나온 여주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하늘하늘한 하얀색 실크 블라우스도 맘에 들지 않았고, 검은 치마도 맘에 들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가만히 신고만 있어도 발이 불편한 하이힐은 세상에서 제일 맘에 들지 않았다. 선 자리가 세상 짜증났지만 그래도 여주는 상대에 대한 예의를 지키려 약속 시간 20분 전부터 나와 있었다. 자신을 짜증나게 한 건 아버지의 성화와 맘에 들지 않는 옷차림이지 선 상대방이 아니니까. 하지만 여주는 맞선 자리에 비서를 대동하지 않는 예의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황당하게도 여주는 찬미와 나란히 앉아 있었다.

 

 “김여주씨?”

 

 한눈에 봐도 비싼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여주에게 걸어와 이름을 부르며 자리에 앉았다. 여주의 맞선상대는 일류은행장의 외동아들인 차정명이었다. 정명은 여주보다 키도 작고 나이도 5살이나 많았지만 아버지가 원하는 사윗감이었다.

 

 “사진보다 미인이시네요.”

 

 정명은 여주의 맞은편에 앉으며 시작부터 입에 발린 말을 했다.

 

 “사진이 좀 골리앗처럼 나오긴 했죠.”

 

 여주는 아무런 악의 없이 나름 유머로 뱉은 말이었으나 정명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칭찬을 비꼬기로 받은 격이었으니.

 

 “아니 그런 의미는 아니었는데...”

 

 당황한 정명은 대화 주제를 바꿔보려 눈을 굴리다 찬미의 얼굴에 시선을 멈추고 다시 입을 열었다.

 

 “아직 비서 업무가 안 끝났나 봐요. 옆에 비서분이죠?”

 

 “네. 비서 언니의 업무는 저랑 계속 같이 있기라서 안 끝나요. 비서 겸 경호원이거든요.”

 

 “경호원요? 뭐 특별히 신변에 무슨 일이 있나요? 식사 후에 제가 집까지 바래다 드릴 건데 그냥 보내시죠.”

 

 여주는 잔소리를 하는 듯한 정명의 말투에 짜증난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골리앗 같은 여자가 무슨 경호원인가 하시겠지만, 저희 어머니가 예전에 전과자한테 살해당한 거 뉴스로도 나왔으니 아시죠? 그래서 저랑 저희 아버지는 늘 경호원을 데리고 다닌답니다.”

 

 정명은 아차 싶었다. 여주의 모친이 오래 전에 살해당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경호원을 데리고 다니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정명은 식은땀까지 흘리며 말을 더듬었지만 여주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당황하지 마세요. 벌써 17년 전 일이라 아무렇지 않아요. 그리고 식사부터 좀 빨리 시켜도 될까요? 어제부터 굶었거든요.”

 

 “왜 공복이에요? 다이어트 하세요?”

 

 “아뇨 어제 저희 회사에서 개발 중인 겁나 매운 라면을 시식했다가 설사병이 났어요. 먹는 족족 난리라 굶었죠. 아무래도 신제품에 캡사이신을 좀 줄여야겠어요.”

 

 여주는 이번에도 역시 아무 악의 없이 사실을 얘기한 것이었으나 식사 전에 할 이야기로는 부적절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아무렇지 않게 설사병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 사람이 전 세계에 얼마나 되겠는가. 여주는 상대방의 입맛이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차마 하지 못하고 단지 회사 일에 대해 얘기했다고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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