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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은 모태솔로(개정판)
작가 : HOSA
작품등록일 : 2017.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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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장애물
작성일 : 17-11-19     조회 : 232     추천 : 0     분량 : 5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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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 소리야? 거짓말입니다 사장님!”

 

 한 차장이 다급하게 말했다.

 

 “박 대리. 한 차장이 어딜 어떻게 성추행 했단 거예요?”

 

 여주는 침착한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박 대리에게 물었다.

 

 “제 어깨를 감싸더니 손을 서서히 내려서 제 옷 속으로 넣었어요. 그리고 막 속옷 끈을...”

 

 박 대리는 토해내듯 말을 쏟아내더니 또 다시 울음이 터져버렸다.

 

 “완전 거짓말입니다 사장님! 제가 어제 혼을 좀 냈더니 앙심을 품고 이러는 겁니다!”

 

 한 차장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박 대리에게 삿대질을 해댔다. 한 차장은 정말 억울해보였다. 박 대리도 한 차장도 거짓말 하는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여주는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당사자들과 함께 보안실로 향했다.

 

 보안실 직원이 보여준 화면에선 한 차장이 박 대리의 뒤로 다가와 손을 어깨에 올리는 장면이 나왔다. 하지만 곧 지나가던 다른 직원이 둘을 가리는 바람에 그 이후의 상황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애매하네..”

 

 여주는 cctv로도 시비를 가릴 수 없게 되자 퍽 난감했다.

 

 “방금 보셨잖아요!”

 

 박 대리는 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

 

 “무의식적으로 어깨에 손을 올린 거고 말하다 보니 정신이 팔려서 손이 미끄러진 거예요! 절대 옷 속으로 손을 넣어서 속옷 끈을 만진다거나 하지 않았어요!”

 

 한 차장 역시 언성을 높였다. 여주는 굉장히 난감했다. 심정적으로야 박 대리의 편을 들고 싶었지만 객관적 입장을 지켜야했기 때문이다. 목격자도 없고 cctv에도 정확하게 찍힌 게 아닌 이상 단지 어깨에 손을 올렸다는 이유로 한 차장을 성추행으로 징계하긴 곤란했다. 여주가 한참을 서서 고민하니 박 대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됐어요. 저 경찰에 신고할래요. 어차피 회사 그만둘 각오로 소리 지른 거였어요. 이런 식으로 티 안 나게 성추행 당한 게 한 두 번이 아니에요.”

 

 박 대리는 코를 훌쩍이며 핸드폰을 꺼내들었고 그 순간 찬미가 핸드폰을 들고 있는 박 대리의 손을 잡았다.

 

 “경찰이 와도 어차피 이 영상 똑같이 볼 거고 다른 반응이 나오긴 힘들 거예요. 박 대리도 알죠?”

 

 찬미가 박 대리를 막아선 건 여주를 위해서였다. 여주는 능력 있는 사장이었지만 여자였기 때문에 편견의 대상이 되기 쉬웠다. 이 사건에 여주가 개입하고 한 차장이 경찰조사까지 받게 되면 ‘역시 여자 사장이라 여자 편을 들더라’ 하는 소문이 사내에 퍼질 게 뻔했다. 여주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부당한 소문이 도는 것을 찬미는 원치 않았다.

 

 “...오늘 일은 여기서 마무리 지어요. 오늘 일로 박 대리한테 불이익 가면 사내 괴롭힘으로 간주해서 징계 할 테니 평소처럼 업무에 임해주세요. 한 차장님은 돌아가서 업무 계속 하시고요 박 대리는 지금 저랑 같이 어디 좀 가요.”

 

 여주는 한참 고민 끝에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여주는 결국 사건을 조용히 마무리하기로 했다. 단순히 어깨를 만지는 것도 분명 성추행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을 가지고 일을 크게 만들면 박 대리도 자신도 곤란해지기만 할 것이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주는 박 대리를 데리고 회사 밖으로 나갔다.

 

 “박 대리님 제가 몰래카메라랑 녹음기를 사드릴게요. 이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인거 같아요. 만약 또 다시 성추행을 당하는 상황이 오거나 오늘 일로 상사가 불이익을 주려고 하면 이걸로 증거를 모으세요. 그리고 조용히 저한테 갖고 오세요.”

 

 여주는 눈물범벅이 된 박 대리의 손을 잡고 말했다. 박 대리는 잠시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알겠다고 대답했다. 여주는 박 대리의 등을 토닥이며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사장실로 오라는 말을 남겼다. 안타깝게도 그것이 여주에겐 최선이었다.

 

 **

 

 여주는 퇴근하는 차 안에서 찬미에게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잘 한 걸까?”

 

 “잘 하셨어요.”

 

 찬미는 여주의 손등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사실 나 아까 박 대리가 성추행 당했다는 말 했을 때부터 계속 옛날 생각이 났어. 괜찮은 척 하고 있었지만...”

 

 여주의 목소리가 떨렸다.

 

 “박 대리가 진짜로 성추행 당한 게 아닐 수도 있어요. 옛날 일하고 연관 짓지 마시고 잊어버리세요.”

 

 “내가 아까 더 힘들었던 게...내가 옛날 그 교장이 된 것 같더라. 내가 그렇게 욕했던 교장이 된 것 같았어.”

 

 여주가 고개를 떨구자 찬미는 흘러내린 여주의 머리를 다정하게 귀 뒤로 넘겨주었다.

 

 “사장님은 그 교장이랑 달라요. 사장님은 가해자 편을 들지도 않았고 사건을 중립적으로 해결하려고 최선을 다했어요.”

 

 여주에겐 찬미의 위로가 잘 들리지 않았다. 자꾸만 목구멍으로 뭔가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 들어 따뜻한 말에 귀 기울일 여력이 없었다.

 

 “...만약 진짜 박 대리가 성추행을 당했다면 나는 가해자한테 징계 하나 안 내리게 된 거고 박 대리를 다시 가해자 밑으로 돌려보낸 거잖아.”

 

 “만약 그렇다면 박 대리가 증거를 잡아 오면...”

 

 “만약 박 대리가 진짜 피해자라면 그 증거를 잡기 위해 박 대리는 또 피해를 당해야겠지. 그리고 그걸 정말 사장실까지 가져가야 하나 수백 번 고민할 거고. 만약 박 대리가 진짜...진짜 성추행을 당해왔다면...”

 

 여주는 허벅지 위에 손을 올리고 주먹을 꽉 쥐었다. 찬미는 여주의 떨리는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리고 여주가 트라우마 속으로 빠지지 않게 붙잡고 있었다.

 

 “더 이상 죄책감에 시달리지 마세요. 아무도 사장님을 원망하지 않아요.”

 

 한편 여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턱이 없는 지훈은 자신의 방 안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데이트 목록을 적고 있었다.

 

 “같이 영화도 보고 바다도 가고 같이 운동도 하고 소풍도 가고...또...”

 

 그때 문을 벌컥 열고 상훈이 들어왔다.

 

 “JUNE 식품 외동딸이랑 잘 됐다며?”

 

 지훈의 콧노래가 뚝 끊기며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어.”

 

 지훈은 상훈을 쳐다보지도 않고 건조하게 대답했다. 원래도 그닥 사이가 좋지 않은데다 여주와의 맞선을 방해한 걸 생각하면 정말 꼴 보기 싫은 형이었다. 상훈은 지훈의 손에서 데이트 목록을 적은 종이를 뺏어 들었다.

 

 “유치하긴...네가 무슨 대학교 새내기야?”

 

 “신경 꺼. 종이 돌려줘.”

 

 지훈은 상훈이 뺏어간 종이를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상훈은 더 높이 팔을 올려 지훈의 손길을 피했다. 지훈도 꽤 큰 키였지만 안타깝게도 상훈보다는 조금 작았다.

 

 “소풍가기? 우리나라에 재벌이 소풍갈 만한 곳이 있어?”

 

 상훈은 지훈이 적은 목록을 쓱 훑어보더니 비웃는 얼굴로 말했다.

 

 “소풍이 소풍이지 재벌이랑 무슨 상관이야.”

 

 지훈은 계속 상훈이 들고 있는 종이를 뺏으려 노력중이었다.

 

 “멍청한 놈. 네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몇 천만 원어치 차려입고 여의도 공원에 돗자리 깔게?”

 

 “여의도 안 갈 거야. 제주도 갈 거야. 거기 우리 호텔도 있으니까.”

 

 “그게 소풍이냐? 여행이지.”

 

 “내가 직접 도시락 싸갈 거니까 소풍이야.”

 

 “어휴 모질이...나이가 서른이 넘었는데 청순가련한 새끼...”

 

 상훈은 지훈의 데이트 목록이 담긴 종이를 바닥에 휙 던지고 방을 나갔다. 지훈은 짜증난 표정으로 종이를 주워 다시 열심히 목록을 적기 시작했다.

 

 **

 

 평일 중 직장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금요일 아침 7시. 모닝콜 소리에 잠에서 깬 여주는 핸드폰에 와 있는 문자를 확인했다. 새벽4시에 지훈으로부터 온 문자였다.

 

 지훈-여주야 내일 제주도 가지 않을래? 요즘 날씨도 좋고 꽃도 피는데 제주도로 소풍가자.

 

 “무슨 소풍을 제주도로 가...잠도 없나 새벽에 실없는 소리는...”

 

 여주는 답장도 하지 않은 채 침대에서 일어났다. 늘어지게 하품도 한 번 해주고, 스트레칭도 하고, 망나니 같던 머리도 감고 오니 핸드폰 진동이 짧게 지징 지징 하고 울렸다. 지훈으로부터 문자가 온 것이었다.

 

 지훈-지금쯤 일어났겠지? 굿모닝!

 

 “하...해맑은 스토커새끼...”

 

 여주는 결국 답장을 해주기로 했다.

 

 여주-어 그래 굿모닝.

 

 여주는 정말 ‘답장을 했다’는 것의 의의를 두었다. 여주는 성의 없는 답장만을 남기고 아무 생각 없이 출근준비를 마쳤다.

 

 한편 역시나 출근준비 중이던 지훈은 여주의 답장에 신이 났다. 지훈은 입꼬리를 한껏 올린 채 크리스마스날 아침의 7살 아이처럼 거실을 팔짝팔짝 뛰어다녔다.

 

 “굿모닝~ 이렇게 문자를 보내~ 너에게~빠진 것 같아 위험해~♪”

 

 지훈이 아침 댓바람부터 노래를 부르며 정신 나간 사람처럼 거실을 뛰어다니는 동안 샤워를 마치고 나온 상훈은 그런 지훈을 경멸하듯 보았다.

 

 “미친놈...”

 

 상훈은 지훈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혀를 끌끌차더니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지훈은 상훈이 자신을 경멸하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았다. 여주로부터 답장이 왔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너무 기분이 좋았다. 지훈은 여주가 제주도 소풍에 대해선 답하지 않았다는 것도 잊은 채 싱글벙글 현관을 나섰다.

 

 출근하는 차 뒷자리에서 여주는 피곤한 얼굴로 찬미를 보며 지훈의 문자에 대해 입을 열었다.

 

 “박지훈 전무가 토요일에 제주도로 소풍가자고 하네.”

 

 “잘 됐네요. 요즘 많이 힘들어하셨잖아요. 제주도 가서 기분 전환하고 오는 것도 나쁘지 않죠.”

 

 “남자랑 가면 더 심란해지지 않을까?”

 

 “일단 만나자고 허락하신 건 사장님이잖아요. 어차피 만나긴 해야 될 텐데 제주도 가서 놀다 오는 것도 나쁘지 않죠. 그리고 제가 보기엔 박 전무 좋은 사람 같아요. 순수하고 착해 보이던데. 사장님이 벽을 치면 함부로 그 벽을 넘거나 부수지 않을 거예요.”

 

 “그 착하고 순수한 성격 때문에 내가 거절도 못하고 이러고 있지.”

 

 “사장님이 꼭 남자를 만나야 한다면 저는 박 전무가 딱이라고 생각해요. 박 전무는 좀 애 같은 면이 있긴 하지만 사람이 솔직하고 순수해요. 사장님이랑 잘 어울려요.”

 

 “그래서 제주도 여행 허락 하라는 거지?”

 

 “첫 데이트부터 퇴짜는 불쌍하잖아요.”

 

 여주는 눈을 좌우로 굴리며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결심을 했다.

 

 “그래. 갔다가 짜증나면 비행기 타고 바로 돌아오지 뭐.”

 

 여주는 결정을 내리자마자 곧바로 지훈에게 문자를 보냈다.

 

 여주-제주도 소풍 준비는 니가 할 거지? 난 내일 몸만 간다.

 

 출근 중이던 지훈은 여주의 문자를 받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좋아했다. 오늘도 일에 집중하긴 글러보였다. 지훈은 재킷 안쪽 주머니에서 펜과 종이를 꺼내 내일 뭘 할지 벌써 정하기 시작했다.

 

 **

 

 오후 7시 여주가 퇴근을 준비할 때쯤 지훈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지훈-내일 아침 9시 30분 비행기 예약하려고 하는데 괜찮아?

 

 여주-응

 

 지훈-그럼 내일 9시까지 김포공항에서 만나!

 

 여주-응

 

 지훈-지난번에 그분도 같이 오나?

 

 여주-응 내 비서 언니는 나랑 항상 세트야. 너도 비서 데려와도 됨.

 

 지훈-3장만 예약할게

 

 여주는 성의 없이 답장을 보냈지만 사실 여행에 대한 약간의 기대를 마음에 품고 있었다. 은근 집순이인 여주는 일 때문에 가는 출장과 1년에 한 번 있는 가족여행을 제외하곤 여행을 가본 적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트라우마를 건드렸던 박 대리 사건 때문에 여주는 기분 전환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여주는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찬미에게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비서 언니 내일 9시 30분 비행기래. 오늘 내 방에서 같이 짐 싸자.”

 

 “별로 안 내켜 하시더니 들뜨셨네요.”

 

 찬미는 어린 아이를 보듯 살짝 미소를 지으며 여주에게 말했다.

 

 “오랜만의 여행이잖아.”

 

 여주는 찬미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미소를 지었다.

 

 한편 지훈은 일찌감치 퇴근해 마트에서 직접 장을 봐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 직접 도시락을 싸기 위해서였다. 지훈은 장 본 것들을 냉장고에 전부 집어넣고 캐리어를 방으로 가져갔다. 뭘 그렇게 많이 준비할 예정인지 캐리어엔 사람도 들어갈 것 같았다. 소풍이 아니라 이민을 준비하는 모양새였다.

 

 “내일 점심은 내가 싼 도시락 같이 먹고 한라산도 가고 바닷가 갔다가 분위기 있기 저녁 식사 하고...아 맞다 호텔에 미리 연락해놔야지.”

 

 지훈은 혼잣말을 중얼 거리며 가방에 옷을 개어 넣었다. 그때 마침 상훈은 막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와 있었다. 상훈은 지훈의 방에서 목소리가 들리자 문에 귀를 붙이고 지훈의 혼잣말을 엿들었다.

 

 “내일 제주도를 간다 이거지?”

 

 상훈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지훈은 상훈이 음침하게 웃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너무나 즐겁게 소풍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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