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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은 모태솔로(개정판)
작가 : HOSA
작품등록일 : 2017.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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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데이트부터 나타난 얄미운 방해꾼
작성일 : 17-11-20     조회 : 251     추천 : 0     분량 : 5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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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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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일 오전 9시. 여주와 찬미가 공항에 도착하자 공항 입구에 서 있던 지훈이 미소를 한 가득 머금고 손을 흔들며 뛰어왔다. 여주는 전방 100m 앞에서도 보일만한 노란 형광색 티셔츠에 얼룩덜룩한 청바지를 입고 여지없이 패션테러리스트의 용모를 뽐냈다. 매일 정장만 입던 지훈은 캐주얼한 하늘색 셔츠에 청바지를 입었다. 가뜩이나 어려보이는 얼굴에 까만 뿔테, 캐주얼한 옷까지 합해지니 영락없는 고등학생의 비주얼이었다. 나이에 맞지 않게 청순미가 넘쳐흘렀다.

 

 “여기! 여기!”

 

 “안녕하세요 박 전무님.”

 

 손을 흔드는 지훈에게 찬미가 먼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캐리어 말고 손에 든 건 뭐야?”

 

 여주는 지훈이 왼손에 들고 있는 도시락을 가리켰다.

 

 “도시락!”

 

 지훈은 자랑스럽게 도시락을 내밀었다.

 

 “도시락 통인 건 나도 알겠는데 제주도 가는데 도시락을 왜 싸.”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데. 여주는 해맑게 웃고 있는 지훈의 얼굴에 정색으로 대답했다. 여주는 로맨틱이라곤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여주에게 연인들의 낭만이란 투자한 노력 대비 결과가 부실한 유치한 것이었다. 이것은 트라우마와 별 상관이 없었다. 원래 여주는 꽁냥꽁냥이 체질에 안 맞았다.

 

 “데이트 하면 꼭 한 번 해보고 싶었어.”

 

 지훈은 여주의 반응에도 기죽지 않고 헤죽거리며 웃었다.

 

 “에휴...그래...하고 싶은 거 다 해봐...”

 

 여주는 지훈의 해맑음에 졌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수속을 마친 세 사람은 비행기에 탑승했다. 아주 자연스럽게 여주 옆에는 찬미가 앉았다.

 

 “국내선은 퍼스트 클래스가 이름만 퍼스트라 북적북적 하네.”

 

 여주가 어수선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요즘 수학여행 시즌이라 프레스티지석도 다 꽉 차더라 미안해.”

 

 지훈은 여행 시작부터 여주의 심기를 거슬렸을까 안절부절못했다.

 

 “미안하라고 말한 게 아니라 그냥 시끄럽겠다 싶어서 말한 거야. 맘 쓰지 마.”

 

 비행이 시끄러울까 걱정했던 여주는 걱정이 무색하게 이륙 5분 만에 잠이 들었다.

 

 “피곤했나보네...”

 

 지훈이 여주의 자는 얼굴을 보며 말했다. 여주는 평소에는 인상이 강한 편이었지만 자는 모습은 아기 같았다. 입을 앙다물고 자는 버릇이 있는 여주는 평소보다 볼 살이 튀어나와 꽤 귀여웠다. 지훈은 비행 내내 여주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40분의 비행 후 착륙 안내방송 소리에 여주가 잠에서 깼다.

 

 “어우씨 잠 들었네.”

 

 잠깐 잔 것뿐인데도 여주는 얼굴이 약간 부어 흐리멍텅해 보였다. 여주는 잠이 덜 깬 눈을 꿈뻑거리며 기지개를 켰다.

 

 “딱 맞춰 일어나셨네요.”

 

 찬미가 웃으며 여주를 바라봤다.

 

 “잘 잤어?”

 

 지훈 역시 웃으며 여주를 바라봤다. 늘 세보이던 여주가 맹하게 부은 얼굴로 변하자 지훈과 찬미는 여주가 꽤 귀엽다는 생각을 하며 웃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걸 알 리 없는 여주는 자신을 보며 웃는 두 사람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나 잘 때 둘이 내 욕했어? 왜 둘 다 웃고 있어? 내 얼굴에 낙서한 건 아니지?”

 

 여주가 자기 얼굴을 손으로 문대며 물었다. 잉크라도 묻어있을까 의심한 것이다. 여주의 그런 모습에 지훈과 찬미는 푸흐흡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찬미가 주머니에서 작은 거울을 꺼내 보여주며 대답했다.

 

 **

 

 제주도는 선선하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였다. 햇살이 반짝반짝 내리쬐고 나무들이 바람에 살랑이는 게 보였다. 공항 밖에는 지훈이 미리 준비해 놓은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호텔에 짐 놓고 좀 이르지만 도시락 먹자.”

 

 지훈이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도시락을 흔들어댔다.

 

 “굳이 왜 제주도까지 와서 서울에서 싸온 음식을 먹어야하는지 모르겠지만 네가 준비하느라 고생했으니 먹어 줄게.”

 

 여주는 츤데레처럼 굴었다. 어차피 지훈의 도시락을 먹어줄 생각이었으면서 꼭 앞부분에 툴툴대야 직성이 풀렸다.

 

 20분 쯤 차를 달려 도착한 호텔에서 맨 처음 세 사람을 반긴 것은 뜻밖의 방해꾼이었다. 하와이안 셔츠에 검은색 선글라스, 머리에 왁스를 잔뜩 발라 멋을 낸 상훈이 나타나 환영 인사를 했다.

 

 “웰컴~호텔 아무르 앱솔루 제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상훈은 하와이 전통 춤 비슷한 것을 추면서 능글맞게 셋을 맞이했다.

 

 “뭐야 형이 왜 여깄어?”

 

 지훈은 날벼락을 맞은 표정으로 상훈에게 따졌지만 상훈은 지훈의 물음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무시했다.

 

 “여주씨 옆에 계신 분은 지난번에도 봤는데 비서 분인가요?”

 

 “네. 사장님 개인비서 백찬미라고 합니다.”

 

 “찬미씨도 웰컴~ 자 어서 짐 정리하고 와요. 맛있는 점심 준비해뒀어요.”

 

 상훈은 약을 파는 사기꾼 같은 말투로 찬미와 여주의 등을 떠밀었다.

 

 “도시락 싸왔다던데요?”

 

 여주는 등을 떠미는 상훈의 손길을 뿌리치고 똑바로 서서 말했다. 상훈의 정신 사나운 환대에도 여주는 흔들리지 않았다. 여주는 얼렁뚱땅 자기 맘대로 하려는 사람을 싫어했다.

 

 “제주도에 왔으면 제주도 특산물을 먹어야죠. 셰프한테 다 말해놨어요.”

 

 상훈은 여주의 차가운 반응에도 굴하지 않고 눈썹을 들썩이며 능글맞게 말했다.

 

 “특산물 형이나 많이 먹고 우리는 도시락 먹을 거라고. 근데 왜 형이 여기 있냐니까?”

 

 지훈은 아까보다 언성을 높였지만 상훈은 이번에도 지훈의 말을 무시했다.

 

 “찬미씨 옥돔이랑 흑돼지 좋아해요?”

 

 상훈은 공략하기 어려운 여주를 두고 비교적 쉬워 보이는 찬미를 공략하기로 했다.

 

 “좋아하긴 하는데...”

 

 “역시! 빨리 짐 두고 와요.”

 

 상훈의 찬미 공략은 성공적이었다. 상훈은 셋의 캐리어를 재빨리 직원에게 맡기고 여주와 찬미를 엘리베이터 안으로 밀어 넣었다.

 

 “지난번부터 왜 이러는 거야?”

 

 지훈은 여주가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본격적으로 상훈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모태솔로 데이트 잘 하라고 도와주는 거잖아. 제주도 오면서 도시락을 왜 싸?”

 

 상훈은 대놓고 뻔뻔하게 나갔다. 쿨하지 못하게 왜 이러냐는 듯 재수 없는 비웃음으로 지훈을 쳐다봤다.

 

 “내가 오늘 제주도 올 거 어떻게 알았어?”

 

 “네가 집에서 아주 노래를 부르길래 다 들으라는 줄 알았지.”

 

 “도움 필요 없으니까 상관하지 마.”

 

 형제는 당장이라도 주먹을 날릴 듯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를 노려봤다. 지훈은 짜증과 분노로 인상을 썼고 상훈은 챔피언의 여유를 보이며 깔보듯 지훈을 노려봤다. 형제의 기싸움이 한창이던 때 여주와 찬미가 대충 짐정리를 마치고 돌아왔다.

 

 “형제끼리 아직 할 얘기 남았나요?”

 

 마치 눈싸움을 하는 것처럼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두 사람을 향해 여주가 말했다.

 

 “아니요. 다 끝났어요. 식사하러 가시죠.”

 

 상훈은 금세 능글맞게 웃으며 여주와 찬미에게 뛰어갔다. 여자 앞에선 항상 매력적으로. 여자 꼬시기 만렙인 상훈은 0.1초 만에 표정을 휙휙 바꿀 수 있는 위인이었다. 반면 지훈은 여전히 얼굴에서 짜증기가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저희 호텔에 놀러 와서 실내에서 밥을 먹는 건 바보짓이죠. 저희 호텔 레스토랑 테라스가 국내 호텔 레스토랑 중에 가장 아름답다고 자부합니다.”

 

 상훈은 레스토랑 테라스를 자랑하며 가장 좋은 자리에 일행을 앉혔다. 곧이어 상훈이 짝짝 두 번 박수를 치자 제주도 특산물로 만든 요리들이 줄줄이 나왔다. 지훈은 상훈을 째려보며 자신이 가져온 도시락을 테이블에 쾅 내려놓았지만 상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죄 없는 여주와 찬미만 두 형제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테이블엔 멋진 플레이팅의 산해진미와 지훈이 싸온 투박한 김밥이 어울리지 않는 풍경을 이뤘다. 찬미는 지훈이 신경 쓰여 지훈의 김밥을 제일 먼저 맛보았다.

 

 “파는 것보다 훨씬 맛있는 것 같아요.”

 

 밥은 질고 시금치는 질기고 내용물이 너무 많아 간도 짰으나 찬미는 지훈의 기분을 풀기 위해 과장된 칭찬을 사용했다. 옆에 있던 여주도 찬미를 따라 지훈의 김밥을 맛보려는 찰나 상훈이 끼어들었다.

 

 “음식은 방금 만들어서 따듯하고 신선할 때 먹어야 돼요. 이거 드셔보세요.”

 

 상훈은 산해진미들을 여주와 찬미 앞으로 밀어 놓았다. 여주가 지훈의 김밥으로 향하던 젓가락을 요리 접시로 옮기자 지훈은 뾰루퉁한 표정으로 입이 터질듯 김밥을 잔뜩 물었다. 지훈은 도시락통을 아예 자기 앞에 끌어다두고 다른 요리엔 젓가락도 대지 않았다. 여주는 그런 지훈을 신경 쓰지 않는 듯 상훈이 준비한 요리 몇 점을 먹더니 이내 말없이 지훈의 도시락통을 자기 앞으로 끌고 왔다. 여주가 조용히 지훈의 김밥을 다 먹어주자 지훈은 금세 화가 풀렸다.

 

 “한 30분 쉬었다가 한라산 올라가는 거 어때?”

 

 식사가 마무리될 때 쯤 지훈이 물었다.

 

 “무슨 한라산이야. 승마는 어떠세요?”

 

 상훈은 지훈을 무시하며 승마를 권했다.

 

 “저는 승마는 별로. 어릴 때부터 승마하는 사람들 보면 말이 너무 불쌍했어요. 무거운 안장에 50키로가 넘는 사람까지 허리에 태우면 얼마나 허리가 아프겠어요. 한라산 올라가서 맑은 공기나 쐬죠 뭐.”

 

 여주는 딱히 지훈의 편을 들려던 것은 아니었다. 여주는 정말 승마를 별로 안 좋아했다. 하지만 지훈은 여주가 자기편을 들어준다는 생각에 ‘내가 이겼다’라는 표정으로 상훈을 쳐다보며 으쓱해했다.

 

 “그럼 제가 좋은 등산 코스로 안내할게요.”

 

 상훈은 포기하지 않고 등산에 따라가겠다고 선언했다.

 

 “형은 또 왜 가? 좀 빠져 제발.”

 

 “일단 저는 비서 언니랑 위에 가서 짐도 정리하고 옷도 좀 갈아입을게요.”

 

 형제가 다시 기싸움을 시작할 기미가 보이자 여주는 찬미를 데리고 자리를 피했다. 두 형제의 기싸움을 보는 것도 지긋지긋했고 아까 지훈의 김밥을 먹다가 이에 끼어 버린 시금치도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네 사람은 옷을 갈아입고 호텔 프론트 앞으로 모였다. 여주는 트레이닝복마저도 평범하지 않았다. 명랑 운동회의 옛날 감성이 물씬 풍기는 위아래 흰색 트레이닝복이었다. 분명 등산복으로 적합한 옷은 아니었지만 여주가 가지고 온 옷 중 가장 편한 옷이었다. 지훈은 평범하게 검은색 후드티에 검은색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있었고 상훈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 등산복을 풀착용 하고 있었다. 잘생긴 것 빼고는 하나부터 열까지 닮은 게 없는 형제였다.

 

 상훈은 한라산에 도착하자마자 마치 관광 가이드라도 된 냥 앞장서 일행을 주목시켰다.

 

 “등산은 초보시죠? 한라산은 영실 코스로 올라가서 어리목 코스로 내려오는 게 볼 것도 많고 좋아요.”

 

 상훈이 잘난 체 하며 여주에게 말했다.

 

 “확실히 박 부사장님은 등산 고수처럼 보이네요. 옷이 무슨 엄홍길인줄...”

 

 여주는 상훈의 옷이 너무 유난스럽다고 생각했다. 가래떡같은 자기 옷이 더 눈에 튀는데도 말이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상훈의 준비성을 칭찬하고 그의 전문성에 반했겠지만 여주는 상훈의 옷이 구리다는 생각만 했다.

 

 상훈이 안내한 영실 코스는 가파르고 계단이 많았다. 등산 고수인 상훈과 워낙 튼튼하게 태어난 여주는 끄떡없었지만 지훈과 찬미는 얼마 못가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여주는 틈틈이 찬미를 끌어주며 올라가고 지훈은 맨 꼴찌로 헉헉대며 간신히 일행을 쫓아왔다.

 

 “여주씨 안 힘드세요? 제가 찬미씨 서포트 할게요. 먼저 올라가세요.”

 

 상훈은 찬미의 손을 잡고 여주를 앞으로 보냈다. 찬미는 상훈과 손을 잡는 것이 왠지 모르게 두근거렸다. 너무 오래간만에 남자 손을 잡은 것이기도 했지만, 찬미는 상훈과의 첫 만남부터 상훈이 멋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확실히 상훈 같은 미남을 길바닥 짱돌 보듯 할 사람은 세상에 여주밖에 없었다. 여주는 선두로 치고 나가 제일 먼저 정상을 찍고 상훈과 찬미는 손을 잡고 따라 올라왔다. 지훈은 후들거리는 다리로 제일 나중에 정상에 올랐다. 가만히 서 있어도 자동으로 개다리 춤이 춰질 지경이었다.

 

 “산은 일찍 와야 되는데 오후에 와서 서둘러 내려가야겠어요. 지훈이가 등산을 해본 적이 없어서 아무 생각 없이 한라산에 가자고 했나 봐요. 사전 조사도 없이 숙녀 분들을 산에 데리고 오다니. 정말 어쩔 수 없는 모태솔로라니까요,”

 

 상훈은 힘든 와중에도 틈틈이 지훈을 까내렸다. 지훈은 그런 상훈의 말투가 거슬렸지만 대꾸할 기운이 남아있지 않았다. 정상에서 잠시 숨을 돌린 넷은 완만한 어리목 코스로 산을 내려갔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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