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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은 모태솔로(개정판)
작가 : HOSA
작품등록일 : 2017.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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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에게 임자가 생긴 날
작성일 : 17-11-22     조회 : 247     추천 : 0     분량 : 6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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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개인 줄 알았는데 엄청 크구나.”

 

 지훈이 쭈그리고 앉아 야망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야망이는 여의도 공원에 있는 모든 개들 중에 가장 컸다.

 

 “검은색 리트리버. 물론 잡종일 수도 있어. 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려왔거든. 순종 보증서 그딴 건 있지도 않지.”

 

 여주는 순종 보증서가 없는 것이 마치 더 좋은 것이라도 되는 냥 자랑스럽게 말했다.

 

 “얘 몇 살이야?”

 

 “내가 3년 전에 데려왔고 데려올 당시 2살 정도로 추정된다고 했으니 5살.”

 

 “이름은 왜 야망이로 지었어?”

 

 “회사차원에서 단체로 유기견 보호소 봉사를 갔는데 안락사 기다리는 애들 중에 얘가 있었어. 다른 개들은 다 겁에 질려가지고 벌벌 떨고 사람을 무서워하는데 얘만 사람한테 꼬리치고 애교부리고 난리더라고. 특히 나한테. 내가 사장인 건 어떻게 알았는지 나한테 서비스가 아주 좋았어. 자기를 데려가 달라는 거지. 그래서 보자마자 ‘아 얘는 야망이 있는 애다’라고 생각했고 그 야망을 실현시켜주려고 데려왔어. 이름은 당연히 야망이가 되었고.”

 

 “멋진 이름이네.”

 

 지훈은 환하게 웃었고 야망이는 그런 지훈이 맘에 드는지 세차게 꼬리를 흔들어댔다.

 

 세 사람과 야망이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평화로운 산책을 했다. 별 대화는 없었지만 마치 10년 지기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처럼 세 사람은 적막이 불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찬미는 나타나지 않는 상훈이 계속 신경 쓰였다. 자신의 문자를 봤다면 여기로 올 것이 뻔했는데 계속 나타나지 않는 것이 이상하게 불안했다.

 

 세 사람이 잠시 벤치에서 쉬기로 하고 자리에 앉으니 갑자기 야망이가 짖기 시작했다.

 

 “야 너 갑자기 왜 그래! 똑똑한 놈이 사람들 많은 곳에서 짖으면 안 되지!”

 

 여주가 다급하게 야망이를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때 멀리서 운동복 차림의 상훈이 여주 일행 쪽으로 뛰어왔다. 제주도 때의 등산복처럼, 스포츠 브랜드 TV CF에 나올 것 같은 전문적인 차림새였다.

 

 “여주씨 또 보네요!”

 

 야망이는 상훈을 향해 짖고 있었다. 상훈이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는 동안 야망이는 상훈을 보며 맹렬히 짖었다. 물 기세는 아니었지만 야망이는 상훈이 꽤 싫은 눈치였다.

 

 “어? 안녕하세요.”

 

 여주는 이 상황이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상훈을 싫어하는 지훈이 직접 데이트 장소를 얘기했을 리는 없으니 말이다. 여주는 찬미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아이고 개가 흥분했나보네요. 여주씨 개예요?”

 

 상훈은 자신을 향해 계속 짖어대는 야망이가 거슬렸지만 마치 개를 좋아하는 척 웃으며 여주에게 물었다.

 

 “네. 근데 얘 원래 이렇게 안 짖는데 왜 그러지. 조용!”

 

 여주가 달래도 소용이 없자 찬미는 미리 준비한 개껌을 주머니에서 꺼내 야망이 입에 물려주었고, 이내 야망이는 조용해졌다.

 

 “뭐지? 배가 고팠나? 밥 먹은 지 얼마 안 됐는데. 개껌 달라고 조를 애도 아니고.”

 

 여주는 야망이의 마음을 읽을 수 없으니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어떻게 알고 자꾸 쫓아다니는 거야?”

 

 야망이가 조용해지자 이번엔 지훈이 서늘한 눈빛으로 상훈에게 물었다. 지훈은 야망이 대신 상훈을 물어뜯을 기세였다.

 

 “봄엔 공원에서 조깅을 해줘야지. 나 원래 여기 가끔 와.”

 

 상훈은 여유 넘치는 자세로 능글맞게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이란 걸 아는 상대로서는 속이 뒤집힐 표정이었다.

 

 “거짓말 하지 마!”

 

 지훈이 상훈에게 언성을 높이자 야망이가 다시 짖기 시작했다. 상훈이 싫어서 짖는 것인지 둘이 싸우는 게 거슬리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야 조용히 해 애 흥분했잖아.”

 

 여주가 짖어대는 야망이에게 물이라도 먹이려 줄을 느슨하게 하는 순간 야망이는 여주의 손에서 벗어나 앞으로 튀어나갔다.

 

 “어이씨 뭐야 야망아!”

 

 여주는 급히 야망이의 뒤를 쫓았고 나머지 일행도 여주의 뒤를 따라갔다. 하지만 야망이는 엄청난 속도로 여주를 금세 따돌리고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한참을 달리다 다리가 풀린 여주는 자리에 주저앉아 숨을 골랐다.

 

 “우리 나눠져서 찾아봐요.”

 

 뒤따라 온 찬미는 팀을 나눠 찾아볼 것을 제안했다.

 

 “그럼 나랑 여주랑 한 팀 하고 형이랑 비서님이 한 팀 해요.”

 

 지훈은 혹시나 상훈이 여주와 함께 가기로 할까 선수를 쳤다. 상훈은 내심 아쉬워했지만 타이밍을 놓쳤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넷은 두 팀으로 갈라져 야망이를 찾기 시작했다.

 

 **

 

 “미안해 내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지훈은 자기가 상훈과 싸우는 바람에 야망이가 도망갔다고 생각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니야. 원래 야망이가 똑똑해서 누가 소리 좀 지른다고 흥분할 애가 아닌데 오늘 좀 이상하네.”

 

 “밤을 새더라도 내가 꼭 찾을게.”

 

 “금방 찾겠지. 누가 훔쳐갈 덩치도 아니고 누굴 따라갈 놈도 아니니까.”

 

 여주와 지훈이 1시간 동안 돌아다니며 공원을 샅샅이 살폈지만 야망이는 보이지 않았다. 둘은 잠깐 앉아 쉬기로 하고 근처 벤치를 찾았다.

 

 “내가 요즘 늦게 퇴근해서 야망이가 삐진 걸까.”

 

 생각보다 오랜 시간 야망이가 나타나지 않자 여주는 자책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야. 잠깐 공원 구경하고 금방 돌아올 거야.”

 

 지훈의 위로가 끝나기 무섭게 근처 수풀에서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수풀 속에서 나타난 것은 야망이와 검은색 치와와였다. 야망이는 허락도 없이 집에 친구를 데려와 눈치를 보는 초등학생처럼 멋쩍게 꼬리를 흔들며 여주에게 다가왔다.

 

 “야망아! 얜 또 누구야. 야망아 너 또 뭘 주워 온 거니...개를 주워오면 어떡해.”

 

 여주는 기쁜 표정으로 야망이를 안았다가 옆에 있는 치와와를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자기랑 닮아서 데려왔나 봐. 까맣고 작은 게 자기 동생 같이 느껴졌나.”

 

 지훈이 야망이 옆에서 혀를 내민 채 해맑게 웃고 있는 검은색 치와와를 보며 말했다.

 

 “하다하다 개가 개를 입양하네...이거 남의 개면 어떡하지. 주인이 찾고 있을 텐데.”

 

 야망이가 돌아온 기쁨도 잠시 여주는 또다시 걱정에 잠겼다. 자신처럼 개를 잃어버리고 망연자실 할 주인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근데 이 치와와 목줄이 없는데? 버려진 거 아닐까? 자세히 보니까 좀 꼬질꼬질한 것 같기도 하고.”

 

 “근처 동물병원에 가서 내장 칩이 있는지 확인해보자. 반려동물등록제 때문에 주인 있는 개면 내장 칩이 있을 수도 있어.”

 

 **

 

 한편 상훈과 찬미는 서로 말도 없이 어색하게 걷고 있었다. 찬미는 큰소리로 야망이를 부르며 어색한 분위기를 떨쳐내려 했지만 야망이를 부르는 사이사이의 정적은 어쩔 수 없이 불편했다.

 

 “매번 고마워요.”

 

 상훈이 정적을 깼다. 찬미는 자신을 쳐다보는 상훈의 눈을 애써 피하며 못들은 척을 했다. 그러나 상훈은 굴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찬미씨가 보기에도 지훈이보다 제가 여주씨랑 더 잘 어울리는 거죠?”

 

 “그런 거 아니에요.”

 

 찬미는 상훈을 보지 않고 대답했다.

 

 “아니에요? 그럼 왜 알려주는데요?”

 

 상훈은 자신의 시선을 피하는 찬미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

 

 “그냥...”

 

 “그냥?”

 

 “...보고...싶어서요.”

 

 찬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찬미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었다. 찬미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뱉어진 말이었다. 심장이 터질듯 뛰다 못해 찬미의 의지까지 뛰어넘어버린 것이었다. 상훈은 찬미가 자신을 좋아한단 걸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괜히 놀라는 척을 했다.

 

 “나 좋아해요?”

 

 “...”

 

 상훈의 돌직구에 찬미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나 찬미의 표정이 이미 대답하고 있었다.

 

 “나도 찬미씨 좋아해요.”

 

 상훈은 말없이 땅만 바라보고 있는 찬미에게 웃는 얼굴로 개수작을 부렸다. 상훈은 진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말투로 찬미의 마음을 흔들어놓고 있었다.

 

 “네?”

 

 “아직 여자로 좋아하진 않지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아...”

 

 “우리 만나볼래요?”

 

 “저희 사장님 좋아하시는 거 아니었어요?”

 

 “만나다보면 찬미씨가 더 좋아질 수도 있잖아요.”

 

 “...”

 

 상훈은 잔인하리만큼 찬미의 마음을 이용하고 있었다. 상훈은 찬미를 미끼로 여주와 자신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 했다. 찬미도 분명 그의 영혼 없는 말투와 표정에서 그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단 걸 알 수 있었다. 화를 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찬미의 마음속엔 분노 대신 슬픔이 밀려왔고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이렇게 우리끼리만 아는 비밀로 마주치는 것도 짜릿하고 좋지 않아요? 마치 운명인 것처럼.”

 

 여주 모르게 계속 여주의 데이트 정보를 달라는 뜻이었다. 여주의 데이트 장소엔 항상 당신도 함께하니 그때 보자는 식의 궤변이었다. 짜고 치는 만남에 운명이 웬 말인가. 그런 만남은 운명과 정반대에 있는 것이었다. 상훈은 자기 뜻대로 남들을 속여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식의 표현이 가능했다. 남이 보기에 운명처럼 보이는 것. 실제로 운명인지, 당사자가 어떻게 느끼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찬미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사장님한테 더 이상 거짓말하고 싶지 않아요.”

 

 찬미는 상훈이 자신의 마음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참을 수 있었지만 여주에게 계속 거짓말을 하는 것은 괴로웠다. 여주는 지옥 같은 집에서 나를 구해준 사람이고 나의 가족이 되어 준 사람이고 항상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니까. 찬미는 아주 사소한 것이더라도 여주에게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찬미씨는 24시간 여주씨랑 붙어있어야 하는데 그럼 찬미씨를 언제 만나요? 자기만의 시간이 있긴 해요? 항상 여주씨에게만 맞추고 살죠? 아무리 비서라지만 항상 따라다니라는 건 지나치게 이기적이라고 생각 안 해요? 찬미씨 인생은요?”

 

 “...”

 

 상훈은 찬미의 표정에서 죄책감을 읽어냈고 찬미에게 죄책감 대신 여주에 대한 원망을 심어주기로 작정했다. 여주는 당신에게 자유를 주지 않고 착취하는 존재다. 그러니까 사소한 거짓말쯤은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상훈은 찬미에게 그렇게 세뇌하고 있었다. 평소 개인시간이 없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져본 적이 없던 찬미는 상훈의 한 마디에 마치 자신이 그런 불만을 갖고 있던 것처럼 느꼈다. 여주에게 거짓말을 한다는 죄책감이 약간은 가려지는 기분이었다.

 

 “거봐. 어차피 이렇게 만날 수밖에 없어요. 호텔 부사장인 내가 식품 회사 사장 비서랑 공식적으로 만날 약속을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상훈은 찬미의 갈등을 귀신같이 읽고 점점 더 찬미에게 최면을 걸었다. 찬미는 상훈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마다 흔들렸다. 상훈이 여주를 만나기 위해 자신에게 변명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찬미는 거부하지 못했다. 그가 좋았고 여주에게 거짓말을 하면서라도 그를 만나고 싶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를 보지 않고서는 못 견딜 것 같았다. 짝사랑은 이성과 논리로 설명하기 힘든 그런 이상한 감정이니까. 결국 찬미는 걸음을 멈추고 상훈을 바라보며 말했다.

 

 “좋아요.”

 

 찬미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찬미의 휴대폰이 울리며 여주의 이름이 떴다. 야망이를 찾았다는 여주의 연락이었다. “다행이에요.”라고 말하는 찬미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이제 찬미는 매 순간마다 여주에게 거짓말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여주는 그런 찬미의 변화를 눈치 채지 못했다.

 

 **

 

 여주와 지훈은 야망이와 치와와를 데리고 근처 동물병원으로 들어갔다.

 

 “저희 집 개가 이 치와와를 여의도 공원에서 데리고 왔는데 주인을 몰라서요. 혹시 내장 칩이 있는 지 확인 부탁드려요.”

 

 수의사가 치와와의 뒷목덜미를 살펴봤지만 내장 칩은 발견되지 않았다. 여주는 퍽 난감했다. 이름표도, 목줄도, 내장 칩도 없어 주인을 찾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 동물병원에 치와와를 맡길 수도 없고 주인이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를 개를 자기가 데려가 키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 내가 데려갈게. 당장 내일부터 주인 찾아보면 되지. 전단지도 붙이고 인터넷에도 올리고.”

 

 치와와를 안고 어쩔 줄 몰라하는 여주에게 지훈이 말했다. 지훈은 치와와가 퍽 마음에 들었다.

 

 “그러다 주인이 안 나타나면 어쩌려구?”

 

 “그럼 내가 계속 키우지 뭐. 요 녀석 뭔가 나랑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지훈은 여주의 품에 안긴 치와와를 자기 품으로 가져왔다. 지훈은 소심하게 꼬리치며 안겨있는 조그만 치와와가 자신과 닮았다고 느꼈다. 사람들은 자신과 닮은 개를 좋아한다는 연구결과가 들어맞은 모양이다. 치와와도 지훈의 품이 편한지 온전히 몸을 맡겼다.

 

 동물병원을 빠져나온 여주와 지훈은 차로 돌아가는 길에 치와와의 이름을 지어주기로 했다.

 

 “잠깐 키우더라도 이름은 필요할 거 같은데...계속 치와와야라고 부를 순 없잖아.”

 

 “그럼 내 작명센스로 지어볼게. 야망이 이름도 내가 지었으니까. 음...흑임자 어때?”

 

 “흑임자? 검은 깨 말하는 거야?”

 

 “어. 덩치도 쪼그맣고 색깔도 까맣고 딱인 것 같아. 게다가 부를 때 임자~이렇게 부를 수 있잖아. 솔로인 남자한테 임자가 생기는 거지.”

 

 여주는 장난꾸러기 같은 얼굴로 지훈을 보며 말했다. 지훈은 여주의 작명 솜씨에 파하핫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마음에 들어.”

 

 지훈이 품에 안긴 치와와에게 임자라고 부르자 치와와도 마음에 드는 지 꼬리를 흔들어댔다. 지훈과 여주의 뒤로 빨간 노을이 예쁘게 지고 두 사람은 한 폭의 그림처럼 걸었다. 지훈은 여주와 만난 이후로 오늘이 가장 멋진 날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개를 찾으러 돌아다니다 끝난 하루였지만 여주와 단 둘이 추억을 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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