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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은 모태솔로(개정판)
작가 : HOSA
작품등록일 : 2017.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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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여름휴가
작성일 : 17-11-23     조회 : 260     추천 : 0     분량 : 6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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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훈은 몇 주 동안이나 치와와 주인을 찾았지만 자신이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유기견으로 확정된 치와와는 흑임자라는 이름으로 지훈의 가족이 되었고 야망이와는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자식끼리 친하면 부모들도 친해진다고, 개끼리 친구를 먹으니 개 주인끼리도 꽤나 편해졌다. 지훈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퇴근 후 흑임자를 데리고 여주 동네로 갔다. 같이 개 산책을 하자는 제안은 언제나 통했다. 데이트가 아니라 개 산책이었기 때문에 부담도 없었고 방해꾼인 상훈도 없었다.

 

 거의 매일 여주와 만나 산책을 하면서 지훈이 알아낸 정보는 굉장히 사소한 것들이었다. 여주의 혈액형이 O형이라는 것, 정확할 날짜는 비밀이지만 여주의 생일은 겨울이라는 것, 여주는 생일파티를 하지 않는다는 것, JUNE식품 구내식당 밥이 맛있다는 것, 야망이는 정말 화장실에서 일을 본다는 것, 야망이는 개집만 세 개라는 것, 여주는 부자들 사교클럽에 회비만 내고 나가질 않아서 아버지한테 자주 혼난다는 것, 여주네 집은 무교라는 것. 산책 때마다 차곡차곡 모은 이 사소한 정보들은 지훈의 일기장에 지훈의 일상 대신 자리를 잡았다.

 

 달력의 가장 큰 숫자가 7로 바뀌고 여주는 매년 그랬듯 아버지, 찬미, 야망이와 함께 할 여름휴가 계획을 세웠다. 여주는 매년 여름마다 서해안에 있는 별장으로 가족 여행을 갔다. 야망이를 비행기 화물칸에 태우는 것이 미안하기도 했고 여주 본인도 장시간 비행을 싫어했기 때문에 여주의 여름휴가는 늘 조촐했다.

 

 여주-나 다음 주에 일주일 정도 서해안으로 가족끼리 휴가 갈 예정이라 오늘부터 산책 같이 못해. 미리 처리할 일이 많아서.

 

 퇴근 직전 문자를 받은 지훈은 섭섭함을 감출 길이 없었다. 문자를 받기 전까지 지훈은 여주와의 특별한 여름휴가를 꿈꾸고 있었다. 거의 매일 만났으니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지훈-나는 여름에 너랑 같이 하와이 갈까 했는데...

 

 여주-너는 가족끼리 여행 안 가?

 

 지훈-우리 집은 여행 같은 거 안 가.

 

 여주는 왠지 지훈이 측은했다. 형제사이만 봐도 딱히 가족 분위기가 좋아보이진 않았다. 여주는 마치 친구가 자기 하나뿐인 애를 두고 다른 친구들과 놀러가는 기분이었다. 여주는 10분정도 고민하다 지훈에게 답장을 보냈다.

 

 여주-너도 같이 갈래? 가족 별장 갈 건데. 갑자기 휴가 날짜 뺄 수 있어?

 

 지훈-어!!!갈래!!!

 

 지훈은 여주의 문자를 읽자마자 쏜살같이 답장을 보냈다. 엄청나게 빨리 온 답장을 보며 여주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었다.

 

 여주-다음 주 수요일 아침 10시에 우리 집에서 출발할 거야. 같이 갈 거면 짐 챙겨서 와.

 

 지훈-꼭 갈게!

 

 “비서언니 여름휴가에 지훈이도 같이 가기로 했으니까 참고해서 준비해줘.”

 

 여주는 마침 커피를 가져온 찬미에게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찬미는 지훈의 이름을 듣고 잠깐 움찔하더니 곧 차분히 대답을 하고 찻잔을 내려놓았다. 찻잔을 내려놓자마자 찬미가 한 일은 문자를 보내는 것이었다. 여주는 찬미의 문자 상대가 김준 회장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찬미의 문자를 받은 것은 상훈이었다. 찬미는 지훈이 여름휴가에 동행한다는 이야기와 휴가 일정, 별장 주소까지 적어 상훈에게 보냈다. 상훈이 여주 별장에 나타나는 건 결코 우연일 수 없는 상황이지만 별장 근처 바다에서 만나는 것으로 우연을 가장할 수 있었다. 찬미는 어느새 상훈이 자길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2대 2 데이트 따위를 상상하고 있었다.

 

 동상이몽의 상태로 휴가 날이 다가왔다. 벤x 7인승 SUV 운전석에는 찬미가, 그 옆에는 여주가, 중간 자리에는 지훈과 김준 회장이, 맨 뒤에는 야망이와 흑임자가 탔다. 김준 회장은 지훈이 휴가에 동행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지 못했기 때문에 심기가 불편했다.

 

 “박 전무도 같이 갈 줄은 몰랐는데. 벌써 그 정도 사이가 됐나?”

 

 김준 회장은 헛기침을 하며 살짝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지훈과 여주가 가깝게 지내는 건 좋은 일이었지만 자신에게 말도 없이 가족 여행에 동행한 것은 영 탐탁지 못했다. 지훈은 잘못한 것도 없이 괜히 가시방석이었다.

 

 “비서언니 우리 아빠한테 말 안 했어? 저번에 내가 지훈이랑 휴가 같이 간다고 말하자마자 어디에 문자 하길래 당연히 아빠한테 말하는 줄 알았는데?”

 

 여주가 찬미를 보며 물었다. 찬미는 상훈을 신경 쓰느라 회장에게 내용을 전달하는 걸 잊어버리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제가 요즘 정신이 없어서 중요한 일을 전달 못 해드렸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찬미는 경직된 얼굴로 회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평소 덤벙대는 모습을 보인 적 없던 찬미가 실수를 하니 여주와 김준 회장은 의아하게 생각했다. 지훈은 자신 때문에 분위기가 어색해진 것이라 생각해 마른 침만 연신 삼켜댔다.

 

 “뭐 이왕 이렇게 된 거 같이 재밌게 놀지 뭐. 어차피 좀 있으면 박 전무가 내 사위 될 텐데.”

 

 김준 회장은 숨조차 맘대로 쉬지 못하고 있는 지훈을 위해 허허 웃으며 분위기를 풀었다. 지훈은 회장에게 맞춰 억지로 하하하 웃느라 눈가에 경련이 일었다.

 

 “사위 될 지 말지는 내가 결정하는 거지 아빠. 멀미나기 전에 얼른 잠이나 주무셔.”

 

 여주네 별장에 도착할 때까지 차 안은 조용했다. 출발한 지 10분 만에 김준 회장은 잠이 들었고 지훈도 출발 때 너무 긴장을 한 탓에 회장 옆에서 새근새근 잠이 들어있었다. 평소라면 아버지가 자든 말든 찬미와 떠들었을 여주도 평소와 다른 찬미의 표정 때문에 수다를 떨 맛이 나지 않았다.

 

 별장에 도착하자 머리가 희끗한 별장관리인이 여주 일행을 맞이했다. 2층으로 된 별장은 화려한 듯 수수했다. 바다와 걸어서 20분 정도 떨어진 별장은 뒤쪽엔 산을 두고 앞쪽엔 잔디가 깔린 마당을 갖고 있었다. 별장 건물은 전통가옥과 현대식 건물을 합쳐놓은 듯한 모양새로 나무 느낌의 붉은 색 세모 지붕과 반질반질한 대리석 계단이 의외로 잘 어울렸다.

 

 지훈이 별장을 구경하는 사이 여주는 별장 관리인에게 짐 정리를 부탁하고 바다로 나갈 준비를 했다.

 

 “해 지기 전에 방파제 낚시 어때? 야망이랑 임자는 차 타고 오느라 멀미했으니 집에서 좀 쉬게 하고 인간들은 낚시 콜? 잡은 고기로 회 떠먹자.”

 

 여주가 별장 창고에서 낚싯대를 무더기로 집어 들며 말했다.

 

 “난 됐다. 낚시가 뭐가 재밌어. 젊은 딸내미 여행 취미가 나보다 더 지루해서야 원. 나는 관리인하고 이 근처 산림욕장이나 가련다.”

 

 김준 회장은 상기된 여주를 뒤로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의 냉랭한 반응에도 여주는 명랑함을 잃지 않았다.

 

 “아빠는 매년 안 가니까 그럴 줄 알았다. 지훈이랑 비서언니는 콜이지?”

 

 “네.”

 

 “그래!”

 

 찬미는 늘 그렇듯 기계적으로 대답했고 지훈은 싱글벙글 웃으며 좋아했다. 지훈은 사실 낚시를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여주가 벌써 즐거운 표정으로 얘기하니 덩달아 기분이 업된 것이었다.

 

 여주는 낚시를 갈 생각에 콧노래를 부르며 낚시도구를 챙기고 지훈은 그 옆에서 신기하다는 듯 여주를 구경했다. 찬미는 두 사람이 낚시도구에 정신이 팔린 틈을 타 상훈에게 문자를 보냈다.

 

 찬미-S해수욕장이랑 S항구 중간에 있는 방파제에서 낚시할 거예요

 

 걸어서 방파제에 도착한 세 사람은 낚싯대를 하나씩 들고 듬성듬성 자리를 잡았다.

 

 “지훈이 너는 모르겠지만 내 손은 매직핸드야.”

 

 여주가 마치 엄청난 비밀을 말하듯 은밀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매직핸드가 뭔데?”

 

 순수한 지훈은 정말 여주의 손에 비밀이 있다고 생각해 관심을 보였다. 여주는 지훈의 호기심어린 얼굴을 보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내 손은 말이야...1시간이면 물고기 20마리를 잡을 수 있어. 오로지 낚시로만 말이지.”

 

 여주는 마치 대단한 비밀이라도 말해주는 냥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에이 거짓말.”

 

 “진짜야.”

 

 그러나 여주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낚싯대를 던진 지 1시간이 지나도록 물고기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여주야 1시간 지났는데...”

 

 지훈이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여주는 유구무언이었다. 대신 옆에 있던 찬미가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사장님이 1시간에 20마리를 잡은 건 사실인데 그건 10년 전에 낚싯배를 타고 나가서 잡은 거였어요. 그 이후로는 하루에 3마리 이상 잡은 적이 없...”

 

 “크흠! 배고픈데 이제 그만하고 밥 먹으러 가자. 생각해보니 여름에 회 먹으면 식중독 걸려.”

 

 민망했던 여주는 헛기침을 하며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허탕을 친 세 사람이 낚싯대를 정리하는 사이 누군가 방파제 쪽으로 다가왔다. 상훈이었다.

 

 “어이! 고기 많이 잡았어요?”

 

 상훈은 월간 낚시의 표지모델 같은 차림으로 물고기가 가득 찬 양동이를 흔들어댔다.

 

 “엥? 너네 형이 왜 또 여기 있냐?”

 

 “뭐야 저거 또 어떻게 왔어.”

 

 상훈이 올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여주와 지훈은 그 자리에 굳은 채 멍하니 상훈을 쳐다봤다. 그리고 찬미는 여주의 뒤에 서서 자기도 모르게 짓고 있는 미소를 감췄다. 거기에 응하듯 상훈은 찬미를 향해 살짝 눈짓을 했다. 마치 사랑과 전쟁의 한 장면과도 같았다.

 

 “여주씨 옷이 너무 특이해서 저 멀리서도 여주씨인 걸 알아봤어요.”

 

 상훈의 이 말만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여주는 그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여주는 빨간색 장미가 잔뜩 그려진 셔츠에 통이 너무 커서 펄럭거리는 반바지를 입고 분홍색 스카프가 매달린 낚시꾼 모자를 쓰고 있었다. 여주가 방파제에서 낚시를 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넓은 방파제에서 단번에 여주를 찾아낸 것은 여주의 패션 덕분이었다.

 

 “이번에도 우연인가요?”

 

 여주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상훈에게 물었다.

 

 “이 정도면 우연이 아니라 운명 같은데요?”

 

 상훈이 반짝반짝 빛나는 치아를 뽐내며 치명적인 미소를 지어보였지만 여주의 표정은 ‘개수작 사절’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형 내 전화기에 추적 칩 같은 거 달았어? 우연이라는 게 말이 돼? 국내여행은 잘 다니지도 않는 사람이!”

 

 옆에서 부글부글 속을 끓이던 지훈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상훈과 지훈은 당장이라도 주먹다짐을 할 듯 서로를 노려봤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지만 여주는 그 상황보다 상훈의 양동이에 관심이 가 있었다. ‘이 커다랗고 싱싱한 물고기들을 직접 잡았단 말인가?’ 여주는 양동이에 머리를 박고 상훈의 낚시스킬을 궁금해 했다. 한편 찬미는 혹시 지훈이 상훈을 때리지나 않을까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형이 널 왜 쫓아다니겠어. 요즘 국내에도 좋은 여행지가 많아서 한 번 도는 중이야.”

 

 상훈은 언제 눈싸움을 했냐는 듯 이내 능글맞게 대답했다. 욱하는 남자는 매력이 없다는 걸 상훈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훈은 항상 매력적인 남자로 보이려 애썼다. 생선들만 한참 쳐다보던 여주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거 직접 잡은 거예요?”

 

 여주가 양동이를 가리키며 상훈에게 물었다.

 

 “네. 반대편 방파제에서 잡았어요.”

 

 상훈은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사실 모두 횟집에서 사온 생선들이었다. 그것도 자연산이 아닌 양식.

 

 “역시 내 손이 잘못된 게 아니라 자리를 잘못 잡은 거였어. 매년 여기서만 하니까 못 잡은 거야.”

 

 여주의 이성적 능력이라면 분명 이 생선들을 낚시로 잡은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지만 여주는 자존심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였다. 여주가 자신의 말에 속자 상훈은 더 기세등등해졌다.

 

 “이거 같이 회 떠서 먹을까요? 어차피 혼자는 다 먹지도 못하는데.”

 

 상훈의 제안에 여주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여주는 낚시를 좋아하는 거지 회를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게다가 지훈이 상훈을 불편해 하는 상황에서 굳이 같이 회를 먹을 필요는 없었다.

 

 “저희는 조개 칼국수 먹으러 갈 거라서.”

 

 여주는 상훈과 합석하지 않기 위해 합의 되지도 않은 메뉴를 미리 정해져있던 것처럼 말했다. 수많은 메뉴 중 하필 조개 칼국수를 선택한 것은 방파제로 오는 길에 우연히 본 조개 칼국수 식당 간판이 때마침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찬미는 상훈과 함께 있고 싶었지만 여주에게 의심을 살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상훈은 찬미의 눈치를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찬미씨는 회를 먹고 싶은 거 같은데요?”

 

 상훈의 발언에 당황한 찬미는 어버버 말을 더듬었고 여주는 찬미의 표정을 살폈다. 여주가 보기에 당황한 찬미의 모습은 정말 회가 먹고 싶었는데 차마 말하지 못한 사람처럼 보였다. 찬미가 자신을 속이느라 불안한 것이란 걸 여주는 알지 못했다.

 

 “아...비서 언니가 회를 좋아했었나? 그럼...”

 

 여주는 “그럼 같이 회를 먹으러 갈까”라고 말하려 했지만 애처로운 표정의 지훈을 보니 차마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여주는 찬미와 지훈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계속 머리를 굴렸다.

 

 “그럼 찬미씨 저랑 둘이 회 먹을래요?”

 

 여주가 한참을 고민하자 상훈이 찬미를 보며 말했다. 어차피 여주가 자신과 함께 가지 않을 것 같다고 판단한 상훈은 찬미의 호감이라도 확실히 하려 했다. 찬미를 확실히 구슬려야 계속 지훈의 데이트를 방해하고 여주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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