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여주로부터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받은 지훈은 좌절하고 있었다. 20년 동안 꿈꿔왔던 자신의 첫사랑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린 것이 믿기지 않았다. 여주를 찾아가 무릎이라도 꿇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여주의 문자처럼 자신이 20년 전 여주의 모습을 쫓고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서 그것이 여주에게 상처를 준 건 아닌지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지훈은 여주와의 마지막 문자 이후 한동안 술에 빠져 살았다. 지훈은 매일 퇴근길에 혼자 바에 들려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들이켰다. 상훈은 매일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오는 지훈을 보며 지훈과 여주의 이별을 알아챘고, 이참에 지훈을 완전히 보내버릴 작전을 구상했다.
상훈은 망나니 상류층 자제들 사이에서 유명한 매춘부 솔희를 섭외했다. 지훈이 술에 취해 판단 능력이 흐려졌을 때 매춘부를 접근시켜 더러운 스캔들이 나게 할 참이었다. 결혼이 엎어진 것도 모자라 술에 절어 매춘부와 놀아난 것을 아버지가 아신다면 지훈은 완전히 후계자 자리에서 밀려날 것이라고 상훈은 생각했다.
여느 날처럼 지훈이 바에서 술을 마시고 슬슬 정신이 몽롱해질 때쯤 솔희가 지훈의 옆자리에 앉았다. 솔희는 하얀 피부, 육감적인 몸매, 검은색 긴 생머리, 큰 눈과 도톰한 빨간 입술을 가져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잘생긴 오빠 왜 술을 혼자 마셔요?”
가슴이 훤히 보이는 검은색 원피스를 입은 솔희가 교태를 부리며 지훈에게 말을 걸었다. 바 안의 다른 남자들은 모두 솔희에게 시선을 뺏겼지만 지훈은 흐리멍덩한 눈으로 솔희의 얼굴을 한 번 쓱 쳐다보고는 다시 말없이 술을 마셨다.
“과묵한 게 컨셉이에요? 과묵한 남자 섹시하지.”
자신을 쳐다보지 않는 지훈의 고개를 돌리려 솔희는 긴 손가락으로 지훈의 귀를 살짝 쓰다듬었다. 그렇게 하면 보통은 고고한 척하던 남자도 넘어오곤 했다. 그러나 지훈은 화를 내듯 솔희의 손을 내쳤다.
“나 알아요? 모르는 사이에 왜 귀를 만져요?”
지훈은 풀린 눈과 입으로 솔희에게 짜증을 냈다. 하지만 솔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제 보니 귀여운 남자네. 자기 순결하다고 어필하는 거예요?”
솔희는 지훈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간드러지게 웃었다. 지훈은 솔희의 얼굴을 한참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리고 무심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용건만 간단히 해요.”
“그럴까요 그럼? 나랑 잘래요?”
솔희가 여유롭게 웃으며 당돌하게 물었다. 솔희는 본격적인 유혹을 위해 지훈에게 가슴이 잘 보이도록 자세를 고쳤다. 솔희의 섹시하게 꼰 다리는 고의적으로 지훈의 다리를 치고 지나갔다. 지훈은 그런 솔희를 아래위로 한 번 훑더니 파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끅끅끅끅 아 진짜 인생이 뭐 이러냐. 내가 좋아하는 여자는 갑자기 문자로 이별통보를 하더니 들러붙는 거라곤 이런 여자라니 참나 하하하하.”
“이런 여자라니 기분 나쁘네. 나 인기 좋거든요?”
솔희는 약간 자존심이 상했다. 늘 자신과 자려고 치근대는 남자만 있었지 자기를 업신여기는 남자는 처음이었다.
“인기 좋으면 좋다는 남자랑 자요. 나한테 이러지 말고.”
지훈은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정색하며 말했다.
“오늘은 그쪽이랑 자고 싶어요. 솔직히 나 예쁘죠?”
“거 참 말 드럽게 많네. 내 이상형은요 키170 넘고, 웬만한 남자보다 힘세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 한대 값이어도 막상 동대문 마네킹보다 촌스럽고, 많이 배웠는데도 교양보단 유머가 잘 어울리고, 내가 좋다고 졸졸 쫓아다녀도 계속 틱틱대는 씩씩한 여자거든요.”
“그런 여자가 어디 있어요?”
“근데 그런 여자가 있어요.”
지훈은 여주를 생각하며 다시 술을 한 모금 삼켰다.
“근데 왜 그 여자랑 안 있고 혼자예요?”
“그러게요.”
“솔직히 말해 봐요. 그쪽 고자죠? 아님 게이인가? 그런 여자가 이상형이라 나 같이 예쁜 여자를 마다한다는 게 말이 돼요?”
지훈은 피식하고 짧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쪽은 예쁜 여자가 아니라 불쌍한 여자지.”
“뭐요?”
“그렇게 예쁜 여자가 옷까지 쫙 빼입고 술집에서 자기 싫다는 남자 바짓가랑이나 잡고 있잖아. 당신 겉으로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자신이 최고라고 뽐내지만 사실 속으로는 길거리의 평범한 사람들 부러워하죠? 싸구려 정장 입고 매일 야근에 시달려도 떳떳할 수 있는 그 사람들이 부러울 거야. 부모 잘 만나 빚 없이 유학 다녀오고 탄탄대로 잘 나가는 애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당신한테 그게 보여요. 열등감. 그래서 안 예뻐.”
솔희는 지훈의 말을 듣고 가슴에 총을 맞는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기야 하겠지만 직접 귀로 들으니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지훈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기 때문에 거짓말을 들킨 것처럼 속이 쓰렸다.
“같이 안 잘 거면 안 자는 거지 무슨 그런 말을 해요? 기분 나쁘게.”
“그쪽이 나를 먼저 불쌍한 남자 만들었잖아. 그쪽이 말만 안 걸었어도 나는 멋지고 고독한 남자였는데 그쪽이 치근대는 바람에 그쪽 같은 여자랑 노는 불쌍한 남자가 됐잖아.”
지훈의 모욕에 화가 난 솔희는 자리를 박차고 바를 나갔다. 그리곤 상훈에게 전화를 걸어 한참동안 지훈의 흉을 봤다. 드럽게 깨끗한 척 한다, 고고한 척이 아주 조선시대 선비다, 고자가 분명하다. 그런 욕을 한참하며 솔희는 자신의 작업이 실패한 것에 대해 핑계를 댔다.
지훈은 솔희를 만난 날 이후로 더 이상 바에 가지 않았다. 솔희와 대화를 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여주를 좋아하고 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훈은 20년 전 여주가 아니라 지금의 여주를 좋아하고 있었다.
지훈은 여주에게 다시 돌아갈 때를 기다리며 자신을 추슬렀다. 안경 대신 렌즈를 끼고, 늘 단정하고 무난하게 입던 옷 대신 섹시해 보이는 옷을 골라 입고, 여러 운동을 시작해 더 이상 빌빌이로 보이지 않도록 힘을 길렀다. 다시 여주에게 돌아갈 때는 세상 그 누구보다 멋진 남자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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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여주가 기획한 신제품은 해가 바뀌고 나서야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신년 신상품으로 판매를 개시한 성인 전용 와인 아이스크림은 SNS 홍보를 통해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판매 개시 이틀 만에 대란을 일으켰고 생산분은 2주도 되지 않아 동이 났다. 좋은 시장 반응으로 본격적인 생산이 결정되고 여주가 기획한 신제품은 뉴스에까지 나오게 되었다. 사장이 직접 처음부터 기획한 상품이 흥행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누군가의 성공을 눈뜨고 보지 못하는 사람은 항상 있었다. 여주가 일의 성공으로 바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낼 때 누군가는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재수 없는 년. 어릴 때도 내 발목을 걸고넘어지려고 애를 쓰더니만 늙어서도 사람 열 받게 하네? 왜 하필 지금이냐고! 왜!”
최고급 자개 명패가 올려진 책상 앞에 앉은 건장한 남자는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벽으로 집어던졌다. 그가 보고 있던 모니터에는 JUNE식품 신제품에 대한 기사가 떠 있었다. 그의 분노의 대상은 여주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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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제품이 출시된 지 두 달쯤 지났을 때 여주는 익명의 편지 한 통을 받게 됐다. 여주의 집으로 배달된 것이었는데 우체부가 아니라 누군가 개인적으로 넣은 모양새였다.
「너는 만들지 말아야 할 걸 만들었다. 신제품 생산을 중단하지 않으면 너희 회사를 망하게 하겠다.」
익명의 편지는 컴퓨터로 프린트 된 것으로 우체국 소인이 찍혀 있지 않았다. 너무 짧고 터무니없는 내용이었기에 여주는 누군가의 장난이라 생각하고 아무렇지 않게 편지를 버렸다.
그로부터 2주일 뒤 여주에게 다시 편지가 도착했다.
「내 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 너희 회사 제품에 사람이 먹어서는 안 될 것을 넣었다.」
역시나 익명의 편지는 우체국 소인 없이 컴퓨터로 프린트된 것이었다. 여주는 이번에도 장난이겠거니 싶었지만 제품에 무얼 넣는다고 하니 찜찜한 기분이 들어 서재 책상 서랍에 편지를 보관했다. 일을 크게 만들어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한다거나 특별히 다른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여주가 편지를 책상 서랍에 넣던 그 시간에 시골 마을의 슈퍼들에서는 이상한 과자들이 발견되고 있었다. 어린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았던 JUNE 식품 초코볼 과자에 ‘위험! 먹으면 죽음!’이라고 적힌 메모지가 붙어있었다. 슈퍼 주인들은 누군가의 장난이겠거니 메모지를 떼어버렸고, 결국 불상사가 발생했다. 충청북도의 한 슈퍼에서 6세 아이가 메모지가 붙어있었던 과자를 먹고 쓰러진 것이다. 이 일은 당일 저녁 뉴스로 보도되었고 슈퍼 주인은 이상한 메모지가 붙은 과자에 대해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를 본 다른 지방의 슈퍼 주인들도 같은 메모를 보았다며 방송국에 제보를 했는데 모두 한결같이 입을 모아 JUNE 식품의 초코볼 과자에 메모가 붙어 있었다고 말했다.
여주는 뉴스를 보며 협박편지를 떠올렸다. 협박편지가 장난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여주는 은밀히 경찰조사를 의뢰할 참이었다. 그러나 여주가 채 경찰에 신고를 하기도 전에 한 방송사는 JUNE식품의 사장이 협박 편지를 받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독점 보도했다. 여주는 편지에 대해 누구에게도 이야기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협박범이 방송사에 직접 제보한 것이 분명했다.
뉴스 보도가 나간 다음날, 인터넷은 독이 든 과자에 대한 이야기로 시끄러웠다. 식품 회사 사장의 안일한 대처로 여섯 살 아이가 죽게 생겼다는 글들이 대형 커뮤니티 사이에서 빠르게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협박범 대신 여주를 비난했고, 다른 제품에도 독이 들어 있을 수 있다는 의심이 퍼지며 JUNE식품에 대한 불매로 이어졌다.
여주는 보관했던 협박장을 경찰에 제출하고 정식으로 수사를 요청했다. 그러나 협박장에서는 여주의 지문 외에 발견된 것이 없었고, 보낸 이의 이름도 없는 프린트물이라 얻을 수 있는 단서는 전무했다. 여주네 집 앞 CCTV와 자동차 블랙박스를 조사해보니 편지를 넣고 간 것은 어린아이로 밝혀졌다. 경찰은 범인이 어린 아이를 시켜 편지를 넣게 한 것으로 추정했다.
경찰이 메모가 발견된 슈퍼들에서 과자들을 수거해 성분 검사를 한 결과 모두 동일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 그야말로 협박용이었는지 살충제 양은 어린아이가 먹더라도 사망에 이르지는 않는 정도만 들어있었다. 같은 종류의 과자지만 메모가 붙어 있지 않은 과자들에서는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 독이 든 과자는 슈퍼별로 한 개뿐이었다.
경찰이 수사를 진행하는 며칠 사이 JUNE식품 제품을 납품받지 않겠다는 소매점들은 갈수록 늘어났다. 뉴스보도 이후 독이 발견되었던 동종의 제품 외에도 JUNE식품의 제품은 거의 팔리지 않았으니 당연했다. 결국 여주는 기업체 납품용을 제외한 생산을 대폭 줄여야 했다. 신제품의 생산도 마찬가지였다. JUNE식품의 주가는 폭락했고 회사는 위기를 맞이했다.
사태 수습으로 바쁜 여주의 핸드폰에는 읽지 못한 문자들이 쌓여 있었다. 그중엔 지훈이 보낸 문자도 있었다.
지훈-뉴스 봤어. 괜찮아?
여주는 이미 충분히 머릿속이 복잡했기 때문에 며칠 째 답장을 기다리고 있는 지훈의 문자를 못 본 체 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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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수사는 별 진척이 없었다. 여주네 집에 협박 편지를 넣었던 아이를 찾았지만 너무 어린 탓에 자신에게 편지를 준 사람을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눈이 작은 남자였다는 것밖에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없었다. 독이 든 과자가 발견된 슈퍼들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독이 든 과자가 발견된 슈퍼들은 하나 같이 영세한 구멍가게였기 때문에 CCTV가 없었다. 게다가 인구가 적은 시골마을에 위치해 있어 목격자도 기대할 수 없었다.
결국 식품 업계에서 1위를 달리던 JUNE식품은 다른 기업에게 1위 자리를 내줘야 했는데, 1위를 물려받은 다른 기업에도 곧 위기가 찾아왔다. 협박범의 다음 타겟은 1위 자리를 물려받은 창 식품이었다. 창 식품 사장의 자택에도 여주가 받은 형태의 협박 편지 한통이 날아들었다. 역시나 어린 아이를 통해 배달된 것이었다.
「JUNE 식품과 같은 꼴을 당하기 싫다면 100억 원을 현찰로 준비해라. GPS가 달려있지 않은 빨간색 차에 돈을 가득 실어 이번 주 일요일 밤 12시까지 광명역 앞에 두어라. 운전자는 너의 여비서여야 하고 혼자여야 한다.」
창 식품 사장은 협박편지를 보자마자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잠복수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협박범이 말한 일요일, 형사들은 광명역 근처에 미리 포진해 협박범이 오기를 기다렸다. 돈이 든 차는 시동을 걸면 얼마 못 가 차가 멈추도록 장치를 해두었다.
12시가 되자 어떤 남자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돈이 든 차에 탑승했다. 미리 해둔 장치 덕분에 시동을 건 지 몇 초 되지 않아 차는 멈췄고 경찰들은 쉽게 남자를 체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전 아무것도 몰라요. 저는 여자친구랑 데이트 중이었는데 어떤 복면 쓴 남자 둘이 저희를 납치했어요. 그리고 고시원 방 같은 데다 가두더니 저만 풀어주면서 여자 친구를 살리고 싶으면 광명역 앞에 있는 빨간 차를 가지고 오라고 했어요.”
체포된 남자는 풀린 다리로 벌벌 떨며 형사에게 말했다.
“거짓말 하지 마! 그럼 네 여자 친구랑 어디 갇혀 있었는지 말해봐. 차는 어디로 갖고 오라고 했는데?”
인상이 험악한 형사는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소리쳤다.
“노량진 원룸촌 골목에서 납치됐어요. 잡혀간 곳은...정신이 없어서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겠는데 창문 없는 고시원 방이었어요. 차를 빨리 안 가져가면 여자 친구가 다칠까봐 풀려나자마자 무작정 뛰어서 택시 잡고 광명역으로 온 거예요. 차는 염리동 소금길 입구에 갖다 놓으라고 했어요.”
체포된 남자는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 울먹이며 말했다.
“그럼 왜 경찰에 먼저 신고를 안 했어? 광명 가는 것보다 경찰에 신고하는 게 더 빠를 거 아니야!”
인상이 험악한 형사는 체포된 남자에게 계속 윽박을 질렀다.
“TV 시사프로 같은 거 보니까 경찰을 믿으면 안 될 거 같아서 그랬어요. 신고 했다가 경찰이 문 두드려서 범인들이 여자친구 죽이면 어떡해요.”
“어쨌든 차를 타고 도주하려다 걸렸으니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당신이 한 발언은 재판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돈이 없으면 국선 변호인이 선임됩니다. 다 들었죠?”
인상이 험악한 형사 옆에 있던 마른 체구의 형사가 체포된 남자에게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며 경찰차 문을 열었다.
현행범으로 체포된 남자는 경찰서로 가는 내내 발을 동동 구르며 여자친구 걱정을 했다.
“형사님 저 잡아가는 건 둘째 치고 제 여자친구 좀 살려주세요. 제가 잡힌 거 범인들이 알았으면 여자친구 죽일 수도 있어요. 여자친구 핸드폰 위치추적해서 찾으러 가주세요 제발.”
“아 거참...연기인지 뭔지...일단 여자친구 이름이랑 번호 알려줘 봐요.”
“김지은. 010-xxxx-xxxx요.
잠시 후 핸드폰 위치 추적 결과를 통보받은 형사가 인상을 구기며 체포된 남자에게 물었다.
“노량진에서 납치됐다면서요? 신림동으로 뜨는데? 신림동 xxx-xx번지.”
“거기 제 여자친구 집이에요. 도망쳐서 집으로 갔을 수도 있으니까 거기 지구대에 가 봐달라고 해주세요.”
형사는 아직도 남자가 의심스러웠지만 남자의 말대로 경찰을 보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