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야, 최시후! 뭔 놈의 술을 그렇게 마셔댔어! 똑바로 안 서?”
벌컥,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최시후는 비틀거렸다. 제대로 몸도 못 가눈 채 그의 매니저인 정남에게 들려오는 모양새를 보니 꽤나 취한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연예의 모든 것>은 녹화방송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었다. 며칠 전, 방금 봤던 옷과 비슷한 정장을 입고 나갔던 것을 본 것 같기도 하고. 오늘밤은 또 무슨 스케줄이 있었길래 이토록 취했는지, 현재가 알 리 없었다.
“…… 나, 안 취했어! 멀쩡하다고!”
시후는 거실이 떠나가라 쩌렁쩌렁하게 외쳐댔다. 하지만 혀 꼬부라진 소리를 듣자 하니 그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아마 내일 아침엔 집에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방금 전까지 텔레비전 화면에 반듯하게 앉아있던 최시후는 술에 절은 채 현재의 앞에 나타났다. 마냥 지켜볼 수만은 없던 그는 뛰어가다시피 정남에게 달려갔다. 땀을 뻘뻘 흘리며 죽어가는 표정을 짓는 그를 도와 최시후의 몸을 부축했다.
영화 찍는다고 만들었던 몸 때문에, 그의 몸은 평소보다 더욱 무거웠다. 2층의 그의 방으로 갈 힘이 없었던 그들은 시후의 축 처진 몸을 거실 소파 위에 내동댕이쳐버렸다. 잠깐이었지만, 이 집의 거대한 크기에 짜증이 날 정도의 경험이었다.
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술에 절은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 최시후.
그리고 그의 아들 최현재.
물론, 그 사실은 비밀이다.
최시후의 매니저이자 유일한 친구인 한정남은 이 세상에서 그들이 부자지간이라는 사실을 아는 단 한 사람이었다.
“삼촌. 오늘 무슨 일 있었어?”
현재가 그제서야 정남을 향해 물었다. 괘짝으로 마셔도 멀쩡한 사람이 이렇게 인사불성인 상태면 분명 특별한 사건이 있었다는 증거다.
“아니, 뭐 일이 있었다기보다……”
정남이 우물쭈물 말하기를 망설였다.
“왜, 무슨 일인데. 이 사람, 술 취하면 절대 아무것도 기억 못하니까, 말해봐.”
한정남이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최시후 한 사람뿐이었다. 근육과 살로 탄탄하게 이루어져있는 떡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후를 악마, 괴물 등등에 빗대곤 했다. 물론, 현재와 둘이 있을 때만.
“오늘 영화촬영 뒷풀이가 있었거든. 매번 다들 바빠서 미루다가 겨우 시간 맞춰서 형식상 했는데…… 이번 영화에서 상대역으로 나온 여배우 고민정 알지? 그 여자한테 뺨 맞고 열 받아서 들이부은 것 같아. 그 불여시 같은 게 매번 촬영 때마다 시후한테 꼬리 엄청 쳤지…… 그런데 애가 꿈쩍도 안 하니까 쌓인 게 많았는지, 오늘 술 취해서 다짜고짜 컵에 든 술 쏟고, 뺨까지 때리더라고.”
눈을 가늘게 뜬 현재는 ‘고민정’을 떠올렸다. 조신한 외모, 평소의 선행으로 아침드라마와 주말드라마에 단골로 나오는 일명 ‘며느리 스타일’의 여배우였다.
그 여자가 그런 일을 벌였다니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오히려 악역은, 최시후가 더 걸맞지 않나. 게다가 도대체 이 남자가 어디가 좋아서.
슬쩍 본 정남의 겨드랑이 부분이 극심하게 젖어있는 것을 보고 현재는 고개를 돌렸다. 힘든 것보다는 열 받아서 땀이 났겠지. 아마 그의 아들이 이 자리에 없었다면, 정남은 술에 취해 기억 못할 최시후를 먼지 나게 흠씬 두드려 팼을지도 모른다. 당분간 휴식기간이라 스케줄은 없을 테니까.
거친 숨을 씩씩 내뱉던 정남이 현재와 두 눈을 마주치자마자, 속마음을 들켰는지 화들짝 놀랐다. 역시, 그의 생각이 맞았나 보다. 재빠르게 냉장고에서 찬물을 꺼내 정남에게 건넸다. 숨을 참고 단숨에 물을 들이키는 그를 향해 현재가 입을 열었다.
“삼촌이 옆에서 고생이 많아요.”
“야, 매번 삼촌, 삼촌, 그렇게 부르지 좀 마. 징그럽잖아.”
“그럼 뭐라고 불러요?”
“그, 뭐…… 형. 형이라는 말도 있잖아.”
“삼촌 나이도 있는데, 형이라고 부르는 게 더 징그러워요.”
어두운 조명아래에서도 푸스스, 부서지게 웃는 현재가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아오, 말하는 거 하고는. 지 아빠랑 똑같아가지고.”
그를 따라 웃던 정남이 멈칫했다. 자신의 말실수를 금새 알아차린 그가 다급하게 말을 돌렸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까, 깜빡 잊고 회사에 들려야 되는데 잊고 있었네. 이, 이만 갈게. 내일 아침에 보자.”
현재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말을 해버렸다. 그의 아버지와 그가 같다는 말. 10년동안 현재는 그의 아버지를 세상에서 가장 원망하고 경멸했다. 곁에서 모든 것을 지켜봤던 정남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그는 절대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지 않겠노라, 매 순간, 숨을 쉴 때마다 다짐하며 사는 소년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단 한번도 잊은 적 없다. 자신의 아버지가 얼마나 차갑고 냉정한 사람인지. 보여지는 모습과 아주 다른, 얼마나 끔찍이…… 피도 눈물도…… 정도 없는 남자인지.
그러나 그윽하게 내려앉은 현재의 눈동자는 동요가 없었다. 19살밖에 되지 않은 저 어린 아이는 수많은 일을 겪고 이미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림자와 같은 자신의 삶을. 드러낼 수 없이 숨어사는 자신의 존재를.
“네, 삼촌.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정남은 서둘러 문을 닫고 나갔다.
그 후로 한참이나 멍하니 닫힌 현관문만 바라보고 서 있던 현재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잠든 줄 알았던 시후가 어느새 흐느적거리며 소파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야?”
“어디긴 어디야. 집이지.”
그의 질문에 한겨울의 내리는 눈보다 더 차가운 목소리로 현재가 대답했다.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하는 시후는 매 마른 손으로 자신의 붉은 얼굴을 연신 쓸어 내렸다. 10년을 같이 살다 보니, 현재는 지금 그의 행동이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알고 있었다.
“……물.”
이미 현재의 손은 얼음과 물이 가득 든 컵이 들고 있었다. 그것을 본 시후는 아들이 웃을 때와 같은 웃음을 짓는다. 긴장이 잔뜩 풀린 그의 얼굴이 푸스스, 부서지게 웃는다.
“역시 우리 아들~. 아빠에 대해 모르는 게 없네?”
“하지마.”
소파에 앉은 채 두 팔을 뻗어 안으려고 하는 그에게, 현재는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하지만 포기를 모르자, 현재는 그를 거칠게 밀쳐버렸다.
“하지 말라고!”
그 바람에 그가 들고 있던 컵이 쨍그랑, 대리석 바닥위로 떨어져 깨졌다.
그 소리에 시간이 멈춘 것처럼, 그들 사이에 정적만이 흘렀다. 공기마저 얼어붙은 듯 어둡게 내려앉았다. 한숨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이렇게 가까이 있으면서도, 그들의 거리는 서로에게 목소리가 닿지 않을 만큼 멀었다.
그 침묵을 먼저 깬 것은 현재였다.
“술 취했을 때만 당신과 나…… 아빠고, 아들이지?”
칼날처럼 날카롭게 묻는 현재의 얼굴을 시후는 조용히 올려다 보았다. 그의 눈빛은 어둠 속의 별처럼 선명해 보였다.
굳게 닫혀있던 시후의 입술이 떨어지면서 다 쉬어버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다 너 때문이야. 네 엄마가 떠난 건, 다 너 때문이라고.”
또 시작이었다.
이성을 잃었을 때만 튀어나오는 원망.
본래의 색을 잃어버린 채 흘러내리는 눈물.
현재는 뜨거운 숨을 몰아쉬었다.
“어차피 술 취해서 기억도 못할 말, 함부로 꺼내지마. 그리고 엄마는, 당신 때문에 떠난 거야. 나한테 뒤집어 씌울 생각하지마.”
소스라치게 냉정한 그의 말에 시후의 눈이 더욱 붉게 물들어갔다. 그 꼴 같지 않은 표정을 보기 싫어, 현재는 매몰차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아빠라고 안 부른다고 섭섭하게 생각하지마. 당신이 먼저 부탁한 거였어.”
10년전, 9살이었던 현재는 어느새 훌쩍 커버렸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아직도 빗속에서 애타게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던 그때에서 멈춰버렸다.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아니, 자라지 못했다. 굳게 닫힌 문처럼 그는 아직도 그 시간에서 살고 있었다.
“그리고 어차피 우리 사이는 되돌릴 수 없잖아. 나는 당신의 비밀을 지켜주는 대신, 여태껏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살았어.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그러니까 당신도 약속 지켜.”
현재는 자신의 침실로 향하던 발걸음을 잠시 멈췄다. 잊지 않았겠지만, 자신과의 약속이 또렷이 새겨지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또다시 붉게 흔들리는 시후의 눈동자를 보며, 현재는 입을 열었다.
“엄마, 찾아오겠다는 약속. 꼭 지켜.”
***
현재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어김없이 아침밥을 차렸다.
아버지인 시후와 단 둘이 사는 이 드넓은 집에는, 여느 부잣집처럼 가사일을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당시 10살이었던 현재가 그를 찾아온 그날부터, 유명인사인 시후에게 아들이 있다는 사실은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비밀이었기에 이 집을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은 매니저인 정남밖에 없었다.
그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지만, 어린 현재는 눈치가 빨랐다.
어린 아이는 금새 아버지가 사는 세상에 적응해버렸다.
조금이라도 발을 헛디디면 끝을 알 수 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질, 불안하고 위태로운, 인기가 모든 것을 판명하는 세계.
시후와 초등학교부터 동창이었던 매니저 한정남은 기꺼이 현재의 보호자 역할을 자처했다. 그의 도움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었고,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가족 없는 아이처럼 살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정남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기에’ 정상적인 최소한의 생활을 위한 것 까지만 이었다.
시후는 점점 더욱 바빠졌다. 소위, ‘별처럼 빛나는’ 성공한 배우였다. 그에게는 사람을 만나거나 챙길 수 있는 여유 따위 없었다. 그 사람이 가족일지라도. 애초부터 그와 그의 아들이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현재는 스스로 자신을 정의했다.
‘골칫덩어리’.
시후에게 갑자기 굴러들어온 ‘골칫덩어리’라고.
현재는 모든 것을 홀로 해냈다. 키가 아버지와 비슷해질 때쯤부터, 그는 집안의 모든 일을 맡아서 하기 시작했다. 그의 일상은 쉬지 않고 돌아가는 공장의 기계처럼 매일매일이 똑같았다.
반듯하게 다린 교복을 입고 분주하게 주방을 누볐다. 아침부터 머리를 부여잡은 시후가 끙끙대며 찾을 꿀물을 탔다.
오늘 아침밥은 북엇국이다. 잦은 음주를 즐기는 아버지로 인해 항상 해장에 관련된 음식재료들이 마를 날이 없는 냉장고 덕택이다. 속이 쓰리건 뒤틀리건 상관할 바 없는데, 모른척하려고 해도 자꾸 신경 쓰였다. 밥보다 술을 자주 마시는 아버지가.
“……일어나. 아침에 삼촌 오기로 했잖아.”
쿵쿵, 발로 방문을 거칠게 차며 그가 외쳤다. 물론, 술 냄새가 가득한 그의 방에 들어갈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빨리 일어나서 양치라도 해. 입에서 술 냄새 올라오면 대화하는 상대방 기분 더러우니까.”
한참 동안 대답이 없다. 아빠에 대해서는 언제나 포기가 빠른 현재였다.
“몰라. 마음대로 해. 난 분명히 깨웠다.”
방문 앞에서 한숨을 쉬며 뒤돌아 선 그의 등뒤로 조용히 문이 열렸다.
“……일어났어.”
바스락거리며 문이 열리는 소리에도, 현재는 뒤 한번 돌아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