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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e 샤인
작가 : 처음부터
작품등록일 : 2017.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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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씁쓸했던 커피향
작성일 : 17-12-12     조회 : 265     추천 : 0     분량 : 4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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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 돌릴 틈 없이 바쁘다는 것은 이럴 때 쓰는 말이었다.

 

 서울의 가장 중심, 빌딩 숲 한가운데 서있는 가장 큰 건물의 7층. 제일 먼저 불이 켜졌다.

 

 대한민국의 영화와 TV드라마를 주름잡고 있는 배우들을 책임지는 이곳.

 

 <먼데이 엔터테인먼트>

 

 새벽같이 출근한 선영은 자신의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신고 있던 운동화를 벗어 던지고 전날 책상 밑에 벗어두었던 구두를 찾았다.

 

 회사에서 기대도 크고 나름대로 ‘꽃’으로 불리는 신인개발팀의 팀장으로 있는 그녀라 일을 할 때 옷차림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오늘은 중요한 외부행사 참여도 있었다. 절대 다른 이들에게 꿀릴 수 없었다.

 

 “아, 답답해.

 

 뒤꿈치를 매만지던 그녀의 입술 사이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도무지 저 뾰족한 구두는 익숙해지질 않았다. 구두에 ‘ㄱ’자도 관심 없는 그녀를 위해 아버지가 사주신 명품구두도 그녀의 발을 지켜주지 못했다. 중국의 전족여인들의 서러움을 매일 몸소 체험하는 그녀였다. 상습적으로 까지는 뒤꿈치에 밴드를 하며 선영은 남자들도 하이힐을 신는 상상을 했다.

 

 피식, 쓸데없이 웃다가 번뜩 자신의 할 일을 생각해내곤, 정신 없이 책상 위를 뒤덮은 일 더미들에 손을 뻗었다.

 

 3차 오디션을 통과한 예비배우들의 앞으로의 일정과 트레이닝 기획서까지. 추석시즌과 겹쳐 손도 못 댔던 일들이 넘쳐났다. 한참 잘나가고 있는 회사기에, 그녀의 책임 또한 막중했다.

 

 똑똑똑.

 

 그때, 누군가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역시. 제일 먼저 출근했네. 낙하산은 좀 편하게 있어야 되는 거 아냐?”

 

 나지막이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선영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말을 걸어온 그의 익숙하고 선한 미소를 보았다. 어깨를 짓누르던 피로감이 전부 가실 만큼. 따듯했다.

 

 “몇 년을 봐도- 왜 오빠의 인사말은 항상 똑같아? 커피 고맙다는 얘기를 할 수가 없잖아.”

 

 “그래서- 안 반가워? 싫어?”

 

 그녀의 개인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지훈이 그녀의 책상에 커피를 내려놓았다. 갓 뽑은 뜨거운 커피를 조심스레 움켜쥐면서, 선영은 그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에 악의는 없었다. 눈은 노려보면서도 입술은 한없이 웃고 있었다.

 

 생각할 사이도 없이 대답이 불쑥, 나와버렸다.

 

 “……아니.”

 

 3개월이 넘는 해외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지훈을 기다리고 있던 선영이었다. 반가운 마음이, 오랜만에 던진 그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섭섭한 마음을 이겨버렸다.

 

 “오빠는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어제 도착했다며. 안 피곤해? 새벽부터 무리하지 말지……”

 

 “팀장님도 이렇게 열심히 하시는데, 한낱 대리인 제가 어찌 편히 잠을 자겠습니까. 일찍 와서 강선영 팀장님 커피라도 대령해야죠.”

 

 “아, 쫌!”

 

 선영의 책상 위에 살짝 걸터앉은 그를 보며, 선영은 웃어버렸다. 지훈과는 벌써 알고 지낸 지 10년 가까이 되는 사이였다. 가족 같은, 아니,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이였다.

 

 그는 그녀가 신인개발팀 팀장이 된 것을 누구보다도 축하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절대로 오만하지 말고, 열심히 하라는 말이라는 것도. 지훈은 꽃이나 들고 와, 축하의 의미로 선영을 안아 줄, 결코 그런 스타일의 남자는 아니었다. 그저 조용히 찾아와, 멋없는 말로 그녀에게 장난 칠, 그런 담백한 남자였다.

 

 “또, 또. 놀린다. 자꾸 그렇게 말하면 정말 화낸다? 나, 단순한 낙하산 아니거든? 실력도 있고, 배짱도 있어.”

 

 선영의 당당한 말투에 지훈은 한껏 기가 죽은 것처럼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알아.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알고 있어.”

 

 지훈도 그녀의 자신감 넘치는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나른한 그의 목소리가 말을 이었다.

 

 “가장 먼저 축하해주고 싶었는데. 하필, 내가 출장 가 있을 때 네가 승진하는 바람에…… 아쉬워서 그래.”

 

 아무리 그녀의 아버지의 힘이 실렸다고 해도, 선영이 어린 나이에 팀장으로 승진한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실력 때문이었다.

 

 지난 5년간 <먼데이 엔터테인먼트>를 위해 일했던 선영이 나서서 뽑았던 배우지망생들은 하나같이 실력 있고 인지도 높은 배우가 되었다. 그들을 발견하고 이끈, 대중 앞에 드러나지 않지만 그들 뒤의 가장 실질적인 인물이 그녀였다.

 

 “하는 일이 변한 건 없는 데 뭐. 난 개인 사무실 받은 게 오히려 답답해. 꼭 갇혀있는 기분이라니까.”

 

 “그래도 명색이 팀장인데. 개인사무실 하나는 배정해주는 게 맞지. 게다가 여기 뷰도 좋고, 이렇게 몰래 이야기 하기도 좋잖아.”

 

 “오빠 말 들어보니까, 그 점은 좋은 거 같네. 하하하.”

 

 문득 선영을 바라보던 그는,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을 알아차렸다. 예전에 지나가는 말로 그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 같다고 말했던 기억이 났다. 아마 출장을 다녀온 그가 오늘 본사로 출근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선영이 일부러 챙겨 입고 나왔을 것이다. 그 생각에 그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형편이 어려웠던 지훈은 선영의 집안에서 운영하는 장학재단의 도움으로 그녀와 같이 미국 유학 길에 오를 수 있었다. 서로 같은 길을 가느라, 같은 회사까지 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랐다. 부유한 가정의 귀한 딸 일거라 예상은 했지만, 정말 선영은 가진 것이 많은 여자였다. <먼데이 엔터테인먼트>도 그녀의 아버지 회사였으니까.

 

 선영도 지훈도 서로를 신뢰하고 호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서로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학교를 다닐 때는 학업이, 회사에서의 지난 5년은 지금의 일이.

 

 그는 이렇게나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는 선영이 좋았다. 하지만 그는 그녀로 향한 마지막 한 발자국이 어려웠다. 항상 보이지 않는 선을 지켰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를, 형편을, 입장을 생각했다. 그에게 그녀는 올라갈 수 없는 나무 같은 존재였다. 반짝반짝 빛나서, 너무 먼 거리에서 빛나는 별 같아서, 보기만 하고 다가갈 수 없는.

 

 손에 든 커피의 향을 맡던 선영이 고요히 말했다.

 

 “향 좋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네.”

 

 시럽을 잔뜩 넣은 커피처럼, 그녀의 목소리도 달달해졌다.

 

 고등학교 때부터 항상 붙어 다녔던 지훈은 선영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었다. 무슨 음악을 좋아하는지, 어떤 옷을 좋아하는지…… 모든 것을 잘 알았다. 오늘만해도 그녀가 몇 시에 출근하는 지, 어느 카페의 어떤 커피를 좋아하는 지도.

 

 그 사실만큼 그녀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은 없었다. 선영도 그와 함께 있는 것이 좋았다. 가족만큼, 손에 든 커피만큼 따듯했다. 그와 함께하는 지금 같은 순간이 이대로 영원할 거라 믿었다.

 

 10년을 지켜봤다. 그녀도 그를 너무 잘 알았다.

 

 그렇기에 그의 머릿속이 손바닥처럼 훤하게 잘 보였고, 그에게 부담을 주기 싫었다. 선영은 지훈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깊은 열등감을 모른 채 할 수 없었다. 그가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서두르거나 재촉하지 않았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봐도- 얼핏 스치는 사람들이 그들의 모습만 봐도 다정하고 오래된 연인처럼 보였다. 간간히 오해하는 주변인들도 숱하게 많았다.

 

 그것만이 선영의 유일한 위안이 되어주었다. 사귀지만 않을 뿐이지, 그녀의 곁엔 항상 지훈이 있었기에. 그녀는 섭섭해하지 않았다.

 

 

 ***

 

 

 선영이 팀장이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더욱 승승장구하게 될 것이었다. 그녀가 걸을 길은 꽃길이 아니라 황금길이었다.

 

 지훈은 선영의 눈을 마주볼 때마다 자신의 위치를 떠올렸다. 그녀가 더욱 멀어진다. 잡히지 않는, 잡을 수 없는 별이 사라져갔다.

 

 그녀를 보고 짓는 그의 미소 끝에 씁쓸한 커피 맛이 느껴졌다. 혹시나 그녀가 그런 그를 알아차릴까, 지훈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이윽고 말도 돌렸다.

 

 “오늘 저녁 6시에 창조예고 가는 거 잊지 않았지?”

 

 그런 그의 속을 알리 없는 선영은 멀뚱히 그를 보다 대답했다.

 

 “당연하지. 오빠도 간다고 했지? 오늘 그러면 밖에 있다가 퇴근하겠네. 끝나고 같이 밥 먹을까?”

 

 “아니야. 오늘 외근 끝나고 회사 돌아와봐야 해. 급히 끝내야 하는 일이 남아서.”

 

 “음…… 그렇구나. 간만에 오빠 한국 돌아온 기념으로 치맥 먹으려고 했는데.”

 

 비 맞은 강아지처럼 축 쳐진 그녀의 눈매가 못내 아쉬운 속내를 드러냈다.

 

 “미안해. 다음에. 다음에 꼭 같이 먹자.”

 

 그는 진심으로 미안했다. 선영의 얼굴은 하나, 하나, 그에게 모든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녀의 그런 점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부담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녀라는 별을 둘러싼 우주에, 자신이 머물러야 되는 위치를 점점 헷갈리고 있었다. 지훈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들이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또, 또. 그런 표정 짓는다. 나랑 다음에 꼭 같이 먹기로 약속한 거다? 그러니까 미안한 표정 짓지마. 나, 오빠랑 약속한 건 은근 집착하거든.”

 

 푸스스, 선영이 부서지는 미소를 지었다. 그가 알 듯 말듯한 표정을 지을 때마다, 그녀는 항상 일관된 태도로 그를 대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이. 조심하고, 배려하고.

 

 사무실을 나서던 지훈이 마지못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대신, 5시에 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같이 가자.”

 

 “진짜?”

 

 별 것도 아닌 일에 그녀는 화색을 표했다. 삽시간에 분위기가 바뀌는 그녀를 보며, 그는 금새 쓸쓸한 표정을 거두었다.

 

 “미안한 만큼, 제가 특별히 모시고 가드리지요. 나, 이래봬도 고급인력이니까 영광인 줄 알아.”

 

 열린 사무실 문 사이로 슬슬 출근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쑥스러움을 느낀 선영이 재빨리 대답했다.

 

 “알았어. 고마워. 정말.”

 

 “기다릴게.”

 

 지훈이 나간 문이 조용히 닫혔다. 그대로 한참, 닫힌 문을 쳐다보던 선영은 애써 아쉬운 눈길을 돌렸다.

 

 그때까지도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아쉬운 한 발자국을 남겨둔 사람들의 관계는, 의외로 손쉽게 부서지고 깨질 수 있다는 것을. 그만큼 자신의 감정을 확신하지 못하는 것은 망설임이 아니라, 망설임을 만드는 보다 확실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잔잔한 호수 같은 상황에서 그것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배가 뒤집힐 정도로 거센 폭풍을 만나야, 그제서야 제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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