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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e 샤인
작가 : 처음부터
작품등록일 : 2017.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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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넌 도대체 어디있는 거야
작성일 : 17-12-12     조회 : 281     추천 : 0     분량 : 5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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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데 이렇게 소란스러워?”

 

 선영은 뒤쪽을 돌아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공연 시작을 알리는 사회자의 목소리에 가라앉았던 실내가 갑자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 걸까.

 

 “와, 대박! 실제로 보게 될 줄 상상도 못했어!”

 

 “야야, 사진 좀 찍어봐! 아니다. 우리 가까이 가서 보자. 멀리서도 후광 장난 아니네.”

 

 그녀는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들의 시선은 오로지 한곳으로 향했다.

 

 최시후. 늘 화제를 몰고 다니는 최고의 배우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의 등장에 공연장을 통솔하던 스텝들은 당황했다. 오늘 VIP중 특급으로 모셔야 할 귀빈이 있다고 들었지만, 그 사람이 최시후일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창조예고 이사장의 초대로 왔다는 얘기에, 스텝들은 그를 가장 앞 좌석으로 안내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시후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익히 소문은 들었지만, 생각보다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정남의 말만 믿고 편하게 온 것이 화근이었다.

 

 아니, 무슨 놈의 고등학교 졸업발표회가 이렇게 화려하고 웅장해? 그는 바로 옆 좌석에 앉아있는 정남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

 

 “야. 이렇게 기자가 많은 줄 알았으면 미리 말해줬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길래 선글라스라도 쓰고 왔어야지. 얼굴 다 드러내놓고 파워당당하게 온 건 너야, 참나.”

 

 어두운 실내에 천둥처럼 번쩍이는 카메라 셔터에 눈이 멀 지경이었다. 정남이 잽싸게 건넨 선글라스를 쓰고 시후는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아무튼, 이런 소란은 그도 현재도 썩 내키지 않는 상황이니까.

 

 “기사는 어떻게 막을 거야? 내가 여기 온 거 무슨 핑계 댈 거냐고.”

 

 “다 내가 손 써놨으니까, 걱정 하덜덜 마셔. 어차피 이 학교 이사장이 내 친척이고, 내가 너 매니저니까. 대외적으로 이상할 게 전혀 없다고.”

 

 

 ***

 

 

 멀리서 그들을 지켜보던 선영은 지훈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었다. 지금 상황에 그녀는 할말이 많았다. 새로운, 그것도 골치를 가장 아프게 할 경쟁자가 나타난 것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 <골드플래닛>기획사에서 나온다는 얘기, 들은 적 있어? 최시후가 왜 여기 나타난 거지?”

 

 “어…… 아니. 나도 지금 심히 당황스러운 걸. 항간에 떠돌던 소문이 있던데…… 사실인가?”

 

 “무슨 소문?”

 

 최시후는 최근 핫한 이슈를 가장 많이 만들어낸 배우였다. 그의 인기에 걸맞게 사실확인이 불가한 스캔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으니, 선영은 그것이 어떠한 내용의 소문인지는 정확히 짐작하기 힘들었다.

 

 “최시후가 몇 년 전부터 <골드플래닛> 기획사 지분을 차곡차곡 사들이고 있었거든. 지금 보니까 아주 작정했네. 여기까지 온 거 보니까. 직접 스카우트해서 후배양성 하려고 하는 거 같아. 제일 잘나가는 배우가 명함 내밀면, 생각할 것도 없이 덥석 잡을 애들 한둘이 아닐 텐데. 머리 아프게 생겼네.”

 

 “저 남자가 이런 쪽에 야망 있었어? 몰랐네. 오늘, 긴장 좀 타야 되나?”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지훈을 봤다. 말은 그렇게 해도, 절대로 물러설 그녀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눈앞에 대통령이 나타나도, 다짜고짜 먼저 악수부터 청할 그녀의 강단이었으니까.

 

 “그리고 또 다른 소문은……”

 

 지훈은 말을 잇지 못했다. 시끄러웠던 주변이 잠잠해지나 했더니, 또 한차례 비가 쏟아지듯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아우, 깜짝이야. 도대체가, 오늘 무슨 날이야?”

 

 깜짝 놀란 선영이 VVIP들만 앉아있는 맨 앞좌석으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그 소란의 이유를 수긍했다. 눈물 나게 유명한 최시후 앞에, 새롭게 부상하는 아이돌 한 명이 서있었다.

 

 장시욱. 이번 공연의 주연을 맡은 그는 연신 웃는 얼굴로 최시후를 깍듯이 인사하고 있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생글생글 가늘게 눈매를 만든 시욱은 그에게 공손히 악수까지 청했다. 공연 전, 그것도 한참 대기실에서 준비할 시간에 무리해서 인사할 정도라니. 눈치 빠른 선영은 시욱의 시커먼 속내를 읽었다.

 

 그러나 그걸 알리 없는 소녀 팬들은 목이 쉴 듯 소리를 질러댔다. 너무나 멋진 투샷이다, 훌륭한 조합이다, 이런 말을 내뱉으며.

 

 저 정도로 발 빠르게 움직일 정도면, 그는 비즈니스와 사회생활은 누구보다도 잘할 것 같았다. 장시욱은 확실히 아이돌로만 머물기엔 아까운 인재였다. 선영은 그의 행동에 혀를 내둘렀다.

 

 “장시욱, 쟤가 오늘 주연이라고 했지? 완전 기대되네. 주연 배역 둘 중에 무슨 역할 맡은 거야?”

 

 <프랑켄슈타인> 작품에서 사람들은 프랑켄슈타인을 괴물의 이름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정확히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만들어낸 박사의 이름이고, 괴물은 그저 이름조차 없는 ‘몬스터’다.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몬스터. 두 주연의 뛰어난 연기만으로 작품을 이끌고 나가야 되는 공연 <프랑켄슈타인>은 분명 어려운 작품임이 틀림없었다.

 

 손에 든 팜플렛을 뒤적거리던 지훈이 나지막이 대답했다.

 

 “어. 장시욱은 프랑켄슈타인 역이고, 몬스터 역에는…… 최현재?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네. 앨리자베스역엔 전미희. 그러고 보니, 이 친구도 오늘 잘 봐둬야 돼. 아역 때부터 연기하다가 그만뒀던 친구인데, 외모도 괜찮고 실력도 나쁘지 않거든. 게다가 지금은 소속사도 없어.”

 

 선영은 가슴이 뛰었다. 미국유학시절 내내 그녀를 괴롭히고 행복하게 했던 그 작품을, 이곳에서 다시 보게 될 줄이야.

 

 특히나 장시욱은 새롭게 부상하는 스타였고, 직접 본 적은 없지만 평론가들에게 꽤나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창조예고 학생들 중 화려한 이력을 가진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오늘 바쁜 일정을 쪼개서 참석한 이 시간은, 전혀 아깝지 않을 외출이 될 것이었다.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그녀는 문득 끝마치지 못했던 그의 말을 떠올리며, 지훈에게 물었다.

 

 “아참, 아까 마저 하려던 말이 뭐였어? 최시후…… 뭐?”

 

 “아, 그거.”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그녀의 질문에 그는 헛기침부터 했다.

 

 “또 다른 소문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서. 뭐. 오늘 공연에 같은 소속사인 장시욱도 나오는 거 보니까, 최시후가 여기까지 올만한 거 같기도 하고.”

 

 “왜? 무슨 소문이길래?”

 

 한껏 목소리를 낮게 깐 지훈이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오래 전부터 숨겨둔 아들이 있었다는 소문.”

 

 커다랗게 눈을 뜬 선영은 고개를 돌려 지훈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이윽고 그녀의 눈동자가 그들에게서 한참이나 떨어져있는 최시후로 향했다. 괜한 얘길 한 것일까, 그는 괜히 머쓱해진 채 말을 이었다.

 

 “신경 쓰지마. 어차피 떠도는 소문이고…… 확실한 증거도, 소문의 아들을 직접 본 사람도 여태껏 없었어. 그냥 증권가 찌라시. 딱 그 정도 수준이야.”

 

 “와…… 진짜?”

 

 놀랐다기 보다 흥미롭다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피식, 코웃음을 친 후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선영의 머릿속의 생각이 들려오는 듯 했다.

 

 예상치 못한 그녀의 반응에 지훈은 당황스러웠다. 한참 동안 말 없이 웃는 그녀를 향해 그가 물었다.

 

 “뭘 그렇게 웃어?”

 

 “프흐흐…… 아니, 최시후에게 그런 소문이 있다는 게…… 웃겨서.”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의 지훈을 향해 선영은 힘겹게 웃음을 참으며 애써 설명했다.

 

 “최시후랑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만…… 저 사람이 여자를 만나고 아이도 가질 수 있다는 게, 좀…… 현실감 없어서. 일 때문에 별별 자리에서 최시후를 본 게 한 두 번이 아니거든. 그런데 내가 사석에서 본 최시후는 정말 여자한테……”

 

 더 이상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딱 한마디면 끝이었다.

 

 “아주 최악이었거든.”

 

 하얀 막이 올라갔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고대하던 쇼가 시작되었다.

 

 

 ***

 

 

 같은 시각, 무대 뒤에도 많은 사람들이 정신 없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평범한 풍경이 아니었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야, 현재 어디 갔어?”

 

 “누구요?”

 

 “최현재! 이 새끼 어디 갔냐고!”

 

 공연의 총 연출을 담당하는 박상철 선생이 스텝들을 향해 외쳤다. 핏기가 하나도 없는 창백한 그의 얼굴을 본 스텝들을 당황했다. 수많은 스텝들 중 구석에 있던 한 남자가 대답했다.

 

 “어라……? 아까 분명 여기 있었는데…… 어디 갔지?”

 

 “지금 무대 뒤에서 대기해야 할 놈이 어디 갔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야? 빨리 찾아!”

 

 자그마치 수십 명의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몇 개월의 시간과 열정을 쏟아 부은 작품이었다. 아무리 일개 고등학교의 공연이라도 허술하게 진행할 수 없는, 그만큼 영향력이 큰 행사였기에 그는 큰 혼란에 빠져있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수 천명의 관객 앞에 공연을 앞둔 배우가 갑자기 사라지다니.

 

 재빠른 몸짓으로 스텝들을 시켜 공연장 내부를 샅샅이 뒤지던 찰나, 대기실에 나타난 뜻밖의 인물에 상철의 얼굴은 굳어버렸다.

 

 “박상철 선생, 그럴 필요 없네.”

 

 창조예고의 교감선생님이었다. 국내 유명대학의 초청교수로 초대될 정도로 유능한 그는 사사건건 상철과 부딪혔다. 다른 이들의 눈엔 그저 권력욕이 강한 창조예고의 교감으로만 보이겠지만, 상철은 그의 어두운 이면을 알고 있었다. 뒷돈을 받고 배역을 분배한다는 소문은 괜히 나도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이번 공연도 얌전히 지나갈 리 없었다. 그는 상철의 캐스팅에 불만이 많았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심사가 뒤틀려 있을 것이 뻔했다.

 

 그러니 박선생의 계획대로 되지 않을 절호의 기회를, 그가 놓칠 리가 없었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며. 이제 그만 포기하게. 쓸데없이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내가 애초부터 그 녀석, 분명 문제 일으킬 것 같다고 말 했었잖아.”

 

 “교, 교감선생님. 그래도 그렇지, 시간을 주셔야죠. 제가 지금 나가서 직접 찾아보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네. 이미 막이 올라갔어. 어린 애도 아니고, 이렇게 프로의식 없는 놈을 무대에 올려 보내서 얼마나 망신을 당하려고. 창조예고 얼굴에 먹칠 할일 있어? 이제라도 내 말 들어.”

 

 냉정하게 박선생을 외면한 교감은 뒤돌아 서서 한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마치 짜여진 각본처럼, 그는 이미 현재의 빈자리를 채울 사람을 알고 있었다.

 

 “황재민. 가서 잽싸게 옷 갈아입고 다시 분장해. 어차피 몬스터는 20분쯤부터 등장하니까, 시간 충분할거야.”

 

 “……네? 저요?”

 

 자신을 지목하는 교감에 재민은 현실을 실감하지 못했다. 그저 얼떨떨한 표정으로 꿈인지 생시인지 제 볼을 꼬집고 있었다.

 

 “그래, 너. 몬스터역 스탠바이였으니까, 대사는 모두 알 거 아니야. 문제 없도록 해.”

 

 “어, 어라…… 정, 정말요? 네, 넵.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내 재민은 자신에게 기회가 왔다는 것을 깨닫고 흥분한 나머지 허리를 90도 가까이 굽히며 감사인사를 했다.

 

 그의 주변에 서있던 단역배우들은 모두 부러운 시선으로 재민을 바라봤지만, 오직 박선생만은 불만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그렇게 성실히 모든 연습에 참여했던 현재가, 그것도 공연시작 전에 갑자기 사라지다니. 게다가 준비한 듯 나타난 교감까지. 찝찝하고 불길한 기운이 그의 온몸을 감쌌다.

 

 그러나 그렇게 멍하니 서 있을 수 없었다. 이미 시작된 공연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오로지 무대가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게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었다. 그저 가슴 한 켠으로 중얼거릴 뿐이었다.

 

 최현재. 이 자식,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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