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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e 샤인
작가 : 처음부터
작품등록일 : 2017.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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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무대위의 한 남자
작성일 : 17-12-13     조회 : 264     추천 : 0     분량 : 4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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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영과 지훈은 스텝들의 안내를 따라 연회장안쪽으로 안내 받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선영은 높은 구두에서 발을 빼내었다. 피곤이 온몸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아후, 아파서 죽는 줄 알았네. 이제 오늘 임무는 끝난 거지?”

 

 “그런 셈이야. 대충 눈치껏 있다가 가면 될 거 같아. 수고했어.”

 

 “아니야.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오빠야말로 수고했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빨갛게 물든 발뒤꿈치를 매만지는 선영에게 그가 물었다.

 

 “발은 괜찮아?”

 

 “당연히 괜찮지. 왜 내 발은 아직도 적응을 못하는 지 몰라. 민망하게.”

 

 지훈은 환하게 웃어 보이는 그녀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자신의 차에 있는 여분의 신발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무래도 돌아가는 길에 꺼내주어야겠다, 생각했다.

 

 “아, 맞다. 박상철 선배! 이번 공연 총 연출이 우리학교 선배던데!”

 

 “난 아까 연회장 입구에서 박 선배 만났어. 넌 아직 인사 안 했어?”

 

 “다른 기획사분들께 인사 드리느라 못 봤나 봐. 사람이 많아서 정신이 하나도 없네. 나중에 섭섭하다고 하기 전에 찾아봐야겠다. 오빠, 나 잠깐만 갔다 올게.”

 

 자리에서 일어난 선영은 연회장입구 쪽으로 서둘러 걸어갔다.

 

 미국유학시절부터 알고 지낸 박상철 선배는 작년에 창조예고의 선생님으로 스카우트된 후 승승장구하며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실력도, 비즈니스도 뭣하나 부족함이 없는 그는 선영이 존경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기도 했다. 괴팍하고 올곧은 성격으로 까칠하긴 하지만 항상 후배들에게 아낌없는 조언을 서슴지 않기도 했고. 여러모로 그녀의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이기에 이런 자리에서 밉보여봤자 좋을 게 없었다.

 

 “상철 선배!”

 

 “어, 어. 선영이 왔구나.”

 

 “공연 너무 잘 봤어요. 역시, 선배 실력 어디 안 갔네요.”

 

 그녀는 거대한 유리문이 가로막고 있는 입구 밖에서 상철을 찾았다. 인사를 하며 그에게 다가갔는데, 예상과는 달리 핏기 하나 없는 그의 낯빛에 당황해버렸다. 마치 심각한 사고라도 당한 표정이었다.

 

 “너……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

 

 사실, 그렇게까지 감명 깊은 공연은 아니었다. 숨겨둔 본심을 들킨 것처럼 선영은 당황스러웠다. 오래된 관계에서 거짓말은 표정으로 드러나 금방 들키기 마련이었다.

 

 “날카로운 지적은 여전히 못 당하겠네요. 나 <프랑켄슈타인> 매니아인거 알면서…… 그러니까 제보는 눈이 높은 거죠. 그런데 선배…... 무슨 일 있어요?”

 

 선영의 눈에 차지 않더라도, 절대 실패한 공연은 아니었다. 오히려 많은 기립박수를 받을 만큼 꼼꼼하게 준비한 티가 역력히 나타나는 무대였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그는 좀처럼 상심이 가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공연 시작 전에, 주연 배우 하나가 갑자기 사라졌어.”

 

 “설마 몬스터역 맡은 아이 말하는 거에요?”

 

 “너도 눈치 챘지?”

 

 “……네. 좀 어색해서 말이죠. 선배가 절대 주연급으로 올릴 애는 아닐 거라는 생각은 했어요. 최현재인가? 그 아이가 원래 그 역할 하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그 자식, 감쪽같이 없어졌어! 공연이 한참 전에 끝났는데도, 도무지 어디 갔는지 찾을 수가 없어…... 내가 진짜 제명에 못살겠다…… 현재, 원래 그럴 녀석이 아닌데. 누구보다도 착실하게 준비했던 놈이었는데……. 이해할 수가 없다.”

 

 깊은 한숨을 몰아 쉬며 끝없이 한탄을 내뱉는 그에게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그의 모습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아쉬움. 그가 자신에게 아쉬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지내온 시간 동안 그는 단 한번도 그런 감정을 표현한 적 없었다. 오히려 깐깐하고 도도했기에, 버릴 카드는 깔끔하게 버렸다. 뒤돌아보거나 곱씹는 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그는 동료들이 놀려왔던 ‘쿨내가 진동하는 박선배’가 아니었다.

 

 문득, 그녀는 궁금해졌다.

 

 “저…… 그런데 선배. 이런 말 물어보긴 좀 그렇긴 한데…… 선배가 그 애한테 그렇게 목 매달만큼 아까워요?”

 

 그녀의 물음에 상철은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내 물었다. 거칠게,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불을 붙이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너도 알고 있지? 내가 정말 이 바닥에 자다가도 진저리 칠 정도로 오래있었던 거.”

 

 상철은 대대손손 방송국에 뼈를 묻는 집안 출신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눈 감고도 알 수 있어. 누가 무슨 끼를 가지고 있는지,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 지.”

 

 선영은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아마 한번도 본 적 없는 상철의 표정 때문일지도.

 

 “최현재, 그 녀석. 물건이야.”

 

 

 ***

 

 

 선영은 발뒤꿈치를 짓누르는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빠르게 걷는 그녀의 발걸음은 좀처럼 느려지지 않았다.

 

 핸드폰. 핸드폰을 두고 왔다.

 

 마지막 기억은 공연장이었다. 바보처럼 전원을 킨 다음 그대로 의자에 두고 일어난 것 같았다. 게다가 최신형인데. 이미 머릿속으로 자신의 머리를 수백 번 쥐어박았다.

 

 ‘선영이 너, 여기까지 오는데 왜 연락 한번 안하고 왔냐. 그랬으면 공연시작 전에 애들 한 명씩 다 소개해줬을 텐데.’

 

 ‘아참, 저 선배 연락처 없어요. 한국 왔으면 바로 알려주셨어야죠. 보고 싶었잖아요. 이거, 제 명함이에요. 그리고 제 폰에 선배 연락처 좀……’

 

 상철이 물어보지 않았다면 집에 갈 때까지 몰랐을 것이다. 환하게 웃던 그녀의 표정은 삽시간에 창백하게 질려버렸다.

 

 ‘헉! 핸드폰! 어, 어떻게! 공연장에 두고 왔나 봐요! 저 잠깐, 갔다 올게요!’

 

 어느새 몰려든 다른 기획사사람들이 상철을 둘러쌀 때쯤, 그녀는 허둥지둥 자리를 피했다.

 

 젠장. 멍청이 같아. 아무리 잊어버릴 게 따로 있지.

 

 불이 꺼진 공연장입구에서 경비아저씨를 만나 자초지정을 설명했다. 그는 어차피 지금 아무도 없을 테니 천천히 잘 찾아보라고 했다. 같이 가줄 줄 알았는데, 한차례 폭풍처럼 지나간 행사 때문인지 경비아저씨는 무척이나 피곤해 보였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터덜터덜 선영을 지나쳐갔다.

 

 “뭐야…… 불도 다 꺼져있고, 혼자 가기 무서운데.”

 

 그녀는 투덜거리며 공연장안으로 들어갔다.

 

 경비아저씨의 말대로 공연장안은 아무도 없었다. 아직 꺼지지 않은 무대의 조명에 그녀는 어둠 속을 걸을 수 있었다. 이 거대한 공간에 혼자 있다고 생각하니, 괜히 으스스한 기분까지 느껴졌다. 카펫 위를 밟는 발걸음이 절로 조용해졌다.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숨죽여 걸었다.

 

 자신이 앉았던 의자 위를 더듬거리자 뭉툭한 무언가가 만져졌다. 그녀의 핸드폰이었다. 다행이었다. 배터리가 다 되었는지 켜지지는 않았지만 찾은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가. 이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잃어버리지 말아야지, 다시 수백 번 머릿속으로 다짐했다.

 

 그때였다.

 

 뚜벅, 뚜벅. 어딘가에서 광활한 공연장을 울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선영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숨겼다. 문득 자신의 행동에 어이가 없었다. 내가 뭘 잘못했나? 내가 왜 숨어? 하지만 홀로 있는 어두운 실내는 그녀를 두렵게 만들었다. 이상한 일은 생기지 않겠지?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의자위로 빼꼼히 고개를 든 그녀의 시선은 오로지 한곳으로 향했다.

 

 바로 무대 위, 한 남자가 서 있는 그곳으로.

 

 

 ***

 

 

 억울하다고? 비참하다고?

 

 아니,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현재는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것을 경험했다.

 

 살면서 이런 일을 겪은 건 한번도 아니었다. 별일 아닌 것처럼 웃으며 지나갈 수도 있었다.

 

 자신의 공연을 몰래 찾아오려고 했던 (대외적으로 들켰으나 말을 하지 않았기에 ‘몰래’일 수 밖에) 시후에게 헐레벌떡 달려가던 시욱을, 현재는 고요히 지켜봤다.

 

 이제 와서 아빠 노릇을 하려고 하는 그가 우스웠지만 싫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노력이라는 것을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었다. 자신을 위한 공연이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힘겹게 준비했고, 이제 막 시작하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결국은 틀어져버렸다. 누구도 믿지 말았어야 했는데.

 

 ‘최현재. 박선생님이 잠시 할말이 있다고 방송실로 오라는데?’

 

 누구였더라.

 

 주변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던 그는 자신에게 말을 건 스텝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다. 박선생님인 공연 전에 누굴 따로 부를 인물이 아니었는데. 현재는 순진하게도 그 말을 믿어버렸다. 공연장 3층 복도 끝에 있는 방송실로 그는 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불 꺼진 방송실에 아무도 없는 것을 봤을 때 들어가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 애초부터 낯선 사람의 말을 믿지 말았어야 했다.

 

 방송실에 들어서는 순간, 강한 바람이 분 것처럼 등뒤의 문이 닫혀버렸다. 알아차리자마자 재빠르게 손잡이를 돌려봤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굳게 잠긴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도와달라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사정없이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현재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아무리 소동을 부려도 밖에선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할 것이라는 걸.

 

 내가 도대체 뭘 얼마나 잘못했길래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머릿속을 쥐어짜봐도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짧지 않은 19년의 삶 동안 욕심 한번 부리지 않고 그림자처럼 살았다. 이제서야 딱 한번 욕심을 내보았는데. 난생 처음 꾹꾹 눌러왔던 꿈을 이루기 위해 발걸음을 떼던 찰나였는데.

 

 한 순간에 무너져버렸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허망한 모래알처럼 그렇게 날아가버렸다.

 

 서늘한 한숨이 몰아치는 뜨거운 가슴을 움켜잡고, 향할 곳 없는 원망을 짓누르고 있었다. 하얗게 타버린 그의 머릿속이 알 수 없는 감정의 검은 형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지금 오직, 단 한 사람만이 떠올랐다.

 

 ‘너 따위가 감히 공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어디서 굴러먹다 온, 근본도 없는 네가?’

 

 네 짓이야?

 

 정말 네가 이런 짓을 저지른 거야?

 

 그 지독하게 두꺼운 가면을 쓰고…… 이렇게 잔인한 짓을 벌인 거야?

 

 차갑게 내뱉어진 말이 계속해서 현재의 귓가를 맴돌았다.

 

 ‘그러니까 넌 이제 빠져.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쥐 죽은 듯 숨어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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