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로맨스
Shine 샤인
작가 : 처음부터
작품등록일 : 2017.11.12
  첫회보기
 
9. 몬스터
작성일 : 17-12-13     조회 : 274     추천 : 0     분량 : 5431
뷰어설정열기
기본값으로 설정저장
글자체
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현재는 <프랑켄슈타인>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프랑켄슈타인이 만들어낸 괴물의 대사 때문이었다. 그는 그다지 대본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괴물에게서 미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대사를 입 밖으로 꺼낼 때마다,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말이 불쑥 튀어나오는 것만 같았다. 불편하고 불쾌했다.

 

 그는 매번 아버지를 떠올렸다. 자신이 무슨 홍길동도 아니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었다. 이제는 더 이상 아버지라 부르기도 싫었고, 그의 피가 자신의 몸에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본능에 이끌린 듯 텅 빈 무대에 올라선 것이 문제였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다. 그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를 것이라 생각했다. 적어도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전까진.

 

 습관이 되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이미 몸 깊숙이 배여 버린 것일까.

 

 1초의 망설임이 없었다.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 순간, 그곳에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발걸음이 미친 듯이 빨라졌다. 차오르는 숨을 참아가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정신 없이 달렸다

 

 다급한 목소리가 등뒤로 들려왔다. 그 여자는 힘겹게 그를 추격하고 있었다.

 

 “잠깐만! 잠깐만 멈춰봐! 왜 도망가는 거야!”

 

 무조건 숨어야만 한다. 절대로 붙잡히지 않을 꺼다.

 

 “너한테 할말이 있어!”

 

 나에게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거야.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의 삶대로, 익숙한 방식대로 사라져 버렸다.

 

 

 ***

 

 

 “하, 엄청 빠르네. 숨 차 죽을 거 같아.”

 

 어느 틈엔가 그의 그림자마저 사라져버렸다. 더 이상 쫓아갈 힘이 없는 선영은 바닥에 주저앉듯이 비틀거리며 벽을 짚었다. 이 거대한 건물이 그녀의 눈엔 거대한 미로처럼 보였다. 어디를 가든 똑같은 문과 똑같은 방뿐이었다.

 

 왜 그렇게 절박하게 도망치는 지,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부끄러워서? 깜짝 놀라서? 아니면 공연을 올라가지 못했기에 혼날 까봐? 그렇다고 하기엔 그는 그녀가 누구인지도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도 알지 못했다. 가슴을 옥죄는 숨처럼 그녀의 가슴은 갑갑했다.

 

 “어? 아까 그 아가씨 아닌가? 아직 안 갔어? 핸드폰은 찾았고?”

 

 “하아, 네. 하아, 덕분에요. 하아, 감사합니다.”

 

 그녀는 갑자기 나타난 경비아저씨의 질문에 손에 쥔 핸드폰을 들어 보였다. 아직도 진정되지 않은 숨을 고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를 쫓느라 땀으로 흠뻑 젖은 몰골이 민망했다.

 

 “그런데 여기서 뭐하고 있어? 신발은 어째고?”

 

 경비아저씨의 고갯짓을 따라 그녀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그녀의 시야로 엉망이 된 자신의 발이 보였다. 멀쩡하게 신고 있던 구두는 어느 틈엔가 사라진 채 맨발이었다.

 

 “아…… 그게……”

 

 잠시 머뭇거리던 선영은 경비아저씨에게 물었다.

 

 “아저씨, 혹시 이쪽으로 뛰어가던 남자애 못 보셨어요?”

 

 그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대답했다.

 

 “남자애라니? 누구? 에이, 공연 끝난 지가 언젠데. 누가 있다고. 아가씨도 얼른 들어가. 이제 여기 문 닫아야 해.”

 

 등 떠밀리다시피 그녀는 공연장 밖으로 쫓겨나왔다.

 

 야외의 찬바람이 뜨거운 두 볼에 스쳤다. 그 서늘함에 뜨거워졌던 몸이 식어 추위마저 느껴졌다. 마치 꿈에서 깨어난 기분마저 느꼈다.

 

 난 이곳에서 무엇을 본 걸까. 정말 꿈이었던 것일까.

 

 “선영아!”

 

 멀뚱히 서있는 그녀를 다급하게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자, 멀리서 그녀를 향해 달려오는 한 남자가 보였다. 지훈이었다.

 

 “한참 찾았잖아. 여기서 뭐하고 있었어. 상철 선배가 너 여기 있을 것 같다고 해서 왔는데, 다행이다…… 걱정했어.”

 

 하늘에 붕 떠있던 그녀의 이성이 지상에 발을 내디디었다. 드디어 현실로 돌아왔다. 뺨을 맞은 것처럼 살갗이 얼얼한 기분마저 들었다.

 

 “어…… 오빠, 미안해. 내가 핸드폰 찾느라 정신이 없어서.”

 

 땀에 젖어 엉망이 된 그녀의 모습에 지훈은 화들짝 놀랐다. 그것보다 더 이상한 점은,

 

 “구두는 어쨌어? 왜 맨발이야?”

 

 “아, 그게……”

 

 이상하리만치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왜 그때 지훈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는지 지금도 돌이켜보면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너무 정신 없이 찾느라 벗겨졌나 봐. 잃어버린 줄도 몰랐네. 하하하.”

 

 “선영아. 지금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니? 너 때문에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 다음부턴 혼자 다니지마. 아무리 학교라도 밤이고 어둡잖아.”

 

 “알았어…… 걱정해줘서 고마워.”

 

 부드러운 그의 목소리가 온몸을 감쌌다. 온기 가득한 그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서늘했던 몸이 녹았다.

 

 그녀를 바라보던 지훈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으로 향했다. 그녀의 물건이 아닌, 이질적인 형체가 선영의 손에 들려있었다.

 

 “이건…… 뭐야?”

 

 자연스레 움켜쥔 자신의 손을 본 그녀는 당황했다.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선영의 입술이 말라버렸다.

 

 도수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두꺼운 렌즈의 검은 뿔테 안경.

 

 “어, 어라?”

 

 눈앞에 있던 눈사람은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다. 아침이 오자 밤하늘의 별이 사라진 것처럼.

 

 하지만 알고 있다. 별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는 것을. 단지 잠시 동안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가 본 별은 꿈이 아니었다.

 

 

 ***

 

 

 “시후야! 최시후! 집에 있어?”

 

 다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정남이 소리쳤다. 거칠게 신발을 벗어 던진 그는 어둠이 내려앉은 거실에서 시후의 그림자를 찾았다. 그리고 이내 곧 소파의 한 켠에 앉아있는 그를 발견했다. 숨조차 쉬지 않는 것처럼, 그는 고요한 침묵 속에 소리 없이 앉아 있었다.

 

 “일단 기자들 쫓아오는 건 다 쫓아냈어. 고등학교 행사에 무슨 꿀이라도 발라놨나, 벌떼처럼 몰려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나도 이야기만 들었지 실제로 가본 건 처음이라…… 미안하다.”

 

 자신의 두 손바닥을 맞잡은 정남은 열이 피어 오를 정도로 비벼댔다. 그 자리에서 시후가 죽으라면 죽을 수 있을 것처럼 최선을 다해 빌었다.

 

 공연을 앞둔 현재가 사라진 것마저 그의 잘못처럼 느껴졌다. 설마 최시후가 졸업발표회에 왔기 때문에 화가 나서 사라져 버린 것일까. 그 정도로 현재는 시후가 싫은 걸까.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서슬 퍼런 불빛이 시후의 얼굴을 비췄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무표정이었지만 오늘따라 더욱 차갑게 보였다.

 

 “혀, 현재는 찾았어?”

 

 쉿.

 

 시후는 대답대신 엄지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댔다. 그의 행동에 호들갑 떨던 정남은 그대로 얼음처럼 멈춰버렸다.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알 수 있었기에.

 

 현재는 이미 집에 돌아와 있었다.

 

 한껏 목소리를 낮춘 정남이 물었다.

 

 “현재, 지금 방에 있어? 어디 다치거나 한 건 아니지? 무슨 사고 났었던 거 아니지?”

 

 “내가 집에 왔을 때부터 저렇게 방에 틀어박혀 있었어. 벌써 3시간째야.”

 

 시후의 피곤한 표정이 더욱 깊어졌다. 습관처럼 손가락으로 미간에 생긴 주름을 매만졌다. 답답한 마음만큼 굳게 닫힌 현재의 방문을 열 용기도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밖으로 나올 그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얌마, 현재 얼굴은 봤어? 무슨 일 있었는지 물어보지도 않았단 말이야? 아빠라는 놈이 애가 갑자기 사라졌는데, 방에 쳐 박혀있다 거 알았다고 확인도 안 해?”

 

 “아빠 자격 운운하는 거라면, 입 닫아. 이미 저 자식한테 충분히 들었으니까.”

 

 가시 돋친 그의 목소리에 정남은 입을 다물었다. 얼어붙은 그의 눈동자가 말하는 듯 했다.

 

 나도 답답하다고. 답답해서 미쳐버릴 것 같단 말이야.

 

 아무리 관심이 없다고 해도 현재는 시후의 아들이었다.

 

 다급한 마음에 현재가 갈만한 곳은 모두 찾아보려 했지만, 유명인인 그는 함부로 돌아다닐 수 없었다. 어디를 가나 사람만 몰고 다닐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정남에게 모든 것을 부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힘겹게 옮기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현관에 놓여있는 현재의 운동화를 발견했다. 오만 가지 생각에 쿵쾅거리던 심장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안도의 한숨도 자신에게는 사치처럼 느껴졌다.

 

 ‘최현재! 최현재!’

 

 곧장 현재의 방으로 달려가며 그가 소리쳤다. 그러나 손잡이에 손을 대려는 그 때, 방안의 목소리가 시후의 몸을 멈췄다.

 

 ‘그만 불러. 시끄러워.’

 

 쇳소리처럼 갈라진 그의 목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냉담한 말투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힘이 없었다. 그 무거움에 울컥하는 감정이 가슴을 울렸다.

 

 ‘현재, 너-.’

 

 ‘걱정했다는 말 같은 거 하려면, 안 해도 돼.’

 

 단칼에 시후의 말을 잘라냈다. 그 칼날은 어느 때보다도 차가웠다. 한겨울의 눈사람처럼.

 

 ‘놀랄 것 없어. 내 특기가 숨는 거, 도망치는 거라는 거, 잘 알잖아. 애초부터 나한테 어울리는 자리가 아니었어. 이제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야.’

 

 자조석인 목소리가 쉴 틈 없이 달려왔다.

 

 ‘피곤해. 쉬고 싶어.’

 

 애초부터 내가 올라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어.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무시했어. 맞지 않는 옷은 벗어야 하는 거야.

 

 꿈조차 꾸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렇다면 이렇게 아플 이유도 없었을 꺼야.

 

 문 뒤에 서있던 현재는 소리 없이 무너져 내렸다. 지금 이 순간, 등 뒤로 닿는 딱딱한 나무문의 느낌을 제외한 주변의 모든 것이 현실감 없었다. 처음부터 꿈을 꾸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이 지독한 악몽에서 깨어나고 싶었다.

 

 ‘여태껏 어디 있었던 거야! ……책임감 없게 사내자식이 그렇게 사라지는 게 어디 있어!’

 

 다그치는 시후의 목소리는 애처롭기까지 했다. 그러나 현재는 그런 그를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그러기엔 감정의 골이 너무 깊었다.

 

 ‘책임감?’

 

 현재는 되물었다. 피식, 한숨인지 코웃음인지 알 수 없는 숨소리가 그의 입술에서 흘러 나왔다. 그 소리를 들은 시후는 온몸이 굳어버렸다. 문 뒤로 보이지 않는 현재의 표정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 했다.

 

 ‘당신 입에서 책임감이라는 말이 나오니까…… 이거 참…… 이상하네.’

 

 ‘……뭐?’

 

 지워지지 않는 흉터처럼 가슴 속 깊은 곳에 덮어두었던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눈물이 차오를 것만 같았다. 화가 나는 건지, 슬픈 건지 헷갈렸다. 허나 분명한 건, 그는 아직도 자신의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결국 참아왔던 감정이 깨어진 마음의 좁은 틈을 비집고 터져 나왔다.

 

 ‘왜 답지 않게 아빠 노릇 하려고 해? 그러기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럴 거면, 그렇게 걱정됐으면…… 10년 전 기회가 있을 때 그러지 그랬어.’

 

 지나간 세월은 되돌릴 수 없다.

 

 10년전 그때의 시후도 현재만큼 겁을 먹고 두려움에 떨었다.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발목 붙잡히지 않기 위해, 있는 힘껏 날카롭게 저항했다. 미친 듯이 일만 했다. 슬퍼지지 않기 위해.

 

 그러나 그는 보지 못했다.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절실하게 휘두르던 그의 감정에 찢기고 상처 입은 현재는 그 순간, 그 시절에 머물러 있었다. 그 어린 아이의 마음은 자라지 못했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비가 오던 그날 밤에 머물러 있었다.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답은 없다. 아무리 고민해봐도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당신은 나를 위해 가지고 있는 모든 걸 포기할 수 있어? 아버지로서 자식을 위해 모든 걸 버릴 수 있어?’

 

 시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마치 의사가 누워있는 환자에게 사망선고를 하듯, 현재는 아버지에게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그것 봐. 나는 당신을 잘 알아. 그리고…… 이젠 너무 늦었어.’

 

 
 

맨위로맨아래로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18 17. 12/19 277 0
17 16. 12월 31일 12/18 278 0
16 15. 28살. 그 해 겨울. 12/18 262 0
15 14. 예상치못한 이별 12/18 265 0
14 13. 집착녀 12/18 259 0
13 12. 내가 찾던 별, 그게 바로 너야. 12/18 262 0
12 11. 안녕. 내 이름은 강선영이야. 12/18 272 0
11 10. 신데렐라 12/13 265 0
10 9. 몬스터 12/13 275 0
9 8. 우주에 별 12/13 280 0
8 7. 무대위의 한 남자 12/13 265 0
7 6.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12/13 262 0
6 5. 넌 도대체 어디있는 거야 12/12 282 0
5 4. 졸업발표회 12/12 294 0
4 3. 씁쓸했던 커피향 12/12 266 0
3 2. 식어버린 북엇국 12/12 283 0
2 1. 약속 지켜. 12/12 281 0
1 Prologue 12/12 439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