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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e 샤인
작가 : 처음부터
작품등록일 : 2017.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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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신데렐라
작성일 : 17-12-13     조회 : 265     추천 : 0     분량 : 6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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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우리 강선영팀장님, 커피 대령이요.”

 

 다음 날 아침이었다. 아니, 아직 새벽이라고 불러야 할 시각, 대낮처럼 환하게 불 켜져 있는 사무실 안으로 지훈이 들어섰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의 두 손엔 커피가 들려있었다.

 

 “지훈 오빠. 왜 또 이 시간에 나왔어? 어제 늦게까지 회사에 있었으면 오늘은 좀 천천히 나오지.”

 

 커피를 받아 든 그녀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새벽부터 그의 얼굴을 보는 것은 싫지 않았다. 오히려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한 것처럼 뿌듯하고 반갑기까지 했다. 어제 창조예고에서 한바탕 소동을 일으킨 후 헤어진 지 8시간도 안 지났는데.

 

 “나도 할 일이 많이 쌓였거든. 제 시간에 퇴근하려면 이것보다 더 일찍 나와야 돼. 너희 아버지께 근무 외 수당 엄청 청구해야겠어. 이러다가 다크서클이 목 아래까지 내려올 것 같아.”

 

 그가 가늘게 만든 눈가를 찡긋거리자 선영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피곤한 하루의 연속이었지만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자신의 주변에 이렇게 자상한 남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음에 새삼 감사했다. 그녀의 세상이 늘 이렇게 잔잔할 수 있다는 것에.

 

 “어제 다친 발은 괜찮아?”

 

 지훈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의 발을 내려다 보았다.

 

 “물론 괜찮지. 잃어버린 구두는 경비아저씨께서 찾아봐주신다고 했어. 찾으면 연락 주신다고. 그나저나 잊을 뻔 했어. 이거.”

 

 그녀의 손이 책상아래에 놓여있던 쇼핑백으로 향했다. 맨발이었던 그녀를 위해 그가 빌려준 신발이었다. 그녀의 발 사이즈보다 한참 큰 신발이었지만, 그것마저 없었으면 고생할 뻔 했다.

 

 “그나저나 어젯밤에 무슨 일 있었던 건 아니지?”

 

 “진짜 별일 아니야. 내가 부주의한 탓이지, 뭐.”

 

 왜 맨발이 될 때까지 공연장을 뛰어 다녔는지 물었지만, 그녀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말하고 싶지 않은 걸까, 말할 수 없는 걸까. 지훈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처음으로 선영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생긴 것만 같았다.

 

 “아무튼 내가 너랑 같이 갔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너 맨발로 집까지 갈 뻔 했어.”

 

 “그래서 너무 고마워. 언제 내가 밥 살게. 하하하. 다시는 안 해야겠어, 구두 벗고 달리는 거.”

 

 의아스럽게 쳐다보는 그의 눈빛에 선영이 대답했다.

 

 “밥 산다고 했지? 오늘 점심은 어때. 마침 외근도 없고 하루 종일 사무실에 있을 것 같은데.”

 

 “아…… 미안. 낮엔 내가 일이 있어서 힘들 것 같아. 대신 저녁은 어때?”

 

 “어? 그래? 저녁엔 대표님이랑 임원진들이랑 다같이 회의하기로 했잖아. 여유롭게 먹기는 촉박할 거 같은데…… 급한 일이야?”

 

 지훈의 제안에 한번도 거절한 적 없던 그녀였다. 그가 무엇을 제안하던 그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늘 함께였다. 그를 위해 약속을 취소하고 중요한 일도 뒤로 미루던 그녀였다. 그래서인지 이런 그녀가 낯설었다. 한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을 대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이거, 처음 당해보는 거절이라 당황스러운 걸.”

 

 당황한 지훈의 입에서 본심이 튀어나와버렸다. 그의 말을 못 들었는지 미안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는 그녀의 입술이 움직였다.

 

 “꼭 가봐야 할 곳이 생겼거든.”

 

 조용히 내려다보던 시선의 끝이 낯선 뿔테안경에 닿았다. 마치 꿈이라 여겼던 지난밤은 꿈이 아니었기에, 그를 찾아야만 했다.

 

 “신데렐라. 신데렐라를 찾아야 해.”

 

 

 ***

 

 

 더위가 한풀 꺾인 가을. 하지만 가장 큰 행사가 끝난 지난밤, 그 뜨거웠던 열기 때문인지 좀처럼 더위가 가시지 않았다. 밀려들어오는 업무로 한창 바쁜 창조예고의 교무실도 예외는 아니었다.

 

 공연 <프랑켄슈타인>은 성공적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인터넷의 모든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전국의 많은 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두 주연배우였던 장시욱과 황재민은 그들의 과거행적부터 어제공연까지 낱낱이 포스팅되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범접할 수 없는 스타가 되어버렸다.

 

 공연관련자를 인터뷰하고 싶어하는 기자들과 방송사, 또 앞으로 창조예고에 입학하고자 하는 아이들의 학부모 때문에 전화벨은 쉴 틈 없이 울려댔다.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수많은 선생님들 가운데 유독 한 선생님만이 찬바람이 쌩쌩 불고 있었다. 공연을 총 연출했던, 선영의 선배인 박상철의 얼굴은 전날과 다를 바 없었다. 가장 기뻐해야 할 지금, 그는 눈앞에 서있는 단 한 명의 학생 때문에 심기가 불편했다. 도무지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다 큰놈이 도무지 책임감 따위는 눈꼽만큼도 없는 거냐? 공연을 앞두고 그렇게 사라지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피해가 간다는 걸 몰랐던 거야?”

 

 “……죄송합니다.”

 

 현재의 입술이 무겁게 움직였다. 뿔테안경너머의 그의 눈동자는 미동도 없이 바닥을 향했다. 어젯밤 무대에 두고 왔던 안경은 결국 찾지 못했다. 버리기 뭐해 서랍 속에 넣어놨던 낡은 안경을 다시 찾아 썼는데, 그 동안 시력은 더욱 나빠진 듯 했다. 초점 안 맞는 렌즈가 그의 시야를 흐릿하게 했다.

 

 차라리 잘됐어.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에 선생님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겠는데. 이렇게라도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그저, 피하고만 싶었다.

 

 그는 한 시간 동안 ‘죄송합니다’만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한숨만 내리 쉬던 상철이 고개 숙인 현재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듬직했던 너른 어깨는 하룻밤 사이에 땅으로 꺼져버릴 것처럼 축, 쳐져 버렸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얼굴을 마주하자 치밀어 올랐던 화가 손가락 사이의 모래처럼 새어나가 버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사실대로 말해.

 

 “네가 나한테 말했었잖아. 정말 무대에 서고 싶다고. 누구보다도 잘해낼 자신 있다고. 나도 그런 널 알아봤어. 네게는 재능이 있고 어젯밤은 그 어떤 것보다 가장 가치 있는 중요한 기회였다고.”

 

 너도 봤지? 장시욱과 황재민을. 썩 훌륭한 연기는 아니었지만 단지 창조예고의 졸업발표회에 올라갔다는 이유만으로 그 애들이 얼마나 주목을 받고 있는지. 앞으로 그들이 얻게 될 수많은 기회와 관심. 그건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명예로운 것들이었다.

 

 무슨 이유로 현재는 그것들을 포기한 걸까.

 

 상철이 화가 나는 것은 공연을 망칠 뻔한 현재 때문이 아니었다. 아깝고 아쉬웠다. 그 자리는, 그 공연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이 녀석이어야만 했다.

 

 너도 원하고 있었잖아.

 

 연습하는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현재의 눈빛은 피어 오르는 열정을 숨기지 못했다. 보는 이로 하여금 묘한 희열을 느끼게 할 정도로 불처럼 뜨거웠다.

 

 “그 동안 내가 보아온 넌 이럴 녀석이 아니었어. 내가 잘못 본거니? 잘못 판단한 거야?”

 

 하지만 지금의 현재는 얼음과 같았다. 찬 바람이 살갗을 뚫고 들어오는 것처럼 그가 서있는 곳은 한 겨울이었다. 열쇠를 잃어버린 자물쇠처럼 굳게 닫힌 그의 입은 좀처럼 열리지 않다.

 

 그러나 유리처럼 투명한 그의 얼굴은 자신의 감정을 철저히 숨기지 못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금방이라도 뚫고 나올 것만 같았다. 그 누구보다도 예민하고 눈치 빠른 상철이 그 감정을 놓칠 리 없었다.

 

 “그러니까, 솔직히 사실대로 말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현재의 흐릿한 시야로 상철의 눈동자가 보였다. 예리한 시선이 자신의 얼굴을 훑는다. 감정이 새어 나오는 조그만 틈새를 그 눈빛이 끊임없이 찾고 있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도울 테니까. 나에게 숨김없이 말해줬으면 좋겠어.”

 

 돕는다고? 어떻게?

 

 무대는 끝났다. 이미 모두 지나가버렸다.

 

 사실대로 말한다……?

 

 누군가 나를 가둬서 공연에 올라갈 수 없었다고? 자신을 질투한 누군가의 장난에, 그토록 준비한 모든 것들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렸다고?

 

 그는 지나간 일들을 기억한다. 이번 사건이 처음도 아니었기에.

 

 평범한 다른 학생들처럼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는 자신으로 인해 그는 고통 받아왔었다. 그 흔한 친구조차 사귈 수 없었고, 늘 없는 사람처럼 지냈다. 지금이라도 바뀔 수 있을 것이란 희망에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나섰던 공연은 물거품이 되었다.

 

 이제 와서 말한 들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선생님도, 아버지도, 정남도, 그 누구도 자신을 도울 수 없을 것이다. 차가운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순간 흔들렸던 마음을 다시 붙잡아 맸다.

 

 상철의 뜨거운 시선에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 현재는 눈사람이 되어 그 열기에 차라리 녹아버리고 싶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었다.

 

 “……무서웠습니다. 무대에 서는 그 사실이…... 겁이 나서 도망쳤어요.”

 

 거짓말.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댄다. 그는 수많은 학생들이 지켜보는 리허설 때도 단 한번 움츠러들거나 떠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래서…… 죄송합니다.”

 

 끝내 말해주지 않겠다는 거구나.

 

 상철은 그에게 향했던 자신의 시선을 거뒀다. 더 이상 이 녀석을 추궁해봤자 들을 수 있는 말은 없을 것이다. 그의 판단은 냉철했고, 그대로 포기해버렸다.

 

 머리가 아픈 듯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꾸욱- 누르며 상철은 말했다.

 

 “…… 그래. 알았다. 교실로 돌아가라.”

 

 

 ***

 

 

 낮에 보는 창조예고의 풍경은 지난밤과는 사뭇 달랐다. 역시 부자학교는 다른 건가. 선영은 차를 몰면서 쉴 세 없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교문을 넘어선지 한참 된 것 같은데 도무지 교무실이 있는 건물은 나올 생각을 안하고 있었다. 똑같아 보이는 건물을 몇 채 지나치고 얼추 이쯤이다 싶은 곳에 주차를 했다.

 

 여기서부터는 걸어갈 생각이었다. 발걸음은 무척 가벼웠는데, 비타민음료를 한 가득 든 두 손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교무실에 있는 선생님들에게 전부 나눠줘도 남을 만큼의 양이었다.

 

 약소하지만 상철을 위한 선물이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만났는데, 인사도 없이 집에 와버려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성의를 보이고 싶었다. 게다가 오늘은 부탁도 있으니까.

 

 “넓긴 엄청 넓구나. 아니, 그것보다 왜 건물을 이렇게 다 똑같이 지어놨어.”

 

 이 건물이 그 건물 같고 그 건물이 이 건물 같았다. 그럼 그렇지, 선영은 자조적인 웃음을 터뜨렸다. 태어날 때부터 몸에 탑재되어있던 길치의 재능이 오늘도 어김없이 발동했다. 화살표를 보아하니 교무실과 정반대 방향으로 걸어온 것이다. 낑낑거리며 음료가 든 봉투를 치켜 올린 그녀는 발걸음을 돌렸다.

 

 “너였지? 어제 날 가둔 사람.”

 

 그때였다. 텅 빈 운동장 옆의 컨테이너 창고를 지나치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뭐?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아닌 척 하지마…… 가면 벗은 네 모습…… 난 알고 있으니까.”

 

 그 뒤로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배꼽을 부여잡는 웃음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한참을 숨을 허덕이던 그는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그래. 내가 했다. 하하하. 그래서 뭘 어쩔 건데? 너 따위가? 선생님한테 일러 바치기라도 하려고?”

 

 “…… 그래.”

 

 그러나 그는 선생님이 두렵지 않은 모양이었다. 잔뜩 의기양양한 태도로 대답했다.

 

 “할 수 있으면 해봐, 어서. 나도 그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주- 기대하는 중이니까.”

 

 목소리와 함께 쿵, 하며 무언가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창고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놀란 선영은 그대로 발걸음을 멈췄다.

 

 “아파? 아프지? 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너 우리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 그깟 선생 따위, 단번에 이 바닥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어!”

 

 그녀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숨을 죽이고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헤맸다. 그리고 마침내 닫혀있는 컨테이너 창고의 창문들 중 손바닥만큼 열린 창문을 찾을 수 있었다.

 

 바닥에 교복을 입은 남자가 쓰러져있었다. 정신은 잃지 않았지만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드문드문 하얀 셔츠 위에 묻은 검붉은 피에 소름이 돋았다. 그런 그를 둘러싼 세 명의 남자. 그들도 같은 교복을 입고 있었다. 창조예고의 학생들.

 

 쓰러진 남학생의 배를 발로 차는, 그 불쾌했던 웃음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선영은 단숨에 알아차렸다.

 

 황재민.

 

 <프랑켄슈타인> 공연의 주연자리를 대타로 올라왔던 아이였다.

 

 어젯밤 순진무구한 얼굴로 그녀와 지훈에게 수줍게 인사하던 그의 얼굴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그녀는 손끝에서 올라오는 소름을 느꼈다.

 

 와. 사람이 저렇게까지 본성을 숨길 수 있구나.

 

 화를 주체하지 못한 재민은 점점 더 거칠어졌다. 낯빛은 이미 붉게 달아오를 데로 달아올라 있었다.

 

 혼잡하게 돌아가던 선영의 사고회로가 정지해버렸다. 이런 외진 곳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어, 어떡하지. 쉽사리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바보처럼 결단도 내리지 못한 채 숨쉬는 것조차 잊었다.

 

 쓰러진 남학생은 쿨럭, 기침을 내뱉으며 아픈 배를 움켜쥐었다. 한 손을 바닥을 짚고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일으키며 고개를 들어 재민을 노려보았다.

 

 재민은 자신을 노려보는 그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건방지게 감히 나를 노려봐? 더욱 가까이 다가간 재민은 몸을 숙여 그와 얼굴을 마주했다.

 

 “네가 노려보면 어쩔 건데? 너 같은 병신 새끼가 노려보면 어쩔 거냐고?”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피로 얼룩진 터진 입술은 차갑게 얼어붙어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숨막힐 듯한 정적이 흘렀다. 짧은 몇 초가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

 

 “애초부터 너 같은 놈은 학교에서 받아주면 안됐었어. 물이나 흐리고 질 떨어지게 만드는 병신은 사회에서 아주 매장시켰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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